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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세상살이/지혜로운삶

스승의 날 유감

by 변리사 허성원 2023. 5. 15.

스승의 날 유감

 

스승의 날이 되면 나는 조금 씁쓸하다. 안타깝게도 나는 선뜻 누구라고 떠울릴 수 있는 존경하는 스승이 없다. 학창시절 좋은 선생님이나 고마운 선생님이야 항상 있었지만, 내 욕심이 과한지 몰라도, 평생 가슴으로 모실 수 있는 내 인생의 등불과 같은 그런 분과 인연을 맺을 기회를 갖지 못했다. 내 복이 부족했나 보다. 그런데 교육자로서 정말 용납될 수 없다고 뇌리에 깊이 박힌 선생은 몇 있다.

그 중 한 사람은 고등학교 때의 음악선생이다. 이 음악선생은 수업이 시작되면 통상 청음을 하였다. 피아노로 첫 음을 알려주고, 그 이후에 다른 음을 두들기며 그 음을 오선지에 기록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그게 통 제대로 되질 않았다. 어릴 때 시골에서 피아노 구경도 못해보고 자랐는 데다 선천적으로 음 감각이 너무도 무뎠다. 그런데 몇몇 친구들은 그것을 점바치처럼 귀신같이 맞혔다. 물어보니 그들은 어릴 때부터 교회 등에서 음악 혹은 피아노 소리에 익숙했다고 한다청음을 못하는 것은 내 자질이나 경험이 받쳐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이유로 체벌을 당했다는 점이다. 그 매서운 북채로 처음에는 손바닥을 때리다가, 화가 오르면 머리든 팔이든 아무데고 사정없이 때렸다. 참 많이 맞았고 많이 아팠다맞는 일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그 선생은 종종 노래 부르기 시험을 쳤다. 나는 언제나 첫 음부터 맞지 않았다. 선생은 첫 음을 치고 나서는 바로 땡 소리를 내고 벌떡 일어나 그 북채로 내리쳤다. 나는 노래시험에서 첫 음을 넘어가 본 적이 없다. 산들바람, '오 솔레미오, 카로미오벤 등의 노래로 시험을 쳤는데, 항상 '~', '~', '카~' 소리만 내볼 수 있었다. 그러고는 땡 소리와 함께 얻어맞고 물러났다.

유독 나뿐만이 아니었다. 아마도 우리 반의 태반은 그러했던 듯하다. 그건 교육이 아니었다. 그저 음악에 재능 없는 인종에 대한 지독한 인종차별이었다. 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한동안 노래방을 심하게 기피했었다. 세월이 흘러 좀 나아졌지만, 지금도 노래 부르려 마이크만 잡으면 첫 음이 무섭다. 혹 누군가가 땡 하면서 머리를 때리지 않을까 하는 조건반사 때문일 것이다.

당시에 체벌이야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유독 음악선생이 비난받아야 하는 이유는, '행위'가 아닌 '존재'를 이유로 매를 휘둘렀다는 점이다. 학생들의 잘못된 '행위'를 체벌하는 것은 선생으로서 당연한 교육적 책무이다. 그러나 학생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음악적 재능과 같은 태생적 '존재'를 이유로 그토록 심한 체벌을 한 것은 악의적 폭력이다. 그는 인간을 음악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으로 구별하고, 음악 못하는 사람을 지독히 증오하는 인종차별자였다.

음악선생보다 더 지독한 선생이 있었다. 그는 미술선생이었다. 미술선생은 당시 화가로서 좀 이름이 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미술 준비를 해오지 않은 학생들을 자신의 작업실로 끌고 가 자기 작품을 그리는 작업을 시켰다. 작품은 점을 찍어 표현하는 기법이기에, 지정된 물감으로 지정된 위치에 찍기만 하면 되는 비교적 단순한 노동이었다. 나는 졸업 때까지 나름의 사정이 있어 미술 준비를 한 번도 해가지 못했다. 매번 그 벌을 받다보니 점찍기의 전문가가 되어, 다른 벌 받는 친구들을 인솔하여 점찍기 기술을 가르치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항상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는 크고 작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 그려야 할 작품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미술 준비 해오지 않은 녀석들에게 강제노역을 시키지 못하는 상황도 생긴다. 그렇다고 해서 준비 해오지 않은 놈들을 그냥 봐줄 수도 없으니, 그 선생은 특유의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체벌방법을 구사하였다. 벌 받을 녀석들을 두 줄로 세워서 일대일로 마주보게 한 다음, 서로 뺨을 때리게 하는 것이다. 친구 사이에 아무 원한 없이 무작정 뺨을 때릴 리가 없으니, 처음엔 분위기가 어색하다. 그러면 선생이 그 중 한 놈을 불러내어 사정없이 뺨을 때리는 시범을 보여준다. 그러면 잠시 후 상황은 가관으로 변한다. 선생이 빤히 지켜보고 있으니,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선생이 원하는 수준을 고려하여 힘을 더 쓰게 된다. 그러면 뺨때리는 힘과 그 소리는 가속적으로 높아진다. 금세 애들은 원수를 만난 듯 사력을 다하고 있다.

~ 그 처참한 모습은 차마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다. 선생은 그 잔혹한 장면을 충분히 즐긴 후에 애들을 뜯어 말리고는 돌려보낸다. 하지만 친구 사이의 후유증은 적잖이 지속된다. 한 반의 친구들이 그토록 혼신의 힘을 다해 때리고 맞았으니, 그 몸과 마음의 상처의 어찌 쉽게 풀리겠는가. 평화로운 친구 사이에 증오와 분노를 강제로 심어준 이 선생을 최악의 선생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젠 모두 옛날이야기다. 학교 교사들의 그런 무지막지한 폭력도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그 선생들에게 미운 마음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들도 굴곡의 시대를 살아오며 삶과 인격이 왜곡된 희생자들이 아닌가. 그저 스승을 날을 맞아 그 야만의 시대를 함께 한 반스승의 옛 기억을 잠시 되새겨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