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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세상살이/설원(說苑)_유향(劉向)

권모(券十三 權謀)_설원(說苑) _ 유향(劉向)

by 변리사 허성원 2022. 8. 6.

** 역문은 동양고전DB에서 가져옴.

** 權謀는 때와 상황에 따라 應變하는 책략을 말한다. 本篇에서 말하는 권모는 陰謀 譎計가 아닌 규범에 부합하는 책략을 말한다. 본편에서 제시한 권모의 事例는 모두 君子의 권모로서 정당성이 있는 책략이고, 小人 邪惡한 책략이 아니다. 劉向권모의 중요성으로 亂世에는 자신을 해롭게 하지 않고, 太平時代에는 천하의 권력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하였다. 또한 가장 으뜸의 권모는 天命을 아는 것이고 次善의 권모는 일의 결과를 미리 아는 것이라 하였다. 이런 으뜸의 권모와 차선의 권모에 해당하는 사례를 열거하여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였다.

1. 謀有二端:上謀知命,其次知事

聖王之舉事,必先諦之於謀慮,而後考之於蓍龜。白屋之士,皆關其謀;芻蕘之役,咸盡其心。故萬舉而無遺籌失策。傳曰:「眾人之智,可以測天,兼聽獨斷,惟在一人。」此大謀之術也。謀有二端:上謀知命,其次知事。知命者預見存亡禍福之原,早知盛衰廢興之始,防事之未萌,避難於無形,若此人者,居亂世則不害於其身,在乎太平之世則必得天下之權;彼知事者亦尚矣,見事而知得失成敗之分,而究其所終極,故無敗業廢功。孔子曰:「可與適道,未可與權也。」夫非知命知事者,孰能得權謀之術。夫權謀有正有邪;君子之權謀正,小人之權謀邪。夫正者,其權謀公,故其為百姓盡心也誠;彼邪者,好私尚利,故其為百姓也詐。夫詐則亂,誠則平,是故堯之九臣誠而興於朝,其四臣詐而誅於野。誠者隆至後世;詐者當身而滅。知命知事而能於權謀者,必察誠詐之原而以處身焉,則是亦權謀之術也。夫知者舉事也,滿則慮溢,平則慮險,安則慮危,曲則慮直。由重其豫,惟恐不及,是以百舉而不陷也。

聖王이 일을 거행할 적에는 반드시 먼저 계책을 세밀하게 고려하고 그런 뒤에 시초점과 거북점으로 吉凶을 고찰한다. 가난한 평민의 선비도 그 계책에 관여하고, 꼴을 베고 나무하는 일을 하는 사람도 모두 계책에 마음을 다한다. 그러므로 온갖 일을 처리하는 데 빠뜨리거나 잘못된 계책이 없는 것이다.

뭇사람의 지혜는 하늘의 뜻을 헤아릴 수 있으니, 각종 의견을 광범위하게 듣고 독자적으로 결단하는 것은 단 한 사람에게 달려 있다.” 하였으니, 이것이 중대한 계책을 내는 방법이다. 계책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으뜸의 계책은 天命을 아는 것이고, 차선의 계책은 일을 아는 것이다.

천명을 아는 사람은 存亡 禍福의 근원을 미리 알고, 盛衰 廢興의 시초를 일찌감치 알아서 일이 싹트기 전에 막고 이 드러나지 않았을 때 피한다. 이 같은 사람은 亂世에 살면 자기의 몸을 해치지 않고, 태평한 세상에 있으면 반드시 천하의 권력을 얻는다. 저 일을 아는 사람은 이보다 나을 수 없으니, 일을 만나면 得失 成敗의 구분을 미리 알아서 그 일의 최후 결과를 追究한다. 그러므로 일을 실패하거나 을 버리지 않는다.

孔子께서 함께 에 나아갈 수 있어도 함께 權道를 행할 만하지 아니하다.”라고 하셨다. 천명과 일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능히 權謀의 방법을 터득하겠는가. 권모에는 正當함과 邪惡함이 있으니, 君子의 권모는 정당함이고 小人의 권모는 사악함이다. 정당한 사람은 그 권모를 公正하게 쓰기 때문에 백성을 위함에 至誠으로 마음을 다하고, 사악한 사람은 사사로움을 좋아하고 이익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백성을 위함에 속임수로 한다. 속임수로 하면 혼란해지고, 지성으로 하면 태평하게 된다.

이 때문에 의 아홉 신하는 지성으로 하여 조정에서 重用되었고, 다른 네 신하는 속임수로 하여 들판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그러니 지성으로 한 사람은 후손에게 융성한 복이 미쳤고, 속임수로 한 사람은 자신의 몸에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 천명을 알고 일을 알며 권모에 능한 사람은 반드시 지성과 속임수의 根源을 자세히 살펴서 처신하니, 이 역시 권모를 쓰는 방법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일을 처리할 적에 가득 찼을 때에는 부족함이 올 경우를 생각하고, 태평할 때에는 험난함이 닥칠 것을 생각하며, 편안할 때에는 위험이 올 것을 생각하고, 굽었을 때에는 바르게 하기를 생각한다. 그래서 곡진하고 신중하게 미리 대비하여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있을까 걱정한다. 이 때문에 온갖 일을 처리하여도 결함이 없는 것이다.

2. 知命者不惑

楊子曰:「事之可以之貧,可以之富者,其傷行者也;事之可以之生,可以之死者,其傷勇者也。」僕子曰:「楊子智而不知命,故其知多疑,語曰:『知命者不惑。』晏嬰是也。」

楊子가 말했다. “어떤 일이 사람을 가난하게도 할 수 있고 부유하게도 할 수 있는 경우는 사람의 품행을 손상시키고, 어떤 일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경우는 용기를 손상시킨다.”

僕子가 말했다. “양자는 지혜로우나 天命을 알지 못한다. 그 때문에 그의 지혜는 의심스러운 점이 많다.” 옛말에 “천명을 아는 사람은 미혹되지 않는다.” 하였으니, 晏嬰이 이런 사람일 것이다.

