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學而/토피카

크로이소스 _ 헤로도토스의 <역사> 중에서

by 변리사 허성원 2024. 10. 9.

크로이소스 _ 헤로도토스의 <역사> 중에서

(* 헤로도토스의 <역사> 중에서 리디아의 마지막 왕이며 당시 세계 최고의 부자였던 크로이소스와 관련된 부분만을 발췌 혹은 요약하였다.)

 

** 크로이소스의 선조 기게스

리디아는 대대로 헤라클레스 가문이 통치하였다. 헤라클레스 후손이 22대 505년을 거쳐 칸다울레스의 대에 이르렀다.
칸다울레스는 자기 아내가 세상의 그 어떤 여자보다 뛰어난 미녀라고 믿었다. 그는 측근 신하인 기게스에게 아내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다가 문득 이런 제안을 한다.

"기게스여, 자네는 내가 왕비의 아름다운 용모에 대하여 우무리 이야기를 해주어도 믿지 않는 것 같아. 하기야 인간이란 눈만큼 귀를 믿지 않는다고들 하지. 그러니 기게스여, 왕비의 옷 벗은 모습을 한 번만 보아 주게."

기게스는 당치않는 말이라 거절했지만 왕은 끈질기게 요구했다. 기게스는 자신이 모시는 왕의 요청을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부득이 그 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는 왕과 약속한 대로 왕의 침실에 숨어서 왕비의 몸을 바라보고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왕비는 기게스가 숨어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말았다. 왕비는 남편이 꾸민 일임을 알고 아무말 하지 않고 모른 채 하였지만, 남편 칸타울레스에 대한 복수를 마음속으로 다짐하였다.

다음 날 왕비는 기게스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기게스여, 지금 그대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어느 것을 선택하는가는 그대의 선택에 맡기겠다. 하나는 칸타울레스를 죽이고 나와 리디아 왕국을 그대가 모두 갖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이 자리에서 죽는 것이다. 이같은 일을 꾸민 칸타울레스나 나의 벗은 몸을 본 그대는 모두 용서할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 둘 중 한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그리하여 기게스는 왕비와 함께 왕을 암살하고 왕비와 왕국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기게스가 찬탈한 리디아 왕권은 그의 아들 아르디스, 손자 사디아테스, 증손자 알리아테스 및 4대선 크로이소스에게까지 5대에 걸쳐 이어졌다.

(* 플라톤의 '국가'에 기게스의 일화가 나온다.)

 

** 크로이소스와 솔론

크로이소스는 여러 민족을 병탄하여 리디아를 크게 번창시켰다. 번영의 정점에 오른 리디아의 수도 사르데스에는 그리스의 현자들이 번갈아 방문하였는데, 그중에 아테네의 현인 솔론도 포함되어 있었다. 
솔론은 아테네 시민의 요청에 따라 아테네 법률을 제정한 뒤, 여러 나라를 구경한다는 명목하에 10년 동안의 예정으로 외국 여행 길에 올랐다. 그가 긴 여행을 떠난 진짜 이유는 자기가 제장한 법률을 자신의 손으로 하나라도 폐기해야만 할 처지에 빠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아테네 시민들은 솔론이 제정한 법률은 10년 동안 지킨다는 굳은 서약을 했던 터라 그가 없으면 법률을 폐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솔론은 이집트를 거쳐 사르디스의 크로이소스를 방문하였다.

크로이소스는 솔론을 왕궁을 불러 크게 환대하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그의 보물창고로 안내하여 호화로운 재물들을 구경하였다. 솔론이 그의 재화를 구경하였을 모두 즈음 크로이소스는 솔론에게 물었다.

"아테네의 손님이여, 그대에 관한 소문은 이 나라에도 우뢰처럼 들리고 있소. 그대가 현자라는 것은 물론, 지식을 구하기 위해 널리 세상을 유람하고 있다는 것도 들었소. 그래서 그대에게 꼭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대는 누군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만난 일이 있소?" 

"왕이시여, 아테네의 텔로스가 그러한 인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의외의 대답에 놀란 크로이소스는 그 이유를 물었다. 솔론이 답했다.

