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테네의 몰락을 따르는가
**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와 현재의 미국은 흡사하다. 미국은 아테네의 몰락의 길을 뒤따르는가?
최근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동맹국들에게 더 많은 '분담금' 또는 '군사·안보 비용' 부담(기존 분담금 대비 4~9배)을 요구하고, 무역 적자가 크다는 이유로 상호관세 등을 통한 경제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동맹국에 대한 협력보다는 사실상 강제로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군사적 주둔 역시 '방위'를 넘어 '서비스 제공의 대가'로 점점 거래화되고 있다.
약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도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 아테네는 동맹국들의 기여금(분담금)을 중앙으로 집중시켜 자기 번영과 대중 결집에 써버렸고, 현금성 지원 및 약탈을 제도화하면서 동맹의 신뢰를 잃고 내부적 분열과 몰락으로 빠졌었다.
아테네가 동맹국에 대한 착취와 팽창정책·내부분열로 몰락했듯, 오늘날의 미국 또한 동맹의 본질적 신뢰 기반 약화와 내부 포퓰리즘적(관세로 벌어들인 돈을 국민들에게 살포한다고 함) 요소 결합이라는 점에서 고대 아테네의 경험과 유사한 '경고'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둘 다 '세계의 중심'이라는 자신감과 신화, 그리고 대외적 우위의 수단이 동맹국에 대한 압박과 내부 정치의 포퓰리즘으로 빠져들면서 몰락의 길목에 섰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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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델로스 동맹의 제국화 과정과 그 메커니즘
고대 아테네의 델로스 동맹은 기원전 477년 페르시아의 재침을 방어하기 위한 방어 동맹으로 시작되었지만1, 점진적으로 아테네 중심의 제국으로 변모했습니다. 이 변화의 핵심 전환점은 기원전 454년 동맹 기금을 델로스 섬에서 아테네로 이전한 사건이었습니다2.
동맹 기금의 변질 과정:
- 처음에는 각 폴리스가 군함과 병력을 직접 제공
- 점차 현찰(은화, 은덩어리) 납부로 변화
- 아테네가 동맹 기금을 독점적으로 관리
- 파르테논 신전 등 아테네의 대규모 건축 사업에 유용34
이는 현재 화폐 가치로 환산할 때 연간 약 76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였으며5, 아테네 재정의 40%를 차지했습니다6. 동맹국들은 이를 거부할 경우 무력 진압, 노예화, 처형이라는 가혹한 처벌을 받았습니다78.
2. 페리클레스의 포퓰리즘과 민주주의의 타락
페리클레스는 동맹 기금을 활용해 체계적인 포퓰리즘 정치를 전개했습니다:
포퓰리즘의 구체적 양상:
이러한 정책은 아테네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물질적 보상으로 대체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비판한 바와 같이, 이는 자발적 시민 의식을 파괴하고 중우정치로 귀결되었습니다3910.
3. 동맹국 통제와 제국주의적 억압
아테네는 동맹국들에 대해 체계적인 제국주의적 통제를 가했습니다:
통제 메커니즘:
대표적 사례로 멜로스 학살사건이 있습니다. 중립을 유지하려던 멜로스가 항복을 거부하자, 아테네는 남성 전원을 처형하고 여성과 아이들을 노예로 판매했습니다3. 이는 투키디데스가 기록한 "강자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자는 견딜 수 있는 것을 견딘다"는 권력의 논리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11.
4. 미국의 현재 상황: 아테네와의 유사성
4.1 동맹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들에게 대폭적인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구체적 요구 사항:
이는 한국이 현재 지불하는 1조 5,192억원(2026년 기준)보다 훨씬 높은 수준입니다14. 트럼프는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이라 칭하며12, 동맹국들을 사실상 경제적 착취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4.2 관세 정책을 통한 경제적 압박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아테네의 동맹 기금 착취와 유사한 양상을 보입니다:
관세 정책의 특징: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정책이 미국 GDP를 0.12-5.2% 감소시키고, 세계 경제 성장률을 1.3% 하락시킬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1517.
5. 포퓰리즘과 내부 분열의 메커니즘
5.1 아테네의 내부 분열
페리클레스 사후 아테네는 극심한 내부 분열에 빠졌습니다:
분열의 양상:
투키디데스는 이를 "언젠가 누구라도 아테네의 무너진 성벽을 거닐면 이 도시 사람들이 아주 잘 살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이 실제 살았던 것보다 훨씬 더"라고 기록했습니다.
5.2 미국의 현재 분열
현재 미국도 유사한 내부 분열을 겪고 있습니다:
분열의 징후:
- 공화당-민주당 간 극한 대립
- 트럼프의 충성파 내각 구성으로 제도적 견제 장치 약화19
- "미국 우선주의" 이데올로기의 극단화
- 동맹국에 대한 일방주의적 접근 확산20
6. 동맹국 반발과 대안 동맹의 모색
6.1 고대 그리스의 반아테네 동맹
아테네의 제국주의적 행태에 대한 반발로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결성되었습니다:
반발의 과정:
6.2 현재 동맹국들의 대응
현재 미국의 동맹국들도 대안적 협력 체제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대응 양상:
-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 추구
- 아시아 국가들의 다자 협력 강화
- 미국에 대한 의존도 감소 노력
- 중국과의 관계 개선 모색20
7. 역사적 교훈과 현재적 함의
7.1 패권국의 과신과 몰락
아테네는 자신의 힘을 과신하여 동시에 여러 전선에서 전쟁을 벌이다가 결국 몰락했습니다. 시칠리아 원정의 참패(기원전 413년)와 아이고스포타미 해전의 패배(기원전 405년)가 결정적이었습니다721.