3. 刳胎焚夭,則麒麟不至;乾澤而漁,蛟龍不遊;覆巢毀卵,則鳳凰不翔。

趙簡子曰:「晉有澤鳴、犢●,魯有孔丘,吾殺此三人,則天下可圖也。」於是乃召澤鳴、犢●,任之以政而殺之。使人聘孔子於魯。孔子至河,臨水而觀曰:「美哉水!洋洋乎!丘之不濟於此,命也夫!」子路趨進曰:「敢問奚謂也?」孔子曰:「夫澤鳴、犢●,晉國之賢大夫也。趙簡子之未得志也,與之同聞見,及其得志也,殺之而後從政,故丘聞之:刳胎焚夭,則麒麟不至;乾澤而漁,蛟龍不遊;覆巢毀卵,則鳳凰不翔。丘聞之:君子重傷其類者也。」

趙簡子가 말했다. “나라에는 澤鳴犢犨가 있고 나라에는 孔丘가 있으니, 내가 이 세 사람을 죽이면 천하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택명과 독주를 불러 정치를 맡겼다가 살해하고, 나라에 사람을 보내 공자를 초빙하였다. 공자가 황하에 이르러 물가에 나아가 흘러가는 물을 보면서 말씀하였다. “아름답구나. 물이여! 넘실넘실 넓게 흐르는구나. 내가 이 물을 건너가지 못하는 것은 天命일 것이다.”

子路가 달려와서 물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감히 묻습니다.”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택명과 독주는 진나라의 賢大夫이다. 조간자가 뜻을 얻기 전에는 그들과 함께 政事를 듣고 처리하였는데, 뜻을 얻고 나서는 그들을 죽인 뒤에 정사를 처리하였다. 그래서 내가 들으니, 새끼 밴 짐승의 배를 갈라 胎를 꺼내고 어린 짐승 새끼를 불에 구우면 麒麟이 오지 않고, 연못의 물을 말린 다음 물고기를 잡으면 蛟龍이 헤엄치지 않으며, 새 둥지를 엎어버리고 알을 깨뜨리면 鳳凰이 날아오지 않는다고 하였다. 내가 들으니, 君子同類가 불행을 당하면 매우 가슴 아파한다고 하였다.”

4.

孔子與齊景公坐,左右白曰:「周使來言廟燔。」齊景公出問曰:「何廟也?」孔子曰:「是釐王廟也。」景公曰:「何以知之?」孔子曰:「詩云:『皇皇上帝,其命不忒。』天之與人,必報有德,禍亦如之。夫釐王變文武之制而作玄黃宮室,輿馬奢侈,不可振也。故天殃其廟,是以知之。」景公曰:「天何不殃其身而殃其廟乎?」子曰:「天以文王之故也。若殃其身,文王之祀,無乃絕乎?故殃其廟以章其過也。」左右入報曰:「周釐王廟也。」景公大驚,起拜曰:「善哉!聖人之智,豈不大乎!」

5. 聖人之聽於無聲,視於無形

齊桓公與管仲謀伐莒,謀未發而聞於國。桓公怪之,以問管仲。管仲曰:「國必有聖人也。」桓公歎曰:「歖!日之役者,有執柘杵而上視者,意其是邪!」乃令復役,無得相代。少焉,東郭垂至。管仲曰:「此必是也。」乃令儐者延而進之,分級而立。管仲曰:「子言伐莒者也?」對曰:「然。」管仲曰:「我不言伐莒,子何故言伐莒?」對曰:「臣聞君子善謀,小人善意,臣竊意之也。」管仲曰:「我不言伐莒,子何以意之?」對曰:「臣聞君子有三色:優然喜樂者,鐘鼓之色;愀然清淨者,縗絰之色;勃然充滿者,此兵革之色也。日者,臣望君之在臺上也,勃然充滿,此兵革之色也,君吁而不吟,所言者莒也,君舉臂而指所當者莒也。臣竊慮小諸侯之未服者,其惟莒乎?臣故言之。」君子曰:「凡耳之聞,以聲也。今不聞其聲而以其容與臂,是東郭垂不以耳聽而聞也。桓公、管仲雖善謀,不能隱. 聖人之聽於無聲,視於無形,東郭垂有之矣。故桓公乃尊祿而禮之。」

齊 桓公管仲나라를 토벌할 일을 모의하여 아직 계획을 발표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국내에 소문이 나고 말았다. 환공이 괴이하게 여겨 관중에게 묻자, 관중이 대답했다. “나라 안에 필시 聖人이 있을 것입니다.”

환공이 탄식하며 말했다. “, 어느 날인가 服役하는 사람 중에 산뽕나무 공이를 들고 위에 올라 보는 사람이 있었는데, 혹시 이 사람인가?” 환공이 곧 다시 명령을 내려 그때 노역하던 사람들이 다시 와 복역하되 서로 교대함이 없도록 했는데, 조금 뒤에 東郭垂가 당도하였다.

관중이 말했다. “필시 이 사람일 것입니다.”儐者를 시켜 그를 맞이해 나오게 하여 계단을 나누어 따로 섰다. 관중이 말했다. “그대가 거나라를 토벌할 것이라고 말한 사람이오?” 동곽수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관중이 말했다. “내가 거나라를 토벌한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그대는 무슨 까닭으로 거나라를 토벌할 것이라 말했소?” 동곽수가 대답했다. “저는 듣건대, 君子는 계책을 잘 세우고 小人은 남의 뜻을 잘 이해한다고 하니, 저는 삼가 이렇게 이해하였습니다.”

관중이 말했다. “나는 거나라를 토벌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그대는 어떻게 이를 이해하였소?”

동곽수가 대답했다. “저는 듣건대 군자는 세 가지 표정의 顔色이 있다고 하니, 여유롭게 기쁘고 즐거워하는 표정은 音樂을 감상할 때의 안색이고, 슬프고 청정한 표정은 을 당해 喪服을 입었을 때의 안색이며, 발끈 노한 감정이 충만한 표정은 바로 戰爭을 하려는 안색입니다.

전일에 제가 누대 위에 있는 君主를 바라보았는데, 발끈 노한 감정이 충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이는 전쟁을 하려는 안색입니다. 주군께서 아! 하고 탄식하면서 입을 다물지 않은 것은 거나라를 말한 것이고, 주군께서 팔을 들어 가리킨 것은 거나라에 해당합니다. 제가 삼가 생각해보니, 작은 제후국 중에 臣服하지 않는 나라는 단지 거나라뿐입니다. 저는 그 때문에 거나라를 토벌할 거라고 말한 것입니다.”君子가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귀가 듣는 것은 소리인데, 지금 그 소리를 듣지 않고 그의 안색과 팔의 동작에 의거하였으니, 이는 동곽수가 귀로 듣지 않고 실정을 안 것이다. 환공과 관중이 계책을 잘 세웠지만 이를 숨기지 못하였다. 성인이 소리 없는 데에서 들으며, 형체 없는 데에서 보는 것을 동곽수가 소유하였다. 그러므로 환공이 마침내 높은 녹봉을 주어 예우하였다.”