"텔로스는 우선, 번영한 나라에서 태어나 훌륭하고 좋은 아이들을 두었습니다. 또 그 아이들에게는 모두 아이들이 생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 임종도 훌륭했습니다. 아테네가 이웃나라와 싸웠을 때 텔로스는 아군을 구원하러 가서 적을 패주시킨 뒤 훌륭하게 전사하였습니다. 아테네는 나라의 돈으로 그의 시신을 그가 전몰한 곳에 매장하여 그의 명예를 크게 기렸습니다."

크로이소스는 텔로스에 이어 두 번째로 행복한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다. 적어도 자기가 두 번째로 행복한 사람이라 여겨지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솔론의 대답은 달랐다.

"두 번째로 행복한 사람은 아마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일 것입니다. 이들은 아르고스 태생으로 생활도 자유롭고 체력도 뛰어났습니다. 두 사람 모두 체육 경기에서 우승하였고, 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아르고스에서 헤라 여신의 제례가 있었을 때, 그들의 어머니를 어떻게 해서든 우마차로 신전까지 모시고 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소가 밭일에 나가 있어서 시간을 맞출 수 없었습니다. 시간에 쫒겨, 두 청년은 자신들이 스스로 소 대신 멍에를 쓰고 수레에 어머니를 태워 45스타디온(약 9.7km)을 달려서 신전에 도착했습니다. 그 일을 완수한 형제는 제례에 모인 군중이 지켜보는 앞에서 잠시 뒤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야말로 훌륭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지요. 신은 이 사례로 인간에게 있어 삶보다 오히려 죽음이 고귀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솔론이 이와 같이 행복의 두 번째 자리를 이 두 형제에 주자, 크로이소스는 화를 내며 말하였다.

"아테네의 손님이여, 그대는 나를 그와 같은 서민들만도 못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소이다. 나의 이 행복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기는 거요?"

솔론이 답했다.

"크로이소스 왕이시여, 왕께서는 저에게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물어보고 계십니다. 저는 신이란 질투심이 많고 인간을 난처하게 만들기를 좋아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동안에 어러 가지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보아야 하고 겪고 싶지 않는 일도 겪어야 합니다. 인간의 일생을 가령 70년이라 하면 2만6천 일이 넘습니다. 그 중 하루라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크로이소스 왕이시여, 인간의 생애는 모두가 우연입니다.

왕께서 막대한 부를 가지시고, 많은 백성을 통치하고 계시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왕께서 좋은 생애를 마치셨다는 것을 아실 때까지는 저로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
돈이 엄청나게 많아도 불행한 사람이 많은가 하면, 재산은 없어도 좋은 운을 만난 사람 또한 많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행운이 있는 사람에 비해 단 두 가지 점에서만 이로울 뿐입니다.
돈이 많으면 욕망을 충족하는 데 있어서와 큰 재난이 들이닥쳤을 때 견디어내는 데 유리할 뿐입니다.
하지만 운이 좋은 사람은 욕망 충족이나 재난 회피는 힘들겠지만, 그의 좋은 운으로 그러한 일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몸에 결함이 없고, 병을 모르고, 불행한 일을 당하지 않고, 자식 복이 있고, 모습도 아름다울 것입니다. 거기다가 훌륭한 죽음을 맞이할 수가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왕께서 바라는 인물, 즉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군가가 죽을 때까지 행운이 있는 사람이라고 부를지언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인간의 몸으로 모든 것을 충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나라의 경우도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진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어느 하나가 충족되면 다른 하나가 부족하기 마련이기에, 많은 갖춘 나라가 더 좋은 나라인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개인으로서 완전히 자족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가능한 한 부족한 것이 적은 상태로 지낼 수 있고, 거기다가 보람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 그러한 사람이야 말로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불러 마땅한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떠한 일에 대해서는 그것이 어떻게 되어 가는가, 그 결말을 끝까지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에 의해 울타리 너머로 행복을 잠깐 보았으나, 결국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솔론이 크로이소스의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현재 가진 복을 버리고 모든 일의 결말을 보라고 하는 사람은 바보라고 생각한 크로이소스는, 일고의 여지도 없이 솔론을 떠나보내고 말았다.

Croesus showing his treasures to Solon.  Frans Francken the Younger , 17th century

 

** 크로이소스와 아드라스토스

크로이소스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하나는 장애를 가진 농아였지만, 다른 아들은 매사에 뛰어난 청년으로 이름은 아티스라 하였다. 그런데 꿈 속에서 아티스가 쇠창에 찔려 죽는 꿈을 꾸었다. 그래서 그의 곁에 누군가가 있는 것이 좋겠다고 여겨 결혼을 시키고, 창 등의 무기는 일절 가까이 두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을 하게 하였다.