현재 미국도 중국과의 패권 경쟁과 동맹국에 대한 압박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유사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외교 전문가들은 이를 "외교 역사상 유례없는 상황"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20.
7.2 동맹의 신뢰 기반 붕괴
델로스 동맹이 아테네 제국으로 변질된 핵심 원인은 상호 신뢰의 파괴였습니다. 방어적 동맹이 착취적 제국으로 변모하면서 동맹국들의 자발적 협력이 강제적 복종으로 바뀌었습니다111.
현재 미국도 동맹국들에게 일방적 부담 증가를 요구하면서 동맹의 호혜적 성격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8. 결론: 역사의 반복과 교훈
고대 아테네와 현대 미국의 비교는 패권국가의 흥망성쇠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두 사례 모두에서 다음과 같은 공통된 패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방어적 동맹의 제국화: 정당한 방어 목적으로 시작된 동맹이 착취적 제국으로 변질
- 경제적 착취의 체계화: 동맹국 자원의 일방적 수탈과 본국 이익을 위한 활용
- 포퓰리즘을 통한 내부 결집: 대외 착취를 통한 자원으로 국내 포퓰리즘 정치 전개
- 동맹국의 반발과 대안 모색: 피착취국들의 연대와 대항 세력 형성
- 과신과 과잉 확장: 자국 힘에 대한 과신으로 인한 전략적 실패
- 내부 분열과 시스템 붕괴: 포퓰리즘의 부작용과 정치적 양극화로 인한 자체 붕괴
아테네의 교훈은 단순히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미국의 상황에 대한 경고입니다. 동맹을 통한 패권 유지가 호혜성과 신뢰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일방적 착취에 의존할 때, 그 패권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단순히 기존 패권국과 신흥 강국 간의 충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패권국 자체의 내재적 모순과 자기파괴적 행동도 포함한다는 점에서, 현재 미국의 행보는 더욱 주의 깊게 관찰되어야 할 역사적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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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권국의 딜레마: 동맹, 과잉확장, 그리고 세계 질서의 미래에 대한 역사적 고찰
서론: 권력과 정치의 불변하는 본질
미-중 경쟁의 심화, 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 그리고 국제 제도의 파편화로 특징지어지는 현재의 지정학적 지형은 국제 질서의 역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현재의 상황은 전례 없는 현상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근저에 깔린 동학, 즉 패권 권력의 생애 주기와 동맹의 변질 과정은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패턴을 보여준다. 본 보고서는 이러한 반복되는 패턴에 주목하여, 패권 동맹이 합의에 기반한 자발적 체제에서 강압적인 제국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이 분석의 중심에는 투키디데스가 기록한 고대 아테네 제국의 원형이 있다. 아테네가 주도했던 델로스 동맹의 흥망성쇠는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 체제가 직면한 구조적 압력과 도전을 이해하는 데 강력한 분석적 틀을 제공한다. 아테네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패권국이 어떻게 동맹의 신뢰를 잠식하고, 과도한 개입으로 스스로의 기반을 약화시키며, 결국 새로운 경쟁자의 부상과 내부의 분열로 쇠퇴의 길을 걷게 되는지를 통찰할 수 있다.
따라서 본 보고서는 결정론적 역사 유추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테네라는 역사적 원형을 전략적 진단 도구로 활용하여, 현재 미국 주도 질서에 가해지는 구조적 압력의 본질을 규명하고, 다가올 세계의 잠재적 윤곽을 탐색하며, 현재와 미래의 선택지를 조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을지라도, 그 운율은 계속해서 울려 퍼지기 때문이다.
제1부: 아테네 원형 – 동맹에서 제국으로
이 섹션에서는 핵심적인 역사적 사례 연구를 구축한다. 자발적 안보 협정이 어떻게 강압적 제국으로 변모했는지를 상세히 기술하며, 합의에 기반한 리더십(헤게모니아)과 지배에 기반한 통치(아르케)의 핵심 개념을 설명하고, '투키디데스의 함정'의 배경을 설정한다.
1.1 델로스 동맹의 기원: 합의에 의한 리더십 (헤게모니아)
델로스 동맹은 기원전 478/477년, 페르시아의 지속적인 위협에 맞서기 위한 자발적 방어 동맹으로 출범했다.1 살라미스 해전과 플라타이아이 전투에서 페르시아를 격퇴한 후에도 에게 해의 그리스 도시국가(폴리스)들은 여전히 페르시아의 보복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러한 공동의 위협 속에서, 아테네는 강력한 해군력과 스파르타 사령관 파우사니아스의 비인기 덕분에 자연스럽게 동맹의 지도국, 즉 헤게몬으로 추대되었다.4
동맹의 목표는 명확하고 상호 이익에 부합했다.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있는 그리스 도시들을 해방시키고, 미래의 침공을 방어하며, 페르시아 영토를 약탈하여 전쟁 피해를 보상받는 것이었다.2 초기 동맹의 구조는 명목상 평등주의에 기반했다. 모든 동맹국 대표가 참여하는 회의가 신성하고 중립적인 델로스 섬에서 열렸으며, 이곳에 공동 금고가 설치되었다. 이론적으로 각 회원국은 동등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었다.2 이러한 구조는 아테네의 리더십에 정당성을 부여했으며, 이는 합의와 명예(티메)에 기반한 헤게모니아의 전형적인 사례였다.7
1.2 페리클레스 시대의 변질: 강압적 통치로의 전환 (아르케)
델로스 동맹이 자발적 연합체에서 아테네 제국으로 변질되는 과정은 점진적이었으나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이 과정은 안보 효율성을 명분으로 한 합리적 조치들로 시작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테네의 지배를 공고히 하는 제국주의적 통치로 귀결되었다.