6.

晉太史屠餘見晉國之亂,見晉平公之驕而無德義也,以其國法歸周。周威公見而問焉,曰:「天下之國,其孰先亡。」對曰:「晉先亡。」威公問其說。對曰:「臣不敢直言,示晉公以天妖,日月星辰之行多不當,曰:『是何能然?』示以人事多義,百姓多怨,曰:『 是何傷?』示以鄰國不服,賢良不與,曰:『是何害?』是不知所以存,所以亡。故臣曰:『晉先亡。』居三年,晉果亡。威公又見屠餘而問焉。曰:「孰次之。」對曰:「中山次之。」威公問其故。對曰:「天生民,令有辨,有辨,人之義也。所以異於禽獸麋鹿也,君臣上下所以立也。中山之俗,以晝為夜,以夜繼日,男女切踦,固無休息,淫昏康樂,歌謳好悲,其主弗知惡,此亡國之風也。臣故曰:『 中山次之。』居二年,中山果亡。威公又見屠餘而問曰:「孰次之。」屠餘不對。威公固請。屠餘曰:「君次之。」威公懼,求國之長者,得錡疇、田邑而禮之,又得史理、趙巽以為諫臣,去苛令三十九物,以告屠餘。屠餘曰:「其尚終君之身。臣聞國之興也,天遺之賢人,與之極諫之士;國之亡也,天與之亂人與善諛者。」威公薨,九月不得葬。周乃分而為二,故有道者言,不可不重也。

7.

齊侯問於晏子曰:「當今之時,諸侯孰危?」對曰:「莒其亡乎?」公曰:「奚故?」對曰:「地侵於齊,貨竭於晉,是以亡也。」

8. 韓魏之君必反

智伯從韓、魏之兵以攻趙,圍晉陽之城而溉之,城不沒者三板。絺疵謂智伯曰:「韓魏之君必反矣。」智伯曰:「何以知之?」對曰:「夫勝趙而三分其地,今城未沒者三板,臼灶生,人馬相食,城降有日矣。而韓、魏之君無喜志而有憂色,是非反何也?」明日,智伯謂韓、魏之君曰:「疵言君之反也。」韓、魏之君曰:「必勝趙而三分其地,今城將勝矣。夫二家雖愚,不棄美利而偝約為難不可成之事,其勢可見也。是疵必為趙說君,且使君疑二主之心,而解於攻趙也。今君聽讒臣之言而離二主之交,為君惜之。」智伯出,欲殺絺疵,絺疵逃。韓、魏之君果反。

智伯(康子)(宣子)의 군대를 거느리고 (襄子)를 공격하여 晉陽城을 포위하고 물을 대어 성이 잠기게 하니, 잠기지 않은 성의 높이가 3뿐이었다絺疵가 지백에게 말했다. “위의 주군은 반드시 배반할 것입니다.” 

지백이 말했다. “어떻게 그걸 아느냐?” 치자가 대답했다. “(양자)를 이기고 그 땅을 셋으로 나누기로 했었는데, 지금 잠기지 않은 성의 높이가 3정도입니다. 아궁이가 물에 잠겨개구리가 새끼를 낳고 사람들이 말을 서로 잡아먹고 있으니, 성이 항복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위의 주군은 기뻐하는 마음은 없고 근심하는 기색이 있으니, 이것이 배반하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튿날 지백이 한위의 주군에게 말했다. “치자가 그대들이 배반할 것이라고 말하였소.”

이에 한위의 주군이 말했다. “반드시 조씨를 이기고 그의 땅을 셋으로 나눠 갖기로 했었는데, 지금 성을 공격하여 거의 승리하였소. 우리 두 사람이 어리석기는 하지만, 盟約을 위배하여 좋은 이익을 버리고 이룰 수 없는 어려운 일을 해서는 안 되는 형세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소. 이는 치자가 틀림없이 조씨를 위해 그대에게 遊說한 것이요. 또 그대로 하여금 우리 두 사람을 의심하게 하여 조씨를 공격하는 일을 해이하게 하려는 것이오. 지금 그대가 참소하는 신하의 말을 듣고서 우리 두 사람의 交情을 이간하려고 하니, 그대를 위해 애석하게 생각하오.”

지백이 나가 치자를 죽이려 하니 치자는 달아났고, 위의 주군은 정말 배반하였다.

9. 至祭而亡其牲,則餘所亡者多矣。吾以此知其將亡矣。

魯公索氏將祭而亡其牲。孔子聞之,曰:「公索氏比及三年必亡矣。」後一年而亡。弟子問曰:「昔公索氏亡牲,夫子曰:『比及三年必亡矣。』今期年而亡。夫子何以知其將亡也。」孔子曰:「祭之為言索也,索也者盡也,乃孝子所以自盡於親也。至祭而亡其牲,則餘所亡者多矣。吾以此知其將亡矣。

나라의 公索氏가 제사를 지내려 할 때 제사에 쓸 희생을 잃었다. 孔子께서 그 일을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공색씨는 3년쯤 되어 반드시 망할 것이다.”그 뒤 1년 만에 망하였다.

제자가 물었다. “종전에 공색씨가 희생을 잃었을 때 선생님께서 ‘3년쯤 되어 반드시 망할 것이다.’ 하셨는데 지금 1년 만에 망하였으니,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그가 망할 줄을 아셨습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의 뜻이다. 은 다한다는 말이니, 孝子가 부모에게 스스로 효도를 다하는 것이다. 그런데 제사 때가 되어 그 희생을 잃었다면 그 외에도 잃은 것이 많을 것이니, 나는 이것으로 그가 장차 망할 줄을 알았노라.”

10.

