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고르기아스』
(* 플라톤의 대화편 『고르기아스』는 '수사학의 본질'과 '윤리적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정치철학 텍스트이다. 이 글에서는 대화편의 구조를 따라 소크라테스가 수사학의 대가인 고르기아스, 폴로스, 칼리클레스 세 명의 논적과 차례로 논쟁한다. 특히 소크라테스가 **수사학을 지식 없는 '아첨술'**로 규정하고, **'불의를 행하는 것이 당하는 것보다 나쁘다'**는 윤리적 역설을 제시하는 논증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궁극적으로 이 글은 **영혼의 질서와 덕(德)**을 통한 행복이 쾌락이나 권력 추구보다 우위에 있음을 입증하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대안을 제시하며, 현대 민주주의와 포스트-진실 시대에 대한 함의까지 포괄한다.)
I. 서론: 대화편의 배경, 구조, 그리고 철학적 중심 문제
A. 집필 배경과 목적
플라톤의 대화편 『고르기아스』는 아테네 정치철학 연구의 가장 중요한 텍스트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기원전 5세기 후반에서 4세기 초반의 문화적 세계를 배경으로 하며, 당시 아테네 사회를 지배했던 수사술과 탐욕의 정치 논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다.1 『고르기아스』가 집필된 시기는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민주정의 판결에 의해 처형된 후, 플라톤이 아테네의 정치 현실에 깊은 회의와 절망을 느꼈던 시기와 맞물린다.
대화는 겉으로 보기에 수사술의 본질을 다루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논의는 곧 도덕과 정치의 근본적인 문제로 나아가며, 궁극적으로는 "우리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즉 행복과 삶의 방식에 관한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1 이 대화편은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통치자들의 권력이 과연 바람직한지, 그리고 우리의 최우선 관심사가 쾌락 극대화여야 하는지 아니면 유덕한 행동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윤리적 선택을 독자에게 던진다.1
B. 주요 등장인물 및 상징적 역할
『고르기아스』는 소크라테스와 세 명의 대화 상대자—고르기아스, 폴로스, 칼리클레스—간의 치열한 논박을 통해 전개된다. 이 세 인물은 당대 아테네 사회의 수사학적, 정치적, 윤리적 입장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 소크라테스 (Socrates): 플라톤의 스승이자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자이다. 그는 끊임없는 질문과 논박(Elenchus)을 통해 상대방의 주장에 내재된 모순을 드러내고, 논리적 및 도덕적 일관성을 추구하며 기존 통념에 도전한다.3
- 고르기아스 (Gorgias): 시칠리아 출신으로 당대 최고의 웅변가이자 소피스트이다. 그는 수사학을 '설득의 기술'로 정의하며 청중을 사로잡는 능력을 중시한다. 그는 Kairos (때 맞는 시간) 개념에 주목했으며 4, logos의 강력한 힘을 옹호하며 인간의 행동이 진실된 앎(Epistēmē)이 아닌 의견(Doxa)에 의해 좌우된다고 주장했다.3
- 폴로스 (Polus): 고르기아스의 제자이자 수사학자이다. 그는 수사학의 가치를 권력을 획득하고 부당한 행위를 저질러도 처벌을 피할 수 있는 '역능'에서 찾는다. 그는 소크라테스와 정의와 불의의 본질에 대해 격렬하게 논쟁하며, 권력 추구와 처벌 회피를 행복의 필수 조건으로 여긴다.3
- 칼리클레스 (Callicles): 아테네의 야심찬 정치가로, 대화 상대 중 가장 급진적인 입장을 대변한다. 그는 관습적 도덕을 거부하고, 자연적인 정의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3 또한 그는 쾌락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는 쾌락주의를 옹호하며 소크라테스의 도덕적 이상주의를 격렬하게 비판한다.
C. 대화의 구조와 논의의 전환
『고르기아스』는 세 단계의 연속적인 논쟁을 통해 논의의 초점을 점진적으로 심화시키는 구조를 취한다.
