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의 법(法)·술(術)·세(勢)
1. 서론: 한비자의 통치 철학과 현대 리더십의 연관성
중국 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 한비자(韓非子)는 법가(法家)를 집대성하여 법(法), 술(術), 세(勢) 세 가지를 군주 통치의 핵심 기제로 제시했다. 당시 혼란한 정국에서 한비자는 “살아남고 싶다면 강해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성인 군주(堯舜)와 같은 도덕에 기대지 않고도 평범한 군주가 효율적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현실적 전략을 제안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그의 통치 철학은 조직 경영과 리더십에도 시사점을 줄 수 있다. 현대의 기업 경영자들도 복잡한 조직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려면 명확한 규범(법), 정교한 관리 기법(술), 확고한 권한 기반(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전국시대 말 혼란 속에서 법·술·세를 결합한 현실주의 통치술을 설파했다. 그의 사상은 후대의 군주 뿐 아니라 오늘날 조직을 이끄는 리더들에게도 통찰을 제공한다.
한비자의 법·술·세 사상은 당시 주류였던 유가(儒家)·도가(道家)와 뚜렷이 대비된다. 유가가 인의예지 등 도덕과 예법을 통한 교화를 중시하고, 도가가 무위자연의 통치(간섭 최소화)를 강조한 반면, 법가는 엄정한 법령과 국가 권력을 통해 질서 확립을 추구했다. 한비자는 “인의도덕이니 충군애국이니 하는 것들은 믿을 게 못된다”고 일갈하며, 인간은 이익 앞에서 누구나 배신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도덕이나 관용에 기대기보다, 객관적 법령과 강제력으로 일관되게 다스리는 것이 혼란을 해결하는 길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법·술·세는 각각 '유가의 덕치(德治)'나 '도가의 무위지치(無爲之治)'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전국시대의 현실에 맞게 고안된 전략적 통치 시스템이었다.
이제 본론에서 각 개념을 철학적·전략적 의미와 함께 정의하고, 고대 사상 체계에서의 위치를 살펴본 뒤, 현대 조직관리와 리더십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인 예시와 함께 탐구한다. 특히 각 부분마다 한비자 원문의 일절을 인용하여 간단히 풀이하고, 세 가지 개념이 어떻게 서로 보완적으로 작용하는지 밝히면서, 오늘날 기업 경영에 시사하는 바를 정리한다.
2. 법(法, Law) – 명문화된 원칙과 규범의 힘
2-1. 개념 및 전통사상에서의 위치
“법(法)”이란 문자 그대로 법령, 규범, 제도적 기준을 의미한다. 한비자의 법은 공정하고 엄격한 원칙으로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 틀을 가리킨다. 법가는 “법치”(法治)를 통치의 중심에 두었는데, 이는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고 일관되게 적용되는 명문화된 규칙을 통해 나라를 다스리는 방식이다. 한비자는 “법은 드러내는 것이고(法莫如顯)…”라고 하여, 법은 최대한 명확히 공개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러한 법 개념은 유가 및 도가 사상과 확연히 대비된다. 유가(儒家)는 예의와 덕으로 백성을 교화하는 덕치주의를 내세워, 지나친 형벌과 법 적용을 지양했다. “예로 다스리고 음악으로 교화한다”는 공자의 가르침처럼, 유가는 도덕적 모범과 사회적 관계의 조화를 중시했고, 법은 부차적인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도가(道家) 역시 “국가에 법이 많을수록 도적이 늘어난다”고 보아 인위적인 법과 규제를 최소화하라고 역설했다. 노자는 “무위(無爲)”로써 자연스러운 질서를 추구했다.
이에 비해 법가(法家), 특히 한비자는 도덕이나 풍습이 아닌 엄격한 법령으로 객관적 질서를 세워야 한다고 보았다. 한비자는 유가를 향해 “백성을 사랑하여 교화한다는 말은 결국 나라를 망치는 짓”이라고 비판하며, 성악설적 인간관에 기반한 강력한 법 집행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이러한 법 사상은 현실 정치의 불안정함 속에서 도덕 대신 제도에 의지하려는 철학적 입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2-2. 한비자의 통치 전략에서의 의미
한비자에게 법은 국가 경영의 유일무이한 준거였다. “법으로 상과 벌을 내리고(以法賞罰之)…”라는 말처럼, 군주는 법에 따라 '상벌(賞罰)'을 분명히 함으로써 신하와 백성을 통제해야 한다. 법령은 공개되어 모두에게 적용되므로, 사사로운 인정이나 군주의 개인적 호오(好惡)가 개입하지 않는 공평한 잣대가 된다. 한비자는 이러한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해 '권신(權臣)'이나 특권 세력을 견제하고, 모든 신하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한비자는 진나라 상앙(商鞅)의 변법을 높게 평가했는데, 그 이유는 귀족과 서인을 막론하고 일률적으로 법을 적용하여 *“법 앞의 평등”*을 실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한비자 「난세(難勢)」 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중자(中者)는 위로는 요임금・순임금에는 미치지 못하나, 아래로 걸왕・주왕만큼 악독하지도 않은 보통 사람이다. 법을 품고 권세를 쥐면 다스려지고(抱法處勢則治), 법을 등지고 권세를 버리면 어지럽다(背法去勢則亂). 지금 권세를 버리고 법을 등진 채 요순 같은 성군만을 기다린다면, 천 세(世)에 한 번 다스려지고 그 외엔 늘 난세일 것이다.”
