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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127 <아테나이18> 오디세우스, 안락은 위험하다

by 변리사 허성원 2023. 9. 9.

<아테나이18> 오디세우스, 안락은 위험하다

 

안락한 삶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웅에게 그것은 오히려 시련일 수 있다. 오디세우스의 10년간 귀향길에 온갖 고난이 있었지만, 그 중 7년간은 요정 칼립소의 보살핌을 받으며 위험 없이 안락하게 지냈다. 하지만 그는 그 안락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갈구했다.

세이렌 자매, 스킬라와 카리브디스를 벗어난 오디세우스 일행은 트리나키아 섬에 이른다. 그곳은 태양신 헬리오스가 가축을 기르는 곳이었다. 섬의 가축을 절대 해치지 말라고 하였으나, 굶주린 부하들은 소들을 도륙하여 잔치를 벌였다. 헬리오스의 분노를 들은 제우스는 다시 바다로 나온 그들의 배를 번개로 부숴버렸다.

일행을 모두 잃고 홀로 표류하던 오디세우스는 오기기아 섬에 닿았다. 그곳의 요정 칼립소는 그를 사랑하여 따뜻하게 보살펴주며 붙잡아두었다. 오디세우스는 밤에는 그녀 옆에서 잠들고, 낮에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바닷가에서 눈물지었다. 오디세우스의 딱한 처지를 지켜본 아테나 여신은 제우스에게 간청하여, 그를 놓아주라는 명을 받아냈다.

제우스의 전령 헤르메스가 그 명령을 전하자 칼립소가 말했다. "신들이여, 그대들은 한 인간을 곁에 둔 나를 질투하는군요. 내가 그를 구했어요. 제우스께서 바다 한가운데서 번개로 그의 배를 부숴 쪼개버리셨기에, 용감한 전우들을 다 잃은 그를 바람과 너울이 여기로 실어다주었지요. 나는 그를 사랑으로 돌봐주었고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게 해주겠다고 했어요." 그러고는 제우스의 지엄한 명이 있었으니 부득이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돕기로 약속한다.

칼립소는 신들의 음식인 암브로시아와 넥타를 차려놓고 오디세우스와 마주앉아 말했다. "지혜로운 오디세우스여, 그대는 정말로 고향에 돌아가기를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편히 떠나세요. 그대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게 될지를 안다면, 아무리 그대 아내가 그리워도, 이곳에 머물며 나와 함께 불사의 몸으로 살고 싶어질 거예요. 그리고 나의 아름다움은 그녀에 뒤지지 않아요."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고귀한 여신이여. 그걸로 서운해 하지 말아요. 페넬로페가 그대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지요. 그녀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필멸의 존재이지만 그대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 불멸의 여신이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반드시 돌아가야 하오. 설혹 어느 신이 또다시 나를 포도주 빛 바다에서 난파시킬지라도 말이오. 나는 무수한 폭풍과 수많은 전쟁터에서 온갖 극심한 고통도 다 참아냈소. 그러니 그 지난 고난들에다 이번에 또 고난이 더해질 테면 더해지라고 하지요."

오디세우스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한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도와 뗏목을 만들고 그를 목욕시킨 후 향기로운 옷을 입혀준 다음, 포도주와 물 그리고 양식을 실어 주고는, 순풍을 일으켜 오디세우스를 떠나보냈다. 오디세우스는 또 폭풍을 만나지만, 알키노오스 왕과 아레테 왕비가 다스리는 파이아케스 인들의 나라에 들러, 그들의 도움을 받아 그토록 그리던 고향 아타케에 무사히 도달하였다.

이제 우리는 질문하여야 한다. 오디세우스는 왜 그토록 돌아가려 했을까? 안락과 쾌락 및 영원한 삶이 보장된 지상낙원을 뿌리치고, 갈등과 아픔, 늙음과 죽음의 숙명을 피할 수 없는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그 용감한 영웅이 매일 눈물을 흘리면서 애절하게 갈구하였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우선은 그를 애타게 기다리는 아내와 아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있고, 아타케의 왕인 그에게는 백성들을 이끌어야 할 의무가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이유가 된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아마 '방황'일 것이다. 리더란 언제나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위해 매진한다. 도중에 잠시 궤도를 벗어나더라도 반드시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와야 할 운명이다. 돌아오지 않으면 그건 방황이다. 그가 칼립소에게 잡혀있는 한 방황은 끝나지 않는다. 탁월한 리더인 그는 무책임하게 당장의 안락 속에 허우적대며 방황하는 자신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삶에 대한 애정이다. 오기기아는 '바다의 배꼽', 칼립소는 '감추는 여자'를 뜻한다. 칼립소에게 의탁하여 있는 한 그는 바다의 배꼽에 감춰진 자가 된다. 감춰진 자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그건 곧 자신의 삶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는 것이다. 자기 삶을 사랑하지 않으면 남의 삶도 사랑할 수 없고, 그런 영웅이나 리더도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죽음도 삶의 일부이니, 삶을 사랑하는 자는 그 죽음마저도 사랑한다. 그래서 불멸의 유혹도 그를 어쩌지 못하였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필시 안락일 것이다. 영웅의 숙명은 도전과 모험이기에, 안락은 영웅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웅을 소리 없이 파멸시키며, 그 유혹은 거부하기 힘들다. 그래서 지극히 위험한 것이다. 오디세우스를 7년씩이나 붙잡아둔 칼립소의 안락은, 그 영웅을 시험한 가장 길고도 어려운 마지막 시련이었다. 안락의 유혹을 뿌리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용기를 가진 자만이 진정한 리더가 된다. 혹시 삶이 안락한가? 그대는 힘든 시험에 빠졌다. 즉시 탈출하라.

 

Calypso, blonde-haired goddess by Jan Styka (20th century)
The Goddess Calypso rescues Ulysses Cornelius van Poelenburgh (1630). 오디세우스를 구출하는 칼립소.
Odysseus und Kalypso by Arnold B&ouml;cklin (1883). 고향을 그리워하며 바닷가에서 눈물짓는 오디세우스와 그를 지켜보는 칼립소.
Hermes Ordering Calypso to Release Odysseus by Gerard de Lairesse (circa 1670). 오디세우스를 풀아주라는 제우스의 명령을 전달하는 헤르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