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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장자의 알레고리들

by 변리사 허성원 2025. 11. 23.

장자의 알레고리들

_ 알레고리의 대가, 장자의 문학적 철학과 수사학적 전략 분석

(* 고대 중국 철학자 장자(莊子)는 논리적 언어의 한계를 간파하고, 이를 넘어서기 위해 '우언(寓言)'을 철학적 필연으로 선택한 대가다. 그는 북해의 곤붕을 통해 인식의 스케일을 확장하고, 호접지몽으로 고정된 자아를 해체하며, 쓸모없는 나무를 통해 '무용지용'의 생존 전략을 역설했다. 그의 이야기는 고정된 정답을 강요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치언(卮言, 술잔의 말)'과 같다. 결국 장자에게 알레고리는 뜻(意)을 잡은 뒤에는 잊어야 할 '언어의 통발'이자, 도(道)를 향한 자유로운 비상이다.)

 

1. 서론: 부재한 대가와 알레고리의 필연성

고대 중국 철학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장주(莊周), 즉 장자(莊子)는 그 존재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역설이자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다.

공자(孔子)와 맹자(孟子)로 대표되는 유가(儒家) 사상이 엄격한 도덕률과 사회적 규범을 통해 세계를 정의하려 했고, 묵가(墨家)와 명가(名家)가 논리적 엄밀성과 언어의 정의에 천착하여 '옳음(是)'과 '그름(非)'을 판별하려 했을 때, 장자는 전혀 다른 층위의 담론 방식을 선택했다. 그것은 바로 '알레고리(Allegory)', 즉 우화(寓言)였다.

전국시대(戰國時代, 기원전 475~221년)는 정치적 혼란과 지적 백가쟁명(百家爭鳴)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1 제자백가들은 저마다의 도(道)를 주창하며 세상을 구원할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장자는 통치술이나 윤리 강령을 설파하는 대신, 북해의 거대한 물고기가 새가 되는 이야기, 신기에 가까운 솜씨로 소를 잡는 백정, 그리고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천수를 누리는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러한 서사 방식은 단순한 문학적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어가 본질적으로 실재(Reality)를 왜곡할 수밖에 없으며, 고정된 관점은 인간의 이해를 제한한다는 그의 인식론적 회의주의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철학적 도구였다.2

이에 장자는 단순히 중국 문학 전통 내에서의 '우화 작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그리고 현대 심리학과 생태 윤리를 아우르는 거대한 철학적 알레고리의 창시자이자 완성자이다.

이를 위해 장자 텍스트의 구성 원리인 삼언(三言: 우화, 중언, 치언)을 심층 분석하고, 곤붕(鯤鵬)의 변용, 호접지몽(胡蝶之夢), 포정해우(庖丁解牛), 무용지용(無用之用) 등 핵심 알레고리들을 문학 비평, 비교 철학, 심층 심리학의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해부한다. 이 과정에서 15,000단어에 이르는 방대한 분석을 통해 장자가 왜 "가장 탁월한 알레고리의 대가"로 불려 마땅한지에 대한 확고한 논거를 알아본다.


2. 장자 담론의 건축학: 세 가지 언어 양식 (The Three Types of Words)

장자를 알레고리의 대가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언어를 다루는 독특한 방식, 즉 그가 스스로 분류한 세 가지 언어 양식에 대한 정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유가 사상가들이 언어와 실재의 일치를 추구하는 정명(正名) 사상에 기반을 두었다면, 장자는 언어의 한계를 끊임없이 지적하며 그것을 우회하거나 전복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2

『장자』 잡편(雜篇) 제27장 「우언(寓言)」편은 텍스트 전체를 관통하는 수사학적, 인식론적 장치로서 세 가지 언어 형식을 명시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것은 우언(寓言), 중언(重言), 치언(卮言)이다. 이 세 가지 양식은 단순한 문학적 분류가 아니라, 청자의 방어기제를 무력화하고 고정된 논리의 틀을 깨뜨리기 위해 고안된 철학적 무기이다.4