蔡侯、宋公、鄭伯朝於晉。蔡侯謂叔向曰:「子亦奚以語我?」對曰:「蔡言地計眾,不若宋鄭。其車馬衣裘侈於二國,諸侯其有圖蔡者乎?」處期年,荊伐蔡而殘之。

11. 國有五盡

白圭之中山,中山王欲留之,固辭而去。又之齊,齊王亦欲留之,又辭而去,人問其辭。白圭曰:「二國將亡矣。所學者國有五盡,故莫之必忠,則言盡矣;莫之必譽,則名盡矣;莫之必愛,則親盡矣;行者無糧,居者無食,則財盡矣;不能用人又不能自用,則功盡矣;國有此五者,毋幸,必亡。中山與齊皆當此。若使中山之與齊也,聞五盡而更之,則必不亡也,其患在不聞也,雖聞又不信也。然則人主之務,在善聽而已矣。」

白圭中山國에 가니, 中山王이 그를 머물러 있게 하려고 하였으나 굳이 거절하고 떠났다. 나라에 가니, 齊王도 그를 머물러 있게 하려고 하였으나 굳이 거절하고 떠나니, 어떤 이가 그에게 거절한 이유를 물었다.

이에 백규가 대답하였다. “두 나라는 장차 망할 것이다. 내가 배운 바로 본다면, 나라에는 다섯 가지 다하여 없어지는 정황이 있다. 반드시 충성하는 사람이 없으면 忠言이 다하여 없어지고, 반드시 명예를 세워주는 일이 없으면 名聲을 이루려는 이가 다하여 없어지며, 반드시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지 않으면 친근한 사람이 다하여 없어지고, 길을 가는 사람에게 양식이 없고 거주하는 사람에게 음식이 없으면 재물이 다하여 없어지며, 능력 있는 사람을 등용하지 못하고 자신의 재능도 쓰지 못하면 功業이 다하여 없어지게 된다. 나라에 이 다섯 가지 정황이 있으면 요행으로 멸망을 면하지 못하여 반드시 멸망할 것이니, 중산국과 제나라가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만일 중산국과 제나라가 이 다섯 가지 다하여 없어지는 정황을 듣고서 고치면 반드시 멸망하지 않겠지만, 그들의 병폐는 이 다섯 가지 다하여 없어지는 정황을 들으려 하지 않는 데 있고, 듣더라도 또 믿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임금의 일은 옳은 말을 잘 듣는 데 있을 뿐이다.

12. 言之者行之役也,行之者言之主也。

下蔡威公閉門而哭,三日三夜,泣盡而繼以血,旁鄰窺牆而問之。曰:「子何故而哭,悲若此乎?」對曰:「吾國且亡。」曰:「何以知也?」應之曰:「吾聞病之將死也,不可為良醫;國之將亡也,不可為計謀;吾數諫吾君,吾君不用,是以知國之將亡也。」於是窺牆者聞其言,則舉宗而去之楚。居數年,楚王果舉兵伐蔡。窺牆者為司馬,將兵而往來,虜甚眾。問曰:「得無有昆弟故人乎?」見威公縛在虜中,問曰:「若何以至於此?」應曰:「吾何以不至於此?且吾聞之也,言之者行之役也,行之者言之主也。汝能行我言,汝為主,我為役,吾亦何以不至於此哉?」窺牆者乃言之於楚王,遂解其縛,與俱之楚。故曰:「能言者未必能行,能行者未必能言。」

下蔡威公이 문을 닫고 사흘 밤낮을 울어 눈물이 다 말라버리자 뒤를 이어 피가 흘러내리니, 이웃에 사는 사람이 담 너머에서 이를 살펴보고 물었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이처럼 슬프게 을 하고 있소?”

위공이 대답하였다. “우리나라는 장차 망할 것이오.”이웃 사람이 말했다. “어떻게 아시오?”

위공이 응답하였다. “나는 들으니, 병이 깊어 죽게 되었을 때에는 良醫도 치료할 수가 없고, 나라가 장차 망하게 되었을 적에는 어떤 계책으로도 구할 수 없다 하였소. 내가 여러 차례 우리 임금께 諫言을 올렸으나, 우리 임금은 내 말을 쓰지 않았소. 이 때문에 우리나라가 장차 망할 것을 아는 것이오.”

이에 담 너머에서 살펴보던 사람이 그 말을 듣고 온 종족을 거느리고 채나라를 떠나 나라로 갔다. 몇 년이 지난 뒤에 楚王은 과연 군대를 일으켜 채나라를 토벌하였다. 담 너머에서 살펴보던 사람이 司馬가 되어 군대를 거느리고 채나라에 가서 사로잡은 포로가 매우 많았다그가 포로에게 물었다. “포로 중에 혹시 나의 형제나 친구는 없소?” 위공이 결박당한 채 포로들 속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물었다. “그대는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소?”

위공이 대답하였다. “내 어찌 이 지경에 이르지 않을 수 있겠소? 또 나는 들으니 말로 하는 사람은 실행하는 사람의 奴僕이고, 실행하는 사람은 말로 하는 사람의 主人이라 하였소. 그대는 실행을 잘하고 나는 말만 잘했으니, 그대는 주인이 되고 나는 노복이 된 것이오. 내가 또한 어찌 이 지경에 이르지 않을 수 있겠소?”

담 너머에서 살펴보던 사람이 초왕에게 말하여 마침내 그의 결박을 풀어주고 함께 초나라로 갔다. 그러므로 나(劉向)는 말한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실행을 잘하는 것은 아니고, 실행을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13. 豎刁易牙乃作難

管仲有疾,桓公往問之,曰:「仲父若棄寡人,豎刁可使從政乎?」對曰:「不可。豎刁自刑以求入君,其身之忍,將何有於君。」公曰:「然則易牙可乎?」對曰:「易牙解其子以食君,其子之忍,將何有於君,若用之必為諸侯笑。」及桓公歿,豎刁易牙乃作難。桓公死六十日,蟲出於戶而不收。

管仲의 병이 위중할 때, 桓公이 방문하여 問病하고 물었다. “仲父께서 만일 과인을 버리고 죽는다면, 豎刁에게 政事를 처리하게 해도 되겠소?” 관중이 대답했다. “안 됩니다. 수조는 제 스스로 宮刑을 가하여 궁궐에 들어가 임금에게 모시기를 구하였으니, 자기 몸도 차마 훼손하였다면 장차 임금에게 무슨 일인들 어려워하겠습니까?”