한비자는 이처럼 대부분의 군주는 성인이 아닌 평범한 인물이므로, '법과 권세(세)'에 의한 통치만이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설파했다. 법에 기대어 권세를 잡으면 누구라도 나라를 다스릴 수 있지만, 법을 저버리고 권세마저 잃으면 혼란에 빠진다는 뜻이다. 이는 탁월한 성군이 나오기를 기다리기보다 시스템에 의한 통치로 안정을 꾀해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또 한비자는 “법을 버리고 다른 도리에 의지하지 말라”*고 군주에게 충고하면서, 법에 의한 통치는 군주의 완전무결함이 아니어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법이라는 시스템만 제대로 구축하면 평범한 군주도 성공적으로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비자의 법 개념 핵심은 공개성과 일관성이다. “법막여현(法莫如顯)”, 즉 “법은 드러냄만 한 것이 없다”는 고언처럼, 법은 숨김없이 공개되어야 권위가 생긴다. 이렇듯 공개된 법령 아래에서는 누구도 예외가 아니므로 신하들은 군주의 개인이 아닌 ‘법의 권위’에 복종하게 된다. 한비자는 군주도 법 위에 군림하지 않고 법에 따라 통치해야 한다고 봤는데, 이는 군주의 일관성 있는 리더십을 유지해 신하들의 혼란을 막기 위함이다. 결국 법은 **국가 운영의 표준절차(Standard Operating Procedure)**이자 공식적 성과 평가 기준 역할을 하여, 한비자가 꿈꾼 부국강병의 기반이 되었다.
법은 '술(術)'과 '세(勢)' 없이 단독으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점도 한비자는 간파했다. 그는 상앙을 비판하며 “법만 강조하고 신민을 통제하는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지적했고, 술과 결합되지 않은 법의 한계를 언급했다. 따라서 법과 술이 함께 작동하여야 하며, 이를 뒷받침할 권세(세)가 없으면 법도 사문화된다고 보았다. 한비자는 *“법·술·세 삼자 중 하나라도 없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는데, 법은 제도적 틀, 술은 운용의 기술, 세는 집행력으로 삼위일체를 이뤄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점은 후술할 술과 세 개념에서도 거듭 확인될 것이다.
2-3. 현대 조직관리에서의 적용과 사례
현대의 경영 환경에서도 “명확한 법(rule)”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업 경영에서의 '법(法)'은 곧 명문화된 규정과 프로세스, 객관적 성과 기준을 뜻한다. 한비자의 통치론에 비추어볼 때, 현대 리더는 조직 운영 원칙과 규정을 투명하게 공표하고 일관되게 적용함으로써 신뢰와 질서를 세울 수 있다.
예를 들어, 글로벌 기업 맥도날드는 전 세계 지점에서 동일한 매뉴얼과 표준화된 절차에 따라 운영된다. 이는 경영자가 바뀌거나 직원 개개인의 역량 차이가 있더라도 일정 수준의 서비스 품질과 효율을 유지하게 하는 힘이 된다. 이처럼 시스템으로 조직을 관리하면, 특정 개인의 카리스마나 능력에 덜 의존하게 되어 지속가능한 경영이 가능해진다. 한비자가 말한 “보통 사람도 법에 의지하면 잘 다스릴 수 있다”는 통찰과 통하는 부분이다.
또한 기업 내 인사 평가와 보상 체계 역시 한비자의 법 개념과 유사하다. 한비자는 신하들이 상(賞)을 좋아하고 벌(罰)을 두려워하는 속성을 이용해 법으로 상벌을 명확히 주라고 했다. 현대 기업에서도 KPI나 성과 지표에 따라 인센티브 보상 혹은 징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GE의 잭 웰치는 성과 평가에 따라 인재를 철저히 보상하고 하위 10%는 과감히 정리하는 이른바 “래크 앤드 스택” 정책을 실행했는데, 이는 법가의 상벌론을 연상시키는 경영 기법이다. 이러한 원칙이 공개적으로 운영되면 직원들은 조직의 규칙을 신뢰하게 되고, 성과 문화가 정착되어 회사 전체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
공정한 규칙의 적용은 현대 리더십의 윤리적 기반이기도 하다. 사적 친분이나 개인적 호불호가 아닌 규정에 따른 의사결정은 조직 구성원들에게 공평한 기회와 예측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는 조직 몰입도와 사기를 높이고, 리더에 대한 신뢰를 구축한다. 한비자의 법 사상은 비록 엄격한 통제를 위한 것이었으나, 오늘날에는 투명하고 공정한 조직문화의 중요성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에서 사規에 따라 승진 및 징계가 공정하게 이뤄진다면, 직원들은 능력과 노력에 따라 평가받는다는 안정감을 얻고 역량을 발휘하기 쉽다. 반면 규정이 있으되 적용이 임의적이거나 리더의 감정에 좌우된다면 조직은 혼란과 불만에 빠질 것이다. 이는 한비자가 우려한 “법을 등지고 사사로운 정에 끌리는 통치”의 문제점과 다르지 않다.
종합하면, 현대 경영자들은 한비자의 ‘법’ 개념을 통해 “규범과 시스템에 의한 리더십”의 가치를 배울 수 있다. 뛰어난 리더 개인의 자질도 중요하지만, 명문화된 원칙과 프로세스가 조직의 뼈대가 될 때 비로소 지속적이고 예측 가능한 경영이 가능해진다. 이것이 바로 한비자가 강조한 법의 위력이며, 오늘날에도 유효한 통찰이라고 할 수 있다.
3. 술(術, Technique) – 보이지 않는 리더십의 기술
3-1. 개념 및 전통사상에서의 위치
“술(術)”은 한비자 사상에서 군주가 신하를 다루는 기술과 방략을 뜻합니다. 한마디로 '권모술수(權謀術數)'다.
