셰익스피어의 '눈에는 눈(Measure for Measure)'
_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타난 법철학적 난제
(* 셰익스피어의 희곡 《눈에는 눈》을 현대dml 법철학적 관점에서 조명하여, 17세기 초 영국의 혼인법과 관습법 체계에서, 사문화된 법의 갑작스러운 집행이 지닌 사법적 폭력성과 형식주의의 위험성을 비판한다. 특히 켄지 요시노의 이론을 빌려 공감, 법규범, 형평이라는 세 가지 재판관 모델을 제시하며, 이상적인 정의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또한, 결말부의 강제 결혼을 단순한 희극적 화해가 아닌 사회적 책임을 묻는 회복적 정의의 일환으로 해석하는 독창적인 시각도 확인한다. 이 작품은 법이 도덕과 권력 사이에서 균형을 잃었을 때 발생하는 모순을 해부하며, 실질적 정의 구현을 위해 법은 유연성을 가져야 함을 지적한다.)
1. 서론: 비엔나의 법적 실험실과 1604년의 시대적 맥락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전체 작품 세계에서 《눈에는 눈(Measure for Measure)》은 가장 복잡하고 논쟁적인 ‘문제극(Problem Play)’으로 분류된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희극의 형식을 띠고 있으나, 그 내면에는 법과 도덕, 통치 권력과 개인의 자유, 그리고 정의(Justice)와 자비(Mercy) 사이의 해결되지 않는 긴장이 흐르고 있다.1 1604년경 제임스 1세(James I)의 즉위 직후 집필되고 공연된 이 작품은 단순한 문학적 텍스트를 넘어, 17세기 초 영국의 법적, 정치적 불안을 투영하는 거대한 ‘법적 실험실’로 기능한다.
본 보고서는 이 작품을 문학적 비평을 넘어선 법학적 엄밀성을 바탕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특히 관습법(Common Law), 교회법(Canon Law), 그리고 형평법(Equity)이 혼재하던 초기 근대 영국의 법적 지형도 위에서, 작품 속에 나타난 ‘사문화된 법(Desuetude)’, ‘약혼의 법적 효력(Law of Spousals)’, ‘통치자의 사법적 권한 남용(Judicial Discretion)’, 그리고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의 개념들을 철저하게 해부한다. 이는 켄지 요시노(Kenji Yoshino), 다니엘 콘스타인(Daniel Kornstein) 등 현대 법문학(Law and Literature) 연구자들의 이론과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셰익스피어가 제기한 법철학적 질문들이 현대 법체계에 어떤 시사점을 던지는지 고찰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1.1. 제목의 성서적 기원과 이중적 함의
희곡의 제목인 ‘Measure for Measure’는 마태복음 7장 1-2절의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with what measure ye mete, it shall be measured to you again)”에서 직접적으로 유래하였다.1 이는 기독교적 산상수훈(Sermon on the Mount)의 자비와 용서를 상징하는 동시에, 구약의 출애굽기 21장에 나타난 ‘동해복수법(Lex Talionis)’, 즉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엄격한 응보적 정의를 환기시키는 이중적 장치로 작동한다.4
| 성서적/법적 기원 | 주요 내용 | 작품 내 적용 및 갈등 |
| 마태복음 7:1-2 | 비판하지 말라, 자비와 용서 | 공작(Duke)과 이사벨라의 초기 태도, 5막의 사면 |
| 출애굽기 21:23-27 | 동해복수법 (Lex Talionis), 응보적 정의 | 앤젤로의 엄격한 법 집행, "앤젤로에게는 클라우디오를, 죽음에는 죽음을" |
| 로마서 7:18-20 | 인간 본성의 이중성과 죄성 | 앤젤로의 타락, 법 집행자의 도덕적 모순 |
표 1. 《눈에는 눈》의 제목에 내재된 성서적·법적 긴장 분석
이러한 이중성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테마가 된다. 법은 인간의 행위를 측정(measure)하는 잣대이지만, 그 잣대를 쥔 재판관 역시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모순이 극의 갈등을 추동한다. 셰익스피어는 이 제목을 통해 절대적인 정의의 기준이 부재한 세상에서 인간이 만든 법이 과연 공정하게 작동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2. 사문화된 법(Desuetude)과 통치권력의 정당성
2.1. 잠자는 사자의 비유: 법적 안정성과 예고 없는 집행
극의 서막에서 비엔나의 통치자 빈센티오 공작(Duke Vincentio)은 지난 14년(혹은 19년) 동안 엄격한 법규들을 집행하지 않고 방치해왔음을 시인한다. 그는 이를 “사자의 굴 속에 넣어둔 채 사냥을 나가지 않는 늙은 사자”에 비유하며, 법이 “위엄보다는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한탄한다.4 법학적 관점에서 비엔나의 상태는 법이 존재하되 집행되지 않는 ‘데수에튜드(Desuetude, 사문화)’의 상태에 놓여 있었다.