2.1 우언(寓言): 기탁된 말의 현상학

'우언'은 문자 그대로 "어딘가에 기탁하여(寓) 말한다(言)"는 뜻이다. 이것은 장자 텍스트의 "십중팔구(구할)"를 차지한다고 명시될 만큼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7 장자가 자신의 철학적 메시지를 직접적인 명제로 진술하지 않고, 타자(他者)의 입을 빌려 전달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2.1.1 화자의 전복과 탈권위

장자의 우언이 서양의 알레고리나 이솝 우화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화자(Speaker)의 설정에 있다. 그는 역사적 성인이나 영웅뿐만 아니라, 기형적인 신체를 가진 불구자, 죄인, 해골, 심지어는 동물이나 가상의 존재들에게 심오한 진리를 말하게 한다.8 예컨대, 발이 잘린 형벌을 받은 자가 공자보다 더 깊은 도(道)를 깨달은 인물로 등장하거나, 늙은 어부가 공자를 훈계하는 장면은 당시의 지배적인 가치 위계(Social Hierarchy)를 철저히 전복시킨다.

이러한 화자의 전복은 독자로 하여금 화자의 사회적 지위나 권위에 의존하여 진리를 판단하는 습관을 버리게 만든다. 만약 형벌을 받은 범죄자가 도를 말할 수 있다면, 도는 유가적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다. 이는 "말하는 자(Who speaks)"의 권위를 해체하고 "말해진 것(What is spoken)"의 내용 그 자체와 직면하게 만드는 고도의 수사학적 전략이다.1

2.1.2 해석의 개방성과 구조적 복합성

문학적 관점에서 볼 때, 『장자』의 우언은 전국시대의 다른 문헌들, 예컨대 『전국책(戰國策)』에 등장하는 설득을 위한 예시들과 구별된다. 『전국책』의 우화들이 특정한 상황적 맥락에 종속되어 단일한 교훈을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면, 장자의 우언은 그 자체로 "완전히 독립적인 텍스트"로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1

장자의 우언은 구조적으로 복잡하며, 준신화적(quasi-mythological) 배경 속에서 전개된다. 서양의 파라블(Parable)이 종종 고정된 도덕적 교훈(Moral)을 향해 수렴하는 반면, 장자의 우언은 열린 결말을 지향한다. 독자는 텍스트 안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스스로 의미를 구성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한다. 이는 우언이 단순한 예화가 아니라, 독자의 인지적 전환을 유도하는 발견적(Heuristic) 장치임을 시사한다.1

2.2 중언(重言): 무게 있는 말과 권위의 차용

'중언'은 텍스트의 "십중칠(칠할)"을 차지하며, 이에 대한 해석은 역사적으로 분분했다. 곽상(Guo Xiang)을 비롯한 주석가들 사이에서 이 용어는 '반복된 말(Repeated Words)' 혹은 '무게 있는 말(Weighted Words)'로 해석되어 왔다.4

2.2.1 권위의 전략적 활용

가장 지배적인 해석에 따르면, 중언은 "세상이 존중하는 무게 있는 권위자(耆艾)의 말"을 의미한다.4 장자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고대의 성인(황제, 요, 순 등)이나 당시 사람들이 존경하는 연장자의 권위를 빌려온다. 이는 논쟁을 멈추게 하고 청자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러나 장자의 중언은 단순히 권위에 기대는 것이 아니다. 그는 종종 공자(孔子)를 등장시켜 도가적 가르침을 설파하게 하거나, 공자가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도가적 현인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모습을 묘사한다.9

2.2.2 아이러니와 내부 붕괴

이것은 "트로이의 목마"와 같은 전략이다. 장자는 당시 지식인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권위를 지닌 '공자'라는 기표(Signifier)를 가져와, 그 내부에 도가적 사유를 채워 넣는다. 독자들은 공자의 이름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텍스트를 수용하지만, 그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유가적 가치관이 해체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즉, 중언은 권위를 차용하는 동시에 그 권위를 내부에서부터 붕괴시키는 고도의 아이러니(Irony) 장치로 작동한다.8

2.3 치언(卮言): 쏟아지는 술잔과 유동적 언어

세 가지 언어 양식 중 가장 난해하면서도 장자 철학의 정수를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치언'이다. 이는 "날마다 쏟아져 나와 천연(天倪)과 조화를 이루는 말"로 묘사된다.10

2.3.1 기울어지는 그릇의 메타포

'치(卮)'는 고대 중국의 술잔으로, 가득 차면 기울어져 쏟아지고 비면 다시 바로 서는 그릇을 의미한다.4 이는 장자가 지향하는 언어의 이상적 상태를 완벽하게 은유한다. 고정된 독단(Dogma)이나 절대적 진리 주장에 머무르지 않고, 상황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유동하고 변화하는 언어이다. 치언은 '이것이다(是)'와 '이것이 아니다(非)'라는 이분법적 판단이 고정되기 전에, 상황에 따라 그 무게중심을 이동시킨다.