- 고르기아스와의 대화: 수사학의 본질을 '지식에 기반한 참된 기술(Technē)'과 '설득을 위한 표면적 기예(Flattery)' 사이에서 규명하는 기술적 지위 문제에 집중한다.
- 폴로스와의 대화: 수사학이 제공하는 권력의 윤리적 결과에 초점을 맞춘다. 소크라테스는 불의를 행하는 것이 당하는 것보다 나쁘고, 처벌을 피하는 것이 받는 것보다 나쁘다는 두 가지 윤리적 역설을 제시한다.
- 칼리클레스와의 대화: 논의를 최고선의 정의로 심화시킨다. 자연적 정의(강자의 논리)와 쾌락주의에 기반한 삶의 방식에 대한 철학적 비판을 통해, 궁극적으로 행복을 위한 영혼의 질서(덕)의 필요성을 확립한다.
이러한 구조적 전개는 플라톤이 수사학에 대한 비판을 단순히 기술적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이 추구해야 할 근본적인 삶의 방식과 연결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II. 제1부: 수사학의 본질과 철학적 비판 (소크라테스 vs. 고르기아스)
A. 수사학의 정의와 소크라테스의 질문
대화편은 고르기아스가 자신의 수사학 기술을 선보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3 고르기아스는 수사학이 주로 법정이나 대중 앞에서 설득을 통해 청중의 의견(Doxa)을 형성하는 기술이라고 정의한다.5 고르기아스에 따르면, 말(logos)의 힘은 강력하며, 인간은 진실된 앎(Epistēmē)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드물고, 대부분 불완전한 의견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이 의견은 수사학의 힘으로 좌지우지될 수 있다.5 그는 천문학적 논쟁이나 법정 싸움에서 로고스의 기술이 청중의 마음을 뒤흔들고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점을 예로 들며, 수사학의 강력함과 그 효과를 주장한다.5
소크라테스는 수사학이 과연 '무엇'에 대한 것인지, 즉 그 대상 분야와 지위가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특히 수사학이 정의로운 것과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지식을 다루는지에 대해 탐구하며, 만약 그렇다면 수사학이 참된 기술(Technē)로서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한다.3
B. 수사학의 지위: 기술(Technē)인가, 아첨(Kolakeia)인가?
소크라테스는 참된 기술(Technē)은 그것이 다루는 대상의 진정한 선(Good)을 목표로 하며, 그 분야에 대한 지식(Epistēmē)을 요구한다는 기준을 제시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논박을 통해 수사학이 이러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함을 증명한다.
소크라테스의 결론은 수사학이 지식에 기반하지 않으며, 단지 청중을 즐겁게 하고 외적인 만족을 주는 **아첨(Kolakeia)**의 일종으로 규정된다는 것이다.1 이러한 아첨술은 다른 모습으로 가장하는 데 능하며, 진정한 지식 없이 피상적인 만족만을 추구한다.1
소크라테스는 수사학의 지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유명한 '네 가지 기술/아첨의 비유'를 사용한다. 그는 영혼과 육체의 건강을 다루는 참된 기술(정치술과 의술)과, 그것을 흉내 내는 아첨술을 대립시킨다.6
- 영혼을 위한 참된 기술 (정치): 입법술(육체의 체육술에 대응), 정의술(육체의 의술에 대응).
- 영혼을 위한 아첨술 (가짜 정치): 소피스트술(입법술의 화장술에 대응), 수사술(정의술의 제빵술에 대응).