환공이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易牙는 될 수 있겠소?” 관중이 대답하였다. “역아는 자기 아들의 사지를 해체하여 임금에게 먹였으니, 자기 아들을 차마 이렇게 죽였다면 장차 임금에게 무슨 일인들 어려워하겠습니까? 만일 이들을 등용하시면 반드시 제후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환공이 죽은 뒤에 수조와 역아가 난을 일으키니, 환공이 죽은 지 60일이나 되어 시신에서 생긴 구더기가 문밖으로 나오도록 시체를 거두어 장례를 치르는 사람이 없었다.

石乞侍坐於屈建。屈建曰:「白公其為亂乎?」石乞曰:「是何言也?白公至於室無營所,下士者三人與己相若,臣者五人,所與同衣者千人。白公之行若此,何故為亂?」屈建曰:「此建之所謂亂也。以君子行,則可於國家行。過禮則國家疑之,且苟不難下其臣,必不難高其君矣。建是以知夫子將為亂也。」處十月,白公果為亂。

15. 昭侯不出此門

韓昭侯造作高門。屈宜咎曰:「昭侯不出此門。」曰:「何也?」曰:「不時。吾所謂不時者,非時日也。人固有利不利,昭侯嘗利矣,不作高門。往年秦拔宜陽,明年大旱民飢,不以此時恤民之急也,而顧反益奢,此所謂福不重至,禍必重來者也!」高門成,昭侯卒。竟不出此門。

韓 昭侯가 높고 큰 宮門을 짓자, 屈宜咎가 말했다. “昭侯는 이 문을 나오지 못할 것이다.” 어떤 이가 물었다. “무엇 때문이오?”

굴의구가 대답했다. “때에 맞지 않으니, 내가 말하는 때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時日을 말하는 것이 아니오. 사람은 본디 이로운 때와 이롭지 못한 때가 있는 법인데, 소후가 일찍이 이로울 때에는 높고 큰 궁문을 짓지 않았소. 전년에는 나라가 宜陽을 함락시켰고, 그 이듬해에는 큰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게 되었소. 그런데 이런 때에 백성을 구휼하는 정사를 먼저 하지 않고 도리어 더욱 사치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복은 거듭 오지 않고, 재앙은 반드시 거듭 온다.’는 것이오.”

높고 큰 궁문이 완성되었을 때, 소후가 죽어서 끝내 이 문을 나가지 못하였다.

16.

田子顏自大術至乎平陵城下,見人子問其父,見人父問其子。田子方曰:「其以平陵反乎?吾聞行於內,然後施於外。外顏欲使其眾甚矣。」後果以平陵叛。

17.

晉人已勝智氏,歸而繕甲砥兵。楚王恐,召梁公弘曰:「晉人已勝智氏矣。歸而繕甲兵,其以我為事乎?」梁公曰:「不患,害其在吳乎?夫吳君恤民而同其勞,使其民重上之令,而人輕其死以從上,使如虜之戰,臣登山以望之,見其用百姓之信,必也勿已乎?其備之若何?」不聽,明年,闔廬襲郢。

18. 「陳可伐也。夫陳,小國也,而蓄積多,蓄積多則賦斂重,賦斂重則民怨上矣。城郭高,溝壑深,則民力罷矣。

楚莊王欲伐陳,使人視之。使者曰:「陳不可伐也。」莊王曰:「何故?」對曰:「其城郭高,溝壑深,蓄積多,其國寧也。」王曰:「陳可伐也。夫陳,小國也,而蓄積多,蓄積多則賦斂重,賦斂重則民怨上矣。城郭高,溝壑深,則民力罷矣。」興兵伐之,遂取陳。

楚 莊王나라를 정벌하려고 사람을 파견해 정황을 살펴보게 하였다. 使者가 돌아와 보고하였다. “나라는 정벌할 수가 없습니다.” 莊王이 물었다. “무슨 이유인가?” 사자가 대답했다. “진나라는 성곽이 높고 해자가 깊으며, 쌓아둔 재물이 많고 나라가 평안하였습니다.”

장왕은 말했다. 진나라는 정벌할 수가 있겠다. 진나라는 작은 나라인데 쌓아둔 재물이 많다 하니, 쌓아둔 재물이 많으면 세금을 많이 거두었을 것이고, 세금을 많이 거두었으면 백성이 윗사람을 원망할 것이며, 성곽이 높고 해자가 깊으면 백성의 힘이 피폐해졌을 것이다.”

초 장왕이 군대를 일으켜 토벌하여 마침내 진나라를 취하였다.

19.

石益謂孫伯曰:「吳將亡矣!吾子亦知之乎?」孫伯曰:「晚矣,子之知之也。吾何為不知?」石益曰:「然則子何不以諫?」孫伯曰:「昔桀罪諫者,紂焚聖人,剖王子比干之心。袁氏之婦,絡而失其紀,其妾告之,怒棄之。夫亡者,豈斯人知其過哉?」

20. 曲其,遠其積薪,不者將有火患。[곡돌사신(曲突徙薪)]

孝宣皇帝之時,霍氏奢靡,茂陵徐先生曰:「霍氏必亡。夫在人之右而奢,亡之道也。孔子曰:『奢則不遜。』夫不遜者必侮上,侮上者,逆之道也。出人之右,人必害之。今霍氏秉權,天下之人疾害之者多矣。夫天下害之而又以逆道行之,不亡何待?」乃上書言霍氏奢靡,陛下即愛之,宜以時抑制,無使至於亡。書三上,輒報:「聞。」其後霍氏果滅。董忠等以其功封。人有為徐先生上書者,曰:「 臣聞客有過主人者,見灶直,傍有積薪。客謂主人曰:『曲其,遠其積薪,不者將有火患。』主人默然不應,居無幾何,家果失火。鄉聚里中人哀而救之,火幸息。於是殺牛置酒,燔髮灼爛者在上行,餘各用功次坐,而反不錄言曲者。向使主人聽客之言,不費牛酒,終無火患。今茂陵徐福數上書言霍氏且有變,宜防絕之。向使福說得行,則無裂地出爵之費,而國安平自如。今往事既已,而福獨不得與其功,惟陛下察客徙薪曲之策,而使居燔髮灼爛之右。」書奏,上使人賜徐福帛十匹,拜為郎。

孝宣皇帝 霍氏들이 사치하여 재물을 낭비하니, 茂陵 사람 徐先生이 말했다. “곽씨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 남보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사치하는 것은 멸망하는 길이다. 孔子께서는 ‘사치하면 겸손하지 못하다.’고 하셨다. 겸손하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윗사람을 업신여기고,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은 반역하는 길이다. 남보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 남들이 반드시 謀害하게 된다지금 곽씨가 집권하고 있으니, 천하에 질투하여 모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천하 사람들이 모해하려 할 텐데, 게다가 또 반역하는 도리를 행하면 멸망하지 않고 무엇을 기다리겠는가!”