술은 '권략(權)'과 '계책(術)'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군주가 아랫사람을 지배하기 위해 쓰는 모든 교묘한 수단을 포괄한다. 한비자의 술은 “군주의 지혜로운 통치술”로서, 어진 신하는 적재적소에 등용하고 간신은 견제・제어하기 위한 비밀스런 책략을 의미한다. 그는 술을 통해 군주의 뜻을 간파하려는 신하들의 간계를 역으로 제어하고, 인간 본성의 약점을 활용할 것을 강조했다. 한비자는 “술은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術不欲見)”라고 말하며, 법과 달리 술은 은밀해야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철학적 맥락에서 볼 때, 술 개념은 유가나 도가에는 명시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그들의 가치관과 충돌한다. 유가는 신하를 다스릴 때 '인의(仁義)'와 '신의(信義)'를 중시하여, 권모술수 사용을 극도로 경계했다. 맹자는 “임금을 속이는 것은 참람된 일”이라고 했고, 제왕이 신하와 믿음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군주의 기만이나 정보 조작은 유교적 도덕에서는 용납되지 않았다. 도가 역시 꾸밈과 간계를 인위적인 짓으로 여겨 달가워하지 않았다. 노자는 “꾸미지 않고 소박할 것”을 강조하여, 자연스럽고 투명한 통치를 이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법가, 특히 한비자는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며 권력 앞에서 간사해질 수 있음을 전제했기에, 군주 스스로 현명한 책략을 구사하지 않으면 간신배에게 농락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영명한 군주는 반드시 권모술수를 통해 신하를 제어할 줄 알아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이는 군주가 겉으로 태연히 있으면서도 속으로는 모든 것을 감시하고 계산해야 함을 뜻한다. 이러한 술의 개념은 고대 중국 사상 중 유가의 명분론, 도가의 무위론과 대비되는 실용 권력론이라 할 수 있다.
한비자의 술 사상에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신불해(申不害)'를 들 수 있다. 신불해는 전국시대 중기 한나라의 재상으로서 인재 등용과 권술을 강조한 인물인데, 한비자는 그의 사상을 계승·발전시켰다. 『한비자』에는 신불해의 견해를 빌려 “법은 백성에게 공포하는 공개된 규범인 반면, 술은 군주가 가슴에 품어두었다가 필요할 때 신하에게 비밀리에 사용하는 것이다”라는 설명이 나온다. 이처럼 법은 공개적이고 술은 비밀스럽다는 대비가 술 개념의 본질이다. 또한 이 인용에서 알 수 있듯이, 술은 백성 일반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주로 군주가 신하 개개인을 다루는 수완이다. 유가의 이상적인 군신 관계는 상호 신뢰와 도덕적 의무로 맺어지지만, 한비자의 군신 관계는 지속적인 심리전과 견제로 점철된 것이다.
3-2. 한비자의 통치 전략에서의 의미
한비자에게 술은 법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통치 기술이다. “법과 술의 가장 큰 차이점은, 법은 드러내고 술은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보이듯, 술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게 운용되어야 효과적이다. 군주는 겉으로는 법과 원칙만을 내세워 조용히 있지만, 내면으로는 술책을 굴려 신하들을 통제해야 한다.
한비자는 이목을 끌지 않으면서 권력을 유지하는 술의 중요성을 여러 일화로 설명하는데, 그 중 하나가 새를 길들이는 비유다. 그는 *“새를 길들이는 사람은 새 날개와 꼬리깃을 자르고 먹이에 의존하게 만들어 복종시킨다. 마찬가지로, 명군은 신하의 경제적 독립성을 박탈하여 봉록(俸祿)에 의존하게 만들면 신하는 길들여진다”*고 말했다. 이는 신하가 군주의 녹을 먹고 사는 처지에 놓이게 만드는 것, 즉 인사・재정상의 통제를 통해 신하를 길들이는 술책이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다소 냉혹하지만, 조직 내 권력 분산을 막고 충성을 확보하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한비자가 제시한 구체적인 술책은 다양하다. 그 중 핵심 원리는 “신상필벌의 권한을 절대 군주가 쥐고 놓치지 말라”는 것입이다. 『한비자』 「이병(二柄)」 편에서 그는 “지혜로운 임금은 상과 벌이라는 두 개의 칼자루를 자신의 손에 쥔다. 상벌 부여를 신하에게 맡기면 백성의 마음이 그 신하에게 쏠리게 된다”고 했다. 이 가르침은 인사권과 상벌권을 군주가 직접 행사하여, 어떤 신하도 독자적 인기나 세력을 쌓지 못하게 하라는 의미다. 만약 재상이나 특정 권臣이 부하들에게 상벌을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을 주면, 백성이나 아랫관리들은 군주보다 그 권臣을 더 두려워하거나 충성하게 되어 군주의 권위가 실추된다. 따라서 한비자는 반드시 술로써 인사 행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을 것을 주문했다. 이는 현대적으로 말하면 “핵심 권한을 위임하되, 최종 결정권과 정보는 리더가 쥐고 있을 것”과 유사한 통찰이다.
또 한비자는 “군주의 욕망과 감정을 드러내지 말라”고 충고했다. 군주가 어떤 사안을 좋아하거나 싫어한다는 감정을 노출하면 신하들이 이를 이용해 영합하거나 혹은 역으로 군주의 눈을 피해 농간을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주는 허정(虛靜)과 무위(無爲)를 지켜라”고 했지요. 허정은 마음을 비우고 고요히 하는 것이고, 무위는 함부로 나서지 않는 것이다. 한비자는 군주의 마음가짐에 대해 “원칙을 바로 세우고 조용히 기다리면 신하들이 스스로 일하게 된다”고 설파했다. 이것은 얼핏 도가의 무위론과 닮아 보이지만, 그 의도는 군주가 섣불리 자기 의견이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신하들이 군주의 속내를 예측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한비자는 “밝은 군주는 성안을 깊이 감추고, 여러 신하로 하여금 자신의 속뜻을 헤아릴 수 없게 만든다”*고 했다. 요컨대 리더의 의중이 노출되지 않아야 아랫사람들이 긴장하고 최선을 다한다는 논리다. 이처럼 정보의 비대칭과 심리전을 이용하여 조직을 움직이는 기술이 바로 술이다.