이 비유에서 수사학은 몸의 진정한 건강을 목표로 하는 의술이나 체육술이 아니라, 순간적인 쾌락을 제공하는 제빵술이나 피상적인 외관을 꾸미는 화장술에 비유된다.6 이는 수사학이 영혼의 진정한 건강, 즉 정의(正義)가 아닌, 일시적인 만족이나 인기(표면적 외관)만을 추구하는 활동임을 의미한다.6
C. 수사학 대 변증법 비교 분석
『고르기아스』가 수사학을 비판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수사학이 진리 탐구를 포기하고 외부적 성공만을 목표로 하는 **윤리적 전도(轉倒)**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수사학은 '밖을 지향하는 것'으로서, 대중의 호응과 열광에 최우선 순위를 두며, 당연히 엄밀한 논리적 분석이나 진위 판단에는 관심이 없다.7 반면, 소크라테스의 논박(Elenchus)은 '안을 지향하는 것'으로서, 논리에 입각하여 주제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내가 가진 지식이 타당한지를 끊임없이 검토하여 참된 지식에 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7 논박은 타인의 오류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일차적으로는 자신의 앎을 검토하기 위해 자신을 향해 이루어진다.7
결국 수사학이 외부 지향적(대중 만족)일 때, 그것은 필연적으로 Doxa (의견)에 의존하고 Epistēmē (지식)를 포기하게 된다. 이러한 태도는 대중을 조작하려는 '아첨술' (Kolakeia)로 변질되며, 이는 대중에게 유리하거나 즐거운 것을 제시함으로써, 진정으로 선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지적 무능력을 은폐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다음 논쟁에서 폴로스에게 제시할 '불의를 행하는 자는 무능하다'는 주장의 중요한 철학적 배경이 된다.
수사학이 변증법과 어떻게 대립하는지는 다음 표에 요약되어 있다.
수사학(Rhetoric) 대 변증법(Dialectic) 비교 분석
| 기준 | 수사학 (Rhetoric) | 변증법 (Dialectic/철학) |
| 본질적 지위 | 아첨술 (Kolakeia)의 일종, 참된 Technē가 아님 1 | 영혼을 돌보는 참된 Technē (기술/학문) |
| 목표 | 설득, 승리, 대중의 호응과 열광 (Outward-looking) 7 | 진리 탐구, 논리적 분석, 자기 앎의 검토 (Inward-looking) 7 |
| 대상 | 의견 (Doxa), Kairos (때 맞는 시간)에 기반한 상대성 5 | 앎/지식 (Epistēmē), 보편적 진리 |
| 정치적 역할 | 민중 선동, 피상적 표면 꾸미기 (제빵술/화장술 비유) 6 | 국가의 진정한 선 추구, 영혼의 질서 확립 |
III. 제2부: 권력, 불의의 역설, 그리고 처벌의 역할 (소크라테스 vs. 폴로스)
A. 폴로스의 도전: 권력과 불의의 역능
고르기아스와의 대화가 수사학의 지위를 규명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폴로스와의 대화는 수사학적 권력의 도덕적 가치에 대한 논쟁으로 심화된다. 폴로스는 수사학의 힘이 연설가가 참주(Tyrant)처럼 무엇이든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역능(권력)에 있다고 주장한다.3 이 권력은 도시국가에서 처벌받지 않고 부당한 행위, 즉 불의를 저지를 수 있는 자유를 포함한다.4 폴로스가 보기에, 이러한 권력을 가진 자가 가장 행복하고 유능한 자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 주장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박하며, 정의에 반하여 행하는 것은 최악의 무능이라고 단언한다.4 그는 참주들이 겉으로는 강력해 보일지라도,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궁극적인 선과 행복—을 성취하지 못하는 가장 무능한 존재라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폴로스의 사법적 논증(증인들의 축적)에 대항하여, 진리 자체에 기반한 변증법적 논증을 대립시킨다.4 이 논쟁은 진리 추구 방식의 근본적 차이를 보여주며, 대중의 의견이나 외적 힘이 아닌 논리적 일관성이 윤리적 진실을 판단하는 궁극적인 기준임을 확립한다.