그러고는 이내 上書하여 말했다. “곽씨가 사치하여 재물을 낭비하니, 폐하께서 만일 이들을 사랑하신다면 때때로 억제하시어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하셔야 마땅합니다.” 세 차례 상소를 올리자 그때마다 알겠다.”批答을 내렸다. 뒤에 곽씨는 정말 멸망하였다.

董忠 등은 그 으로 에 봉하여지니, 어떤 사람이 서선생을 위해 上書하여 말했다. “은 들으니, 어떤 나그네가 주인집을 지나게 되었는데 부엌의 구들이 곧게 만들어져 있는 데다가 곁에 땔나무를 쌓아놓은 것을 보고 나그네가 주인에게 ‘구들을 굽게 만들고 쌓아놓은 땔나무를 멀리 옮기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장차 화재가 일어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그러나 주인은 잠자코 있으면서 응하지 않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집에 정말 불이 나고 말았습니다. 마을의 이웃 사람들이 안타깝게 여겨 모두 도와 함께 불을 꺼서 다행히 불이 꺼졌습니다. 이에 주인은 소를 잡아 술자리를 마련하고 마을 사람들을 대접할 적에 머리카락이 타고 이마를 데인 자들은 윗줄에 앉히고, 나머지 사람들은 각기 공에 따라 차례대로 앉혔습니다. 그러나 구들을 굽게 만들라고 조언한 사람은 도리어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지난번에 주인이 나그네의 조언을 들었더라면 소와 술을 허비하지 않았을 것이고, 끝내 화재가 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무릉 사람 徐福이 여러 차례 상서하여 곽씨가 장차 변란을 일으킬 것이니, 미리 방비하여 이를 단절함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만일 지난번에 서복의 말을 시행했더라면 땅을 分封하고 爵位를 주는 비용이 들지 않고 나라도 예전처럼 평안하였을 것입니다. 지금 지나간 일은 그만이지만 서복만 그 공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폐하께서는 섶나무를 멀리 옮기고 구들을 굽게 만들라고 권유했던 나그네의 계책을 살피시어 머리카락을 태우고 이마를 데인 사람들의 윗자리에 앉게 하십시오.

상소를 올리자, 황제가 사람을 보내 서복에게 비단 열 을 하사하고 郎官에 임명하였다.

21.

齊桓公將伐山戎、孤竹,使人請助於魯。魯君進群臣而謀,皆曰:「師行數十里,入蠻夷之地,必不反矣。」於是魯許助之而不行。齊已伐山戎、孤竹,而欲移兵於魯。管仲曰:「不可。諸侯未親,今又伐遠而還誅近鄰,鄰國不親,非霸王之道,君之所得山戎之寶器者,中國之所鮮也,不可不進周公之廟乎?」桓公乃分山戎之寶,獻之周公之廟。明年起兵伐莒。魯下令丁男悉發,五尺童子皆至。孔子曰:「聖人轉禍為福,報怨以德。」此之謂也。

22. 是不非吾過者也,自容於我者也。吾恐其以我求容也

中行文子出亡至邊,從者曰:「為此嗇夫者君人也,胡不休焉,且待後車者。」文子曰:「異日吾好音,此子遺吾琴,吾好佩,又遺吾玉,是不非吾過者也,自容於我者也。吾恐其以我求容也,遂不入。」後車入門,文子問嗇夫之所在,執而殺之。仲尼聞之,曰:「中行文子背道失義以亡其國,然後得之,猶活其身,道不可遺也,若此。」

中行文子가 도망쳐서 변경에 당도하니, 從者가 말했다. “이곳의 嗇夫主君의 사람이니, 어찌 이곳에서 쉬지 않으십니까? 우선 뒤에 오는 수레를 기다리십시오.”

중항문자가 말했다. “이전에 내가 음악을 좋아했을 적에는 이 사람이 나에게 을 주었고, 내가 佩玉을 좋아했을 적에는 또 을 주었다. 그러니 이 사람은 나의 잘못을 지적하는 자가 아니고, 나에게 자신을 잘 보이려는 자이다. 나는 그가 나를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 할까 걱정스럽다.” 그러고는 마침내 들어가지 않았다. 뒤에 오는 수레가 문에 진입하자, 중항문자가 색부가 있는 곳을 물어서 그를 잡아 죽였다.

孔子께서 이 사건을 들으시고 말씀하였다. “중항문자가 도덕을 위배하고 恩義를 상실하여 나라에서 도망치고 난 뒤에 도리를 터득하여 도리어 자신의 몸을 살렸으니, 이처럼 도리를 버려서는 안 된다.”

23. 昔者夏桀,殷紂不任其過故亡;成湯、文武知任其過故興

衛靈公襜被以與婦人遊,子貢見公。公曰:「衛其亡乎?」對曰:「昔者夏桀,殷紂不任其過故亡;成湯、文武知任其過故興,衛奚其亡也?」

衛 靈公襜被를 입고 부인들과 놀고 있었다. 子貢이 영공을 알현하자 영공이 물었다. “위나라가 망할까요?”

자공이 대답했다. “예전에 夏나라 桀과 殷나라 紂는 자기의 잘못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망하였고, 成湯과 文王‧武王은 자기의 잘못을 받아들일 줄 알았기 때문에 興盛하였습니다. 위나라가 어찌 망할 수 있겠습니까.”

24. 彼無故而請地者,無故而與之,是重欲無厭也

智伯請地於魏宣子,宣子不與。任增曰:「何為不與?」宣子曰:「彼無故而請地,吾是以不與。」任增曰:「彼無故而請地者,無故而與之,是重欲無厭也。彼喜,必又請地於諸侯,諸侯不與,必怒而伐之。」宣子曰:「善。」遂與地。智伯喜,又請地於趙,趙不與,智伯怒,圍晉陽。韓、魏合趙而反智氏,智氏遂滅。

智伯魏宣子에게 땅을 나누어달라고 요청하자, 宣子가 주지 않았다. 任增이 말했다. “무엇 때문에 주지 않으십니까?” 위선자가 말했다. “저자가 아무 까닭 없이 땅을 나누어달라고 요청하니, 내가 이 때문에 주지 않는 것이다.”