여기서 셰익스피어는 매우 현대적인 법적 쟁점을 제기한다. 법이 오랫동안 집행되지 않아 대중이 그 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믿게 된 상황에서(reliance interest), 통치자가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그 법을 집행하는 것은 ‘적법 절차(Due Process)’의 위반이 아닌가? 앤젤로(Angelo)는 공작의 대리인으로 임명되자마자 이 ‘잠자는 법’을 깨워 클라우디오를 사형에 처하려 한다. 이는 법적 안정성(Legal Certainty)을 해치는 행위이자, 시민들에 대한 ‘기습적 기소’에 해당한다.
다니엘 콘스타인(Daniel Kornstein)은 그의 저서 《변호사들을 모두 죽여라(Kill All the Lawyers?)》에서 앤젤로의 행위를 현대 미국의 ‘사문화(Desuetude)’ 법리와 연결하여 비판한다.5 미국 법원은 일반적으로 법률의 불사용(non-use)만으로는 법이 폐지되지 않는다는 ‘미국식 원칙(American Rule)’을 따르지만, 웨스트버지니아 주 등 일부 관할권과 학자들은 장기간의 불사용이 처벌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소멸을 의미하며, 이를 갑자기 적용하는 것은 헌법상 적법 절차 조항이나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처벌(Cruel and Unusual Punishment)’ 금지 조항을 위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6 셰익스피어는 앤젤로를 통해 형식적 법치주의(Rule by Law)가 실질적 정의를 침해하는 역설을 보여준다.
2.2. 선택적 집행(Selective Enforcement)과 차별적 기소
앤젤로의 법 집행은 단순히 엄격함을 넘어 ‘선택적(Selective)’이라는 점에서 치명적인 법적 결함을 드러낸다. 비엔나의 거리에는 매춘업소와 포주들이 만연해 있으며, 루시오(Lucio)와 같은 인물들은 공공연하게 성적 방종을 일삼는다. 그러나 앤젤로는 굳이 귀족 청년 클라우디오를 본보기(Example)로 삼아 사형을 선고한다.
| 피고인/대상 | 혐의 내용 | 법적 지위 및 상황 | 처벌 수위 및 결과 | 비고 |
| 클라우디오 | 혼전 성관계 (Fornication) | 사실혼 관계 (De futuro), 귀족 | 사형 선고 (즉결 처형 시도) | 본보기식 처벌 (Exemplary Punishment) |
| 앤젤로 | 권력 남용, 성상납 강요 (Extortion) | 재판관, 위선적 법 집행자 | (초기) 면책 / (후기) 강제 결혼 | 법 집행의 주체이자 범죄자 |
| 폼피/오버던 | 매춘 알선, 포주 행위 | 직업적 범죄자, 하층민 | 경범죄 처벌 (채찍질, 수감) | 구조적 범죄의 지속 |
| 루시오 | 명예훼손, 사생아 방치 | 방탕한 귀족 | 강제 결혼, 채찍질 면제 | 공작 개인에 대한 모독죄 적용 |
표 2. 비엔나의 법 집행 불균형 및 선택적 기소 분석
앤젤로는 “법은 허수아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집행은 명백한 ‘차별적 기소(Discriminatory Prosecution)’의 형태를 띤다.9 클라우디오의 행위는 상호 동의 하에 이루어진 사실혼 관계의 연장이었으나, 앤젤로는 이를 가장 악질적인 간통과 동일시하여 극형을 내린다. 이는 현대 법학에서 말하는 ‘비례의 원칙(Principle of Proportionality)’을 위반한 것이다. 클라우디오는 “우리의 본성은 쥐가 독을 삼키듯 목마른 악을 쫓는다”고 자조하지만, 그의 죄와 처벌 사이의 불균형은 관객으로 하여금 법의 공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2
2.3. 청교도적 급진주의와 법의 도덕화
이러한 선택적이고 가혹한 집행의 배후에는 앤젤로로 대변되는 ‘청교도적(Puritan)’ 도덕관이 자리 잡고 있다. 역사적으로 17세기 초 영국에서는 청교도들이 부상하며 성적 부도덕을 교회법정이 아닌 세속 법정에서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2 셰익스피어는 앤젤로를 통해, 개인의 내밀한 도덕적 영역을 국가의 형벌권으로 통제하려 할 때 발생하는 위험성을 경고한다. 앤젤로는 자신을 ‘엄격한 금욕주의자(Precisians)’로 포장하지만, 그 내면에는 억압된 욕망이 들끓고 있으며, 이는 결국 이사벨라를 향한 성적 강요라는 최악의 위선으로 폭발한다. 법이 도덕의 교사가 되려 할 때, 그 법을 집행하는 자의 도덕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법은 폭력으로 전락한다는 셰익스피어의 통찰은 현대 사회에도 유효한 메시지를 던진다.