B. 소크라테스의 이중 윤리적 역설
변증법적 대화의 규칙에 따라 폴로스를 굴복시킨 소크라테스는 두 가지 반직관적인 윤리적 역설을 증명한다.4
1. 불의를 범하기보다 불의에 당하는 편이 더 낫다
폴로스가 불의를 행하는 것이 당하는 것보다 '수치스럽다'(추하다, Aischron)는 데는 동의했으나, 그것이 '더 나쁘다'(Kakon)는 데는 동의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이 두 개념의 관계를 해체한다. 소크라테스는 '추함'은 고통스럽거나 나쁜 것 중 하나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하고 8, 불의를 행하는 자는 당하는 자보다 고통을 더 느끼지 않으므로, 불의를 행하는 것이 결국 '나쁨'의 측면에서 능가하기 때문에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논증한다.8 따라서 폴로스는 불의를 행하는 것이 더 수치스럽다는 데 동의하는 순간, 그것이 더 나쁘다는 결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 역설은 윤리적 판단의 기준이 외부적 피해(예: 재산 손실, 신체적 고통)가 아니라 행위자의 영혼의 상태와 도덕적 병폐에 있음을 시사한다.
2. 불의를 범했다면, 그 벌을 피하기보다 벌을 당하는 것이 더 낫다
이 역설은 불의를 저지른 자의 영혼에 초점을 맞춘다. 소크라테스는 불의를 행한 자가 대가를 지불하고 처벌을 받는다면 '덜 불쌍한 자'이지만, **불의를 행하고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더욱 불쌍한 자'**라고 주장한다.8
C. 처벌의 정당성과 유익함: 영혼의 치료
소크라테스는 처벌(대가 지불)의 목적을 영혼의 질병, 즉 부정의함(혼의 악)을 개선하고 치료하는 과정으로 규정한다.8
- 처벌의 본질: 올바르게 처벌하는 자는 정당하게 처벌하는 것이며, 이는 아름다운 행위이다. 따라서 처벌받는 자는 정당한 일(유익한 일)을 겪는 것이다.8
- 최악의 상태: 처벌을 피하는 것은 영혼의 질병을 방치하는 것과 같다. 도덕적 건강의 관점에서 볼 때, 처벌을 피하는 행위는 영혼의 악을 치유할 기회를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므로, 결국 불행을 감소시키지 못하고 최악의 불행을 영속화시킨다.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처벌론은 정치적 처벌의 목적을 사회 질서 유지나 공리적 결과가 아닌, 개인의 영혼의 개선에 두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이는 정치적 권력보다 개인의 도덕적 규범이 우위에 있음을 확립하며, 도시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 개개인의 영혼의 도덕적 건강임을 강조한다.
소크라테스의 윤리적 역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소크라테스의 윤리적 역설: 불의와 처벌의 가치
| 명제 | Socrates의 주장 (철학적 견해) | 폴로스/칼리클레스의 견해 (통념) | 근거 (영혼의 상태) |
| 불의의 행위와 당함 | 불의를 행하는 것이 당하는 것보다 훨씬 나쁘다/추하다. 4 | 불의를 당하는 것이 더 나쁘다. | 행위자의 영혼에 악(질병)을 남기기 때문. |
| 처벌의 가치 | 처벌을 받는 것이 피하는 것보다 더 낫다. 4 | 처벌을 피하는 것이 권력과 행복을 위한 최선이다. | 처벌은 영혼의 악을 치료하는 '약'이며, 불행을 감소시킨다.8 |
IV. 제3부: 정의의 근거와 쾌락주의 논쟁 (소크라테스 vs. 칼리클레스)
A. 칼리클레스의 '자연적 정의'와 근본적 도전
폴로스가 소크라테스의 변증법에 굴복하자, 칼리클레스는 논쟁에 뛰어들어 소크라테스의 도덕적 이상주의에 가장 격렬하고 근본적인 도전을 제기한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자연(Physis)과 관습적 법(Nomos)을 혼동하고 있다고 비난한다.4