술은 법과 상호 보완적입니다. 한비자는 “법이 없는 술, 술이 없는 법은 효과를 내기 어렵다”고 했다. 법이라는 공식 틀이 있다면, 술은 그 틀 안에서 개별 상황에 맞게 사람을 다루는 임기응변이다. 예를 들어 모든 신하에게 동일한 법을 적용하되, 그 법의 해석과 집행에서는 군주가 술책을 발휘해 각 신하의 충성도를 시험하고 권력을 견제한다. 법이 공식적 권위라면, 술은 비공식적 통제로 볼 수 있다. 특히 간언하는 신하와 아첨하는 신하를 분간하는 술책, 임무를 교차 배정하여 서로를 감시하게 하는 술책,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흘려 충신과 간신을 가려내는 술책 등 한비자가 제시한 여러 방법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결국 이러한 모든 술의 목적은 군주 한 사람에게 권력을 집중시키고, 신하가 군주의 손바닥 안에서만 놀도록 만드는 것이다. 한비자는 이를 통해 군주가 어느 누구에게도 권력을 빼앗기지 않고(權不二掌) 국가를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다고 믿었다.
3-3. 현대 조직관리에서의 적용과 사례
오늘날의 경영 환경에서 “술”에 해당하는 개념은 리더십 스킬, 관리 기술, 조직 정치 활용 능력 등으로 볼 수 있다. 현대 경영에서도 '공개된 규범(법)'만으로 조직을 이끌기에 한계가 있으며, 리더는 법 이면의 미묘한 사람 관리술을 발휘해야 할 때가 많다. 기업 내에서는 이를테면 정보 관리, 인사 이동, 팀 재편성, 보상 제도의 세부 조정 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요소들은 규정집에 명시되지는 않지만, 유능한 경영자들은 상황에 따라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예를 들어 인재 관리를 위한 술책을 생각해 보자. 어떤 조직에서 한 부서장이 지나치게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면, CEO는 조직 개편이나 인재 교체를 통해 그 세력을 분산시킬 수 있다. 이는 한비자가 말한 권신 견제술과 일맥상통한다. 실제 사례로, 글로벌 IT 기업의 한 CEO는 특정 임원이 자기 사람들로만 팀을 꾸려 폐쇄적 문화가 형성되자, 그 임원을 타부서로 전보 조치하고 팀을 해체하여 조직을 재활성화시켰다. 공식 규정에 없는 조치였지만 이러한 은밀한 인사술로 조직 내 권력 불균형을 바로잡은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엘론 머스크처럼 강한 리더십을 지닌 경영자는 중요한 사업 결정 때 일부러 내부 정보 공개를 늦추거나, 여러 팀을 경쟁시켜 가장 나은 해법을 찾아내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이는 일종의 경쟁 유도 술책으로서, 직원들이 긴장감을 갖고 혁신을 추구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한비자의 관점에서 보면 “신하들이 군주의 뜻을 함부로 예측하지 못하게” 하는 기법에 해당한다.
정보 통제와 메시지 관리도 현대 경영의 중요한 술책이다. 예컨대 대형 기업들은 신규 사업 전략을 극비리에 추진하여 경쟁사나 사내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과도한 반발이나 방해를 할 틈을 주지 않는 전략을 취한다. 애플(Apple)사의 비밀주의 문화는 유명한데, 새 제품 개발 정보를 극소수만 알게 하고 직원들도 자기 파트 외엔 모르도록 compartmentalization(구획화)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비밀주의는 제품 유출 방지 목적도 있지만, 동시에 조직 내부 결속과 통제 유지에 효과적이다. 한비자의 술 개념에서 강조하듯, 중요한 의사 결정과 정보는 최고경영자만이 전체를 파악하고 부분별로만 부하에게 나누어 주면, 아무도 전모를 몰라 상하관계가 유지된다. 현대 기업의 정보 보안이나 '필요한 만큼만 알리는 원칙(need-to-know principle)'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동기부여 전략도 술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한비자는 인간의 이기심을 전제로 상과 벌을 운용하라고 했는데, 현대 관리에서는 성과급, 승진, 포상 제도를 정교하게 디자인하여 직원들의 행동을 유도한다. 가령 세일즈 조직에서 인센티브 제도를 살짝 바꾸는 것만으로도 직원들의 판매 행태가 크게 변할 수 있다. 이것을 미시적 관점에서 보면 리더가 구성원의 심리를 읽고 적절히 조종하는 술책인 셈이다. 한비자의 술이 노골적 처벌과 밀고 제도를 떠올리게 해서 다소 음험하게 들릴 수 있지만, 오늘날에는 행동경제학이나 동기부여 이론을 활용한 섬세한 관리 기법으로 세련되게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한비자가 강조한 “두 개의 칼자루(상벌)” 원칙도 현대 조직에선 이렇게 응용된다. 예컨대, 어떤 회사가 승진 등 보상 결정 권한을 리더가 직접 쥐고, 동시에 징계나 해고 결정 또한 일원화해 놓으면, 구성원들은 자연히 최고경영자의 눈치를 보게 되고 조직의 중심권력에 복종하게 된다. 반대로, 만약 보상의 결정이 중간관리자에게 과도하게 위임되고 최고경영자는 형식적인 존재가 된다면, 사람들은 실제 보상을 쥔 중간관리자에게 줄을 서고 최고경영자의 권위는 실추된다. 이는 앞서 본 한비자의 “두 개의 칼자루를 놓치지 말라”는 가르침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러므로 현명한 경영자는 권한 위임의 수준과 범위를 조절하여, 핵심적인 인사/재무상의 통제권은 여전히 자신이 소유하는 균형 잡힌 권력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조직 전체에 일관된 방향성과 긴장감 있는 규율이 자리 잡는다.
요컨대 현대 경영에 있어서 한비자의 “술” 개념은 리더십의 심리적・전략적 기술로 해석될 수 있다. 탁월한 리더는 공식 규정만이 아니라 비공식적 영향력까지 행사하면서 조직을 움직인다. 물론 오늘날에는 윤리경영과 투명성이 강조되어, 법가식의 노골적 술책은 제한적일 것이다. 그러나 '조직정치(politics)'와 인간의 심리를 간파하여 보이지 않는 손처럼 조직을 조율하는 능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한비자의 술은 리더에게 “표면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제하라”는 메시지를 준다. 이는 지나치면 전제적 관리가 되겠지만, 적절히 활용하면 조직 내 갈등을 예방하고 핵심 목표 달성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유용한 리더십 기법이 될 수 있다.