그런데 혼례 준비를 하는 중에, 아드라스토스라는 청년이 찾아왔다. 그는 미다스의 손자이자 고르디아스의 아들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실수로 형제를 죽여서 아버지의 나라에서 추방당했다고 한다. 크로이소스는 그의 부정을 씻는 정화의식을 치러주고, 그가 그 곁에 불편 없이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그 무렵 미시아 지역에 큰 멧돼지가 나타나 농작물을 망쳐놓았다. 이에 미시아인들은 왕에게 군대를 보내어 멧돼지를 퇴치래 달라고 요청하였다. 병사들을 보내려 할 때 아들 아티스가 자신도 함께 가겠다고 간곡히 요청하였다. 이에 크로이소스는 아드라스토스에게 아들을 호위하게 하여 사냥 원정을 떠나도록 허락하였다.

그들이 사냥터에서 멧돼지를 발견하였을 때 아드라스토스가 멧돼지를 향해 창을 던졌는데, 그 창이 빗나가 크로이소스의 아들 아티스를 찌르고 말았다. 아티스가 창에 찔려 죽는다는 꿈이 실현된 것이다.

아드라스토스는 죽은 아티스의 영을 위로하기 위해 그의 유해 앞에서 자신을 죽여 달라고 간청하였다. 크로이소스는 그를 가엾게 여겨 이렇게 말했다.

"손님이여, 그대가 스스로 죽음을 선고했으니 나로서는 이미 그대를 충분히 벌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대가 본의 아니게 이 일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의 재난은 그대의 책임이 아니다. 그것은 이전부터 나에게 일어날 것을 경고하신 어느 신께서 하신 일이지."

 자기의 형제에게 손을 대고 그의 죄를 씻어준 사람마저 파멸에 이르게 한 아드라스토스는 자기가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 느끼고 무덤 근처에 인기척이 없어진 틈을 타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크로이소스는 아들을 잃고 2년 동안 깊은 슬픔에 젖어 있었다.

 

** 크로이소스의 신탁

메디아가 캄비세스의 아들 키루스에 의해 무너지고 페르시아가 나날이 강성해졌다. 크로이소스는 한가하게 슬픔에 빠져 있을 수 없어 페르시아가 더 강성해지기 전에 페르시아를 억제하기 위한 출병을 결정하여야 했다.

이에 여러 신탁소에 사자를 보내어 신탁을 받게 했다. 신탁은 모두 같은 답을 내놓았다.
"크로이소스가 페르시아로 출병하면 대제국이 멸망하게 될 것이다."
크로이소스는 크게 기뻐하였다.

델포이에는 3번씩이나 신탁을 구했다. 세 번째에는 크로이소스의 왕권이 영속할 것인가를 물었고 델포이의 무녀는 다음과 같은 신탁을 내렸다.

"하지만 노새가 메디아의 왕이 되었다면, 다리가 약한 리디아인이여, 그때는 자갈이 많은 헤르모스 강을 따라 도망쳐 멈추지 마라. 겁쟁이라는 이름을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 크로이소스의 패배

크로이소스는 신탁의 참뜻을 오해하여, 키루스와 페르시아 세력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확신하여 군대를 출범하였다.

크로이소스가 출격 준비를 할 때 산다니스라는 리디아의 현인이 왕에게 건의하였다.

"왕이시여, 지금 출병을 준비하고 있는 상대가 어떤 인종인지 왕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그들은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땅이 척박하여 먹고 싶은 만큼 먹는 것이 아니라 있는 만큼만 먹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포도주를 쓰지 않고 물만을 마시며, 무화과조차 없는 맛없는 음식을 먹습니다. 그러니 그들과 싸워서 이기더라도,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그들로부터 도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반면에 왕께서 패하면 좋은 것들을 얼마나 많이 잃게 될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우리나라의 좋은 것들을 즐기게 되면 이에 집착하여 아무리 쫒아내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 페르시아로 하여금 우리 리디아를 공격하지 않게 하고 계신 신들에게 진정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은 크로이소스를 설득할 수 없었다.