임증이 말했다. 저자가 아무 까닭 없이 땅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하였으니, 아무 까닭 없이 땅을 주면, 이는 그의 만족함이 없는 탐욕을 가중시키는 것입니다. 땅을 주면 저자는 기뻐하여 틀림없이 또 제후들에게 땅을 요청할 것이고, 제후들이 주지 않으면 반드시 노하여 토벌할 것입니다.”

위선자가 좋은 말이다.” 하고는 마침내 지백에게 땅을 주었다. 지백이 기뻐하여 또다시 (襄子)에게 땅을 나누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조(양자)가 주지 않으니, 지백이 노하여 晉陽을 포위하였다. (康子)과 위(선자)가 조(양자)와 연합하여 智氏를 배반하니, 지씨는 마침내 멸망하였다.

25.

楚莊王與晉戰,勝之,懼諸侯之畏己也,乃築為五仞之臺,臺成而觴諸侯,諸侯請約。莊王曰:「我薄德之人也。」諸侯請為觴。乃仰而曰:「將將之臺,窅窅其謀,我言而不當,諸侯伐之。」於是遠者來朝,近者入賓。

26. 夫差先自敗己,焉能敗我

吳王夫差破越,又將伐陳。楚大夫皆懼,曰:「昔闔廬能用其眾,故破我於柏舉。今聞夫差又甚焉。」子西曰:「二三子,恤不相睦也,無患吳矣,昔闔廬食不貳味,處不重席,擇不取費。在國,天有災,親戚乏困而供之;在軍,食熟者半而後食。其所嘗者,卒乘必與焉。是以民不罷勞,死知不曠。今夫差,次有臺榭陂池焉;宿有妃嬙嬪御焉。一日之行,所欲必成,玩好必從,珍異是聚,夫差先自敗己,焉能敗我?」

吳王 夫差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또 나라를 토벌하려고 하니, 나라 大夫들이 모두 두려워하여 말했다. “예전에 闔廬는 군대를 잘 운용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를 柏擧에서 패배시켰는데, 지금 듣자니, 그 아들 부차는 그보다 더욱 심하다고 한다.”

子西가 말했다. “그대들은 서로 화목하지 못함을 걱정하고 나라를 걱정하지 마시오. 예전에 합려는 밥을 먹을 때 두 가지 반찬을 먹지 않고, 거처할 때 자리를 겹으로 깔지 않았으며, 의복과 用具실용적인 것을 선택하고 화려한 것을 숭상하지 않았소.

나라 안에 있을 때에는 하늘이 재앙을 내리면 친히 곤궁한 사람들을 巡視하여 부족한 물품을 공급하고, 軍中에 있을 때에는 반수 이상의 병사들이 음식을 먹은 뒤에 먹었으며, 그가 맛본 음식을 병사들도 반드시 맛보게 하였소. 이 때문에 백성들이 피로하게 여기지 않고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을 알았소.

지금 부차는 3일 이상 머무는 곳에는 누대와 연못을 두고 잠자리에는 妃嬪이 모시며, 하루 동안의 출행에도 원하는 것을 반드시 이루고, 玩好品을 반드시 따라오게 하며 진기한 물건들을 모으고 있다고 하오. 저 부차는 자기가 먼저 패망할 것이니, 어찌 우리를 패망시킬 수 있겠소?”

27.

越破吳,請師於楚以伐晉。楚王與大夫皆懼,將許之。左史倚相曰:「此恐吾攻己,故示我不病。請為長轂千乘,卒三萬,與分吳地也。」莊王聽之,遂取東國。

28. 魯免其疾,而君又收之,毋乃害乎

陽虎為難於魯,走之齊,請師於魯,齊侯許之。鮑文子曰:「不可也。陽虎欲齊師破,齊師破,大臣必多死,於是欲奮其詐謀。夫虎有寵於季氏而將殺季孫,以不利魯國而容其求焉。今君富於季氏而大於魯國,茲陽虎所欲傾覆也。魯免其疾,而君又收之,毋乃害乎?」齊君乃執之,免而奔晉。

陽虎나라에서 난을 일으키고 달아나 나라로 가서 齊侯에게 出兵하여 노나라를 토벌하자고 요청하자, 제후가 허락하려 하였다그러자 鮑文子가 말했다. “안 됩니다. 양호는 우리 제나라 군대를 격파하려는 것입니다. 우리 제나라 군대가 격파되면 반드시 많은 大臣이 죽을 것이니, 이때에 그의 간사한 계책을 펼치려는 것입니다. 저 양호는 季氏에게 총애를 입었으면서도 季孫을 죽여서 노나라에 害惡[不利]을 끼치려 하다가 제나라에 와서용납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지금 임금께서는 계씨보다 부유하시고 제나라는 노나라보다 크니, 이것이 陽虎가 제나라를 傾覆시키려고 하는 원인입니다. 노나라는 양호의 재난[]에서 벗어났는데, 임금께서 도리어 그를 거두신다면 어찌 해로움이 없겠습니까?” 齊君이 곧 양호를 잡았는데, 빠져나와 나라로 달아났다.

29. 請阻乏貢職以觀其動

湯欲伐桀。伊尹曰:「請阻乏貢職以觀其動。」桀怒,起九夷之師以伐之。伊尹曰:「未可。彼尚猶能起九夷之師,是罪在我也。」湯乃謝罪請服,復入貢職。明年,又不供貢職。桀怒,起九夷之師,九夷之師不起。伊尹曰:「可矣。」湯乃興師,伐而殘之。遷桀南巢氏焉。

湯王夏桀을 치려고 하자, 伊尹이 말했다. “桀에게 바치는 貢物을 정지시켜서 그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관찰하십시오.그러자 걸이 노하여 九夷의 군대를 일으켜 토벌하러 왔다이에 이윤이 말했다. “아직 안 되겠습니다. 저 걸이 아직 구이의 군대를 일으키니, 잘못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탕왕이 곧 謝罪하고서 歸復하기를 청하고 다시 공물을 바쳤다. 이듬해에 다시 공물을 바치지 않자, 걸이 노하여 구이의 군대를 일으키려 하였으나 구이의 군대가 출병하지 않았다이에 이윤이 말했다. “이제 되었습니다.” 탕왕이 마침내 군대를 일으켜 걸을 토벌하여 나라를 殘滅시키고 걸을 南巢氏의 지역으로 放逐[]하였다.

