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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신이 되려는 인간 _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

by 변리사 허성원 2025. 8. 1.

신이 되려는 인간 _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

 

서론

유발 하라리의 저서 《호모 데우스》는 단순히 그의 전작 《사피엔스》의 후속편을 넘어, 인류의 과거를 발판 삼아 가능한 미래를 조망하는 하나의 담대한 사변적 역사서다. 하라리는 미래의 역사가로서, 역사적 경향성을 분석하여 인류의 다음 목표를 예측한다. 책의 핵심 논지는 인류가 전례 없는 번영, 건강, 평화를 성취한 후, 생존의 문제에서 열망의 프로젝트로 그 중심축을 옮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전환은 인류에게 '새로운 의제(The New Human Agenda)'를 제시하는데, 이는 바로 불멸, 행복, 그리고 신성의 추구다.

이 세 가지 목표 중 불멸과 행복이 기존 인본주의 가치의 연장선에 있다면, 신성의 추구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열망을 대변한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종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자연선택이라는 수동적 진화의 굴레를 벗어던져 스스로 지적 설계자가 되려는 가장 급진적이고 변혁적인 탐구다. 이 보고서는 하라리가 제시한 '신성 추구'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그 철학적 기반과 기술적 경로, 그리고 이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심오한 사회적, 윤리적, 이념적 함의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하라리가 그리는 미래는 유토피아적 가능성과 디스토피아적 파국을 동시에 품고 있으며 , 신성을 향한 여정은 그 양극단의 미래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제1장: 낡은 문제들의 퇴장과 새로운 인류 의제의 서막

하라리 논의의 대전제는 인류가 역사상 처음으로 기아, 역병, 전쟁이라는 세 가지 오랜 숙적을 통제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주장이다. 이 성공은 안주가 아닌 더 큰 야망을 낳는 동력이 되었고, 인류 문명의 방향을 생존 투쟁에서 신적 권능의 획득으로 전환시켰다.

자연의 재앙을 길들이다

과거 인류의 역사는 자연의 변덕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연약한 존재의 기록이었다. 하라리는 이 세 가지 문제가 어떻게 길들여졌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첫째, **기아(Famine)**는 더 이상 불가항력의 자연재해가 아니라 관리 가능한 정치적 문제로 변모했다. 과거에는 흉년 하나가 한 지역의 인구 수십 퍼센트를 앗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굶주림보다 과식이 더 심각한 보건 문제가 되었다. 이는 농업 기술의 발전, 국제 무역망의 확립, 그리고 국제기구의 구호 활동 덕분이다. 이제 기근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자연의 저주가 아니라 특정 정부의 무능이나 정치적 의도 때문이다.

둘째, 역병(Plague) 역시 그 위세가 크게 꺾였다. 흑사병이 유라시아 인구의 4분의 1을 앗아갔고, 유럽인이 옮긴 전염병이 아메리카 원주민의 90%를 절멸시켰던 시대는 지났다. 20세기 후반, 항생제, 백신, 공중보건 시스템의 발전은 인류와 병원균의 관계를 역전시켰다. 에이즈나 코로나19와 같은 새로운 위협이 등장하더라도, 인류는 이를 신의 형벌로 받아들이는 대신 전 지구적 과학 기술 역량을 동원하여 대응한다. 그 결과, 현대인의 주요 사망 원인은 감염성 질환이 아닌 암, 심장병과 같은 비감염성 질환과 노화 그 자체가 되었다.

셋째, 전쟁(War) 또한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띤다. 인류 역사에서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은 꾸준히 감소해왔으며 ,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강대국 간의 전면전은 핵무기라는 상호확증파괴의 공포 덕분에 억제되고 있다. 하라리는 부의 원천이 유전이나 밀밭 같은 물질적 자산에서 지식으로 이동하면서 전쟁의 채산성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분석한다. 이제 많은 지역에서 평화는 '전쟁이 일시적으로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전쟁을 상상하기 어려운 상태'를 의미하게 되었다. 테러리즘은 이러한 평화에 대한 실질적 위협이라기보다는, 약자가 강자의 과잉반응을 유도하여 주목받으려는 '쇼'에 가깝다고 하라리는 평가한다.