재정의 중앙집권화와 군사력 독점
결정적인 전환점은 동맹국들의 기여 방식이 군함과 병력 제공에서 금전적 공납금(포로스) 납부로 점차 전환된 것이었다.1 많은 폴리스들은 직접 군사적 의무를 이행하는 번거로움 대신 공납금을 내는 편의를 택했다.1 아테네의 정치가 키몬이 주도한 이 정책은 동맹의 군사력을 체계적으로 아테네에 집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동맹국들은 비무장화된 반면, 아테네는 동맹의 자금으로 막강한 해군을 유지하고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10 이러한 군사력의 독점은 향후 아테네가 동맹 내에서 강압적인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물리적 기반이 되었다.
동맹 금고 이전과 자금의 사유화
기원전 454년, 동맹 금고가 델로스 섬에서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로 이전된 사건은 동맹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조치였다.1 이로써 동맹의 공동 자산은 아테네의 직접적인 통제하에 놓이게 되었고, 동맹국들의 공납금은 사실상 아테네의 국가 수입으로 변모했다. 초기 공납금 총액은 연간 460탈란트라는 막대한 금액이었으며 13, 펠로폰네소스 전쟁 발발 무렵에는 연평균 600탈란트로 증가했다.12 이 수입은 아테네 국가 재정의 약 40%를 차지할 정도로 거대했으며 15, 아테네 해군 유지뿐만 아니라 파르테논 신전과 같은 대규모 공공 건축 사업, 그리고 배심원과 공직자에게 지급되는 수당의 재원으로 사용되었다.1 공동 방위를 위한 자금이 맹주국의 번영과 시민 복지를 위해 전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반란의 무력 진압과 내정 간섭
동맹이 더 이상 자발적인 체제가 아님은 낙소스와 타소스 같은 동맹국들이 탈퇴를 시도했을 때 명백히 드러났다.4 아테네는 동맹의 군사력을 동원하여 이들의 반란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성벽을 허물고 함대를 몰수하는 등 가혹한 처벌을 가했다.1 이는 탈퇴가 불가능함을 명시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기원전 449년 페르시아와의 '칼리아스 평화조약'으로 공동의 위협이 공식적으로 종결되었음에도 아테네는 동맹을 해산하지 않았다.1 오히려 동맹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 이후, 아테네는 동맹을 제국주의적 통치의 도구로 더욱 노골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아테네는 동맹국들의 내정에 간섭하여 자신들에게 충성하는 민주정 체제를 강요하고, 사법적 자치권을 침해하며 분쟁을 아테네 법정에서 재판하게 하는 등 주권을 체계적으로 잠식해 나갔다.1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안보라는 명분이 어떻게 제국주의적 지배의 논리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안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초기 조치들은 점차 권력 집중으로 이어졌고, 집중된 권력은 동맹을 유지한다는 명목하에 반대 세력을 억압하는 데 사용되었다. 결국, 공동의 자산은 맹주국의 이익을 위해 사유화되었고, 자발적 연합은 강압적 제국으로 그 본질이 완전히 변모하였다.
1.3 갈등의 필연성: 투키디데스의 함정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발발은 단순히 특정 사건들의 결과가 아니라, 고대 그리스 세계의 권력 구조 변화가 낳은 필연적 귀결이었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이 전쟁의 "가장 참된 원인"을 "아테네의 세력 성장과 그에 대해 스파르타가 느낀 두려움"이라고 규정했다.18 이는 훗날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알려지게 된 개념으로, 기존 패권국이 신흥 강국의 부상에 위협을 느껴 예방 전쟁을 선택하게 되는 구조적 긴장을 설명한다.
이러한 권력 투쟁은 단순한 세력 균형의 문제를 넘어선 이념적 대립의 성격을 띠었다. 아테네는 민주정을, 스파르타는 과두정을 지지하며 각자의 정치 체제를 동맹국들에게 확산시키려 했다.22 이로 인해 그리스 세계는 두 개의 진영으로 양분되었고, 소규모 폴리스 내부의 정치적 갈등은 종종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대리전 양상을 띠었다.24 에피담노스의 내전이 케르키라와 코린토스의 분쟁으로, 그리고 결국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개입하는 전면전으로 비화된 과정은 이러한 이념적, 지정학적 갈등이 어떻게 국지적 분쟁을 세계 대전으로 확산시키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24
아테네 제국의 팽창은 스파르타와 그 동맹인 펠로폰네소스 동맹에 직접적인 안보 딜레마를 안겨주었다. 아테네가 동맹의 자원을 바탕으로 강력한 해군력을 구축하고 에게 해의 제해권을 장악하자, 스파르타는 자신들의 영향력이 봉쇄될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혔다.1 아테네가 취하는 모든 안보 강화 조치는 스파르타에게 위협으로 인식되었고, 이는 스파르타로 하여금 군사적 대응을 고려하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했다. 결국,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구조적 압력은 두 세력이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1.4 민주정의 공동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여파
27년에 걸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네에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이 전쟁은 단순히 제국의 상실로 끝나지 않았고, 아테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그 사회의 도덕적, 정치적 붕괴를 초래했다.