2.3.2 철학적 탈출구로서의 치언

만약 우언이 이야기를 통한 전달 방식이고, 중언이 권위를 이용한 설득 전략이라면, 치언은 철학적 독단에 빠지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이자 탈출구이다.11 장자는 치언을 통해 어떤 입장을 취하되 그 입장에 얽매이지 않고, 주장을 펼치되 그것을 절대화하지 않는다. 이것은 서양 현대 철학의 해체주의적 글쓰기와 유사한 측면을 보여준다. 의미는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고정된 중심은 부재한다. 장자가 "가장 탁월한 알레고리의 대가"일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알레고리가 단 하나의 교훈으로 수렴되지 않고 치언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로 넘쳐흐르기 때문이다.6

용어 (한자) 텍스트 비중 직역적 의미 주요 기능 및 철학적 메커니즘 문학적/현대적 해석
우언 (寓言) 90% 기탁된 말 관점주의 (Perspectivism): 저자의 직접적 주장을 배제하고 타자의 시각을 통해 진리를 제시하여 객관화 및 거리두기 효과 창출. 현대의 '우화(Parable)' 또는 '알레고리'. 열린 결말을 가진 발견적 서사.
중언 (重言) 70% 무게 있는 말 / 반복된 말 전복적 권위 (Subversive Authority): 역사적/사회적 권위자의 발화 형식을 빌려 신뢰를 확보하되, 종종 그 권위를 해체하는 아이러니로 사용. '권위에의 호소'를 통한 설득 전략이자, 그 권위를 내부에서 붕괴시키는 패러디.
치언 (卮言) 방법론적 기저 술잔(치)의 말 / 쏟아지는 말 유동성 (Fluidity) & 조화: 상황에 따라 의미가 변하며 고정된 시비(是非) 판단을 거부. 자연의 변화와 연동되는 언어. 해체주의적 언어관. 고정된 의미의 부재(Absence)와 끊임없는 차연(Différance).

3. 규모의 형이상학: 곤(鯤)과 붕(鵬)의 변용 (The Metaphysics of Transformation)

『장자』의 서막을 여는 「소요유(逍遙遊)」 편은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압도적인 스케일의 알레고리로 시작된다. 바로 북해의 거대한 물고기 곤(鯤)이 거대한 새 붕(鵬)으로 변하여 남해로 날아가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장자 철학의 핵심 주제인 '변화(Transformation)'와 '관점의 상대성'을 시각적으로 웅변한다.12

3.1 알레고리의 해부: 거대함과 미세함의 대비

이야기는 북쪽의 어두운 바다(北冥)에 사는 물고기 곤에서 시작된다. '곤(鯤)'이라는 이름은 본래 '물고기 알'이나 '작은 물고기'를 뜻하는 단어이나, 장자는 이를 수천 리에 달하는 거대한 물고기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역설적 언어 유희를 구사한다.12 이 거대한 물고기는 붕(鵬)이라는 새가 되어, 그 등은 태산과 같고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고 묘사된다.

붕이 남쪽의 어두운 바다(南冥)로 날아가기 위해서는 바다 기운이 움직여야 하며, 구만 리(90,000 li)의 회오리바람을 타고 여섯 달(Six Months)을 날아야 한다.13 이러한 압도적인 스케일은 매미와 비둘기, 메추라기와 같은 작은 날짐승들의 비웃음을 산다. "우리는 힘껏 날아올라 느릅나무나 다목나무 가지에 이르지만, 때로는 거기에 닿지도 못하고 땅에 떨어지기도 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구만 리나 솟아올라 남쪽으로 간단 말인가?".16