문제 해결에서 목표 설정으로

이처럼 인류가 생존의 위협을 상당 부분 극복하자, 문명은 새로운 동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하라리는 "성공은 야망을 낳는다"고 말하며 , 인류가 이룩한 성취를 발판 삼아 더 대담한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예측한다. "불 없는 세상의 소방관"처럼 , 인류는 스스로에게 새로운 과제를 부여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러한 심리적, 문명사적 추동력이 인류를 신을 닮고자 하는 새로운 의제로 이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낡은 의제와 새로운 의제 사이의 관계가 단순히 순차적인 것을 넘어 인과적이라는 사실이다. 역병과 싸우기 위해 발전시킨 정교한 생명공학 기술과 글로벌 보건 네트워크는 이제 수명 연장과 신체 능력 향상을 위해 탐구되고 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 개발된 컴퓨터, 인터넷, 인공지능 기술은 이제 초지능 알고리즘과 디지털 의식을 창조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를 관리하고 분쟁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복잡한 국제기구와 금융 시스템은 이제 구글의 칼리코(Calico)나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Neuralink) 같은 거대 기업의 연구개발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한다. 결국 신성 추구는 인류가 과거의 문제들을 해결하며 축적한 힘을 논리적으로, 어쩌면 필연적으로 다음 단계에 적용하는 과정인 셈이다. 생존을 위해 개발된 '수단'이 이제 초월을 위한 '목적'이 되고 있다.

제2장: 하라리적 맥락에서 '신성'의 해체

하라리가 말하는 '신성(divinity)'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그의 논지를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가 말하는 '데우스(Deus)'는 유일신교의 전지전능하고 형이상학적인 신이 아니다. 오히려 그 모델은 그리스 신화의 신들이나 힌두교의 데바(deva)에 가깝다. 이들은 초인적인 능력을 지녔지만 전능하지는 않으며, 특히 생명을 창조하고 파괴하며 재설계하는 구체적인 권능을 가진 존재들이다.

이처럼 신성을 기능적이고 기술적인 용어로 재정의함으로써, 하라리는 이 개념을 신학적 환상에서 벗어나 섬뜩할 정도로 현실적인 공학 프로젝트로 탈바꿈시킨다. 전통 종교가 신성을 초자연적 영역에 두어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면, 하라리는 신성을 DNA 재작성, 뇌와 컴퓨터의 연결, 인공지능 설계와 같은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능력으로 환원한다. 이 능력들은 각각 생명공학, 신경공학, 컴퓨터 과학이라는 현존하거나 부상하는 기술 분야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신성 추구'는 영적인 탐구가 아니라 기술적 로드맵이 되며, 이는 이 논의를 신앙의 영역에서 윤리, 정책, 연구개발 투자의 영역으로 끌어내려 시급한 현대적 과제로 만든다.

기술적 신성의 핵심 속성

하라리가 묘사하는 기술적 신성은 크게 세 가지 핵심 속성으로 구성된다.

첫째, 창조의 권능이다. 이는 자연선택의 제약을 넘어 생명체를 직접 설계하고 공학적으로 제작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인류는 더 이상 진화의 피조물이 아니라 '지적 설계'의 주체가 되기를 열망한다.

둘째, 자기 변혁의 권능이다. 이는 노화를 정복하고, 감정을 통제하며, 지능을 증강시키는 등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극복하는 능력이다.

셋째, 통제의 권능이다. 이는 외부 환경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 타인의 주관적 경험까지 지배하는 경지를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데우스'로의 전환은 더 나은 도구를 갖는 것을 넘어, 인류의 운영체제 자체를 업그레이드하여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제3장: 신격화로 가는 세 가지 길: 기술적 발현

하라리는 인류가 신성을 획득하기 위해 나아갈 세 가지 주요 기술적 경로를 제시한다. 이 경로들은 독립적이지 않으며, 상호작용하며 서로를 가속하는 융합적 특징을 보인다.

