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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by 변리사 허성원 2025. 10. 12.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서론: 기원의 문제와 인종주의의 거부

인류 역사의 거대한 불평등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왜 어떤 사회는 부와 권력을 축적한 반면, 다른 사회는 정복과 지배의 대상이 되었는가? 이 근원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진화생물학자이자 지리학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25년에 걸친 방대한 연구를 한 권의 책, 『총, 균, 쇠』에 집대성했다.1 이 책의 출발점은 학문적 호기심을 넘어선, 한 개인의 절실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다이아몬드의 뉴기니인 친구 얄리가 던진 질문,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Cargo)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라는 물음이 바로 그것이다.1 이 질문은 단순히 물질적 격차에 대한 의문이 아니라, 지난 수백 년간 세계를 지배해 온 권력의 비대칭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였다.

다이아몬드의 핵심적인 지적 공헌은 인류 문명의 발달 격차를 설명하던 기존의 인종주의적 가설을 전면적으로 기각하고, 그 자리에 물질적이고 환경적인 설명을 제시한 데 있다. 그는 특정 인종이나 민족이 생물학적으로 더 우월하거나 지적으로 뛰어나다는 주장을 단호히 거부한다.1 대신, 그는 인류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요인이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살았던 '환경'에 있었다고 주장한다.6 즉, 『총, 균, 쇠』는 환경결정론 혹은 지리적 결정론이라는 거대한 틀을 통해 세계사의 불균등한 발전 경로를 추적하는 과학적 논증이다.7

이 책은 단순한 역사 서술을 넘어, 인류사라는 거대한 현상을 과학적 방법론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다이아몬드는 마치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변인을 통제하듯, 역사 속에서 '자연 실험'의 사례들을 찾아낸다. 예를 들어, 동일한 폴리네시아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지만 서로 다른 환경의 섬에 정착한 마오리족과 모리오리족의 운명이 극명하게 갈린 사례를 통해, 환경이 사회 구조와 기술 발전에 미치는 결정적 영향을 입증한다.11 이러한 접근은 역사를 위대한 개인이나 우연한 사건의 연속이 아닌, 거시적 환경 변수에 의해 지배되는 과정으로 재해석하게 만든다.

더 나아가, 다이아몬드는 '얄리의 질문'이라는 서사적 장치를 통해 이 거대하고 학술적인 탐구를 한 인간의 목소리로 구체화한다. 이는 추상적인 세계 불평등 문제를 개인적이고 시급한 과제로 전환시키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독자는 다이아몬드와 함께 얄리의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 동참하게 되며, 이를 통해 역사적 불평등이 낳은 인간적 결과를 직시하게 된다. 이처럼 개인적인 질문에서 출발하여 인류 전체의 운명을 탐구하는 서사 구조는 『총, 균, 쇠』가 학술적 깊이와 대중적 흡인력을 동시에 갖추게 한 핵심 요인이라 할 수 있다.1

1부: 거대한 분기점 - 식량 생산의 기원

인류 역사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꾼 단 하나의 사건을 꼽으라면, 그것은 단연 수렵 채집 생활에서 농경 정착 생활로의 전환, 즉 '식량 생산의 시작'이다.7 이 혁명적 변화는 인구의 폭발적 증가, 기술 발전, 복잡한 정치 체제의 등장을 가능하게 한 근본 동력이었다. 그러나 이 전환은 모든 곳에서 동시에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특정 지역에서만 독립적으로 발생했으며, 그 시기와 속도 역시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다이아몬드는 이 차이가 바로 각 대륙의 운명을 가른 최초의 분기점이었다고 주장한다.

지리적 복권

식량 생산으로의 전환은 인간의 의지나 지능의 산물이 아니라, 전적으로 '지리적 복권'에 당첨되었는지 여부에 달려 있었다. 농업과 목축은 길들일 수 있는 야생 동식물이 존재하는 곳에서만 시작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8 유라시아 대륙, 특히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이 점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곳에는 밀, 보리와 같이 씨앗이 크고 영양가가 높은 야생 곡물과 더불어, 소, 양, 염소, 돼지, 말과 같이 가축화에 이상적인 대형 포유류가 집중적으로 분포해 있었다.8

반면 다른 대륙의 상황은 열악했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작물화하는 데 수천 년의 유전적 변형이 필요했던 옥수수가 있었고, 가축화할 만한 대형 포유류는 안데스 산맥의 라마와 알파카가 거의 유일했다. 호주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여, 가축화에 적합한 후보종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13 이처럼 초기 인류에게 주어진 '생물학적 원자재'의 불균등한 분포가 유라시아 문명에 막대한 출발 우위를 제공한 것이다.