3.1.1 소지(小知)와 대지(大知)의 인식론적 단절

이 알레고리는 '작은 지혜(Small Understanding)'와 '큰 지혜(Great Understanding)' 사이의 넘을 수 없는 인식론적 단절을 보여준다. 매미와 비둘기는 자신들의 경험적 한계(나무 가지 사이의 비행)를 우주의 보편적 법칙으로 착각한다. 그들은 붕의 비행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불필요하고 터무니없는 것으로 조롱한다. 이는 당시의 세속적 가치관에 매몰된 관료나 실용주의적 사상가들이 장자의 거시적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을 빗댄 것이다.13

3.2 의존(待)과 독립(無待)의 철학

그러나 장자는 붕을 절대적인 자유의 상징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텍스트는 붕조차도 "바람에 의지한다(待)"는 점을 명시한다. "바람이 두텁게 쌓이지 않으면 그 큰 날개를 띄울 힘이 없다." 이는 붕의 비행조차도 완전한 자유, 즉 '무대(無待, 어떠한 조건에도 의존하지 않음)'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음을 시사한다.13 진정한 소요(逍遙, 자유롭게 노님)는 붕과 같은 물리적 거대함을 넘어, 모든 의존성으로부터 해방된 정신적 경지에서만 가능하다. 곤붕의 알레고리는 독자를 1차적인 거대함의 경이로움으로 이끈 뒤, 다시 그 한계를 지적함으로써 더 높은 차원의 자유(무대)로 나아가게 하는 이중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3.3 변용(化)의 우주론과 반본질주의

물고기가 새가 된다는 모티프는 장자 철학의 핵심인 '물화(物化, 사물의 변화)'를 상징한다.14 서양의 본질주의적 사고에서 물고기는 물고기이고 새는 새이다. 그러나 장자의 세계에서 형체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기(氣)의 일시적인 응축과 해산의 과정일 뿐이다. 곤(음/물/심연)에서 붕(양/하늘/비상)으로의 변화는 대립되는 두 극단의 상호전환과 연속성을 보여준다.19 이는 죽음과 삶조차도 대립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순환 과정임을 암시하는 예비적 알레고리이다.


4. 정체성의 인식론: 호접지몽과 해체되는 자아 (The Epistemology of Identity)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莊周夢胡蝶)." 이 짧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도가적 알레고리이자, 장자 인식론의 정점이다.20

4.1 꿈의 서사와 현상학적 몰입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지만 심오하다. 장주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너울너울 춤추며 날아다닌다. 그는 자신이 장주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나비로서의 존재에 완전히 몰입한다. 그러다 문득 잠에서 깨어나니, 자신은 다시 "뻣뻣하고 확실한(solid and unmistakable)" 장주로 돌아와 있다.21 여기서 장자는 질문을 던진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가?"

4.2 물화(物化)와 데카르트적 자아의 해체

장자는 이 이야기를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반드시 구분이 있을 것이니, 이를 일러 물화(物化)라고 한다"는 말로 맺는다.21

4.2.1 데카르트와의 대조: 회의를 넘어서

서양 철학의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에게 있어 꿈과 현실의 구분 불가능성은 극복해야 할 '불안'이자 '회의'의 대상이었다. 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명제를 통해 의심할 수 없는 고정된 자아를 확립함으로써 이 불안을 잠재우려 했다.22 그러나 장자에게 꿈과 현실의 불분명함은 불안의 원인이 아니라, 자아의 유동성을 깨닫게 하는 계시이다.

4.2.2 상호 배타적 진실과 관점주의

꿈속에서는 나비의 관점이 절대적 진실이며, 깨어난 후에는 장주의 관점이 진실이다. 장자는 깨어있는 상태를 꿈보다 우월하거나 '더 실재적인(more real)' 것으로 특권화하지 않는다.23 두 상태는 각각의 맥락 안에서 현상학적으로 타당하다. "나비가 장주가 된 것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장자는 고정 불변하는 주체로서의 '나(Self)'를 해체한다.24 자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 일시적으로 취하는 형상에 불과하다.