칼리클레스가 제시하는 자연적 정의는 급진적이다. 그는 관습적 정의(평등)를 약자들이 강한 자들을 길들이고 노예로 만들기 위해 만든 '주문과 족쇄'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10 진정한 자연법에 따른 정의는 가장 강한 자가 가장 약한 자를 명령하고 지배하며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4 강한 자는 수많은 욕망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제약 없이 만족시키는 능력을 갖는 것이 자연스러운 우월성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이러한 칼리클레스의 주장은 단순히 윤리적 관점을 넘어, 당대 아테네의 정치적 현실, 특히 제국주의적 팽창과 참주적 야망을 옹호하는 현실 정치의 논리를 대변한다. 그의 논리는 훗날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급진적 귀족적 스타일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권력 의지를 옹호하는 철학적 흐름의 원형을 제시했다는 중요성을 지닌다.10
B. 쾌락주의 (Hedonism) 대 절제 (Sōphrosynē) 논쟁
칼리클레스는 자신의 자연적 정의론을 쾌락주의(Hedonism)와 연결한다. 그에게 있어 인간의 선이란 쾌락을 의미하며, 따라서 쾌락의 무제한적 충족이야말로 훌륭하고 행복한 삶의 방식이다.3 그는 절제(Sōphrosynē)는 나약하거나 무능력한 자들이 강자에게 복종하기 위해 만든 덕목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C. 소크라테스의 쾌락-선 동일성 비판
칼리클레스의 쾌락주의적 입장을 비판하기 위해 소크라테스는 선(Good)과 쾌락(Pleasure)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보이는 두 가지 핵심 논증을 펼친다.11
1. 배타성 대 상호 의존성 논증
소크라테스는 선(Good)과 악(Bad)은 서로 배타적이어서, 사람이 동시에 선하고 악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쾌락(Pleasure)과 고통(Pain)은 상호 의존적이며 동시에 발생하고 멈출 수 있다.11 예를 들어, 마시는 쾌락은 갈증(고통)이 멈출 때 끝난다. 쾌락과 고통이 공존하거나 상호 의존적일 수 있다면, 쾌락은 선과 동일하지 않다. 만약 쾌락이 선이라면, 고통과 함께 존재할 수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2. 모순 논증
소크라테스는 용감한 사람과 비겁한 사람 모두 동일하게 고통이나 쾌락을 느낄 수 있음을 지적한다. 만약 쾌락이 곧 선(행복)이라면, 비겁한 사람 역시 용감한 사람만큼 행복하다는 모순된 결론에 도달한다.11 이러한 모순을 통해 쾌락이 선과 다르다는 점이 입증되며, 칼리클레스가 옹호하는 불의한 행위가 궁극적으로 행복을 가져오지 못함이 드러난다.11
D. '새는 항아리 비유'의 분석: 무절제한 삶의 무용성
소크라테스는 '새는 항아리 비유'를 두 차례 사용하여 칼리클레스의 무제한적 욕구 충족의 삶이 가지는 실질적인 실패를 폭로한다.12
- 비판 1: 동일한 노역의 무한한 반복: 첫 번째 비유는 칼리클레스가 옹호하는 삶이 욕구를 계속해서 채워야 하는 무한한 노역의 반복임을 지적한다. 이는 관습적으로 하데스에서 죄인들이 받게 될 형벌과 다를 바 없으며, 쾌락을 추구하는 삶이 사실은 끊임없는 고통의 반복을 초래하는 가장 비자유적인 삶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12
- 비판 2: 욕구 충족의 무차별적 긍정의 문제: 소크라테스는 모든 욕구의 충족이 질적인 차별 없이 무차별적으로 긍정될 수는 없으며, 어떤 쾌락은 해롭고 어떤 쾌락은 이롭다는 질적 분별력의 필요성을 강조한다.12
- 비판 3: 슬기와 용기의 전락: 칼리클레스에게 슬기(Sophia)와 용기(Andreia)와 같은 덕목들은 단순히 욕구 충족의 수단, 즉 쾌락의 노예로 전락한다. 소크라테스는 지혜를 욕구의 충족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이 입장이 부적절함을 지적하며, 이는 결국 '당장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아무런 제약 없이 소유하며 사는 삶을 이상화하는 칼리클레스의 근본적인 입장을 수정해야 함을 요구한다.12
세 주요 인물의 최고선에 대한 입장은 다음 표에 요약되어 있다.