크로이소스가 자랑하는 기병대는 키루스의 낙타 부대에 무너졌다. 말은 낙타를 두려워했다. 그 모습도 무서웠지만 그 냄새도 참기 힘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패배한 리디아군은 사르데스의 성으로 물러났고, 크로이소스는 농성하였으나, 14일 만에 함락되었다. 

 

** 크로이소스의 말 못하는 아들

크로이소스는 그의 전성시대에 농아 아들을 위해 온갖 일을 다 해보았다. 그 중에 그 아이에 대해 델포이의 신탁을 받으로 사자를 보낸 적이 있다. 델포이의 무녀는 이렇게 답했다.

"리디아에서 태어난 모든 백성의 왕, 세상에서도 어리석은 크로이소스여,
왕궁 안에서 고대하는 아이의 소리를 바라지 마라.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그대에게는 훨씬 좋은 일이다.
그 소리를 처음으로 듣는 그날이야말로 재난의 날이다."

성이 점령되었을 때, 페르시아 병사 하나가 크로이소스를 몰라보고 그를 죽이려 접근했다. 크로이소스는 삶을 포기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때 그 벙어리 아이가 페르시안인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무섭고 슬픈 나머지 소리를 질렀다.

"크로이소스 왕을 죽이면 안돼!"

그렇게 하여 그 아이의 말문이 틔게 되어, 그 이후 평생 동안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크로이소스와 키루스

붙잡힌 크로이소스는 키루스에게 끌려갔다.
키루스는 거대한 장작더미를 쌓아올리게 하고, 족쇄를 채운 크로이소스를 그 위로 올라가게 했다.
장작 위에 선 크로이소스는 이토록 비운에 직면하면서도, 문득 솔론이 한 말이 생각났다.

"인간은 살아 있는 한 그 누구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이 얼마나 영감에 찬 말인가!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이제까지 한마디 않고 침묵을 지키던 크로이소스는 깊은 한숨을 쉬며 슬픈 목소리로 세 차례나 솔론의 이름을 불렀다.

키루스는 통역에게 묻게 했다. 크로이소스가 그토록 이름을 부르고 있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 처음에는 입을 열지 않았으나 대답을 강요당하자 이윽고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의 모든 왕이 되는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해준다면 천만금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게 무슨 뜻인지를 끈질기게 묻자, 크로이소스는 설명해주었다.
아테네 사람 솔론이 자신에게로 와서, 자기의 재물을 모두 보고도 이런저런 말을 하며 전혀 감동하지 않았다는 것, 자기 신상 변화는 솔론이 한 말 그대로 되었다는 것, 솔론이 말해준 행복에 관한 이야기 등을 말해주었다.

크로이소스의 말을 들은 키루스는 마음이 변했다. 자기도 같은 인간이면서 한때는 자기 못지않게 부귀영화를 누린 또 한 사람을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이려 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 응보가 두렵고 인간 세상의 무상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그래서 크로이소스를 장작더미 위에서 내려오게 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이미 타오른 불길은 어찌 할 수 없었다. 키루스의 마음이 변한 것을 안 크로이소스는 사람들이 불길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아폴론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불렀다. 그러자 맑은 하늘에서 갑자기 구름이 모여들어 폭풍우가 일어나 세찬 비가 내려 장작불은 꺼지고 말았다.

키루스는 크로이소스가 신의 사랑을 받는 사람임을 알고 그에게 물었다.

"크로이소스여, 그대를 부추겨 우리나라에 군대를 진격시켜 나의 친구가 아니라 적이 되게 한 자는 누군가?"

"왕이시여, 본인이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은, 하나는 왕의 운이 강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본인의 불운에 의한 것입니다. .. 평화보다 전쟁을 선택할 정도로 무분별한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평화로울 때에는 아들이 아버지를 묻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아버지가 아들을 묻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마도 이렇게 되는 것이 신의 뜻이었던 것 같습니다."

Croesus on Pyre, attic red figure amphora, c. 500–490 BC.