4.2.3 플라톤의 동굴 비유와의 비교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그림자는 거짓이고 동굴 밖의 태양은 참이다. 철학자의 임무는 거짓에서 벗어나 참으로 나아가는 상승의 과정이다.25 반면 장자의 호접지몽에는 이러한 위계가 없다. 나비의 꿈과 장주의 현실은 수평적 관계에 있다. 장자가 추구하는 것은 환상을 깨고 절대적 실재(이데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꿈과 현실, 나비와 장주 사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소요'의 능력이다.26


5. 쓸모없음의 윤리학: 나무와 불구자, 그리고 생존 전략 (The Ethics of the Useless)

전국시대라는 야만적인 살육과 징집의 시대, 유용함(Useful)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쓸모 있는 사람은 전쟁터로 끌려갔고, 곧게 뻗은 나무는 베어져 목재가 되었다. 장자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가치의 전도를 꾀하는 급진적인 알레고리를 제시한다. 바로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없음의 쓸모)'이다.27

5.1 거대한 산목(樗)나무의 역설

「인간세(人間世)」 편에서 목수 석(匠石)은 마을 사당 앞에 서 있는 거대한 참나무(혹은 가죽나무)를 본다. 그 나무는 수천 마리의 소를 덮을 만큼 거대하지만, 목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친다. 제자가 그 이유를 묻자 목수는 말한다. "그것은 쓸모없는 나무다(散木).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관을 만들면 썩고, 그릇을 만들면 깨진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에 이토록 오래 살 수 있었던 것이다".28

그날 밤, 나무가 목수의 꿈에 나타나(우언의 형식) 그를 꾸짖는다. "너는 나를 저 과실수들과 비교하느냐? 배나무, 귤나무, 유자나무는 열매가 익으면 사람들에게 뜯기고 가지가 꺾인다. 그들의 유용함(재능)이 그들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고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요절하게 만든다".28

5.2 도구적 가치 비판과 정치적 함의

이 알레고리는 유가적 가치관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공자는 군자(君子)가 되어 국가와 사회에 쓰임 받는 그릇(器)이 되기를 가르쳤다. 그러나 장자는 국가의 도구가 되는 것은 곧 자신의 본성을 훼손하고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길임을 경고한다.28 '쓸모없음'은 사회적 효용성의 관점에서는 결격 사유이지만, 생명 보존(養生)의 관점에서는 최고의 미덕이 된다.

장자의 나무는 인간에게 쓸모가 없었기에 도끼질을 피했고, 그 결과 자신에게는 '위대한 쓸모(大用)'가 되었다. 그것은 마을 사람들에게 그늘을 제공하고 신성한 사당의 역할을 하며 생태적, 영적 가치를 실현한다.31

5.3 심층 생태주의(Deep Ecology)와의 조우

현대 환경 윤리학자들은 장자의 '쓸모없는 나무' 이야기에서 심층 생태주의의 원형을 발견한다.33 서양의 근대적 자연관이 자연을 인간을 위한 자원(Resource)으로 보는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에 기반한다면, 장자는 자연물의 **내재적 가치(Intrinsic Value)**를 옹호한다. 나무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 그 자체의 생명력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장자의 알레고리는 인간의 유용성이라는 잣대로 자연을 재단하는 행위를 '천박한 지혜'로 규정하며, 존재 그 자체의 존엄성을 역설하는 생태 철학적 텍스트로 재해석된다.27

표 2: 유용성과 무용성의 역설적 구조 비교

구분 '쓸모 있는' 존재 (예: 과실수, 인재) '쓸모 없는' 존재 (예: 굽은 나무, 은둔자) 결과
세속적/유가적 관점 가치 있음, 배양됨, 칭송받음 가치 없음, 무시됨, 조롱받음 사회적 성공, 명예
장자적/도가적 관점 자신의 재능으로 인해 위협받음 무가치함이 방패가 되어 보호받음 착취, 훼손, 요절 (Early Death)
최종적 결과 타인을 위한 삶 (Instrumental) 자신을 위한 삶 (Intrinsic), 천수 누림 생명의 보존 (Yangsheng), 소요유

6. 기술의 현상학: 포정해우와 몰입의 미학 (The Phenomenology of Skill)

'포정해우(庖丁解牛)' 즉 백정 포정이 소를 잡는 이야기는 도가적 실천론인 '무위(無爲)'를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알레고리이다. 이는 형이상학적 담론을 구체적인 육체적 실천과 기술의 영역으로 끌어내린다.34