경로 핵심 개념 주요 기술 (사례) 궁극적 목표 주요 윤리적 우려
생명공학 유전자 코드를 재작성하고 생화학 시스템을 조작하여 호모 사피엔스를 업그레이드. 유전공학(CRISPR), 재생의학, 능력 향상 약물. 질병, 노화, 생물학적 한계 극복; 공학적으로 설계된 행복과 우월한 신체/인지 능력 획득. 우생학, 유전적 차별, 자연적 다양성 상실, 예측 불가능한 생태학적 결과.
사이보그 공학 유기체에 비유기적 부품, 센서, 프로세서를 통합하여 인간을 강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바이오닉 의수족, 나노로봇, 증강현실 임플란트. 정신과 기계의 완벽한 연결, 증강된 감각, 데이터 네트워크로의 직접 접속. 인체 해킹, 사생활과 자율성 상실, '자아'의 경계 정의 문제.
비유기체 생명 창조 주로 인공지능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비유기체 생명 형태를 창조. 머신러닝, 신경망, 정신 업로딩, 초지능 AI. 인류를 대체할 수 있는 우월한 지능의 창조; 디지털 불멸성 획득. '통제 문제', 지능과 의식의 분리, 인류의 잠재적 퇴물화.
 

3.1. 생명공학: 생명의 코드를 다시 쓰다

첫 번째 경로는 인간의 생물학적 기반을 내부에서부터 조작하여 호모 사피엔스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인체는 신성한 것이 아니라 결함 많고 편집 가능한 텍스트에 불과하다.

이 경로의 대표적인 기술은 단연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다. 이 기술은 유전학을 관찰의 학문에서 직접적 개입의 학문으로 바꾸어 놓았다. 크리스퍼의 응용 분야는 질병에 강한 인간을 만들거나 유전적 결함을 교정하는 치료의 영역을 넘어, 지능이나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는 '강화(enhancement)'의 영역으로 확장될 잠재력을 지닌다.

하라리는 '치료'와 '강화' 사이의 경계가 매우 모호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유전병을 치료하는 것은 명백한 치료 행위다. 하지만 배아 단계에서 이를 예방하는 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건강한 배아의 IQ를 '개선'하는 것은 명백한 강화다. 하라리는 이 미끄러운 경사길 위에서 인류가 멈출 수 있는 명확한 지점은 없다고 주장한다. 이 길의 끝에는 우생학의 망령, 유전자에 기반한 새로운 계급 사회의 출현, 그리고 인류의 자연적 다양성 상실이라는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3.2. 사이보그 공학: 사람과 기계의 융합

두 번째 경로는 유기체인 몸에 비유기적 장치를 결합하여 생물학적 한계를 초월하는 것이다. 이 길은 순수한 생물학적 존재를 넘어선 하이브리드 존재의 탄생을 목표로 한다.

이 분야의 핵심 기술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다. 뉴럴링크와 같은 기업들의 연구는 BCI의 현재와 미래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현재 BCI는 마비 환자들이 생각만으로 컴퓨터나 로봇 팔을 조종하여 기능을 회복하도록 돕는 의료적 목적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그 궁극적인 비전은 의료를 훨씬 뛰어넘어 인지 능력 강화, 정신과 인터넷의 직접 연결, 심지어 생각을 통한 직접적인 소통까지 포함한다. 최종 목표는 인간의 마음과 디지털 세계 사이에 지연 없는 고대역폭 인터페이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융합은 '뇌 해킹'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보안 위협을 낳는다. 우리의 생각이 감시당할 수 있다면 사생활은 어떻게 지켜질 수 있는가? 더 근본적으로는, 나의 '자아'는 어디까지이고 기계는 어디부터 시작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3.3. 비유기체 생명의 창조: AI와 디지털 의식

세 번째 경로는 가장 급진적이다. 이는 인간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넘어, 우월한 지능을 가진 완전히 새로운 비생물학적 존재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 길은 잠재적으로 인류를 대체할 수 있다.

이 경로의 핵심 개념은 '지능과 의식의 분리'다. 하라리는 수천 년 동안 높은 지능은 항상 의식과 결부되어 있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이 연결을 끊는다. 알고리즘은 체스, 운전, 의료 진단과 같은 특정 영역에서 인간을 초월하는 지능을 발휘하면서도, 어떠한 주관적 느낌이나 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는 인류사적 대전환이다.