경제적, 인구학적 붕괴
전쟁은 아테네에 막대한 인명 손실을 안겼다. 전투에서의 사망자뿐만 아니라, 전쟁 초기 아테네를 휩쓴 역병은 인구의 상당수를 앗아갔다. 장기간의 전쟁으로 농업 생산 기반이 파괴되고 해상 무역로가 차단되면서 경제는 완전히 피폐해졌다.25 막대한 전쟁 비용으로 국고는 고갈되었고, 아테네는 이전의 번영을 결코 되찾지 못했다.28
정치적 퇴행과 30인 참주정
군사적 패배는 아테네 민주정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전쟁의 책임을 민주정 지도자들에게 돌리는 분위기 속에서, 스파르타는 아테네에 '30인 참주'로 알려진 잔혹한 과두정을 수립했다.25 이들은 아테네 인구의 상당수를 처형하고 재산을 몰수했으며, 민주주의 지지자들을 추방하는 공포 정치를 자행했다.29 비록 1년여 만에 민주정이 복원되기는 했지만, 이 과정에서 겪은 내전과 정치적 혼란은 아테네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시민 규범의 침식과 소크라테스의 재판
전쟁의 패배와 정치적 불안정은 아테네 사회를 불신과 공포, 그리고 증오로 가득 채웠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시민들은 희생양을 찾기 시작했고, 그 희생양이 된 인물이 바로 철학자 소크라테스였다. 기원전 399년, 그는 "국가가 인정하는 신을 믿지 않고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고발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30 표면적인 죄목 이면에는, 전쟁 패배로 피폐해진 시민들의 분노와 기존 질서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그의 철학적 태도에 대한 반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32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처형은 패배와 불안에 휩싸인 민주주의가 어떻게 이성을 상실하고 중우정치로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34
이처럼 패권국의 과잉확장이 가져온 가장 파괴적인 결과는 제국의 상실이라는 외부적 실패를 넘어선 내부적 붕괴였다. 외부의 적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아테네는 곧이어 내부의 적을 만들어내는 내전과 정치적 박해라는 더 깊은 수렁에 빠졌다.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치른 전쟁의 대가는 결국 아테네 민주주의 그 자체의 타락이었으며, 이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후대 철학자들이 안정되고 정의로운 정치 체제에 대해 깊이 고찰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36
제2부: 미국 패권과 단극 체제의 긴장
이 섹션에서는 아테네 원형과 미국 주도 질서 사이에 명시적인 유사점을 도출하고, 현대 이론과 데이터를 사용하여 미국 패권에 가해지는 구조적 긴장을 분석한다.
2.1 자유주의 질서의 설계: 현대의 델로스 동맹으로서의 NATO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미국 주도 세계 질서의 핵심축으로서, 그 기원과 발전 과정에서 고대 델로스 동맹과 구조적 유사성을 보인다.
창설 원칙
NATO는 1949년 소련의 팽창이라는 명확한 공동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집단 방위 체제로 창설되었다.38 이는 페르시아의 위협에 맞서 결성된 초기 델로스 동맹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와 법치라는 공동의 가치를 기반으로 한 자발적 동맹이었다.41 이 구조 안에서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동맹의 리더십, 즉 정당성을 인정받는 헤게몬의 지위를 확보했다.
냉전 이후의 적응
소련의 붕괴로 창설 명분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NATO는 칼리아스 조약 이후의 델로스 동맹과 달리 해체되지 않았다. 대신, NATO는 집단 방위라는 핵심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협력적 안보, 위기 관리, 파트너십 구축 등으로 전략 개념을 확장하며 새로운 안보 환경에 적응했다.39 이러한 유연한 적응은 NATO의 생존과 확장을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동맹의 핵심 목적과 역할에 대한 내부적 논쟁의 씨앗을 뿌렸다.
표 1: 패권 동맹 비교 분석 (델로스 동맹 vs. NATO)
| 구분 | 델로스 동맹 | NATO |
| 창설 목적 | 페르시아에 대한 집단 방위 및 보복 | 소련에 대한 집단 방위 |
| 회원국 구조 | 명목상 동등한 도시국가, 아테네가 주도 | 주권 국가, 미국이 주도 |
| 기여 방식 | 군함/병력 제공에서 강제적 금전 공납금(포로스)으로 전환 | 각국의 군대 유지, GDP 2% 국방비 지출 권고 (비강제) |
| 금고 통제 | 중립 지역(델로스)에서 아테네로 일방적 이전 (기원전 454년) | 중앙 금고 없음, 공동 프로젝트 기금 조성, 각국 예산은 주권 사항 |
| 패권국의 자금 사용 | 동맹 공납금을 아테네 공공사업, 시민 수당, 함대 유지에 사용 | 미국의 국방 예산은 주권 사항, 동맹국에 자체 국방비 증액 압박 |
| 이견/탈퇴 메커니즘 | 탈퇴 시도 시 아테네에 의해 무력으로 진압 | 조약 13조에 따라 자발적 탈퇴 가능, 이견은 정치적 협의로 관리 |
2.2 패권의 부담: 21세기 제국의 과잉확장
냉전 종식 이후 '단극의 순간'을 맞이한 미국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전 세계에 안보 공약을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예일대 역사학자 폴 케네디가 제시한 '제국의 과잉확장(imperial overstretch)' 이론이 미국의 상황을 설명하는 중요한 분석틀로 부상했다.