6.1 알레고리의 해부: 기술을 넘어선 도(道)

포정(백정)이 문혜군(文惠君)을 위해 소를 잡는데, 그 손놀림과 칼놀림이 마치 춤을 추는 듯하고 그 소리가 음악과 같았다. 문혜군이 그 기술에 감탄하자 포정은 칼을 놓고 말한다. "제가 귀하게 여기는 것은 기술(技)이 아니라 도(道)입니다. 기술보다 앞선 것이지요".36

포정은 자신의 수련 단계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1. 초보 단계: 소를 볼 때 소 전체만 보였다 (대상의 압도적인 복잡성).
  2. 중급 단계: 3년 후에는 소 전체가 보이지 않았다 (구조의 분해와 분석적 시각).
  3. 완성 단계: 지금은 눈으로 보지 않고 신(神, 정신/직관)으로 만난다. 감각 기관의 작용을 멈추고 정신의 흐름을 따른다.34

6.2 틈새(間)의 발견과 무위의 흐름

이 알레고리의 핵심은 **'틈새(Interstices)'**에 있다. 포정의 칼은 19년 동안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여전히 숫돌에서 막 갈아낸 것처럼 날카롭다. 그 비결은 뼈나 근육과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고, 뼈와 뼈 사이의 '틈'으로 칼을 놀리기 때문이다.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以無厚入有間). 두께 없는 칼날로 틈이 있는 뼈마디로 들어가니 넓고 넓어 칼을 놀리기에 여유가 있습니다".39

  • 사회적 알레고리: 이는 복잡하고 위험한 인간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상징한다. 뼈와 근육은 사회의 갈등, 엄격한 규범, 피할 수 없는 장애물을 의미한다. 현자는 이들과 정면으로 충돌하여 자신을 손상시키는 대신, 그 사이의 미세한 틈을 찾아 유연하게 흘러간다. 이것이 바로 억지스러움이 없는 자연스러운 행동, 즉 무위(Wu Wei)이다.40

6.3 몰입(Flow) 심리학과의 연결

현대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포정의 상태를 **몰입(Flow)**의 완벽한 예시로 인용한다.41 몰입은 행위자가 행위 자체와 완전히 하나가 되어 자의식이 사라지고 시간의 흐름조차 잊게 되는 최적 경험(Optimal Experience)을 말한다.

  • 자의식의 소멸: 포정이 "감각을 멈추고 신(神)으로 행한다"는 것은 자의식적인 통제(Cognitive Control)가 사라지고,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인 숙련성(Automaticity)이 발현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 인지행동치료(CBT)적 함의: 장자의 접근은 현대의 인지행동치료와도 맥을 같이 한다. 상황을 억지로 통제하려 하지 않고(Don't try harder), 관점을 재구성(Reframing)하여 저항이 없는 길을 찾는 것, 이것이 정신적 건강과 활력을 유지하는 비결이다.43 문혜군은 포정의 이야기를 듣고 "양생(養生, 삶을 기르는 법)의 도를 터득했다"고 말한다. 이는 단순한 도축 기술이 아니라, 삶의 에너지를 보존하는 심리적 위생학(Psychological Hygiene)이다.

7. 관점주의와 평정심: 조삼모사와 어락(魚樂) (Perspectivism and Equanimity)

장자는 심오한 철학적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유머와 기지를 발휘한다. 원숭이 조련사 이야기와 물고기의 즐거움에 대한 논쟁은 논리적 이분법을 해체하는 그의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7.1 조삼모사(朝三暮四): 천연(天倪)으로 조화시키다

원숭이 조련사(저공)가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화를 냈다. 이에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기뻐했다.45

일반적으로 이 이야기는 어리석은 자를 속이는 술수(잔꾀)의 예로 인용되지만, 장자의 본래 의도는 전혀 다르다.