정의(Justice)와 최고선의 세 가지 입장 비교
| 대화 참여자 | 정의의 정의 (Justice) | 최고선 (Summum Bonum) | 삶의 방식 |
| 고르기아스 (수사학적) | (명확히 제시하지 않음) 설득을 통한 방어/승리 | 정치적 성공, 명예 | 설득의 삶 (Logos의 힘) |
| 칼리클레스 (자연법/급진적) | 강자의 권리: 가장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고 더 많이 소유하는 것 10 | 쾌락의 무제한적 충족 (Hedonism) | 무절제한 삶 (새는 항아리) 12 |
| 소크라테스 (철학적 윤리) | 영혼의 질서와 규율 (정의로운 행동) 11 | 덕 (Arete)을 통한 행복 (Eudaimonia) 11 | 절제와 성찰의 삶 (채워진 항아리) |
V. 철학적 대안: 영혼의 질서와 행복 (Socrates' Constructive Theory)
칼리클레스의 쾌락주의를 비판한 후,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적극적인 윤리적 대안을 개진한다. 이 대안은 외부적 권력이나 쾌락의 추구가 아닌, 내부적 질서에서 선과 행복을 찾는다.
A. 선(善)의 위치: 영혼의 질서와 규율로서의 덕(Arete)
소크라테스에게 있어 **선(Good)**은 외부의 소유나 순간적인 쾌락 충족이 아니라, 영혼의 질서와 규율에서 발견된다.11 이 질서 잡힌 영혼의 상태를 소크라테스는 **덕(Arete)**이라고 부른다. 덕은 단순히 영혼의 내적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유덕한 행위를 낳는 특정한 행위 방식까지 일컫는다.11
영혼에 덕을 지닌 선한 사람은 유덕한 행위를 수행하며, 이 정의로운 행위는 궁극적으로 그 사람에게 **행복(Eudaimonia)**을 가져온다.11 따라서 불의를 행하는 것은 영혼의 질서를 파괴하여 불행을 초래하는 가장 나쁜 악이 된다.
B. 덕과 선의 본질적 관계 정립
소크라테스의 윤리설은 덕(Arete)과 선(Good)의 관계를 명확히 정립함으로써 그 일관성을 확보한다. 이 관점에서 덕은 단지 선을 획득하기 위한 도구(수단)로 해석되는 것을 거부한다. 대신, 분석에 따르면 덕은 선, 즉 행복의 **제1 구성성분(Chief Constituent)**이다.11
이러한 이해는 덕과 선 사이에 어떠한 괴리도 허용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선(행복)을 욕망하므로, 덕이 선의 필수 구성요소라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덕 있는 행동을 하도록 유도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C. 개인의 선과 타인의 선의 상호 증진 관계
덕이 행복의 필수 구성요소라는 입장은 인간 행동에 대한 규범적 기능을 발휘한다. 유덕한 사람은 유덕한 행위를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타인의 선을 증진시킬 목표를 갖게 된다.11
이러한 철학적 틀은 칼리클레스의 이기적인 권력 추구 논리를 완전히 전복시킨다. 타인을 선하게 만드는 행동(정의로운 정치술)은 그 사람이 속한 사회 구성원 전체의 선을 증진시키고, 결과적으로 그 행위자 자신도 그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선을 증진시키는 결과를 낳는다.11 이로써 『고르기아스』는 개인의 선과 타인의 선, 그리고 사회 전체의 선이 상호적으로 연결되는 호혜적 윤리 시스템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소크라테스가 칼리클레스에게 권력 추구(수사학적 삶)와 철학적 삶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했던 것은 4, 영혼의 질서가 철학적 자기 검토와 절제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이는 무절제한 정치적 야망과 필연적으로 대립함을 의미한다. 소크라테스의 영혼의 질서 개념은 플라톤이 제시한 이상적인 통치자, 즉 '철학자 왕'의 Archē 리더십의 윤리적 기초가 되는데 13, 진정한 통치자는 자기인식과 자기희생을 기반으로 해야 하며, 쾌락에 지배당하는 자는 통치할 자격이 없음을 확립한다.