3. 혼인법의 미로: 약혼(Spousals)의 두 가지 형태와 법적 효력
《눈에는 눈》의 핵심 갈등인 클라우디오의 사형 선고와 앤젤로의 몰락을 초래한 ‘침대 계략(Bed Trick)’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엘리자베스 및 제임스 1세 시대의 복잡한 혼인법, 특히 ‘약혼(Spousals)’의 법적 개념을 정밀하게 구분해야 한다. 당시 잉글랜드는 대륙의 가톨릭 국가들과 달리 트리엔트 공의회(Council of Trent, 1563)의 결정(사제와 증인이 없는 비밀 결혼의 무효화)을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사자 간의 사적 서약만으로도 법적 효력이 발생할 수 있는 과도기적 상태에 있었다.12
3.1. 클라우디오와 줄리엣: 미래형 약혼(Sponsalia per verba de futuro)
클라우디오는 감옥에서 루시오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며 “줄리엣은 내 아내다(She is fast my wife)”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들이 “진실한 계약(true contract)”을 맺었으나, 지참금 문제로 인해 “대외적인 형식(outward order)”을 갖추지 못했을 뿐이라고 항변한다.15
법적으로 이들의 관계는 **‘미래형 약혼(Sponsalia per verba de futuro)’**에 해당한다. 이는 “나는 너를 아내로 맞이하겠다(I will take you)”라는 미래 시제의 서약이다. 원칙적으로 이는 약속일 뿐 완전한 결혼은 아니다. 그러나 성관계(consummation)가 뒤따를 경우, 이 약혼은 즉시 법적인 결혼(Matrimony)으로 전환된다는 것이 당시 교회법과 관습법의 공통된 해석이었다.17 즉, 클라우디오와 줄리엣은 성관계를 가짐으로써 법적으로 부부가 된 것이다.
따라서 앤젤로가 이들을 ‘간통(fornication)’ 혐의로 기소하고 사형을 선고한 것은, 실체적 진실(사실혼의 완성)을 무시하고 교회법의 형식적 요건(교회에서의 공표 및 예식) 결여만을 문제 삼은 사법적 횡포이다. 셰익스피어는 이를 통해 법이 현실의 인간 관계를 담아내지 못하고 형식논리에 갇힐 때 발생하는 비극을 조명한다.
3.2. 앤젤로와 마리아나: 현재형 약혼(Sponsalia per verba de praesenti)과 조건부 계약
반면, 앤젤로와 마리아나의 관계는 더욱 법적으로 복잡하고 미묘하다. 공작의 설명에 따르면, 앤젤로는 마리아나와 결혼을 약속했으나(Pre-contract), 그녀의 지참금이 바다에서 유실되자 약혼을 파기했다.16
일부 학자들은 앤젤로와 마리아나의 약혼이 **‘현재형 약혼(Sponsalia per verba de praesenti)’**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2 이는 “나는 너를 아내로 맞이한다(I take you)”라는 현재 시제의 서약으로, 성관계 없이도 즉각적인 결혼의 효력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앤젤로는 지참금 지급을 계약의 **정지조건(Condition Precedent)**으로 간주하여, 조건이 성취되지 않았으므로 계약을 무효화(avoid)할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20
3.3. 침대 계략(Bed Trick)의 법적 메커니즘
공작이 설계한 ‘침대 계략’은 단순한 속임수가 아니라, 당시 혼인법의 허점을 이용한 정교한 법적 덫(Legal Trap)이다.