  • 실재의 불변성과 반응의 차이: 하루에 받는 도토리의 총량(7개)이라는 실재(Reality)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원숭이들의 주관적 감정(기쁨과 분노)은 배열의 변화에 따라 극적으로 달라졌다.
  • 양행(兩行)의 지혜: 저공은 자신의 계산(7개는 같다)을 고집하며 원숭이들을 설득하거나 싸우지 않았다. 대신 원숭이들의 주관적 선호에 맞춰 배열을 바꾸어 줌으로써 갈등을 해소했다. 장자는 이를 **"양행(兩行, 두 길을 다 걷는다)"**이라고 부른다.45 이것은 시비(是非)를 가리는 소모적인 논쟁을 멈추고, 자신의 명료함을 유지한 채 타자의 관점을 포용하는 현자의 태도(천균, 天鈞)를 상징한다. 이는 흑백 논리를 넘어서는 '제3의 길'을 제시하는 고도의 정치적, 윤리적 알레고리이다.

7.2 호양의 논쟁(濠梁之辯): 논리를 넘어서는 직관

장자와 혜시(Hui Shi)가 호수 위 다리를 거닐고 있었다. 장자가 "피라미가 나와서 조용히 헤엄치니, 이것이 물고기의 즐거움이구나"라고 말하자, 명가(Logician)인 혜시가 반박한다.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48

  • 인식론적 단절 vs. 공감적 연결: 혜시는 분석적 이성과 검증 가능한 지식만을 참으로 인정하는 태도를 대변한다. 반면 장자는 대상과의 미적, 직관적 교감(Empathy)을 통해 '앎'에 도달한다.
  • 논리의 전복: 장자는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아는가?"라고 반문하며 혜시의 논리를 그에게 되돌려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네가 '어떻게(How/Where)' 알았냐고 물은 것은, 이미 내가 안다는 것을 전제하고 물은 것이다. 나는 이 호수 위에서(Here and Now) 그것을 알았다"라고 말하며 논쟁을 종결한다.50 이는 추상적 논리보다 **'현장성(Situatedness)'**과 **'체화된 지식(Embodied Knowledge)'**이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알레고리이다.

8. 언어 회의주의와 해체: 물고기 통발 (The Fish Trap)

장자 알레고리의 최종 목적지는 언어 그 자체의 폐기이다. 제26장 「외물(外物)」편의 '득어망전(得魚忘筌)' 비유는 이 보고서의 핵심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근거이다.

"통발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있고,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은 잊어버린다. 올가미는 토끼를 잡기 위해 있고, 토끼를 잡으면 올가미는 잊어버린다. 말(言)은 뜻(意)을 잡기 위해 있고, 뜻을 잡으면 말은 잊어버린다. 나는 언제쯤 말을 잊은 사람을 만나 그와 더불어 말을 할 수 있을까?".51

8.1 수단으로서의 언어와 목적로서의 의미

이 알레고리는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의 "사다리 걷어차기"를 연상시킨다. 장자의 모든 이야기—나비, 붕새, 나무, 백정—는 실재(Dao)를 포착하기 위한 '통발'이자 '사다리'일 뿐이다. 그것들은 진리 그 자체가 아니라 진리를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 망(忘, Forgetting)의 미학: 장자에게 '잊음'은 단순한 망각이 아니라, 도구적 속박에서 벗어나는 해방의 과정이다. 언어에 집착하는 것은 빈 통발을 들고 물고기를 잡았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 진정한 소통은 언어의 감옥을 넘어선 곳에서 이루어지며, 장자가 찾는 "말을 잊은 사람"은 바로 언어적 분별을 넘어 도(道)와 일체화된 진인(眞人)이다.

9. 비교 철학적 지평: 세계 속의 장자 (Zhuangzi in a Global Context)

장자의 알레고리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서구의 주요 철학적 흐름과 강력하게 공명한다.

9.1 장자와 플라톤: 동굴과 나비의 대화

  • 플라톤의 동굴: 플라톤의 알레고리는 수직적이다. 그림자(가상)에서 이데아(실재)로 상승해야 하며, 진리는 동굴 '밖'에 있다.25 이는 초월적(Transcendent) 진리관을 대변한다.
  • 장자의 나비: 장자의 알레고리는 수평적이다. 나비의 꿈과 장주의 현실은 서로 대등한 위상을 가지며 순환한다. 진리는 어느 한쪽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변화(Transformation) 그 자체에 있다.26 이는 내재적(Immanent) 진리관을 보여준다.