VI. 결론과 비전: 죽은 자들의 심판 신화 (Myth of the Judgment of the Dead)
A. 신화의 도입 배경과 역할
『고르기아스』의 종반부(523a-527a)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논리적 논증에 쉽게 설득되지 않고 토론 참여를 거부하는 칼리클레스를 향해 사후 세계에서 벌어지는 심판에 관한 신화 이야기를 전달한다.4 소크라테스는 변증법적 논증만으로는 모든 사람, 특히 현실 정치의 논리에 깊이 빠진 칼리클레스와 독자를 '좋은 삶'으로 이끌 수 없음을 인식하고, 이성적 설득이 실패한 지점을 메우기 위해 이 신화를 도입한다.14
이 신화는 외관상 비합리적인 종교적 믿음의 표명처럼 보일 수 있으나, 많은 연구에 따르면 이는 단순한 허구의 이야기나 종교적 믿음의 표현이 아니다.14 대신, 플라톤이 대화 상대자와 독자를 올바른 삶으로 이끌기 위한 실천적 목적에서 고안해낸 **유용한 시적 장치(poetic device)**로 해석된다.14
B. 신화의 내용과 정의의 심화
신화에 따르면, 죽은 자들의 영혼은 사후 세계에서 미노스, 라다만티스(아시아인을 심판), 아이아코스와 같은 심판관들에게 심판을 받는다.15 심판관들은 육체를 벗고 외적인 권력, 부, 명예, 그리고 수사학적 방어(법정 변론)가 모두 제거된 **영혼의 상태(질서 또는 병폐)**만을 보고 판단을 내린다.14
이 심판의 결과는 소크라테스가 폴로스와의 대화에서 논리적으로 확립했던 윤리적 역설을 우주적 차원에서 실행한다. 정의로운 삶을 산 영혼은 축복받은 섬으로 가지만, 불의를 행한 폭군이나 통치자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 특히, 불의를 행하고도 처벌받지 않았던 자들이 가장 큰 고통을 받는데, 이는 그들의 영혼의 병폐가 치유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영원히 굳어졌기 때문이다.8
C. 철학적 의미와 구조적 완성
이 사후 세계 신화는 소피스트나 시인들이 전하는 이야기와는 구별되는, 철학자의 이야기로서 의미를 갖는다.14 소피스트의 수사학이 당장의 쾌락과 성공을 약속한다면, 플라톤의 신화는 영혼의 궁극적 운명과 도덕적 책임의 무게를 제시함으로써 장기적인 행복의 비전을 제공한다.
신화는 대화편의 구조적 완성도를 높인다. 제2부 논쟁에서 논리적으로 증명된 '불의를 행하고 처벌받지 않는 자가 가장 불쌍하다'는 명제가 우주적 심판을 통해 극적으로 재확인되고 실행된다.4 이는 『고르기아스』가 단순한 이론적 논쟁을 넘어, 독자에게 윤리적 삶의 선택을 촉구하는 실천적 철학서임을 입증한다.