가축화의 '안나 카레니나 법칙'

다이아몬드는 왜 유라시아에만 유독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이 많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을 인용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15 이를 동물 가축화에 적용하면,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은 모두 엇비슷하고, 가축화할 수 없는 동물은 그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가 된다.11

야생 동물이 가축이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필수 조건을 모두 통과해야만 한다. 단 하나의 조건이라도 실패하면 가축화는 불가능하다. 그 조건들은 다음과 같다.

  1. 식성: 인간과 식량 경쟁을 하지 않는 초식 동물이어야 효율적이다.13
  2. 성장 속도: 빨리 자라야 경제성이 있다.13
  3. 번식 습성: 감금 상태에서도 번식을 잘해야 한다.16
  4. 성격: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 온순한 성질을 가져야 한다.13
  5. 반응성: 위협을 느끼면 쉽게 공황에 빠져 달아나지 않아야 한다.16
  6. 사회 구조: 인간이 우두머리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위계적인 무리 생활을 해야 한다.13

이 엄격한 기준 때문에 말의 친척인 얼룩말은 포악한 성격 때문에 길들일 수 없었고 15, 영양은 극도로 예민한 반응성 때문에 가축화에 실패했다. 유라시아 대륙은 이 모든 관문을 통과한 14종의 대형 포유류 중 13종의 원산지였던 반면, 아메리카 대륙에는 단 1종(라마/알파카), 호주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는 단 한 종도 없었다. 이는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원주민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활용할 수 있는 동물들의 근본적인 생물학적 특성 때문이었다. 이처럼 역사의 주도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닌 환경의 손에 달려 있었음을 보여주는 이 관점의 전환은, 인종주의적 편견을 근본적으로 해체하는 강력한 논거가 된다.

무의식적 선택과 자기 촉매 작용

초기 인류가 의식적으로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여 농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수렵 채집 생활의 이점이 줄어들고 식량 생산의 이점이 서서히 커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점진적이고 무의식적인 선택에 가까웠다.16 홍적세 말기 대형 포유류의 멸종으로 야생 사냥감이 줄어들고, 기후 변화로 작물화 가능한 식물이 늘어나면서 수렵 채집보다 농경의 매력이 커졌다.17 일단 한 곳에 정착해 식량을 생산하기 시작하자, 인구 밀도가 높아졌고, 늘어난 인구는 다시 더 많은 식량을 필요로 하는 자기 촉매적 순환 고리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식량 생산이 가져온 '출발 우위'는 단순히 시간적인 것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인 격차를 만들어냈다. 이는 식량 생산이 인구 증가, 기술 발전, 정치 체제 형성이라는 연쇄적인 발전 과정을 촉발하는 '엔진'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8 식량 생산은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하고 19, 밀집된 인구는 더 많은 잠재적 발명가와 혁신을 수용할 시장을 의미했다. 이 긍정적 피드백 순환, 즉 '자기 촉매 작용(self-catalysis)'으로 인해 20, 식량 생산을 5,000년 먼저 시작했다는 것은 단순히 5,000년 앞서나간 것이 아니라, 발전의 가속도가 붙는 엔진을 5,000년 더 일찍 가동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초기 시간의 격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따라잡을 수 없는 거대한 문명 격차로 벌어지게 되었다.

표 1: 대륙별 환경 자원의 비교 (기원전 11,000년경 기준)

대륙 씨앗이 큰 야생 곡물 종 수 가축화 가능한 대형 포유류 후보 종 수 (>45kg) 최초 식량 생산 시점 (추정) 주된 대륙의 축
유라시아 32 13 기원전 8500년경 동-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4 0 기원전 5000년경 남-북
아메리카 11 1 기원전 3500년경 남-북
호주/뉴기니 2 0 기원전 7000년경 (뉴기니) 남-북

 

2부: 연쇄 반응의 전개 - 잉여에서 국가로

농업 혁명이 잉여 식량을 낳자, 인류 사회는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복잡성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잉여 식량은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 인구 밀도의 증가, 사회 계층의 분화, 기술의 발전, 그리고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연쇄 반응의 기폭제가 되었다.