** 크로이소스의 신탁에 대한 항의

크로이소스는 신에게 항의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키루스에게 말했다. 자신이 신탁받은 일, 신전에 봉납한 물품, 신탁의 부추김으로 페르시아로 출정한 일 등을 말했다. 키루스는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크로이소스는 사자를 선발해서 명령했다. 자신의 발을 채운 족가를 신전 바닥에 놓고, 마치 키루스의 세력을 타도할 것처럼 크로이소스를 부추긴 결과 첫 봉납할 물건이 이것인가 하면서, 이래도 신은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리스 신들은 이처럼 은혜를 예사로 저버리는가를 묻고 오라고 했다.

무녀는 이렇게 반박했다.

"정해진 운명을 모면한다는 것은 신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크로이소스는 4대 이전 선조의 죄 값을 치렀을 뿐이다. 그는 여자의 음모에 가담하여 주군을 시해하고 주군 대신에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록시아스(아폴론)는 숙명의 여신이 정한 시간보다 3년이나 지연시켜 주었고, 불에 타 죽게 된 것을 구해주었다.

내려진 신탁에 대한 크로이소스의 비난도 당치 않은 일이다. 록시아스는 크로이소스가 페르시아에 출병을 하면 대제국을 멸망케 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크로이소스가 그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했다면, 신이 말씀하신 대제국이 내 나라를 가리키는지 키루스의 나라를 가리키는지 물었어야 했다.신탁의 뜻도 모르고 또 다시 살펴보지도 않은 자신에게 죄를 돌려야 한다.

또 그가 마지막으로 신탁을 구했을 때 록시아스가 노새에 대해 말했었다. 이에 대해서도 크로이소스는 올바르게 깨닫지 못했다. 키루스야말로 노새였던 것이다. 키루스는 종족을 달리하는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고귀한 출신이고 아버지는 비천한 출신어었다. 즉 어머니는 메디아인으로 베이다의 왕 아스티아게스의 딸인데 반해, 아버지는 페르시아인으로 메디아인 아래에 있었고, 어느 모로 보나 하층 사람이었는데 주군 집안의 여인을 얻은 것이다."

 

** 크로이소스의 아부 _ 헤로도토스의 역사 '캄비세스의 어지러운 마음' 중

 

크로이소스와 몇 페르시아인이 캄비세스 왕과 자리를 함께 했을 때,
캄비세스가 아버지 키루스에 비해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물었다.

페르시아인들은
'캄비세스가 키루스보다 위대하다. 그것은 키루스를 영토에다 이집트 등 영토를 확장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크로이소스는 이렇게 말했다.
"키루스의 아드님이시여, 제가 보기엔 전하께서는 아직 부왕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캄비세스가 굳은 표정으로  그 이유를 물었다. 크로이소스가 대답했다.

"왜냐하면 부왕께서는 전하와 같은 아드님을 남기셨지만, 전하께서는 아직 그와 같은 아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캄비세스는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크로이소스의 판단을 칭찬했다.

Croesus and Solon by Johann Georg Platzer (1704–1761)

 

https://www.ancientworldmagazine.com/articles/happiness-king-croesus/

 

The happiness of King Croesus

If you have everything, are you not the happiest person alive? According to Herodotus, the Athenian statesman and poet Solon disagreed.

www.ancientworldmagazine.com

https://www.thoughtco.com/why-to-know-king-croesus-lydia-117873

 

Croesus of Lydia Was Renowned for His Wealth

King Croesus of Lydia encouraged trade and mining, and his resultant wealth was legendary. He was also responsible for the loss of Lydia to Persia.

www.thoughtco.com

 

 


"고려 장사랑(將仕郞) 영태(永泰)는 광대놀이를 잘하였다. ..

영태가 충혜왕(忠惠王)을 따라 사냥을 갔을 때도 늘 광대놀이를 하니, 임금은 그를 물 속에 던져버렸다.

영태가 물을 헤치고 나오니, 임금은 크게 웃으며,
“너는 어디로 갔다가 지금 어디서 오느냐.” 하니,

영태는 “굴원(屈原)을 보러 갔다가 옵니다.” 하였다. 임금이 “굴원이 뭐라고 하드냐.” 하니,

“굴원이, ‘나는 어리석은 임금을 만나 강에 몸을 던져죽었지만, 너는 명군(明君)을 만났는데 어찌되어 왔느냐.’ 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은 기뻐서 은 사발을 하나 주었다." _ 용재총화(慵齋叢話 卷三)

 

**
출처: https://athenae.tistory.com/448162 [허성원 변리사의 특허와 경영이야기:티스토리]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