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의 유묵 '長歎一聲 先吊日本', 진품인가?
** “긴 탄식의 한마디 말로 일제에 미리 조의를 표한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1910년 3월 중국 뤼순형무소에서 순국한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사형 집행을 앞두고 쓴 유묵 ‘장탄일성 선조일본(長歎一聲 先吊日本·사진)’이 11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확인된 안 의사 유묵 가운데 자신을 ‘동양지사(東洋志士)’라고 쓴 유일한 작품이다. ** _ 동아일보 기사
이에 대한 한인섭 님의 의문과 지적이 공감이 가기에 여기 옮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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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섭님의 250816 페이스북 게시 글>
[안중근 유묵...진품일까에 대한 합리적 의문]
"장탄일성 선조일본"
어제 안중근 의사의 유묵이 귀환한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으로 기사를 읽고 기뻤습니다. 처음엔 그 글귀가 너무 쏙 들어오고, 기쁨으로 대했는데, 뒷기분이 찜찜하여, 기사를 여러번 읽어봤습니다. 원본은 전시되고 있다는데, 보진 않았고요. 다음 의문에 대해서도 잘 답변되면 좋겠네요.
1. 집필자 밝히는 부분에 대해
--글씨 자체는 안중근같은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만...
(1)1910년 3월이라 썼는데, 당시 사형을 기다리면서 쓴 모든 휘호는 "경술 2월(3월)"이라 적혀 있습니다. 이런 서기 연호는 처음 보는 것이고, 3월에만 50편 이상 휘호를 썼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작품만 1910년이라 쓴 이유는?
(2)"동양지사"라 쓰고 있는데, 안중근은 선비와 무인을 겸비한 분이고, 겸양지덕에다 스스로의 서예 수준도 낮추고 있습니다. 타인(중국인들)이 그를 "동양지사"라 부를 경우는 있을지 모르지만, 안중근이 스스로를 동양지사로 지칭할 만큼, 오만을 떨 리가 없습니다. 혹 그런 예 보셨나요?
(3) 2월과 3월에 쓴 알려진 모든 휘호는 순서가 같습니다. "경술 2월(3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입니다. 드물게 "안응칠 서"라고 쓴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휘호만 "1910년 3월"이란 서기 연호에다, "동양지사"란 지칭에다, 대한국인 안중근 다음에 "어여순옥중"이라 쓰고 있습니다. 너무 이례적입니다.
2. 더 중요한 것은 <장탄일성 선조일본>이란 글귀입니다.
(1)당시 안중근의 모든 휘호는 일본인 간수, 검찰관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안중근에서 붓, 먹, 종이, 책상을 제공했고, 받아갔습니다. 안중근은 최엄금감방에서 살았습니다. 어떤 자유행동 불가합니다. 안중근의 서예활동은, 얼마나 한 것인가와 함께 무엇을 썼는지, 다 상부에 보고안될 수 없습니다.
(2)안중근이 쓴 대개의 내용은 논어, 사기 등 중국 경전, 사서에서 따온 것이고(선비로서 공부한 바탕), 자신의 소감을 쓴 것도 그런 궤도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습니다. 제일 나아간 것이 <독립> <경천>, 그리고 마지막날에 쓴 <위국헌신 군인본분> 정도입니다. 이 정도는 반일 자체는 아니므로, 일본 관료의 관용(허락) 범위안에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같이 <선 弔 일본>, 일본의 죽음을 미리 조문한다는 글귀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 글귀를 일본관리가 받아서, 몰래 집에 숨겨두었다가 몇십년 뒤에 내놓는다는 발상도 기괴합니다.
3. 서체는 어떤가요?
(1)전문가의 영역이어서 제가 크게 시비할 것은 못되고, 표면적 인상에서 나오는 의문점만 적어보지요.
(2)프로처럼 보이지만, 안의사의 휘호는 겸손한 듯 안으로 응집되는 기운이 있는데, 여기서 "先"글씨를 보면 밖으로 확 뻗고 있습니다. 절제의 기운이 없고, 조금 거만체라 할까요. 서예가가 안의사의 정신을 생각하며 마음껏 쓴 게 아닌가 하는 잔상이 있습니다.
4. 감정할 때, 종이 질과 연도, 지장, 소장경위, 소장자의 신원/전력 여러가지 검토요소가 있을 것입니다. 전문감정인, 구입희망자가 알아서 잘 판단하시되, 이상의 의문점 포함하여, 여러가지 잘 석명하여 주면 좋겠습니다. 특히 감정인들은, 자신의 감정결과를 책임있게 내놓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마 경기도 예산이 투입되는 듯하니, 공적 책임을 확인하는 의미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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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50815/132191396/2
“일제에 미리 조의를 표한다” 안중근 유묵 115년만에 귀환
“긴 탄식의 한마디 말로 일제에 미리 조의를 표한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1910년 3월 중국 뤼순형무소에서 순국한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사형 집행을 앞두고 쓴 유묵 ‘장탄일성 선조일본(長
ww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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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han.co.kr/article/202010200600001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26점이나 국가 '보물'인 안중근 글씨…감쪽같이 사라진 청와대 유묵은?
“일전에 부탁한 글씨를 지금 씁시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9시, 사형 집행장으로 나가기 직전 안중근 의사는 호송관 지바 도시치(千葉十七) 상등병에게 “지필묵을 가져오라”고 했다. 지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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