이러한 초지능 AI의 등장은 인류가 더 이상 지구상에서 가장 똑똑한 존재가 아니게 될 가능성, 즉 '통제 문제'를 야기한다. 더 나아가, 인간의 의식을 디지털 기질에 전송하여 생물학적 죽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정신 업로딩' 또는 '디지털 불멸'이라는 사변적이지만 강력한 아이디어로 이어진다. 이는 창조와 자기 초월의 궁극적인 행위라 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경로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를 강화하며 수렴한다. 유전적으로 강화된 인간(생명공학)은 고대역폭의 BCI를 수용하기에 더 적합한 뇌를 가질 것이다. 이 BCI(사이보그 공학)는 초지능 AI 네트워크에 직접 접속하는 통로를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이 AI 네트워크(비유기체 생명)는 다시 더 정교한 유전적, 사이보그적 업그레이드를 설계하는 데 사용되어, 가속화되는 강화의 피드백 루프를 만들어낼 수 있다. 결국 신성 추구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다각적인 공격이며, 한 분야의 발전이 다른 분야의 돌파구를 촉발하여 강력하고 통제 불가능한 기술적 특이점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제4장: 이념의 단절: 인본주의에서 데이터교로

하라리는 신성을 향한 추구가 단지 기술적 변화에 그치지 않고, 인류의 지배적인 이념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철학적 혁명을 동반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인본주의의 몰락과 '데이터교(Dataism)'라는 새로운 테크노 종교의 부상으로 요약된다.

4.1. 자유주의 인본주의에 대한 과학의 공격

먼저 하라리는 현대 세계의 지배적 '종교'로서 자유주의 인본주의를 정의한다. 이 이념은 개인의 감정, 경험, 그리고 '자유의지'를 신성시한다. "투표자가 가장 잘 안다", "고객은 언제나 옳다",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달려있다"와 같은 신조들은 모두 이 이념의 표현이다.

그러나 21세기 생명과학, 특히 신경과학과 생물학은 이러한 인본주의의 기둥들을 체계적으로 해체하고 있다. 뇌 스캔과 심리학 실험들은 '자아'가 단일하고 통합된 실체가 아니라, 서로 충돌하는 여러 서사와 과정들의 집합체임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하라리는 '자유의지'가 신학에서 유래한 유용한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과학은 우리의 선택이 유전자와 환경에 의해 형성된 생화학적 알고리즘의 산물이며, 이는 결정론적이거나 무작위적일 뿐 결코 '자유롭지' 않다고 밝혀내고 있다. 만약 인간이 단지 알고리즘의 집합이라면, 충분한 데이터와 연산 능력을 갖춘 외부 시스템에 의해 완벽하게 이해되고, 예측되며, 조종, 즉 '해킹'될 수 있다.

4.2. 데이터교: 새로운 테크노 종교

인본주의의 권위가 이처럼 과학에 의해 무너지면서, 그 자리를 대체할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필요해진다. 하라리는 이것이 바로 '데이터교(Dataism)' 또는 '데이터 종교(Data-religion)'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데이터교의 핵심 교리는 다음과 같다.

  • 우주는 데이터의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 인간을 포함한 모든 개체의 가치는 데이터 처리에 대한 기여도로 결정된다.
  • 궁극적인 선(善)은 모든 것을 거대한 네트워크에 연결하여 데이터 흐름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신들을 포괄하고 초월할 '만물인터넷(Internet-of-All-Things)'을 창조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이러한 세계관 속에서 권위의 원천은 인간의 감정에서 알고리즘으로 이동한다. "네 마음의 소리를 들어라" 대신 "알고리즘을 따르라"가 새로운 계명이 된다. 구글이나 아마존이 자기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본주의에서 데이터교로의 전환은 단순한 철학적 논쟁이 아니다. 이는 '호모 데우스'라는 하드웨어를 구동하기 위해 필수적인 이데올로기적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같다. 인본주의는 '자연스럽고', '진정한' 자아를 중시하며 급진적인 인간 강화에 강력한 윤리적 장벽을 세운다. 그러나 과학이 자아는 환상이고 자유의지는 신화라고 '증명'함으로써 이 장벽의 기초는 제거된다. 자아가 낡은 알고리즘에 불과하다면, 그것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에 대한 인본주의적 반대는 의미를 잃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데이터교가 새로운 긍정적 명분을 제공한다. 즉, 업그레이드는 단지 가능한 것이 아니라, 데이터 처리 효율성을 향상시키므로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가 되는 것이다. 결국, 인간 개체에 대한 과학적 해체는 인본주의의 성벽을 무너뜨리는 철학적 공성추이며, 데이터교가 '호모 데우스'의 창조를 최고의 소명으로 삼는 새로운 질서를 세울 길을 닦는 과정이다.