폴 케네디의 이론
케네디의 핵심 논지는 강대국이 군사적 약속과 전략적 야망('총')이 경제적 기반('버터')을 초과할 때 쇠퇴한다는 것이다.44 즉, 과도한 군사비 지출이 장기적인 경제 성장 동력을 잠식하면서 국력이 약화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미국에의 적용
미국은 전 세계 700개 이상의 군사 기지를 유지하고 48, 냉전 이후에도 다수의 비용이 많이 드는 군사 개입에 관여해왔다. 이러한 광범위한 군사적 개입은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초래한다. 동시에 국내적으로는 사회보장 및 의료와 같은 복지 지출이 급증하면서, 국방비와 복지 비용이 국가 예산을 압박하고 장기적인 경제 투자를 저해할 수 있는 전형적인 과잉확장 딜레마에 직면하게 되었다.46 이는 과거 로마 제국과 대영 제국이 지속 불가능한 재정 및 군사적 부담으로 인해 쇠퇴의 길을 걸었던 역사적 사례와 유사점을 보인다.49
2.3 거래주의적 전환과 신뢰의 침식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표방한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정책은 전통적인 동맹 관리 방식에서 급격히 이탈하여, 동맹 관계를 상호 안보 공약이 아닌 경제적 거래 관계로 재정의하려는 시도였다.51 이러한 접근법은 패권국이 과잉확장의 부담을 느낄 때, 동맹을 비용 절감과 가치 추출의 대상으로 전환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기능적으로 아테네가 동맹 금고를 아크로폴리스로 옮겨 자금을 사유화했던 역사적 사건의 현대적 발현이라 할 수 있다.
방위비 분담 갈등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들이 미국의 안보 보장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54, NATO 회원국들에게 GDP의 2%를 넘어 3%, 심지어 5%까지 국방비를 증액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55 이러한 요구는 종종 주둔 미군 철수 위협과 연계되어, 동맹의 본질을 공동의 가치와 안보를 위한 연대에서 안보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지불하는 조건부 계약 관계로 변질시켰다.54
동맹국에 대한 경제적 강압
더 나아가, 행정부는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유럽연합, 캐나다, 일본 등 핵심 동맹국들의 철강, 알루미늄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다.60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의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정책은 동맹국들의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집단 안보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키고 동맹 내부에 심각한 불신과 분열을 초래했다.60 이는 동맹국들에게 더 많은 국방비 지출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경제력을 훼손하는 모순적인 정책이었다.62
정당성의 하락: 데이터로 본 신뢰의 붕괴
이러한 거래주의적 접근은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에 대한 신뢰를 급격히 추락시켰다.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와 갤럽(Gallup)의 여론조사 데이터는 이 시기 동맹국들 사이에서 미국에 대한 호감도와 미국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가 역사적인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음을 명확히 보여준다.63 특히 독일, 프랑스, 캐나다 등 주요 동맹국에서 미국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는 러시아나 중국 지도자들과 비슷하거나 더 낮은 수준으로 하락했다.63 이 데이터는 미국이 합의에 기반한 리더십(헤게모니아)을 상실하고, 동맹국들에게 강압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행위자로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객관적으로 증명한다. 이러한 신뢰 자산의 손실은 단기적인 경제적 이익으로 상쇄할 수 없는 장기적인 전략적 손실이다.
2.4 분열된 국가: 전략적 취약점으로서의 국내 양극화
미국의 대외 정책 신뢰도를 약화시키는 또 다른 핵심 요인은 심화되는 국내 정치 양극화이다. 극심한 당파적 적대감과 정치적 교착 상태는 미국이 일관되고 신뢰할 수 있는 외교 정책을 수행하는 능력을 근본적으로 저해한다.66
행정부가 바뀔 때마다 파리 기후 협약, 이란 핵 합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주요 국제 합의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급격하게 뒤바뀌는 현상은 동맹국들에게 깊은 불확실성을 안겨준다.52 동맹국들은 미국의 약속이 4년의 선거 주기를 넘어 지속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게 되며, 이는 워싱턴과의 장기적인 전략 계획 수립을 매우 위험한 도박으로 만든다.
이러한 국내 불안정성은 국제 사회에 미국이 신뢰할 수 없는 파트너라는 인식을 심어주며, 이는 미국 주도 동맹 시스템의 결속력을 직접적으로 약화시킨다.70 동맹국들은 미국의 변덕에 대비하기 위해 독자적인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하거나, 다른 강대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등 위험을 분산하려는 유인을 느끼게 된다. 결국, 미국의 국내적 분열은 가장 큰 전략적 취약점이 되어, 경쟁국에게는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기회를 제공하고 동맹국들에게는 이탈을 고려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제3부: 21세기 투키디데스의 함정 탐색
이 섹션에서는 미-중 관계를 이해하는 가장 저명한 틀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전쟁은 불가피하다'는 단순한 관념을 넘어 경쟁의 미묘한 측면을 분석한다.
3.1 미-중 경쟁의 재조명: 함정은 실재하는가?