4. 세(勢, Power) – 지위가 주는 권위와 영향력
4-1. 개념 및 전통사상에서의 위치
“세(勢)”는 한비자 사상에서 군주가 가지고 있는 권세, 권위, 즉 지위 자체가 발휘하는 힘을 뜻한다. 흔히 형세(形勢) 또는 위세(威勢)라는 말로도 표현되며, 군주의 지위에서 우러나오는 구조적 우위와 그로 인한 압도적 영향력을 가리킨다. 한비자는 세를 “군주가 가져야 할 권세 내지 권력”이라고 정의했고, “군주의 강력하고 범접할 수 없는 힘”이 통치 리더십의 요체라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세는 군주가 법과 술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토대이자 에너지로, 한비자는 세를 “인주지근력(人主之筋力)”, 곧 “군주의 근력(근육)”에 비유했다. 세가 단단해야만 법과 술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세 개념은 유가나 도가의 관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유가 전통에서 권위의 원천은 *덕적 정통성(德)이었다. 공자는 군주에게 “덕으로써 백성을 이끌라. 그러면 백성이 부끄러워하고 개선될 것이다”라고 하여, 도의적 권위를 중시했다. 맹자도 “민본(民本)” 사상을 말하며 *“군주는 배, 백성은 물과 같아서 물이 뜨게도 뒤엎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군주의 권세보다는 백성의 지지와 도덕성을 더 중하게 본 것이다. 도가 또한 자연히 형성되는 권위를 말할지언정, 인위적으로 권세를 부풀리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노자의 사상에서는 “상善약수(上善若水)”, “부쟁(不爭)”처럼 부드럽게 아래에 처함으로써 오히려 큰 힘을 발휘한다는 역설이 있다. 그러므로 도가는 강압적 권위인 “세”를 앞세우는 통치를 피하고, 겸허한 자세를 권장했다.
반면 법가, 특히 한비자는 군주의 권세를 최대화하는 것이 안정된 통치의 핵심이라 여겼다. 법가 사상가 신도(慎到)는 “권세는 군주의 것이다. 권세를 극대화하고 모든 사람을 통제하라”고 주장했는데, 한비자는 여기에 더해 권세는 자연발생적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신도의 세론을 받아들이면서도, 신도가 “자연적인 세”만 말하고 “인위적인 세”를 간과했다고 비판했다. 한비자가 말한 인위적 세란, 법과 술을 결합하여 의도적으로 권위를 만드는 것이다. 군주의 권위는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법(법령의 권위)과 술(은밀한 통제술)'이 합쳐져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세는 단순히 왕좌에 앉았다고 자동으로 주어지는 힘이 아니라, 제도와 책략으로 뒷받침된 권력의 아우라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한비자의 세 개념은 유가의 덕치가 뒷받침되지 않은 권위, 도가의 무위와 달리 공고히 다져진 강제력에 가까우며, 군주의 지위 자체가 하나의 “힘”이 되어 신하와 백성을 누르는 상태를 지향한다.
4-2. 한비자의 통치 전략에서의 의미
한비자는 통치에서 세(勢)를 확보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시했다. 그는 군주들에게 “반드시 세를 확실히 장악해야 하고, 절대로 느슨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군주가 자신의 살육과 처벌, 그리고 포상 권한을 확고히 움켜쥐고 있어야 세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군주가 세를 놓치게 되면, 실권을 쥔 신하들이 군주를 휘두르고 나라에 재난과 혼란이 온다고 보았다. 이는 세가 단지 하나의 부가적 요소가 아니며, 군주의 생명선 그 자체임을 의미한다. 한비자는 세를 잃은 군주의 비참한 종말에 대한 역사 사례들도 들추었다. 예컨대 주나라 유왕이나 진나라의 후연 등 권신에게 실권을 넘겼다가 폐위된 군주들을 거론하며, 세를 나눠가진 군주는 더 이상 군주가 아니라고 질타했다. “권력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것”이라는 그의 단언은 세에 대한 집착을 잘 보여준다.
세의 존재감은 호랑이와 개의 비유로도 설명됩니다. 『한비자』에는 “호랑이가 스스로 발톱과 이빨을 버리고 개에게 주면, 호랑이는 도리어 개에게 제압당한다”는 비유가 나온다. 여기서 호랑이의 발톱과 이빨은 군주의 벌주고 상줄 수 있는 권력(두 개의 손잡이)을 뜻하고, 개는 신하를 가리킨다. 군주가 세를 상징하는 이 권한들을 남에게 내주면 자신은 범용한 인간과 다를 바 없어지며, 결국 신하의 수중에서 생존이 좌우된다는 경고다. 반대로 군주가 발톱과 이빨을 가지고 있는 한, 범접할 수 없는 권위로 모든 짐승(신하)을 제압할 수 있다. 이처럼 세는 군주의 포식자적 위압감이며, 신하들이 감히 도전할 엄두를 못 내게 만드는 공포의 기반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비자는 “세로 겁을 준다(以勢威服之)”고 하여, 세의 중요한 기능이 위엄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임을 강조했다.
