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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160 바시키르인의 거래

by 변리사 허성원 2024. 5. 6.

바시키르인의 거래

 

소작농 파홈은 지주와 그 관리인의 시달림을 받으면서 자신의 땅을 갖기를 갈망한다. 그러다 드디어 빚을 안고 약간의 땅을 갖게 되었다. 지주가 되니 지난 시절의 서러움을 잊고 땅 없는 이웃들에게 각박하게 대하여 그들과 소원해진다. 그럼에도 땅에 대한 갈망은 더 커진다. 그러던 중 한 나그네가 파홈의 집에 들러 바시키르라는 곳에 가면 기름진 땅을 마음껏 가질 수 있다고 말해준다.

파홈은 기꺼이 바시키르로 떠난다. 7일이나 걸려 그곳에 도착하니, 바시키르인들은 초원에 텐트를 치고 살며 마유주와 차를 마시고 양고기를 먹고, 글을 쓰고 읽을 것조차 몰랐다. 그러나 모두 정중하고 쾌활했으며 친절했다. 그들에게 땅을 팔라고 하자 흔쾌히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가지라고 한다. 파홈이 가격을 물었다. 그런데 그들의 계산 방식은 특이했다.

"우리가 부르는 땅 값은 항상 똑같다오. '하루'에 천 루블이오." 파홈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루라고요? 그런 단위가 있습니까? 하루는 몇 평쯤 됩니까?" "우리는 그걸 어떻게 계산하는지는 모르오. 그저 하루 동안 당신이 걸어서 돌아다닌 만큼 당신 땅이 되고, 가격은 하루에 천 루블이오." 파홈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하루에 아주 넓은 땅을 다녀올 수도 있잖아요?" 족장은 웃음을 지었다. "그 땅을 모두 가질 수 있소.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소. 출발했던 곳으로 그날 안에 돌아오지 못하면 당신은 땅은 물론 돈도 잃게 되오."

이 이야기는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인간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할까"에 나온다. 주인공 파홈은 하루 동안 걸어서 원하는 만큼의 땅을 가지게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그 결말은 비극이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걷고 또 걸어서 해질 무렵에야 가까스로 되돌아올 수는 있었지만, 과도히 무리한 탓에 피를 토하며 쓰러져 죽고 만다. 그는 그 자리에 묻혔다. 이 소설은 제목에서의 질문을 그 마지막 문장에 답이 있다. 인간에게 필요한 땅은 그가 마지막으로 묻힐 겨우 2m 정도에 불과하다고.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은 바시키르인들의 거래 방식이다. 그들은 땅을 면적 단위가 아니라 '하루'라는 시간 단위로 거래하고 있다. 거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 거래 대상인 땅의 위치와 면적이 명확히 특정되어야 하는 법인데, 이들 방식에 따르면 구매자의 의지와 행동 결과에 따라 땅의 위치와 면적이 변동할 수 있다. 그러니 아무도 알 수 없다. 파홈이 얼마나 멀리 가서 어디를 둘러서 돌아올지 특정되지 않는다. 파홈 자신조차도 알지 못할 것이다. 설사 나름의 계획이 있다 하더라도, 가다보면 계획보다는 그의 욕심이 발걸음을 지배하여 이끌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체력도 중요한 변수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욕심은 갈수록 풍선처럼 커질 것이며, 체력은 점차 고갈된다. 무한한 대지를 가슴 벅차게 맞이한 인간의 탐욕은 한 발이라도 더 멀리 더 바쁘게 움직이도록 점차 고갈되어가는 체력을 사정없이 채찍질하며 몰아붙일 것이다. 그러면 이런 바시키르인의 거래에서 최종 승자는 누구일까. 아마도 모든 땅 구매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파홈처럼 자신의 탐욕으로 인해 자멸의 종말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그러니 결국 마지막 승리는 항상 바시키르인에게 돌아갔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야만의 생활을 하는 바시키르인들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일지 모른다. 아니 사악하다. 원래 여기에는 악마의 안배가 있었다. 애초 파홈에게 탐욕을 심어주고 그곳까지 이끌어 행동하게 만든 것은 악마의 부추김이었다. 에리히 프롬도 이렇게 말했다. "탐욕이란 결코 만족에 이르지 못하면서도 욕구 충족을 위해 끝없이 애쓰게 만들어 인간을 소진시키는 바닥없는 구덩이와 같은 것이다." 바시키르인들은 이같은 탐욕의 속성을 잘 간파하여, 탐욕으로 인한 자멸을 유도하는 희한한 시간 단위의 땅 거래 방식을 창안한 것이리라.

최근 큰 화제 거리가 있었다. 엔터테인먼트 기업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도발적인 인터뷰를 하였다. 그 인터뷰의 갈등에 관련해 구체적인 속사정은 거의 아는 바가 없지만, 이야기 중에 '풋옵션'이 언급되기에 그에 대해 알아보았다. 민 대표는 그의 보유 지분(18%) 중 상당 부분(13%)에 대해 하이브에 매수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 즉 풋옵션을 가지고 있다. 풋옵션 행사 조건은 2개년도 영업이익의 13배를 기업 가치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면 기업 가치는 9천억원을 넘게 되고, 풋옵션 주식 매도 가액은 1.2천억원이 넘는 엄청난 금액이다. 그것도 겨우 3년 정도의 기간에 이룬 성과다. 13배수를 30배로 계약 수정을 요구했다고 하니, 이것이 받아졌으면 옵션 행사 가액은 그만큼 더 크게 불어날 것이다.

이런 풋옵션 계약이 바로 바시키르인의 거래법과 매우 가깝다. 거래 완결 시점을 유예해두고, 거래 대상을 당사자의 성과에 연동시킨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 성과는 당사자의 욕망이 강하고 노력이 처절할수록 커질 것이니, 그런 계약은 당사자의 성취 욕구를 극한으로 이끌어내어 성과를 극대화하도록 유도한다. 그들에게 결승점에 가까워지면 행복도 그만큼 커질까. 많은 경우 그렇지 못할 것이다. 지치고 피폐한 영혼은 작은 자극에도 취약하여 개인과 관계의 파탄을 초래하기 쉽다. 파홈도 성취의 순간에 좌절과 분노의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민 대표의 인터뷰 모습에서도 파홈의 그림자가 겹쳐 보였다.

이런 바시키르식 거래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직장인이나 스타트업 종사자의 번아웃, 권력형 비리 관계자 등의 문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는 인간의 탐욕을 부추기는 바시키르의 거래가 있다. 이런 거래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은 계약에서 성취의 한계를 합리적으로 정해두어 불필요한 과욕을 미리 피할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 많은 풋옵션이 그러하지만, 파홈에게도 그 한계가 없었기에 비극을 초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의 욕망을 절제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순자(荀子)의 말씀에 귀 기울여보자. "군자는 재물을 부리고 소인은 재물에 부림을 당한다(君子役物小人役於物)."

 

탐욕이란 결코 만족에 이르지 못하면서도 욕구 충족을 위해 끝없이 애쓰게 만들어 인간을 소진시키는 바닥 없는 구덩이와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