앨리슨의 테제
하버드 대학의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가 대중화한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신흥 강국이 기존 패권국의 지위를 위협할 때 발생하는 구조적 긴장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구도가 나타났던 16개 사례 중 12개가 전쟁으로 귀결되었다는 분석은 미-중 관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강력한 근거로 제시된다.72
비판과 한계
그러나 이 유추는 여러 중요한 비판에 직면한다. 첫째, 전쟁은 구조적 요인만으로 결정되는 필연이 아니라, 지도자들의 전략적 선택의 결과물이다.76 둘째, 현대의 국제 관계는 고대 그리스와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변수, 즉 상호확증파괴를 보장하는 핵무기와 '차이메리카(Chimerica)'로 불릴 만큼 깊은 경제적 상호의존성에 의해 규정된다. 이 두 요소는 강대국 간 전면전의 비용-편익 계산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21 셋째, 앨리슨의 이론은 불분명한 정의와 사례 선택의 편향성 등 방법론적 결함이 있다는 지적도 받는다.82
분석틀로서의 가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함정'이라는 개념은 미-중 관계의 심리적 동학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발견적 도구(heuristic)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이는 신흥 강국이 느끼는 권리 의식과 자존감의 증대, 그리고 이에 대해 기존 패권국이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어떻게 평상시라면 관리 가능했을 위기를 파국적인 충돌로 비화시킬 수 있는지를 설명해준다.18
3.2 새로운 질서를 향한 베이징의 비전: 단순한 경쟁자를 넘어서
중국은 기존 질서 내에서 더 나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데 만족하지 않고, 대안적인 세계 질서를 구축하려는 야심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GSI)', '글로벌 개발 이니셔티브(GDI)', '글로벌 문명 이니셔티브(GCI)'라는 3대 이니셔티브를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대안적 거버넌스 이니셔티브
특히 GSI는 '불가분리의 안보'와 '내정 불간섭'과 같은 원칙을 내세우며,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 시스템의 근간을 직접적으로 겨냥한다.83 이는 서구 중심의 안보 질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려는 시도이다.
비전의 현실화
이러한 이니셔티브는 단순한 수사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은 샹산 포럼(Xiangshan Forum)과 같은 새로운 다자 포럼을 창설하고, 개발도상국의 군 및 경찰 관료들에게 대규모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유엔과 같은 기존 국제기구에 대한 재정 기여를 늘려 자국의 규범을 확산시키는 등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비전을 현실화하고 있다.84 이러한 노력은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 핵심 지역에서 중국의 안보 영향력을 확대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제도적 구조
이러한 비전은 상하이협력기구(SCO)와 확장된 브릭스(BRICS+)와 같은 비서구 중심의 제도적 생태계에 의해 뒷받침된다. 이 기구들은 금융, 개발, 안보 거버넌스 분야에서 서구 주도 기구들과 병행하거나 경쟁하는 대안적 구조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87
3.3 체제 경쟁: 기술, 경제, 그리고 이데올로기
미-중 경쟁은 군사적 차원을 넘어 기술, 경제 모델,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는 다층적인 체제 경쟁의 양상을 띤다.
기술 패권 경쟁
경쟁의 가장 첨예한 전선은 반도체, 인공지능(AI), 5G와 같은 전략 기술 분야이다. 미국은 수출 통제와 같은 조치를 통해 중국의 기술 발전을 억제하려 시도하는 반면, 중국은 막대한 국가적 투자를 통해 기술 자립을 달성하고자 한다.90 화웨이의 5G 네트워크 장비 사용을 둘러싼 각국의 논쟁에서 볼 수 있듯이, 이 기술 경쟁은 다른 국가들에게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92
경제 모델의 대립
미국은 자유시장 자본주의 모델을 옹호하며 자국의 경제 리더십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재구축하려 노력하고 있다.93 반면, 중국은 국가 주도 발전 모델을 제시하며, 이는 특히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에게 매력적인 대안으로 여겨진다. 중국은 막대한 경제력을 활용하여 개발도상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경제적 의존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87
이데올로기적 분열
이 경쟁은 종종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라는 이념적 구도로 묘사된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 주도의 질서를 서구 지배의 잔재로 규정하고, 자신을 더 공평하고 다극화된 세계를 이끄는 글로벌 사우스의 대표자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이 구도를 효과적으로 공략하고 있다.87
이러한 경쟁의 본질을 고려할 때, 21세기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전면전의 위험성보다는 '체계적 탈동조화(systemic decoupling)'의 위험성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기술 표준, 공급망, 금융 시스템, 거버넌스 규범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은 세계를 워싱턴 중심의 블록과 베이징 중심의 블록으로 양분시킬 수 있다. 이는 냉전 시대의 군사적 대립과는 다른 형태이지만, 세계 질서를 근본적으로 파편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중국의 대전략은 미국과의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미국 주도 시스템을 점진적으로 무력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를 대상으로 포괄적이고 매력적인 대안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주요 전쟁 없이 경쟁에서 승리하고자 한다. 이는 미국을 패배시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패권이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하는 세계를 만들어, 미국을 여러 강대국 중 하나로 격하시키려는 '침식과 대체'의 전략이다.
제4부: 다극화 세계의 윤곽
이 섹션에서는 미-중 경쟁이라는 중심축에 대한 다른 주요 행위자들의 반응을 분석하여, 현재 부상하고 있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국제 시스템의 지도를 그린다.