- 계약의 부활: 앤젤로가 마리아나와 성관계를 맺는 순간, 그들의 과거 약혼(Pre-contract)은 다시금 유효화된다. 육체적 결합은 혼인의 의사를 확정하는 행위(consummation)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 착오의 배제: 앤젤로는 상대를 이사벨라로 오인했으나, 교회법상 성행위 자체는 객관적 사실로서 약혼을 완성(ratify)하는 효력을 갖는다.15 즉, 앤젤로는 자신이 간통을 저지른다고 생각했으나, 법적으로는 자신의 약혼녀와 결혼을 완성하는 행위를 한 셈이 된다.
- 이중 구속: 공작은 이 계략을 통해 앤젤로를 클라우디오와 동일한 법적 지위(약혼 후 성관계)로 떨어뜨린다. 앤젤로가 클라우디오를 처형한다면, 논리적으로 자신 또한 처형되어야 하는 ‘모순의 덫’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이 침대 계략은 앤젤로의 위선을 폭로하는 동시에, “형식(지참금)보다 행위(성관계/서약)가 계약을 완성한다”는 당시의 법리를 역이용하여 정의를 구현하려는 공작의 ‘형평법적(Equitable)’ 개입을 상징한다.
4. 사법 윤리와 재판관의 모델: 요시노 교수의 3유형론
현대 법학자 켄지 요시노(Kenji Yoshino) 교수는 《눈에는 눈》을 단순한 문학 작품이 아닌, 사법적 판단(Adjudication)의 이상적인 모델을 탐구하는 텍스트로 분석한다. 그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세 가지 재판관 모델—공감, 법규범주의, 형평—을 통해 현대 사법 시스템이 지향해야 할 가치를 도출한다.4
4.1. 공감(Empathy) 모델: 초기 공작의 실패
극의 초반부 공작은 자비와 공감에 치우친 통치자로 묘사된다. 그는 인간의 약함을 이해하고 처벌을 꺼려했으나, 그 결과 비엔나는 무질서와 방종의 도시가 되었다. 요시노는 이를 “과도한 공감은 법치(Rule of Law)의 침식을 초래한다”는 경고로 해석한다.4 재판관이 피고인의 사정에 지나치게 몰입하면 법적 안정성이 무너지고 사회 질서가 위협받게 된다.
4.2. 법규범주의(Legalism/Textualism) 모델: 앤젤로의 타락
앤젤로는 정반대의 극단, 즉 ‘동해복수(Lex Talionis)’와 ‘법문언주의(Textualism)’를 대변한다. 그는 “법이 법대로 쓰여졌을 때, 내 형제라도 죽어야 한다”며 인간적 요소를 배제한 기계적 법 적용을 고집한다. 그러나 이러한 강경한 태도는 자기기만과 위선으로 귀결된다. 자신의 내면적 욕망을 법의 이름으로 억압하던 앤젤로는, 그 억압이 무너지는 순간 가장 추악한 범죄자(성폭력 및 살인 교사)로 전락한다. 요시노는 앤젤로의 몰락을 통해, 재판관 자신의 불완전성을 인정하지 않는 엄격주의(Rigorism)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역설한다.4
4.3. 형평(Equity) 모델: 에스칼러스와 후기 공작
세 번째 모델은 에스칼러스(Escalus)와 각성한 공작이 보여주는 ‘형평(Equity)’ 또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중용(Temperance)’이다. 에스칼러스는 법의 엄격함을 유지하면서도 구체적 타당성을 고려한다. 그는 폼피와 같은 하층민 범죄자들을 다룰 때 그들의 생계형 범죄의 맥락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요시노는 셰익스피어가 이 ‘제3의 길(Via Media)’을 가장 이상적인 사법 모델로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즉, 법관은 법의 문언에 구속되면서도 인간에 대한 이해를 놓지 않는 균형 감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4
| 모델 (Model) | 대표 인물 | 특징 및 법철학적 기반 | 결과 및 한계 |
| 공감 (Empathy) | 초기 공작 (Vincentio) | 관용, 불간섭주의, 기독교적 자비 (산상수훈) | 무질서(Anarchy), 법의 권위 실추 |
| 법규범 (Rule of Law) | 앤젤로 (Angelo) | 텍스트주의, 응보적 정의 (Lex Talionis), 엄벌주의 | 위선, 권력 남용, 인간성 말살 |
| 형평 (Equity) | 에스칼러스/후기 공작 | 구체적 타당성, 중용 (Aristotelian Mean), 상황 논리 | 자의적 판단 가능성, 절차적 정의 훼손 위험 |
표 3. 켄지 요시노 교수의 《눈에는 눈》 사법 모델 분석
5. 5막의 대법정: 절차적 정의의 붕괴와 규문주의적 권력
5막의 재판 장면은 표면적으로는 정의가 실현되는 장(場)이지만, 법절차적 관점(Procedural Justice)에서 보면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공작은 이 재판을 영미법 전통의 **대심주의(Adversarial System)**가 아닌, 대륙법 계열의 규문주의(Inquisitorial System), 혹은 그보다 더 전근대적인 절대 군주의 친국(Royal Audience) 형태로 진행한다.26