세는 또한 법과 술을 시행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설명된다. 한비자는 “세는 법과 술을 실행하는 토대”라 했다. 군주가 높은 지위에서 절대적 권위를 갖고 있어야, 법령을 펴도 사람들이 따르고 술책을 써도 효과를 발휘한다는 뜻이다. 결국 세가 강할수록 법의 집행력과 술의 통제력이 배가된다. 예를 들어 군주가 권위가 서 있다면, 같은 법령이라도 신하들은 더 두려워하며 지킬 것이고, 군주의 눈치를 더 보기 때문에 술책도 잘 들어맞는다. 반면 군주의 존재감이 희미하면, 법을 만들어도 현장에서 무시되기 쉽고 술책을 부려도 신하들이 겁을 내지 않으니 통하지 않는다. 한비자는 상앙과 신불해, 신도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 법(상앙)과 술(신불해)을 결합하고 그것들을 떠받칠 세(신도)를 완비함으로써 비로소 완전한 통치술이 된다고 역설했다. 그러므로 세 없이는 법과 술이 “이빨 빠진 범”에 불과하고, 법과 술 없는 세는 “눈먼 권력”에 불과하다. 법·술·세는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의미가 있으며, 그중에서도 세는 군주의 지위와 권한을 통해 법과 술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한비자가 말하는 세를 얻는 방법은 한편으로는 법과 술의 결합을 통한 점진적 구축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결정적 순간에 물리력과 공포를 사용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는 “세 가지 수단(법·술·세)으로도 말을 듣지 않으면 제거하라, 즉 죽여버리는 것이다”라고까지 하여, 최후엔 물리적 강제력으로 군주의 절대성을 지키라고까지 했다. 극단적인 조언이지만, 이는 세의 핵심이 군주의 폭력 독점에 있음을 시사한다. 현대적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나, 적어도 당시 군주제 하에서는 군주만이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권력이 유지된다는 현실론이다. 결국 세는 군주에게 허락된 폭력과 강제의 정당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정리하면, 세는 한비자 통치론의 권력의 지렛대다. 세가 높이 받쳐주고 있을 때 군주는 작은 힘으로도 큰 통치를 할 수 있지만, 지렛대(세)가 없으면 아무리 애써도 통치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법으로 세를 얻으면 다스릴 것이고(抱法處勢則治), 법을 등져 세를 잃으면 어지럽게 된다”고 거듭 강조했던 것이다. 세를 가진 군주에게는 굳이 일일이 간섭하지 않아도 백성이 순응하고 신하가 복종하게 되는 일종의 자동 통치 효과가 생긴다. 이것이 바로 한비자가 추구한 이상적인 군주의 위상이다.
4-3. 현대 조직관리에서의 적용과 사례
현대의 조직에서 “세”에 해당하는 것은 지위가 부여하는 권한(authority)과 영향력이다. 기업 환경에서는 최고경영자(CEO)나 고위 임원에게 직책 자체가 갖는 권위와 의사결정 권한이 곧 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한비자의 세 개념은 현대 리더들에게 “리더의 자리에 걸맞은 권한 행사와 영향력 확보”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우선, 조직의 의사결정 구조를 살펴보면 세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만약 한 조직의 최고책임자가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고 이사회나 하위 관리자들에게 끌려다닌다면, 이는 세를 잃은 군주와 비슷한 상황이다. 그러한 리더 아래에서는 방향성이 통일되지 않고 각자 자기 입장만 내세워 혼란이 발생하기 쉽다. 예컨대, 과거 어떤 기업에서는 공동 CEO 두 명이 상호 견제하느라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조직이 분열된 사례가 있다. 이는 권한이 분산되고 권위가 불명확하면 조직이 나아갈 방향을 잃는다는 교훈을 준다. 한비자의 논리대로라면, “군주(리더)는 권세를 나눠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경영에서도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최종 권한을 한 리더에게 집중시키고, 그 리더가 권위 있게 결정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그래야 조직 구성원들이 혼선을 느끼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따르게 된다.
위기 상황에서의 리더십도 세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기업이 큰 어려움에 처하면, 평소와 다른 결단력과 강한 추진력이 요구된다. 이때 구성원들은 강력한 리더십을 원하며, 리더가 평소보다 더 권위 있게 굴기를 기대한다. 예를 들어, IBM의 루 거스너(Lou Gerstner) 회장은 1990년대 초 IBM이 심각한 적자 위기에 빠졌을 때 등장하여 전권을 쥐고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전략 변화를 단행했다. 그는 조직의 반발을 무릅쓰고 사업부문을 통폐합하며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고, 결국 IBM을 회생시켰다. 이는 한 개인의 카리스마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서 나오는 권한을 최대치로 활용한 사례다. 거스너 회장이 부임하자마자 자신에게 일체의 권한을 집중시키는 구조를 만들고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러한 모습은 한비자가 말한 세를 이용한 통치와 닮아 있다. 즉, 위기일수록 리더는 자신의 합법적 권한을 최대한 행사하여 조직을 추슬러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스타트업 기업에서는 창업자가 지배적인 지분과 결정권을 가질 때 신속한 혁신이 가능하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창업자이자 의장으로서 의사결정의 최종권한을 쥐고 있었기에, 대담한 인수합병이나 서비스 정책 변경을 신속히 추진할 수 있었다. 반면 외부 주주가 분산되어 있고 전문경영인이 임시로 경영하는 구조에서는 과감한 결정에 제약이 많을 수 있다. 이는 '세(勢)'의 강약 차이에 따른 조직 역동성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한비자의 견지에서 보면, 저커버그 같은 창업자는 세를 틀어쥔 현대의 군주형 리더인 반면, 권한이 제한된 CEO는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세가 약한 임시 관리자 정도로 비칠 것이다. 실제로 투자자들이 CEO를 해임하거나 간섭할 수 있는 기업에서는, CEO의 영향력이 약해 조직이 장기적 안목보다는 단기 실적에 휘둘리는 경향도 지적된다. 따라서 기업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리더에게 어느 정도 일관된 권한과 임기를 보장해 주어야 일관성 있는 전략 추진이 가능해진다. 이는 세를 보장함으로써 오는 안정성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법가의 세 사상을 그대로 적용하면 권위주의적 리더십이나 독단적 경영으로 흐를 위험도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견제 장치 속에서의 권위 확립이다. 한비자의 시대와 달리 지금은 민주적 조직 문화와 이사회, 규제 등이 존재하므로, 리더가 세를 추구하더라도 절대 권력으로 군림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비자의 세 개념은 리더가 자기 위치에 걸맞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불필요한 권한 양도를 지양하라는 점에서 유효하다. 예컨대, 어떤 CEO가 조직 내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 끝까지 자신의 권한으로 책임지고 결정하면 구성원들이 명확한 신호를 받지만, 우유부단하게 실무진에게 미루면 불확실성이 커진다. 결정의 빠르고 과감함은 리더의 권위에서 나오며, 이는 기업의 혁신 속도와도 연결된다.
