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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사진 한 점과 천지인(天地人)의 조화

by 변리사 허성원 2023. 12. 29.

사진 한 점과 천지인(天地人)의 조화

 

NASA에서 '오늘의 천체 사진'으로 선정된 사진을 보았다.
그저께(23.12.25)에 게재된 것이다.

절묘한 타이밍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이탈리아 피에몬테에 있는 수페르가 성당, 그 뒤의 몬비소 산, 맨 뒤의 초승달이 차례로 배치된 멋진 장면이다.
사진을 잘 모르는 문외한의 입장에서는 그저 운좋게 절묘한 타이밍을 잡아냈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NASA의 사진 설명을 읽어보니 그게 그저 행운으로만 여길 단순한 일이 아니다.

작가는 이 사진 한 장을 잡기 위해 6년을 기다렸다고 한다.
이런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은 그 현상이 발생한다는 사실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성당과 산은 그 자리에 변함없이 존재하지만, 달의 이동 경로는 항상 변한다.
그래서 성당과 산을 잇는 선은 오직 하나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진을 촬영하는 방향은 오직 하나뿐이다.
예를 들어 리오의 예수님과 보름달을 찍은 사진의 경우에는, 보름달이 뜰 때마다 촬영방향을 이리저리 변경하며 찍을 수 있지만, 수페르가 성당과 몬비소 산의 배치는 그런 요령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작가가 1년에 한 번씩 시도한 것을 보면, 아마도 달은 1년에 단 하루 정도만 저 위치에 올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유일한 촬영 방향 중에 있는 최적의 촬영 장소가 필요하고,
또 아주 잠깐의 순간만이 허용되기에 그 타이밍도 결코 놓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이 다 갖춰졌다고 해서 원하는 사진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날씨가 받쳐주지 않으면 도리가 없다. 날씨는 곧 행운이다.
그래서 작가는 6년 동안 시도하여 지난 12월15일에 겨우 성공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사진 한 점을 얻는 데도 천(天), 지(地), 인(人)의 완벽한 조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천(天)은 행운이고, 지(地)는 존재하는 사물과 공간으로 이루어진 환경이며, 인(人)은 지식, 올바른 타이밍 및 노력을 포괄하는 지혜를 가리킨다.
이들 중 어느 하나만이 어긋나도 일의 성사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 도모한 모든 것의 성사는 천지인의 조화에 있다.
즉, 주어진 환경, 인간의 지혜 및  하늘이 내려준 행운의 조합이다.
그러기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하였다.
인간이 주어진 환경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과 지혜를 다한 후에, 하늘의 명 즉 행운을 기다리라고 하였다.

 

Single shots like this require planning. The first step is to realize that such an amazing  triple-alignment  actually takes place. The second step is to find the best location to photograph it. But it was the third step: being there at exactly the right time -- and when the sky was clear -- that was the hardest. Five times over six years the photographer tried and found  bad weather . Finally, just ten days ago, the  weather  was perfect, and a photographic dream was realized. Taken in  Piemonte ,  Italy , the cathedral in the foreground is the  Basilica of Superga , the  mountain  in the middle is  Monviso , and, well,  you know  which moon is in the background. Here, even though the  setting Moon  was captured in a crescent  phase , the exposure was long enough for doubly reflected  Earthlight , called the  da Vinci glow , to illuminate the entire top of the  Moon .

 

리오의 예수상과 보름달. 이 사진도 최적의 타이밍을 잡아내기 쉽지 않겠지만, 고정된 피사체는 예수상 하나뿐이므로, 촬영방향을 상하 좌우로 움직여가며 위치를 조절할 수 있는 융통성이 있으니, 한 해에 여러번의 시도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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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의 해설 정리>
이런 싱글 샷을 얻으려면 철저한 계획이 필요하다. 첫째는 이처럼 놀라운 삼중 정렬 현상이 실제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야 한다. 둘째는 그 장면을 잡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셋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서, 정확한 타이밍이다.
이들 세 가지는 사람의 노력으로 가능하지만, 하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 시점의 날씨이다. 이 사진을 찍은 작가는 6년 동안 다섯 번 시도했었지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마침내, 여섯번째의 시도에서 완벽한 날씨의 도움으로 그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 그 날이 바로 열흘 전(2023. 12. 15)이었다.
사진에는 세 개의 사물이 있다. 맨앞에는 수페르가 대성당이, 가운데에는 몬비소 산이, 맨뒤에 달이 있다. 달은 초승달이 지는 과정에서 포착되었고, 노출 시간이 충분히 길어서 이중 반사된 지구빛(다빈치 빛이라 불림)이 달의 전체 상단을 밝히고 있다.
작가는 이탈리아의 발레리노 미나토(Valerio Minato)이며, 2023년 12월 15일 오후 6시 52분에 이탈리아 피에몬테에서 촬영하였다. 12월25일에 NASA의 '오늘의 천체 사진(Astronomy Picture Of The Day, APOD)'로 선정되어 게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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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O(Time, Place, Occasion)라는 말이 있다.
특히 패션 분야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다.
옷을 갖춰 입을 때, 그것은 때, 장소, 상황에 맞아야 한다는 개념이다. 
사진이든 패션이든.. 세상 마사가 TPO의 조화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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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에서도 비슷한 개념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우물 안 개구리'에 빗대어 시간, 장소, 인간에 대해 언급된 에피소드가 나온다. 

‘우물 속 개구리가 바다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것은,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요,
여름살이 벌레가 얼음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것은, 시간에 갇혀 있기 때문이요,
비뚤어진 선비가 도(道)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것은, 배운 것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井蛙不可以語於海者 拘於虛也. 夏蟲不可以語於氷者 篤於時也. 曲士不可以語於道者 束於教也. _ 莊子 秋水)

우물이라는 공간에 갇힌 개구리와 여름이라는 시간에 갇힌 여름살이 벌레는 그 공간이나 시간을 벗어난 바깥세상을 알 수 없다. 사람도 자신이 배운 것에 갇혀, 그를 가르치고 키운 인간이나 사회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처럼 모든 존재는 그가 속한 세 가지의 ‘사이(間)', 즉 시간(時間), 공간(空間) 및 인간(人間)에 의해 그 한계가 규정된다. 시간, 공간 및 인간은 곧 천(天), 지(地) 및 인(人)에 해당하니, 만물은 우주의 근원인 삼재(三才)를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