인구, 병원균, 그리고 권력

농경은 수렵 채집보다 훨씬 좁은 면적에서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게 했다.16 인구 밀도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정착 생활을 낳았고, 마을과 도시는 인간의 배설물과 쓰레기, 그리고 가축들과 뒤섞여 사는 비위생적인 환경이 되었다. 이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전염병이 창궐할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제공했다.14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와 같은 치명적인 '군중 질병'들은 소나 돼지 같은 가축에게서 기원하여 인간에게로 옮겨왔다.22 이 질병들은 유라시아 사회에 수 세기 동안 끔찍한 재앙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강력한 면역력이라는 유산을 남겼다.

전문가 계층의 출현

모든 사람이 식량 생산에 매달릴 필요가 없어지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식량을 직접 생산하지 않는 전문가 계층이 등장할 수 있었다.3 잉여 식량은 이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되었다. 잉여 식량을 지키고 빼앗기 위한 '군인',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지배를 정당화하는 '성직자', 잉여 식량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관료'와 '필경사', 그리고 더 나은 도구와 기술을 만드는 '장인'과 '발명가'가 바로 그들이다.14 이러한 노동의 분업과 전문화는 사회의 복잡성을 증대시키고, 기술과 문화 발전의 속도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핵심 동력이었다.

평등주의에서 도둑 정치로

다이아몬드는 사회 조직의 발달 단계를 무리(band), 부족(tribe), 추장 사회(chiefdom), 국가(state)의 4단계로 구분한다.14 수렵 채집 사회인 무리와 초기 농경 사회인 부족은 소규모 혈연 집단으로, 비교적 평등한 구조를 유지했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하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갈등 해결과 자원 분배를 위한 중앙집권적 권위가 필요해졌고, 이는 세습적인 권력을 지닌 추장이 등장하는 추장 사회로 이어졌다.

궁극적으로 국가는 폭력을 독점하고(군대, 경찰), 공식적인 법률 체계를 갖추며, 조세를 통해 자원을 수탈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조직으로 발전했다. 다이아몬드는 이를 '도둑 정치(kleptocracy)'라는 도발적인 용어로 표현한다.20 국가의 지배층은 피지배층으로부터 잉여 생산물을 빼앗아 부와 권력을 유지하지만, 동시에 외적의 침입을 막고 내부 질서를 유지하며, 대규모 공공사업을 조직하는 등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그 지배를 정당화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와 집약적 농업은 서로를 강화하는 공진화 관계를 형성했다. 잉여 식량이 국가의 형성을 가능하게 했다면, 국가는 다시 대규모 관개 시설 건설과 같은 공공사업을 통해 식량 생산량을 극대화했다.20 즉, 더 많은 식량은 더 강력한 국가를 낳고, 더 강력한 국가는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는 자기 촉매적 순환이 작동한 것이다. 이러한 '도둑 정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피지배층의 동의를 이끌어낼 이데올로기가 필수적이었다. 지배층은 종교를 통해 자신들의 권력이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고 주장하고, 애국심을 고취하여 백성들이 국가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도록 만들었다.20 이처럼 복잡한 정치 구조의 발전은 그것을 정당화하는 정교한 이데올로기의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3부: 직접적 요인 - 정복의 도구들

유라시아 사회가 식량 생산을 통해 축적한 근본적인 힘은 '총, 균, 쇠'라는 세 가지 직접적인 정복의 도구로 구체화되었다. 이들은 식량 생산 사회가 낳은 필연적인 산물이었으며, 대륙 간의 충돌에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총과 쇠: 기술적 우위

총과 쇠는 군사력의 상징이다.4 야금술, 복잡한 기계, 그리고 화약 무기는 오직 잉여 식량을 바탕으로 한 정주 사회에서만 발전할 수 있었다. 전문 기술자들이 시간과 자원을 투입하여 끊임없이 실험하고 개량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4 문자 역시 결정적인 기술이었다. 문자는 방대한 양의 지식, 지도, 행정 기록 등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정확하게 전달하고 축적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14 이는 유라시아 사회가 체계적인 지식 기반 위에서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이었다.