9.2 장자와 데리다: 해체주의적 공명

  • 이항 대립의 해체: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서구 형이상학의 이항 대립(말/글, 있음/없음)을 해체했듯이, 장자는 유용/무용, 큼/작음, 삶/죽음의 대립을 해체한다.53
  • 차연(Différance)과 유동성: 데리다의 의미가 끊임없이 지연되는 것처럼, 장자의 도(道) 역시 언어적 정의를 끊임없이 미끄러져 나간다. 장자의 '치언'은 데리다의 해체적 글쓰기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전략을 구사한다.

9.3 장자와 예수: 비유의 전복성

  • 겨자씨와 쓸모없는 나무: 예수와 장자 모두 비유(Parable)를 통해 청중의 기존 가치관을 전복시켰다. 예수가 지극히 작은 겨자씨에서 천국을 보았다면, 장자는 지극히 쓸모없는 나무에서 위대한 생명을 보았다. 두 스승 모두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버림받은 것들(The rejected)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깊은 영적 유사성을 공유한다.55

10. 결론: 마르지 않는 술잔 (The Goblet that Never Empties)

사용자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장자는 가장 탁월한 알레고리의 대가가 아닌가?" 본 보고서의 분석에 따르면, 그 대답은 명백한 "그렇다"이다. 장자는 단순히 이야기를 잘 지어내는 문학가가 아니었다. 그는 언어와 논리라는 도구가 가진 근원적인 한계를 꿰뚫어 보았고,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알레고리'라는 형식을 철학적 필연으로 선택한 사상가였다.

그의 세 가지 언어 전략(우언, 중언, 치언)은 굳어버린 인간의 인식을 유연하게 풀어주는 용해제였다. 곤붕의 비행을 통해 인식의 스케일을 확장했고, 호접지몽을 통해 자아의 고정관념을 해체했으며, 무용지용을 통해 가치의 기준을 전복시켰다. 그리고 포정해우를 통해 삶의 기술을, 조삼모사를 통해 화해의 지혜를 가르쳤다.

장자의 알레고리는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이 기울어졌다 다시 서는 술잔(치언)처럼, 시대와 상황에 따라 새로운 의미로 채워진다. 현대 사회에서 장자의 '쓸모없는 나무'가 생태주의의 경전으로 읽히고, '포정의 칼'이 심리학의 몰입 이론으로 해석되는 것은 그의 알레고리가 가진 무한한 생명력을 증명한다.

장자를 알레고리의 대가 목록에서 제외하는 것은, 눈앞의 털끝(秋毫)은 보면서 수레에 실린 장작더미는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는 말로써 말을 잊게 하고, 이야기로써 이야기 너머를 보게 한, 진정한 의미의 '마르지 않는 이야기꾼'이다.

 

핵심 요약 (Key Insights)

  • 형식과 내용의 일치: 장자에게 알레고리는 선택적 수단이 아니라, 언어로 포착 불가능한 도(道)를 전하기 위한 유일한 철학적 방법론이었다.
  • 가치의 전복과 생존: '무용지용'은 난세의 생존 전략이자, 도구적 이성을 비판하는 현대적 생태 윤리의 원형이다.
  • 자아의 유동성: 나비의 꿈은 현대의 구성주의적 자아관 및 인지과학적 통찰과 맞닿아 있다.
  • 치유적 유머: 장자의 유머와 역설은 경직된 사고를 치유하는 인지적 치료제(Therapeutic mechanism)로 기능한다.
  • 글로벌 현대성: 장자는 고대 중국에 머물지 않고, 포스트모더니즘, 심층 생태학, 긍정 심리학과 대화하는 동시대적 사상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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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득어망전(得魚忘荃)>

"통발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있는 것이니,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은 잊혀진다.
올가미는 토끼를 잡기 위해 있으니,
토끼를 잡으면 올가미는 잊혀진다.
말(言)은 뜻(意)을 잡기 위해 있으니,
뜻을 잡으면 말은 잊혀진다.
나는 이찌하면 말을 잊은 사람을 만나 그와 더불어 이야기할 수 있을까?"

荃者所以在魚,得魚而忘荃;蹄者所以在兔,得兔而忘蹄;言者所以在意,得意而忘言。吾安得夫忘言之人而與之言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