4.1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 추구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은 유럽연합(EU)이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특히 안보 및 국방 분야에서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개념으로, 주로 프랑스가 주도해왔다.95 이 개념은 점차 경제, 기술, 디지털 주권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었다.96
역량 및 이니셔티브
이러한 야심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로는 공동 군사 프로젝트를 촉진하고 유럽의 방위 산업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항구적 안보 국방 협력체제(PESCO)와 유럽방위기금(EDF)의 창설이 있다.98
한계와 분열
그러나 유럽의 자율성 추구는 여러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첫째, 첨단 군사 역량과 안보의 핵심을 여전히 미국과 NATO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101 둘째, 핵심 자원 부족과 산업 경쟁력의 한계가 존재한다.103 셋째, NATO를 우선시하는 '대서양주의' 회원국들과 독자 노선을 강조하는 프랑스와 같은 '유럽주의' 회원국들 간의 뿌리 깊은 이견이 있다.104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 국가들의 국방비 증액을 촉진하는 동시에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도를 역설적으로 강화시켜, 유럽 자율성의 핵심적인 딜레마를 부각시켰다.102
국가별 접근 방식의 차이
- 프랑스: 드골주의의 역사적 전통에 뿌리를 둔 프랑스는 전략적 자율성을 국가적 사명으로 여기며, EU를 미-중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3의 초강대국으로 만들고자 한다.97
- 독일: 보다 신중하고 경제 중심적인 접근을 취한다. 중국과의 완전한 '탈동조화(decoupling)'보다는 위험을 관리하는 '디리스킹(de-risking)'을 선호하며, 대서양 동맹이라는 안보 축과 중국과의 깊은 경제 관계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한다.107
4.2 '나머지'의 부상: 브릭스 플러스(BRICS+)와 상하이협력기구(SCO)
브릭스 플러스(BRICS+)의 확장과 목표
2024년 브릭스가 주요 에너지 생산국과 지역 강국들을 포함하여 회원국을 대폭 확대한 것은 '글로벌 사우스'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111 이 블록의 핵심 목표는 유엔, IMF, 세계은행과 같은 기존 국제 거버넌스 기구를 보다 대표성 있는 구조로 개혁하고, 국제 무역 및 금융 시스템에서 미국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다.87
상하이협력기구(SCO)의 안보 초점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는 '테러리즘, 분리주의, 극단주의'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유라시아 중심의 안보 협의체이다. SCO는 서방 주도의 안보 틀 밖에서 회원국 간 정보 공유, 합동 군사 훈련 등 안보 협력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한다.89
결속력과 도전 과제
이들 비서구 블록은 세계 인구와 GDP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인도-중국 간 국경 분쟁, 사우디아라비아-이란 간의 경쟁과 같은 회원국 간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잠재적 갈등은 통일된 반서방 연대로서의 결속력과 효율성을 저해하는 심각한 도전 과제로 남아있다.87
4.3 중견국들의 헤징 게임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국제 환경 속에서, 중견국들은 특정 강대국에 대한 일방적인 편승을 피하고 전략적 유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헤징(hedging)' 전략을 점점 더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있다.117 헤징은 안보적으로는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중국과의 협력을 심화하는 등, 상호 모순적으로 보이는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사례 연구: 대한민국
한국은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말로 요약되는 전형적인 헤징 딜레마에 처해 있다.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 동맹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면서도, 최대 교역 상대국인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소홀히 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하면서 중국을 직접적으로 자극하지 않으려는 신중한 표현을 사용하는 등, 미묘한 균형 외교를 펼칠 수밖에 없게 만든다.117
사례 연구: 일본
일본은 미국의 핵심 동맹국으로서 안보적으로는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며 쿼드(Quad)와 같은 '소다자(minilateral)' 안보 협의체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과 막대한 경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이 탈퇴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주도하는 등 독자적인 경제 외교를 펼치고 있다. 이는 중국을 견제하면서도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고, 지역 내에서 독자적인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다층적인 헤징 전략이다.122
새롭게 형성되는 세계 질서는 군사력과 경제력 측면에서 여전히 미국과 중국에 힘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다극(multipolar)' 체제라고 보기는 어렵다.126 그러나 중견국들이 더 이상 수동적인 행위자가 아니라, 헤징과 전략적 자율성 추구를 통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다중 정렬(multi-aligned)' 체제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들은 특정 진영에 고정되지 않고, 사안별로 자신들의 국익에 따라 유연하게 연대하고 협력하며, 강대국 간 경쟁 구도 속에서 자신들의 전략적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중견국들의 유동적인 외교 행보는 경직된 냉전식 블록 대결의 재현을 막는 동시에, 국제 관계를 더욱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렵게 만드는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
제5부: 전략적 예측 및 정책 제언
이 마지막 섹션에서는 앞선 역사적, 현대적 분석을 종합하여 미래 지향적인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미국과 그 동맹국들을 위한 실행 가능한 정책 방향을 제언한다.
5.1 쇠퇴로부터의 교훈: 강대국 통치술의 영원한 원칙
아테네, 로마, 대영 제국의 쇠퇴 과정은 시대를 초월하는 몇 가지 핵심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군사적 공약이 경제적 기반을 앞지를 때 발생하는 '과잉확장'의 위험이다. 둘째, 합의에 기반한 리더십이 강압적 통치로 변질될 때 발생하는 정당성의 침식이다. 셋째, 외부의 위협만큼이나 치명적인 내부의 정치적 분열이다. 넷째, 패권국이 자신의 힘에 도취되어 오만함과 근시안적 판단에 빠지는 경향이다.7 이러한 역사적 교훈은 오늘날의 전략가들에게 경고와 지침을 동시에 제공한다.