균: 보이지 않는 무기

그러나 유럽인들의 가장 강력하고 파괴적인 무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균'이었다.19 유라시아의 농경 사회는 밀집된 인구와 가축과의 긴밀한 접촉으로 인해 각종 전염병의 거대한 배양 접시 역할을 했다.21 수천 년에 걸쳐 흑사병, 천연두, 홍역과 같은 끔찍한 전염병이 주기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휩쓸었고,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하지만 이 끔찍한 시련의 과정에서 살아남은 유라시아인들은 유전적, 후천적 면역력을 획득하게 되었다.19

1492년 이후,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치명적인 병원균들을 함께 가져왔다. 가축화된 동물이 거의 없었고 대규모 군중 질병을 겪어본 적이 없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이 새로운 병원균에 대한 면역력이 전무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유럽인들의 총칼에 죽은 사람보다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인구의 95% 이상이 몰살당하기도 했다.8 이 거대한 인구 붕괴는 유럽인들이 광대한 대륙을 손쉽게 정복할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다.

정보의 힘: 문자와 해양 기술

총, 균, 쇠가 정복의 '하드웨어'였다면, 정보는 그 '소프트웨어'였다. 문자의 존재는 유라시아 사회에 막대한 정보 비대칭 우위를 안겨주었다. 콜럼버스와 피사로는 항해술, 지리학, 그리고 과거 정복 전쟁에 대한 수 세기 동안 축적된 지식을 활용할 수 있었다.14 반면, 잉카의 황제 아타우알파는 바다 건너 다른 세계의 존재는 물론, 자신들 앞에 나타난 이방인들의 정체와 의도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8 이 정보 격차는 그 자체로 강력한 전략적 무기였다. 또한, 중앙집권적 국가의 후원을 받는 해양 기술, 즉 대양을 건널 수 있는 선박의 개발은 유라시아의 힘을 전 세계로 투사할 수 있게 한 필수적인 수단이었다.8

결론적으로 총, 균, 쇠는 각각 독립적인 요인이 아니라, 식량 생산이라는 단일한 뿌리에서 자라난 서로 얽혀 있는 가지들이었다. 잉여 식량과 전문화 없이는 쇠와 총을 만들 수 없었고, 농경과 가축화가 낳은 인구 밀집 없이는 면역력을 가진 병원균이 진화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을 조직하고 후원하는 중앙집권적 국가 역시 식량 생산의 결과물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하나의 '패키지'였으며, 식량 생산이라는 근본적인 전제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회는 이 정복의 도구들을 결코 손에 넣을 수 없었다.

4부: 역사의 청사진 - 대륙의 축

유라시아가 식량 생산에 유리한 동식물이라는 '지리적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다이아몬드는 여기에 또 하나의 결정적인 지리적 요인, 즉 '대륙의 축'이라는 독창적인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유라시아가 얻은 초기 우위가 어떻게 증폭되고 확산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핵심 열쇠이다.

확산의 경로

유라시아 대륙은 기본적으로 동-서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다. 이는 광대한 지역이 비슷한 위도대에 놓여 있음을 의미하며, 따라서 기후, 계절, 낮의 길이가 유사하다는 것을 뜻한다.15 이러한 환경의 유사성은 농작물과 가축의 전파에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예를 들어,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작물화된 밀과 보리는 비슷한 위도를 따라 동쪽으로는 인더스 강 유역과 중국으로, 서쪽으로는 유럽 전역으로 비교적 쉽게 퍼져나갈 수 있었다. 가축과 기술, 문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반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은 남-북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다.13 남쪽이나 북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곧 급격한 기후 변화를 마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멕시코 고원에서 성공적으로 재배되던 옥수수는 북미의 온대 기후나 안데스 산맥의 고산 기후에 바로 적응하기 어려웠다. 마찬가지로 안데스에서 가축화된 라마는 열대 기후의 파나마 지협을 건너 북쪽으로 퍼져나가지 못했다. 바퀴나 문자 같은 중요한 발명품 역시 이러한 지리적, 생태적 장벽에 가로막혀 대륙 전체로 확산되지 못했다.2

이러한 지리적 축의 차이는 각 대륙의 발전 속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유라시아에서는 한 지역의 혁신이 대륙 전체로 빠르게 퍼져나가 서로 다른 문명의 기술과 아이디어가 융합되고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나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문명들은 서로 고립된 채 각자 발전해야 했고, 이는 대륙 전체의 발전 속도를 현저히 늦추는 결과를 낳았다.2