또한 세는 조직 문화적 측면의 리더십 위상으로도 볼 수 있다. 한비자는 군주의 위엄을 높이기 위해 “용모를 엄숙히 하고 말수를 줄여라” 같은 조언도 했다. 오늘날에도 CEO의 언행과 태도는 조직 내에서 큰 영향을 미친다. 일관되고 흔들림 없는 메시지, 결연한 태도는 직원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심어주어, 리더의 지시에 따르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반대로 리더가 우유부단하거나 카리스마가 없으면, 공식적 권한(직함)은 있어도 실제 영향력은 미미해진다. 한비자가 말한 *“군주의 위엄”*은 현대적으로 리더십의 카리스마와 신뢰 구축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쇼맨십이 아니라, 리더의 전문성, 비전 제시, 위기 대처 능력 등에서 비롯되어 조직이 심리적으로 의지하게 되는 힘이다. 이러한 힘이 발휘될 때 구성원들은 리더의 존재만으로도 방향을 따르게 되고, 조직이 하나로 결속되는 효과가 난다. 결국 한비자의 세는 오늘날 “리더십의 권위 자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지위의 공식 권한 + 리더 개인의 자질에서 나오는 합산 효과다.
요약하면, 현대 경영에서 세에 해당하는 리더십 요소는 명확한 권한 구조 속에서 발휘되는 지도자의 권위와 영향력이다. 한비자의 세 개념은 리더에게 “당신의 지위에 걸맞은 힘을 행사하라”고 조언한다.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면 리더 자신이 권한을 확고히 쥐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권력을 남용하라는 뜻이 아니라, 책임지고 이끌 힘을 확립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통찰은 특히 변화와 혼란의 시기에 조직을 지탱하는 리더십의 핵심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5. 법·술·세의 상호 관계와 종합적 통찰
한비자의 '법(法)·술(術)·세(勢)'는 각각 독립된 개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로 결합된 하나의 통치 시스템이다. 한비자는 세 가지를 묶어 “법술세(法術勢)”라 부르며, 어느 하나도 빠져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그 이유는 이 세 요소가 각기 보완적 기능을 하여, 함께 적용될 때 비로소 효과적인 통치와 경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호 관계는 고대 제왕학뿐 아니라 현대 조직관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 '법(法)'은 공적인 질서와 기준을 제공하지만, 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현실 적용에서 탄력성을 잃을 수 있다. 또한 법을 집행하려면 결국 세가 필요하다. 법은 뼈대이고, 술은 근육, 세는 힘에 비유할 수 있다. 뼈대만 있고 근육과 힘이 없으면 몸이 움직일 수 없듯, 법만 있고 술과 세가 없으면 통치가 경직되고 실효성을 잃는다. 반대로 법이 없이 술책만 난무하면 조직은 인의관계가 불신으로 가득 차 혼란이 가중될 것이다. 그러므로 법은 술과 세를 통해 현실에서 살아 움직이는 규범이 된다.
- '술(術)'은 사람을 다루는 기술로서, 법의 목적을 세밀하게 구현해 준다. 술은 법의 빈틈을 메워주는 지혜이자, 세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수단이다. 술이 없다면 법은 상황 변화에 둔감하고 인간적 요소를 헤아리지 못해 교조주의가 될 수 있다. 또한 술이 없다면 세를 가졌더라도 신하들이 언젠가 그 빈틈을 파고들어 군주를 속일 수도 있다. 결국 술은 법의 윤활유이며, 세의 안전장치이다. 물론 술 역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용되어야 남용을 막을 수 있고, 세의 뒷받침이 있어야 강제력을 얻는다. 술과 법, 술과 세는 서로 견제하고 강화하는 관계이다. 예컨대 법으로 기본 질서를 세우고, 술로 각 구성원의 역할과 공적을 파악하며, 세로 최종적으로 상벌과 통제를 실행하는 식의 삼위일체 운영이 필요하다.
- '세(勢)'는 전체 시스템을 작동하게 하는 추진력이다. 세가 없으면 법도 권위가 없고 술도 통하지 않는다. 세는 법과 술의 결과물이자 전제조건이라는 이중성이 있다. 한비자가 말했듯 “법과 세를 결합해야 다스려지고, 법을 버리고 세를 잃으면 혼란해진다”는 것은, 법→세의 방향 (법으로 세를 얻음)과 세→법의 방향 (세가 있어야 법이 선포되고 집행됨) 모두를 내포한다. 술도 마찬가지로 세를 얻기 위한 방편인 동시에, 세 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다. 한비자는 이처럼 삼요소의 동시 구현을 통해 보통 사람도 난세를 다스릴 수 있는 비법을 제시한 것이다. 정리하면, 법은 제도, 술은 기술, 세는 권력이며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통치(또는 조직경영)가 가능하다.