제5장: 디스토피아적 예언: 전례 없는 불평등과 '쓸모없는 계급'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 프로젝트가 인류 전체에 혜택을 주기보다는, 역사상 가장 극심한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두 가지 거대한 사회경제적 변화에 기인한다.

위대한 분리(The Great Decoupling)와 '쓸모없는 계급'의 부상

20세기 선진국들에서 불평등이 완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대중이 노동자로서 경제적으로, 그리고 군인으로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엘리트 계층은 대중을 필요로 했고, 따라서 그들의 보건, 교육, 복지에 투자했다.

그러나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은 대부분의 인간 노동을 쓸모없게 만들 것이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던 과거 산업혁명과 달리, AI 혁명은 단지 실업자가 아니라 고용 자체가 불가능한 영구적인 '쓸모없는 계급(the useless class)'을 낳을 수 있다.

생물학적 카스트 제도

동시에 신성을 부여하는 기술들, 즉 유전공학이나 BCI 등은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극소수의 부유한 엘리트만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역사상 처음으로 경제적 불평등이 직접적인 생물학적 불평등으로 전환되는 결과를 낳는다. 업그레이드된 '호모 데우스'와 그렇지 못한 '호모 사피엔스' 사이의 격차는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격차, 혹은 인간과 침팬지의 격차보다도 더 클 수 있다.

업그레이드된 엘리트는 더 이상 대중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로봇 군대와 드론이 군인을 대체하고, 지능형 AI가 노동자와 관리자를 대체할 것이다. 대중 민주주의, 사회 복지, 공중 보건을 지탱하던 논리적 근거가 증발하면서, 인류는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사회로 회귀할 수 있다.

결국 '호모 데우스'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역설은 '인류'를 신으로 격상시키려는 시도가 실제 대다수 인간의 소외와 사실상의 비인간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프로젝트는 엘리트가 통제하는 자본과 기술에 의해 주도된다. 이 기술(AI)은 대중을 경제적으로 쓸모없게 만들고, 동시에 다른 기술(생명공학)은 엘리트가 대중과 생물학적으로 분리될 수 있게 한다. 이는 강력한 피드백 루프를 형성한다. 엘리트는 더 강력해지고, 대중은 덜 중요해지며, 이는 다시 엘리트가 대중을 돌볼 유인을 감소시켜 권력 격차를 더욱 심화시킨다. 하라리의 예언은 단지 새로운 기술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 기술이 자본주의적, 개인주의적 틀 안에서 전개될 때 지난 2세기의 사회 계약을 파괴하고 영구적이며 생물학적으로 고착된 전 지구적 아파르트헤이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다.


결론: 포스트 휴먼 미래의 미해결 질문들

하라리 자신도 강조하듯이, 《호모 데우스》는 결정론적 예언이 아니라 현재의 경향에 기반한 가능성들의 탐구다. 이 책의 목적은 우리의 지평을 넓히고 토론을 촉발하여, 인류가 의식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이 책은 우리 시대에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 유기체는 정말 단지 알고리즘에 불과한가?
  •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는가?
  • 의식은 없지만 고도로 지능적인 알고리즘이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 알게 될 때, 사회, 정치, 그리고 일상생활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최종적인 메시지는 기술이 운명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래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신성으로 가는 길은 규제, 윤리, 그리고 우리가 보존하고자 하는 가치에 대해 오늘날 내려야 하는 선택들로 포장되어 있다. 신이 되기 위해 우리의 인간성을 희생할 것인지에 대한 궁극적인 결정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인류가 직면한 이 거대한 갈림길에서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성찰과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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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92510/episodes/25164638?ucode=L-JCCOyQkB

 

[미래] 신이 되려는 인간 _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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