5.1. 자기 사건의 재판관 (Nemo iudex in causa sua)
자연법의 대원칙 중 하나는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Nemo iudex in causa sua)”는 것이다.28 그러나 공작은 루시오(Lucio)를 재판할 때 이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다. 루시오는 변장한 공작(수도사)에게 공작 자신에 대한 험담과 비방을 늘어놓았는데, 공작은 5막에서 재판관으로서 이 사적인 지식을 활용하여 루시오를 단죄한다. 공작은 피해자이자, 목격자이며, 검사이고, 동시에 판사이다. 이는 사법권의 독립과 공정성을 훼손하는 전형적인 독재적 사법 행태이다.
5.2. 감시와 함정 수사 (Surveillance and Entrapment)
공작의 정보 수집 방식 또한 현대적 관점에서 위법하다. 그는 수도사로 위장하여 감옥을 드나들며 죄수들의 고해성사를 듣고, 이사벨라와 클라우디오의 대화를 엿듣는다.30 이는 종교적 신성함을 이용한 기만이자, 피고인의 방어권을 무력화하는 불법 사찰(Surveillance)이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적인 관점에서 볼 때, 공작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든 것을 보는’ 판옵티콘(Panopticon)의 감시자로서 권력을 행사한다. 셰익스피어는 이를 통해, 정의라는 목적이 기만과 감시라는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5.3. 연극적 재판과 진실의 조작
5막의 재판은 사실관계를 규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공작이 미리 짜놓은 각본대로 진행되는 ‘연극(Theater)’이다. 공작은 이사벨라에게 거짓 증언을 하도록 사주하고, 앤젤로가 자신의 죄를 자백하도록 상황을 조작한다. 이는 법정이 진실 발견의 장소가 아니라 통치자의 권위를 재확립하기 위한 정치적 퍼포먼스의 장으로 변질되었음을 보여준다.31
6.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와 형벌의 변환
작품의 결말에서 공작이 내리는 판결들은 전통적인 응보적 정의(Retributive Justice)와는 다른 궤적을 그린다. “눈에는 눈”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물리적 보복 대신, 공작은 **결혼(Marriage)**을 형벌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6.1. 사형에서 강제 결혼으로
앤젤로는 클라우디오를 처형했다고 믿어졌기에 “앤젤로에게는 클라우디오를, 죽음에는 죽음을”이라는 원칙에 따라 사형을 언도받는다. 그러나 클라우디오가 살아있음이 밝혀지자, 공작은 그를 사면하는 대신 마리아나와의 결혼을 명령한다. 루시오 역시 채찍질과 사형 대신, 그가 낳은 사생아의 어미인 창녀와의 결혼을 명받는다. 셰익스피어는 여기서 죽음(Capital Punishment)이라는 배제적 형벌을 결혼이라는 사회적 결속(Social Inclusion)의 의무로 변환시킨다.32
이는 일종의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 실험으로 해석될 수 있다.34 범죄자를 사회에서 영구히 제거하는 대신, 그가 파괴하려 했던 사회적 질서(가정, 양육의 책임) 안으로 그를 강제로 복귀시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앤젤로는 버렸던 여인과 결합함으로써 지참금에 얽힌 탐욕을 속죄해야 하며, 루시오는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고 가장으로서의 책무를 져야 한다.
6.2. 자비의 한계와 시혜적 권력
그러나 이러한 ‘해피엔딩’은 전적으로 공작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Royal Prerogative)에 의존하고 있다. 이사벨라가 무릎을 꿇고 원수 앤젤로를 위해 자비를 구하는 장면은 기독교적 용서의 극치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공작이 이사벨라에게 청혼하는 마지막 장면은 그녀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또 다른 형태의 강압으로 읽힐 수 있다.36 이사벨라는 공작의 청혼에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 침묵은 법과 권력이 여성의 목소리를 어떻게 억압하는지, 그리고 통치자의 시혜적인 자비가 과연 진정한 정의인가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물음표이다.
