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책] 부암동 랑데뷰 미술관
어제 친구가 사무실에 와서 차를 마시다, 그 사위가 새 소설책을 냈다고 책을 소개한다.
일단 한번 읽어보기나 하자 싶어 곧 전자책으로 구입을 했다.
저녁에 서울행 SRT를 타면서 오디오로 듣기 시작하여, 남은 부분은 집에 도착해서 잠들기 전에 다 읽어버렸다.
읽는 내내 가슴이 따뜻해지는 좋은 느낌을 실컨 즐길 수 있는 참 좋은 소설이다.
가슴에 스며드는 잔잔한 감동을 안고 오랜만에 편한 잠을 깊이 누렸다.
몇 권 사서 주변에 나누주기 딱 좋은 책이다.
*
책 제목은 "부암동 랑데뷰 미술관"이고, 작가는 채기성.
2019년에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신예 작가로서, 2022년에는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지금까지 발표된 작품은 이번 신작까지 총 4권이다.
남성 작가임에도 묘사가 매우 섬세하고 감성적이다.
*
이 소설은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을 위한 위안의 소설이고 아픔을 치유하는 힐링 소설이다.
우리의 메말라가는 동심을 일깨워주는 밝은 햇살 같은 동화처럼 읽혀진다.
아마도 좀 감성적인 독자라면, 책의 중반을 넘어가기 전에,
적어도 두어 번은 자신의 치유를 경험하는 감동의 눈물을 흘릴 것이라 장담한다.
그건 답답한 상황이 시원하게 풀려나가는 해방 카타르시스의 눈물일 것이다.
오래 전에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덕분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찾아서 다시 읽어보게 되겠다.
*
이 소설은 여러 개의 에피소드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어져 있다.
소설의 무대가 된 랑데뷰 미술관은 부암동에 있다.
이 소설 때문에 부암동 산에 꼭 다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미술관에서는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 한 사람만을 위해 그를 치유하는 작품을 제작하고, 오직 그 한 사람의 관객을 위해 작품을 전시한다.
이 부분은 현실감이 다소 떨어지긴 하지만 매우 참신한 소설적 발상이다.
소설의 주인공을 포함한 모든 등장 인물은 각자 나름의 상처를 보듬고 그 아픔을 견디며 살아간다.
에피소드의 과제를 하나씩 풀어가면서 에피소드 속의 등장인물들은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모두 해피엔딩을 누리고, 소설 주인공을 포함한 미술관의 근무자들은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치유한다.
독거노인 김춘호, 길거리 댄서 손해주, 조폭 구대오, 뮤지컬 배우 조소진, 전 야구선수 박정배, 국밥집 주인 권영은, 영서 아빠 주희준, 그리고 미술관 할머니 주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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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나니, 아주 추운 날 따뜻하고 달달한 라떼를 한잔 얻어마신 기분이다.
그리고 작가가 조금 더 모질게 마음먹고 썼더라면 좀더 칼칼한 재미를 더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개인적인 욕심도 상상해본다.
땡초가 든 칼칼한 음식을 좋아하는 순전한 내 개인의 취향이긴 하지만,
주인공 호수의 운명을 좀 더 기혹하게 학대한 다음 극적으로 풀어주고,
미술관 할머니는 초반부터 정체가 거의 드러나 보였는데.. 그 반전을 더 짜릿하게 이용했으면..
그 할머니가 그런 미술관을 굳이 운영했어야 할 절실한 예를들어 속죄(?)의 염원 등을 조금 더 덧씌웠더라면..
나같이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감히 항상 이런 욕심을 부린다.
*
기억에 남는 문구들을 옮겨왔다.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금세 공감할 것이다.
"인생을 걸었는데도 실패했습니다. 희망이라는 게 뭔지 알 수 있을까요?"
"조금 더요. 조금 더 참고 힘을 내봐요. 아직 할 말이 남아 있다고요."
"희망은 제가 발견했어요. 당신 발끝에서."
"어떤 길은 쉽게 잊히는 듯싶었고, 또 어떤 길은 오르기 힘든 현재가 되는 것도 같았다. 호수(주인공)에게는 언제나 바로 앞에 주어진 길이 가장 힘든 오르막이었다. 그렇다고 도로 내려가거나 머무를 수만은 없는 길이었다."
"누구에게 이해받는 것만이 인생의 목적은 아니잖아요."
"제 뜻대로 저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할까요. 부모님이 가리키는 길을 갔다면 저는 아마도 타인의 기대에 맞춰 저를 사용했을 거예요."
"누구나 각자의 물줄기로 흘러가는 거라고. 너무 상심하지는 말아."
"이 맛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뭐랄까. 정말 위로가 삼켜지는 느낌이랄까요."
"내가 네 마음 다 안다."
"내가 전달하는 택배 하나에도 좋은 기운이 있다고 생각하라고 하더라구요. 그냥 택배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즐거움을 전달한다고 여기라고 하데요. 제작되는 제품의 생산 공정이 나에게서 완성된다고 생각하라고 말이죠."
"이렇게 말도 없이 먼저 떠나게 되어 미안합니다. 하지만 저는 죽음을 앞두고도 다시 사는 기분이었어요.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암기고 떠나고 싶진 않았거든요. 여러분들의 사연을 접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만들면서 저는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편히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각자 이 우주상에 하나뿐인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 미술관 이름이 랑데뷰 미술관이랍니다. 우주에서 우주선끼리 도팅하듯, 각자의 존재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보듬고 마음을 내우줄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안녕"
*
예스24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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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gn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553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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