이 법·술·세의 관계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조직 운영의 세 축으로 볼 수 있다. 제도적 리더십(법), 전략적 리더십(술), 권한적 리더십(세)이 균형을 이룰 때 조직이 제대로 굴러간. 아래 표는 법·술·세의 핵심 의미와 현대적 적용을 요약한 것이다:
개념 (한자 / English) 한비자 사상에서의 의미 현대 리더십 및 조직관리 적용
| 법 (法, Law) | 공정하고 공개적인 법령과 상벌 제도. 모든 통치의 객관적 기준으로, 성문법에 따라 상을 주고 벌을 내림. 군주의 사사로운 감정 배제를 요구함. | 명문화된 규정과 프로세스.기업의 정책, 규칙, KPI 등에 해당. 공개적이고 일관된 원칙으로 조직을 운영하여 예측 가능성과 공정성을 확보. Ex) 인사 규정에 따른 승진/징계, 표준화된 업무 절차 도입. |
| 술 (術, Technique) | 군주가 신하를 은밀히 제어하는 권모술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통치 기교로서, 신하의 충성도 시험, 권한 분산 방지, 정보 조작 등을 포함. 법을 보완하고 세를 유지하는 전략적 기술. | 리더십 스킬과 조직 정치술.사람을 다루는 섬세한 기법들 – 동기부여, 갈등관리, 정보관리, 인사이동 등. 공식 규범 밖에서 리더가 발휘하는 전략적 조치들로, 조직의 실질적 분위기와 동력을 통제. Ex) 핵심 인재를 적재적소 배치, 성과 경쟁 유도, 내부 정보의 선택적 공개. |
| 세 (勢, Power) | 군주의 지위에서 나오는 권위와 위압. 군주의 근력으로 비유되며, 법과 술을 실행하는 토대. 권력을 나누지 않고 군주에게 집중시켜 형성되는 구조적 우위. 강력한 세는 백성을 굴복시키고 신하를 제압하여 질서를 잡음. | 지위에 따른 공식 권한과 영향력.리더의 결정권, 통솔 범위, 카리스마 등. 조직 구조상 권한을 명확히 하고 리더십의 일관성을 부여하여 빠른 의사결정과 추진력을 확보. Ex) CEO의 전권 위임, 위기 시 콘트롤타워 일원화, 리더의 신뢰와 카리스마 형성. |
위 표에서 볼 수 있듯이, 한비자의 법·술·세는 각각 현대 조직에서 규범 관리, 사람 관리, 권한 관리에 대응된다. 세 요소 모두 리더십의 중요한 면이며,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훌륭한 경영자는 명확한 원칙(법) 위에 '유연한 전략(술)'을 펼치고, 그것을 뒷받침할 '정당한 권위(세)'를 갖추려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스타트업을 경영한다고 가정해보면, 창업자는 회사 규칙과 비전을 분명히 세워 모두에게 공유하고(법), 핵심인재를 적절히 동기부여하며 팀을 재편하는 재치를 발휘하고(술), 동시에 창업자로서의 권한과 영향력으로 투자자와 직원을 이끌어야(세) 회사가 성장궤도에 오를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의할 점은, 한비자의 법·술·세는 기본적으로 상대적으로 냉혹한 인간관에 기반한 통치술이라 현대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경영에서는 윤리와 구성원의 자율성과 창의성 존중도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법·술·세를 현대적으로 응용하되, 윤리적 리더십과 신뢰 구축과 조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법은 공정한 규범으로서 조직에 예측성을 주되 지나치게 경직되지 않도록 하고, 술은 사람을 조종하는 수단이 아니라 동기를 부여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기술로 쓰며, 세는 독재적으로 군림하는 힘이 아니라 조직을 하나로 묶는 리더십의 중심추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6. 결론: 한비자 사상의 현대적 의의
한비자의 법·술·세 통치론은 두 천 년 전의 산물이나, 오늘날 조직을 이끌어야 하는 경영자들에게도 시대불문의 통찰을 제공한다. 법은 시스템과 규범의 힘을 일깨워주고, 술은 사람과 상황을 읽는 지략의 중요성을 가르쳐주며, 세는 리더십의 권위와 책임에 대한 경계를 짚어준다. 혼란한 환경일수록 시스템 구축, 정교한 전략,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하다는 한비자의 조언은 현대 경영 리더십에서도 유효하다.
물론 현대의 가치관으로 볼 때 한비자의 방법들은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이고 인간 불신에 기초한 면이 있다. 따라서 그 전체를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핵심 원리를 재해석하여 균형 잡힌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공정한 규범(법)'은 받아들이되 조직 구성원의 참여를 통해 발전시키고, '전략적 기술(술)'은 구성원의 성장을 돕고 조직 활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용하며, '권위와 영향력(세)'은 독선이 아니라 결단과 책임 경영의 차원에서 행사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한비자의 사상은 단순한 옛 이야기로 머무르지 않고, 현대 경영자들의 도구 상자에서 귀중한 한 가지 도구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비자가 강조한 바와 같이 “군주(리더)는 한 손에 법의 규칙을 쥐고 다른 손에 상벌의 칼자루를 잡으며, 두 발로 권위의 지위를 딛고 서야” 조직이 바로 선다는 교훈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는 리더가 원칙과 전략, 권한을 균형 있게 활용하라는 뜻으로 새기면 좋을 것이다. 변화무쌍한 경영 환경에서 한비자의 법·술·세는 경영자들에게 원칙을 세우되 지혜를 잃지 말고, 권한을 갖되 책임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고대의 지혜를 현대에 맞게 활용한다면, 기업 리더들은 보다 효과적으로 조직을 이끌고 구성원들과 성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명확한 구조와 제도(法) 위에 '사람을 읽는 지략(術)'과 '결단력 있는 권위(勢)'를 겸비한 리더십이 바로, 한비자가 천착했던 강대한 국가 운영뿐만 아니라 건실한 기업 경영의 요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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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92510/episodes/25164470?ucode=L-JCCOyQkB
[리더] 한비자의 '법(法)·술(術)·세(勢)'
한비자의 '법(法)·술(術)·세(勢)' 중국 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 한비자(韓非子)는 혼란한 시대를 극복하고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현실주의적 통치 전략으로 법(法), 술(術), 세(勢) 세 가지
www.podbb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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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inplu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971
법은 드러날수록 좋고, 술은 안 드러날수록 좋다 - 현장언론 민플러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채형복 교수는 검찰주의자 윤석열 대통령이 제왕을 꿈꾸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일까? 전국시대 법치주의를 주창한 한비자를 소환했다. 연재 ‘법치로 만난 윤석열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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