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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163 이보게~ 자네도 딸 낳아보게!

by 변리사 허성원 2024. 5. 24.

이보게~ 자네도 딸 낳아보게!

 

"이보게~ 자네도 딸 낳아보게!" 좀 일찍 결혼했던 친구가 결혼 초기에 장인어른에게서 들었다며 전해준 말이다. 당시 총각이었던 우리는 그저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라는 가르침 정도로 이해했었다. 혹은 모든 여자는 어느 아버지의 귀한 딸이니 가벼이 대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도 들어있겠지 여겼다. 재미있는 표현이라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말하고 싶을 때 이 말을 농담 삼아 종종 쓰곤 했는데, 그 말에 더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을 나이가 충분히 들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다른 한 친구의 딸 결혼식장에서였다. 이 친구가 딸의 손을 잡고 입장을 하다가 동작이 조금 어색해지더니 가운데쯤에서부터 사정없이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것이다. 곧 거의 통곡 수준이 되었고, 자제하기 힘들 정도라 걸음이 흐트러져 멈추어 섰고 식장의 분위기는 매우 어색해졌다. 다행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정상을 찾게 되어 큰 혼란 없이 잔치는 잘 진행되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홀아비가 홀로 힘들게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것처럼 보이겠다고 친구들은 농담을 했지만, 우리는 그 집안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하며 행복한 가정임을 잘 안다 .

폐백이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 온 그 혼주 친구에게 왜 그랬었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는 무척이나 민망해 하면서 어쩌다 그렇게까지 되었는지 자신도 모르겠다는 거다. 딸의 손을 잡고 걸어가다 보니 딸이 태어날 때부터 기르고 자라던 장면이 한꺼번에 떠오르면서 온갖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순간적으로 벅차오른 감동을 주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말에 다들 웃기는 했지만 그러면서도 각자 나름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공감의 고갯짓을 주억거렸다.

그걸 보면, '자네도 딸 낳아보게!'는 단순히 역지사지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것은 직접 체험을 해보지 않고서는 상대의 생각이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 무겁게 들어 있다. 딸이라는 한 생명체를 낳아 기르고, 그 과정에서 온갖 감동, 기쁨과 아픔, 보람과 좌절을 몸으로 느끼고 겪으며, 그렇게 근 30년 기른 딸을 어떤 녀석일지도 모르는 어설픈 젊은 놈에게 맡기려 걸어가기까지, 그 일련의 역사를 직접 몸으로 경험해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걸 다 해보지 않고서야 딸을 맡긴 장인어른의 마음을 어찌 이해할 것이며, 아내라는 한 여성의 귀한 무게를 감히 함부로 재단할 수 있을까. 그걸 생각해보니, 나는 비록 딸이 없지만 아들을 장가보낼 때 저 친구보다 더 민망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된다.

그러니 '자네도 딸 낳아보게!'라는 친구 장인어른의 말씀을 좀 더 풀어서 말하면 이렇게 될 것 같다. "자네는 지금 내 마음을 알 수 없을 거네. 내가 무슨 말을 해줘도 아마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지도 몰라. 언젠가 30년 쯤 지난 후에, 자네가 낳아 기른 딸을 시집보내보면 그때서야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것도 온전하지는 않아. 자넨 나와 다른 딸을 낳고 다른 환경에서 다른 방식으로 기를 것이니, 딸에 대한 느낌과 추억이 나하고는 전혀 다르지 않겠는가. 나는 내 딸을 키우면서 겪은 온갖 좋고 힘든 추억은 어느 하나 귀하지 않은 게 없네. 그것들이 나를 이만큼 성장시켜 주었다네. 자네도 자네 딸을 통해 자네 나름의 특별한 경험들을 즐기고 그것으로 성장의 기회를 누리길 바라네."

스타트업 창업자를 위한 교육이 많다. 내용도 참 다양하다. 기업가 정신, 리더십, 노무, 세무, 특허, 마케팅, 투자 유치 IR, 성공 경험 등등.. 이런 교육 열심히 받으러 다니다 보면 일은 언제 하나 싶다. 그런데 창업자들이 귀로 듣고 눈으로 본 가르침들을 과연 얼마나 기억하고, 그 기억들이 실무에 반영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나도 종종 강사로 참여하기는 하지만, 많은 강사들은 창업자들에게 자신만의 성공 공식, 합리적인 경영, 교과서적 리더십을 자신만만하게 마구 주입하려든다.

마치 결혼식장에서 옳은 소리만 늘어놓은 주례의 말씀처럼 말이다. 그런 주례사를 잘 기억하고 평생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할까. 나는 내게 해준 주례사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열변을 토하는 스타트업 강사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딸 낳아봤쑤?'

사업이란 딸이나 아들을 키우는 것과 같다. 비록 창업자 자신이 낳고 키우지만, 그 성장 과정에서 온갖 상황을 경험하며 하나씩 배우고 깨우치며 사업의 변동과 함께 자신도 성장한다. 남들의 사업이나 성공 혹은 남들의 육아를 엿보고 배울 수는 있어도, 그것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될 리가 만무하다. 스스로 번민하고 결정하여 선택하고, 자신의 책임으로 행동하며, 그러다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자신만의 것을 축적하고 강화시켜나가는 게 삶이고 사업이며 딸을 키우는 일이다.

'돈은 빌릴 수 있지만 길은 빌릴 수 없다(借財不借路)'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자원은 얼마든지 남의 것을 가져다 쓸 수 있지만, 삶이나 사업이 나아가야 할 그 외롭고도 험난한 그 길은 오직 자신만이 직접 개척하고 걸어가야만 한다는 뜻이렸다. 바로 이 말이 그 말이다. "이보게~ 자네도 딸 낳아보게!"

 

챗GPT가 그려준 것입니다. 만화풍, 흑백 톤, 목마 태운 모습을 요구했더니..
챗GPT에게 'My own way'의 개념으로 그려달라고 해서 그린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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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이불견(聞之而不見), 수박필류(雖博必謬).

* 듣기만 하고 보지 않으면 많은 것을 들었다 해도 잘못이 있을 수밖에 없다.

* 《순자》 <유효(儒效)>

 

눈으로 읽으며 낭독하기

바로 이어지는 글은 ‘견지이부지(見之而不知), 수식필망(雖識必妄); 지지이불행(知之而不行), 수돈필곤(雖敦必困)’이다. ‘보기만 하고 알지 못하면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어도 허망할 수밖에 없으며, 알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아는 것이 많아도 곤경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순자(荀子)는 학문의 목표를 듣고[聞], 보고[見], 알고[知], 행동[行]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위 구절의 앞부분과 뒷부분을 다 함께 소개한다.

“듣지 않는 것보다 듣는 것이 낫다. 듣는 것보다 보는 것이 낫다. 보는 것보다 아는 것이 낫다. 아는 것보다는 실행(실천)하는 것이 낫다. 학문은 실천함에 이르러 끝이 난다. 실천해야 분명해지고, 분명해지면 성인이 된다.

성인은 어짐과 의로움을 근본으로 삼고, 옮고 그름을 합당하게 가리며,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 터럭만큼의 어긋남이 없다. 별다른 도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으로 끝이 나기 때문이다.  ~  듣지도 보지도 않은 일이라면 합당하게 처리한다 하더라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그런 방법으로는 백 번을 해봤자 백 번 모두 실패한다.”

https://brunch.co.kr/@04d191ed55fb4bb/183

 

고사성어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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