5.2 활력 있는 동맹을 위한 청사진: 허브 앤 스포크에서 네트워크형 격자로
정책 제언: 미국은 동맹 전략을 경직된 '허브 앤 스포크(hub-and-spokes)' 모델에서 벗어나, 보다 유연하고 회복력 있는 '네트워크형 격자(networked lattice)'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70
실행 방안: 이를 위해서는 쿼드(Quad), 오커스(AUKUS)와 같은 '소다자주의(minilateralism)' 협력체를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기술 표준이나 공급망 회복력과 같은 특정 현안에 대해 유럽과 인도-태평양 동맹국들을 연결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새로운 협력체들이 행정부 교체와 같은 정치적 변화에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다.128
경제적 통치술: 미국은 경제 정책과 안보 정책을 다시 통합해야 한다. 이는 동맹국에 대한 무분별한 관세 부과를 중단하고, 대신 디지털 인프라, 반도체 등 전략적 분야에서 부문별 무역 협정을 추진하며, 실질적인 시장 접근을 포함하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를 강화하여 중국의 경제적 이니셔티브에 대한 매력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94
5.3 미래 세계 질서 시나리오 (2030-2040)
시나리오 1: 경쟁적 양극 체제 (Contested Bipolarity)
세계가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경제 및 기술 블록으로 점차 양분되는 시나리오이다. 이 세계는 치열한 경쟁, 체계적 탈동조화, 그리고 중견국들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거대한 압력으로 특징지어질 것이다.90
시나리오 2: 파편화된 세력권 (Fragmented Spheres of Influence)
미국, 중국, EU, 러시아 등 주요 강대국들이 각자의 지역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19세기식 세력권 질서로 회귀하는 시나리오이다. 이 경우, 글로벌 통합은 약화되고 지역 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126
시나리오 3: 불안정한 다극 체제 (Unstable Multipolarity)
다수의 권력 중심, 유동적인 동맹, 그리고 기후 변화, 팬데믹, 금융 위기와 같은 초국가적 위협을 관리할 능력이 없는 약화된 국제기구들로 인해 혼란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질서가 형성되는 시나리오이다. 이는 '영구적 위기'의 세계가 될 수 있다.93
5.4 결론: 탈패권 시대, 신중함의 중요성
탈패권 시대가 반드시 미국의 영향력 종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대전략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한다. 미국은 지배의 전략에서 조정과 관리의 전략으로 나아가야 하며, 평화를 조성하고, 회복력 있는 제도를 구축하며, 글로벌 공공재를 제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132
투키디데스의 지혜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탄생한 정치 철학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신중함, 자제력, 그리고 정의에 대한 존중은 결코 약함의 표시가 아니다. 오히려 복잡하고 위험한 세계를 항해하는 데 필수적인 덕목이며, 미국의 역사가 아테네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도록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란>
글로벌 사우스는 전통적으로 '선진국(글로벌 노스)'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주로 경제적·정치적 발전 수준이 낮거나 개발도상국인 국가들을 일컫는다. 지리적 남반구에 국한되지 않으며, 저소득·저발전·한정된 국제 영향력을 공유하는 국가 집단을 의미한다.
글로벌 사우스는 1960년대 제3세계 비동맹 운동에서 기원한 용어로,
- 글로벌 노스(Global North): 북미·유럽·일본·한국·이스라엘·호주·뉴질랜드 등 선진국
-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카리브, 한국·일본·이스라엘·호주·뉴질랜드를 제외한 아시아, 오세아니아[뉴질랜드·호주 제외] 지역[get_url_content]
주요 특징은 낮은 1인당 소득, 높은 빈곤율, 제한된 교육·보건·사회간접자본, 국제 협상력 약화 등이다.
개념적 배경
- 제3세계(Third World) 개념의 확장: 냉전 시기 비동맹 국가들이 ‘남–남 협력’을 강조하며 제기
- 탈식민주의·비동맹주의: 1955년 반둥회의를 통해 비동맹 연대로 형성된 집합적 정체성
- 남북 격차(north–south divide): 산업혁명 이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경제·정치·사회적 격차 문제
주요 논의
- 정치·경제적 연대와 대항
- 개발도상국 간 협력을 통해 글로벌 무대에서 협상력 강화
- 신국제경제질서(NIEO) 요구를 포함한 집단적 목소리 발신
- 용어 사용의 진화
- ‘개발도상국’·‘제3세계’의 한계 보완
- 선진국·개발도상국 이분법을 넘어 지리정치적 맥락 강조
글로벌 사우스의 중요성
- 경제 성장 동력: 인도·브라질 등 일부 신흥국의 급성장
- 국제 협상 축: 기후변화·무역·보건·개발정책 등 다자 협상에서 영향력 증대
- 공동 대응: 기후 위기·팬데믹·식량 안보 문제에 대한 ‘남–남 협력’ 모색
글로벌 사우스는 단순한 지리적 범주가 아닌, 전 세계 체제 내 경제적·정치적 불평등을 설명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핵심 프레임워크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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