결국 대륙의 축이라는 개념은 다이아몬드의 이론에서 '증폭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 유라시아가 가축화, 작물화 가능한 동식물이라는 초기 자원에서 얻은 우위는, 동-서 축이라는 지리적 구조를 통해 대륙 전체로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그 효과가 엄청나게 증폭되었다. 예를 들어, 중앙아시아에서 가축화된 말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발명된 바퀴와 결합하여 전차라는 강력한 무기로 재탄생했고, 이는 유라시아 대륙 전역의 전쟁 양상을 바꾸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지역의 혁신이 결합하고 상승 작용을 일으키는 '조합적 폭발'은 남-북 축의 지리적 단절이 심했던 다른 대륙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륙의 형태라는 거대한 청사진이 이미 역사의 방향을 상당 부분 결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5부: 이론의 적용 - 역사적 사례 연구

다이아몬드는 자신의 거대 이론이 실제 역사 속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잉카 제국 정복과, 유라시아 내에서 중국이 아닌 유럽이 최종적인 패권을 쥐게 된 과정은 그의 이론의 설명력을 입증하는 핵심적인 사례 연구이다.

카하마르카의 충돌

1532년 페루의 카하마르카에서 벌어진 사건은 『총, 균, 쇠』의 모든 논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완벽한 축소판이다.26 단 168명의 스페인 병사를 이끌었던 피사로는 수만 명의 대군을 거느린 잉카 제국의 황제 아타우알파를 생포하고, 거대한 제국을 무너뜨렸다. 이 믿기 힘든 사건의 배경에는 다이아몬드가 제시한 모든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 총과 쇠: 피사로의 병사들은 강철 검과 갑옷, 그리고 소수의 화승총으로 무장했다. 반면 잉카 병사들은 돌과 청동, 나무로 만든 무기를 들고 퀼트 갑옷을 입었을 뿐이었다. 특히 스페인 기병대의 돌격은 말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잉카인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다.9
  • : 피사로가 도착하기 몇 년 전, 유럽인들이 옮긴 천연두가 이미 잉카 제국을 휩쓸고 지나갔다. 이 전염병으로 당시 황제와 그의 공식 후계자가 사망했고, 이는 아타우알파와 그의 이복형 우아스카르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촉발시켰다.26 피사로는 바로 이 내전으로 제국이 분열되고 약화된 절묘한 시점에 도착하여 그 혼란을 이용할 수 있었다.
  • 정치 조직과 정보: 피사로는 문자를 사용하는 사회 출신이었다. 그는 에르난 코르테스가 아스텍 제국을 정복한 경험을 기록한 책을 통해, 신세계 제국의 신격화된 황제를 사로잡으면 중앙집권적 통치 체계가 마비된다는 핵심 전략을 알고 있었다.26 반면, 문자가 없었던 아타우알파는 스페인인들의 정체는 물론, 그들의 무기와 의도, 그리고 바다 건너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이 극심한 정보의 비대칭성이 그의 운명을 결정지었다.8

카하마르카의 비극은 피사로 개인의 용맹이나 아타우알파의 실책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1만 년 이상 각기 다른 환경에서 발전해 온 두 문명의 충돌이 낳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피사로가 가졌던 모든 우위(강철, 말, 질병 면역력, 문자 정보)는 그가 속한 유라시아 사회가 농업 혁명에서 얻은 깊은 역사적 유산이었다. 반대로 아타우알파가 가졌던 모든 불리함 역시 그가 속한 아메리카 사회의 환경적 제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처럼 역사의 무대 위에서 개인은 지리라는 거대한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배우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유럽의 예외성: 왜 유럽인가?

유라시아가 다른 대륙에 비해 유리했다면, 왜 유라시아 내에서도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기술적으로 더 앞서 있었던 중국이 아니라 유럽이 근대 세계를 제패하게 되었는가? 다이아몬드는 이 질문에 대한 답 역시 지리에서 찾는다.