VII. 『고르기아스』의 현대적 함의와 유산
A. 수사학과 민주주의: 대중 선동가(Demagoguery) 비판
『고르기아스』는 고전기 아테네의 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서이지만, 그 메시지는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플라톤은 민주정 하에서 다수 대중의 의견(Doxa)에 호소하여 그들을 선동하는 **민중 선동가(dēmagogoi)**의 위험성을 경계했다.13
소크라테스가 고르기아스와 그의 제자들을 비판한 핵심은, 그들이 대중에게 아첨하고 조작하여 피상적인 권력을 얻으려 할 뿐, 진정한 지식과 정의에 기반한 지도력을 갖지 못한다는 점이었다.16 플라톤은 민주정 하의 데마고고스 리더십이 결국 참주정으로 변질되는 위험성, 즉 참주가 **'늑대(lykos)'**로 재탄생하는 위험성을 경고했다.13 『고르기아스』는 수사학적 조작에 취약한 민주주의와, 철학적 지도력이 부재할 때 대중 선동이 야기할 수 있는 정치적 위험성에 대한 근본적인 경고를 담고 있다.
B. 포스트-진실 시대의 수사학
현대 사회에서 수사술이 고전기 아테네만큼 직접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소크라테스가 비판했던 아첨(Kolakeia)의 본질은 형태만 바뀌어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1 대중 매체, 광고, 그리고 정치적 담론은 **'그럴듯한 표현'**으로 제품이나 관점을 포장하여 끊임없이 대중을 설득하려 시도하며, 이는 소크라테스가 지적한 아첨술의 현대적 변형이다.1
이러한 관점에서 『고르기아스』는 오늘날의 '가짜 뉴스(Fake News)'나 '탈진실(Post-Truth)' 현상에 대한 최초의 철학적 경고 중 하나로 재해석될 수 있다.17 피상적인 지식만을 가진 시민은 끊임없이 외부의 설득에 취약하며 1, 그 결과 대중은 스스로 책임 있는 정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할 위험에 처한다. 이 대화편은 시민들이 진정한 지식을 추구하지 않고 Doxa에 머무를 때, 필연적으로 조작에 노출될 수밖에 없음을 환기시킨다.
C. 니체 철학과의 연관성: 칼리클레스의 유산
칼리클레스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 의해 철저하게 논파되었지만, 그의 급진적인 자연법 주장은 후대 철학에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 관습적 도덕을 약자들의 발명품으로 보고, 강자가 이 모든 족쇄를 부수고 본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10, 훗날 프리드리히 니체의 권력 의지(Will to Power)와 도덕 비판의 선구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칼리클레스는 플라톤이 의도적으로 극단화한 인물이지만, 그는 도덕과 권력의 관계, 그리고 자연적 우월성에 대한 논쟁을 영원한 철학적 쟁점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D. 종합 결론
플라톤의 『고르기아스』는 단순히 수사학에 대한 비판을 넘어선, 윤리적 탁월함(Arete)과 정치적 권력의 관계를 탐구하는 실천 철학서이다. 이 대화편은 영혼의 질서(정의)가 외적인 성공이나 쾌락보다 우위에 있으며, 궁극적인 행복은 **덕(德)**이라는 선의 본질적 구성요소에서 비롯된다는 소크라테스적 윤리설을 옹호한다.11
『고르기아스』가 주는 궁극적인 경고는, 진정한 지식과 도덕적 기초를 상실한 수사학적 권력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행위자 자신의 영혼을 파괴하는 최악의 병폐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대화편은 모든 시대의 리더십과 권력 구조에 대해 권력의 정당성은 오직 영혼의 질서와 규율에서 비롯된다는 근본적인 도덕적 질문을 던지며, 독자에게 철학적 삶의 선택을 단호하게 촉구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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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사학과 도덕성 | 내일을 여는 지식 철학 37 | 박규철 - 알라딘, 10월 14, 2025에 액세스, 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temId=15803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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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crates' Attack on Rhetoric in the “Gorgias” | The Partially Examined Life Philosophy Podcast, 10월 14, 2025에 액세스, https://partiallyexaminedlife.com/2013/01/19/socrates-attack-on-rhetoric-in-the-gorgi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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