7. 젠더와 법: 여성의 신체와 법적 주체성
7.1. 수녀원과 법적 성역
이사벨라는 수녀원(Convent)에 입회하려던 예비 수녀였다. 당시 법적으로 수녀원은 세속 법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 성역(Sanctuary)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앤젤로는 이사벨라를 세속의 법정으로 끌어내어 그녀의 순결을 담보로 거래를 시도한다. 이는 남성 중심의 법체계가 여성의 신체와 종교적 서약을 어떻게 침해하는지를 보여준다.
7.2. 성적 비방(Slander)과 여성의 명예
극 중 앤젤로는 마리아나와의 약혼을 파기하며 그녀의 정조를 의심하는 소문을 퍼뜨렸다. 루시오 역시 공작에 대한 성적 비방을 일삼는다. 당시 영국법에서 ‘성적 비방(Sexual Slander)’은 여성의 사회적 생명을 끊는 심각한 범죄였으나, 주로 교회법정에서 다루어지며 처벌이 미약했다. 셰익스피어는 마리아나의 명예 회복을 위해 법적 절차 대신 ‘침대 계략’이라는 초법적 수단을 동원함으로써, 당시 법체계가 여성의 명예를 보호하는 데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우회적으로 비판한다.16
8. 결론: "눈에는 눈"을 넘어서는 법의 지평
셰익스피어의 《눈에는 눈》은 17세기 초 영국의 법적 현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시대를 초월한 법철학적 난제들을 탐구한다.
첫째, 법의 사문화와 집행의 정당성 문제이다. 앤젤로의 사례는 법이 예측 가능성을 상실하고 통치자의 자의적 도덕률에 따라 집행될 때, 그것이 아무리 정의로운 법이라 할지라도 폭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형식과 실질의 괴리이다. 클라우디오와 앤젤로의 약혼 사례는 법적 형식(지참금, 공표)이 실체적 진실(사랑, 서약, 결합)을 압도할 때 발생하는 비극을 조명하며, 법이 인간의 삶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유연성과 형평(Equity)이 필수적임을 역설한다.
셋째, 인간적 재판의 한계와 회복적 정의이다. 완전무결한 재판관은 존재하지 않으며, “판단하지 말라”는 성경의 경고는 유효하다. 그러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판단이 필요하다. 셰익스피어는 그 딜레마의 해법으로 ‘죽임(Retribution)’이 아닌 ‘살림(Restoration)’과 ‘결합(Marriage)’을 제시한다.
결국 《눈에는 눈》은 완결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공작의 통치는 질서를 회복시켰으나 절차적 정의를 훼손했고, 앤젤로는 회개했으나 강제된 결혼에 갇혔으며, 이사벨라는 자비를 베풀었으나 침묵 속에 남겨졌다. 이 불완전한 결말이야말로, 인간이 만든 법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이자, 끊임없이 더 나은 정의를 고민해야 하는 우리의 과제임을 셰익스피어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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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c Justice and Private Mercy in Measure for Measure - CSUSB ScholarWorks, 1월 4, 2026에 액세스, https://scholarworks.lib.csusb.edu/cgi/viewcontent.cgi?article=1010&context=library-publ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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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ll All the Lawyers?: Shakespeare's Legal Appeal - University of Michigan Law School Scholarship Repository, 1월 4, 2026에 액세스, https://repository.law.umich.edu/cgi/viewcontent.cgi?article=3158&context=ml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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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ath, Desuetude, and Original Meaning" by John F. Stinneford - W&M Law School Scholarship Repository - William & Mary, 1월 4, 2026에 액세스, https://scholarship.law.wm.edu/wmlr/vol56/iss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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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akespeare's Measure for Measure and "The Very Mercy of the Law" - Public Discourse, 1월 4, 2026에 액세스, https://www.thepublicdiscourse.com/2017/03/19096/
- Telling Stories About Marriage: Intent and Instability in Measure for Measure and the Early Modern English Courts | Journal of the Wooden O - SUU Archives, 1월 4, 2026에 액세스, https://omeka.li.suu.edu/ojs/index.php/woodeno/article/view/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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