중국은 거대한 강들과 평야로 이루어진 지리적으로 통일된 땅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은 일찍부터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일 제국을 형성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14 반면 유럽은 복잡한 해안선, 수많은 반도, 그리고 알프스나 피레네와 같은 높은 산맥들로 인해 지리적으로 잘게 나뉘어 있다. 이는 유럽이 만성적으로 분열된 채 여러 국가가 끊임없이 경쟁하는 정치 체제를 유지하게 만들었다.14

중국의 통일성은 초기에는 거대한 힘의 원천이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취약점이 되었다. 단 한 명의 황제가 내리는 잘못된 결정이 중국 문명 전체의 발전을 멈추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명나라 시대 정화의 대항해 함대를 해체하고 해양 진출을 금지한 결정이 대표적인 예다.14 만약 그때 중국이 항해를 계속했다면, 유럽보다 먼저 아메리카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반면, 유럽의 '최적의 분열(optimal fragmentation)'은 끊임없는 경쟁을 낳았다. 한 나라의 군주가 콜럼버스의 항해 계획을 거절하자, 그는 이웃 나라 스페인으로 가서 후원을 받아낼 수 있었다.14 만약 한 국가가 기술 개발을 게을리하면, 경쟁국에 의해 정복당할 위험에 처했다. 이러한 치열한 경쟁 구도는 혁신을 장려하고, 어떤 단일한 권력도 유럽 전체의 발전을 중단시킬 수 없게 만드는 안전장치 역할을 했다. 이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경쟁하는 시스템은 비단 역사뿐만 아니라 경제(시장 경쟁), 기술(실리콘 밸리 생태계), 생물학(진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혁신을 추동하는 보편적인 원리로 이해될 수 있다.

결론: 거대 이론의 유산과 한계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인류 역사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한 기념비적인 시도이다. 이 책의 핵심 논리는 명료하고 강력하다. 즉, 대륙별 환경의 차이(지리, 가용 동식물)가 식량 생산의 시작 시점과 확산 속도의 차이를 낳았고, 이는 다시 인구 밀도, 병원균, 기술, 정치 조직의 격차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지난 500년간의 세계사를 결정했다는 것이다.4

이 책의 가장 위대한 공헌은 인종주의적 편견에 기반한 역사 해석을 과학적 근거를 통해 논파하고, 그 자리에 환경이라는 물질적 토대를 둔 거시적 분석 틀을 제공했다는 점이다.1 『총, 균, 쇠』는 지리적, 환경적 요인을 세계사 연구의 중심에 놓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었으며, 왜 세계가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는지에 대한 비인종주의적 설명을 갈망하던 수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처럼 야심 찬 거대 이론이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가장 주된 비판은 저자가 '환경결정론'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인간의 주체적인 선택, 문화의 고유성, 사상과 종교의 역할, 그리고 개인의 결단과 같은 비물질적 요인들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점이다.3 역사는 지리라는 변수만으로 풀 수 있는 단순한 방정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다이아몬드의 모델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역사적 사례들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식량 생산 기반이 없던 유목민족인 몽골이 어떻게 유라시아 대륙의 농경 국가들을 정복하고 거대한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는지는 그의 이론과 잘 부합하지 않는다.29 유라시아 내에서도 왜 하필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는가와 같은 더 세부적인 질문에 답하기에도 그의 거시적 틀은 한계를 보인다. 일부에서는 그의 이론이 유럽의 정복을 환경적 요인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로 묘사함으로써, 식민주의의 폭력성에 대한 역사적, 윤리적 책임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29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총, 균, 쇠』가 지닌 지적 유산은 여전히 강력하다. 이 책은 현대 세계에 만연한 불평등의 뿌리가 얼마나 깊고 구조적인지를 직시하게 만든다.32 특정 국가나 민족의 우월성에 대한 신화를 해체하고, 우리가 누리는 번영이나 우리가 겪는 고난의 상당 부분이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보다는 우리가 태어난 환경의 유산에 크게 좌우된다는 겸허한 인식을 일깨운다.5 결국 『총, 균, 쇠』는 과거에 대한 설명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세계를 이해하고 미래를 조망하는 데 필수적인 거시적 관점을 제공하는 고전으로 남아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우리는 지리적 운명이라는 거대한 유산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로 인해 파생된 불평등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그 답을 찾는 것은 이제 우리 모두의 몫이다.

Works c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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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총,균,쇠] 서양이 더 잘 살게 된 이유는 '운' 때문? ㅣ백색책방 EP 09 ㅣ이시한 교수ㅣ인문학 총균쇠 환경결정론 인터뷰ㅣ - YouTube, accessed October 12, 2025, https://www.youtube.com/watch?v=9cxpMEjT-j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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