30. 故武王順天地,犯三妖而禽紂於牧野,其所獨見者精也。

武王伐紂,過隧斬岸,過水折舟,過谷發梁,過山焚萊,示民無返志也。至於有戎之隧,大風折。散宜生諫曰:「此其妖歟?」武王曰:「非也。天落兵也。」風霽而乘以大雨,水平地而嗇。散宜生又諫曰:「此其妖歟?」武王曰:「非也,天灑兵也。」卜而龜熸。散宜生又諫曰:「此其妖歟?」武王曰:「不利以禱祠,利以擊眾,是熸之已。」故武王順天地,犯三妖而禽紂於牧野,其所獨見者精也。

武王殷紂를 토벌할 적에 통로를 통과하면 언덕을 깎아 길을 메우고, 물을 통과하면 배를 부수고, 골짜기를 통과하면 다리를 끊어버리고, 산을 통과하면 萊草를 불태워 없애 백성들에게 승리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올 뜻이 없음을 보였다.

有戎 지역의 통로에 당도했을 때 大風이 불어 旗幟를 부러뜨리니, 散宜生하였다. “이것은 아마 상서롭지 못한 징조일 듯합니다.” 무왕이 말했다. “아니오. 하늘이 군대를 내려주는 것이오.” 바람이 멎고 이어서 큰비가 내려 물이 땅에 두루 흘러 길이 막히니, 산의생이 또 간하였다. “이는 아마 상서롭지 못한 징조일 듯합니다.” 무왕이 말했다. “아니오. 하늘이 무기를 씻어주는 것이오.” 점을 쳐서 거북 등딱지를 불에 지지는데 불이 꺼지자, 산의생이 또 간하였다. “이는 아마 상서롭지 못한 징조일 듯합니다.” 무왕이 말했다. “제사하여 기도하는 일은 不利하고, 적의 군대를 공격하는 일은 이로우니, 이것이 불이 꺼진 뜻이오.”

그러므로 무왕이 천지의 뜻에 순응하고 세 가지 상서롭지 못한 징조를 범하면서 牧野에서 殷紂를 사로잡았으니, 그만의 독특한 견해가 精深하다.

31. 「雍季之言,百世之謀也;咎犯之言,一時之權也

晉文公與荊人戰於城濮,君問於咎犯。咎犯對曰:「服義之君,不足於信;服戰之君,不足於詐,詐之而已矣。」君問於雍季,雍季對曰:「焚林而田,得獸雖多,而明年無復也;乾澤而漁,得魚雖多,而明年無復也。詐猶可以偷利,而後無報。」遂與荊軍戰,大敗之。及賞,先雍季而後咎犯。侍者曰:「城濮之戰,咎犯之謀也!」君曰:「雍季之言,百世之謀也;咎犯之言,一時之權也,寡人既行之矣。」

晉 文公()나라 사람과 城濮에서 전쟁할 적에 문공이 咎犯에게 계책을 묻자, 구범이 대답했다. “正義를 마음에 두고 있는 임금은 信義 대비에 부족하고, 전쟁을 마음에 두고 있는 임금은 詐術 대비에 부족하니, 임금께서는 초나라에게 사술을 써야 될 뿐입니다.”

문공이 雍季에게 계책을 묻자, 옹계가 대답했다. “숲에 불을 질러 사냥을 하면 그때는 많은 짐승을 잡지만 다음해에는 다시 잡을 수 없고, 연못의 물을 마르게 하여 물고기를 잡으면 많은 물고기를 잡지만 다음해에는 다시 잡을 수 없습니다. 사술을 쓰면 그래도 구차하게 승리를 얻겠지만, 뒤에는 다시 좋은 보답이 없을 것입니다.”

마침내 초나라 군대와 전쟁하여 크게 패배시켰다. 공을 세운 사람에게 을 줄 적에 문공이 옹계에게 먼저 상을 주고 구범은 뒤에 상을 주니, 侍者가 말했다. “성복의 전쟁은 구범의 계책으로 승리한 것입니다.”

문공이 말했다. “옹계의 말은 百代를 전할 계책이고, 구범의 말은 한때 임시방편에 불과한 계책이니, 寡人이 이미 그렇게 상을 시행한 것이다.”

32. 彼在上,君在下,則君見天而荊王伏其罪也

城濮之戰,文公謂咎犯曰:「吾卜戰而龜熸。我迎歲,彼背歲。彗星見,彼操其柄,我操其標。吾又夢與荊王搏,彼在上,我在下,吾欲無戰,子以為何如?」咎犯對曰:「十戰龜熸,是荊人也。我迎歲,彼背歲,彼去我從之也。彗星見,彼操其柄,我操其標,以掃則彼利,以擊則我利。君夢與荊王搏,彼在上,君在下,則君見天而荊王伏其罪也。且吾以宋衛為主,齊秦輔我,我合天道,獨以人事固將勝之矣。」文公從之,荊人大敗。

城濮의 전쟁에 晉 文公咎犯에게 말했다. “내가 전쟁의 길흉을 점쳤는데 거북 등딱지를 지지는 불이 꺼졌고, 우리는 歲星(木星)을 마주하고 있는데 적군은 세성을 등지고 있으며, 彗星이 나타났을 때 적군은 그 자루 부분을 잡고 우리는 그 끝부분을 잡았으며, 내가 또 꿈속에서 荊王(楚王)과 치고 박고 싸울 적에 초왕은 위에 있고 나는 아래에 있었소. 나는 전쟁을 하고 싶지 않은데, 그대의 생각은 어떻소?”

구범이 대답했다. “전쟁의 길흉을 점치는데 거북 등딱지를 지지는 불이 꺼진 것은 바로 초나라 사람이 실패하는 것이고, 우리는 歲星을 마주하고 있는데 적군은 세성을 등지고 있는 것은 달아나는 적군을 우리가 추격하는 것이며, 彗星이 나타나자 적군은 그 자루 부분을 잡고 우리는 그 끝부분을 잡은 것은 땅을 쓰는 데에는 적군이 유리하고 공격하는 데에는 우리가 유리한 것이며, 임금께서 꿈에 형왕과 치고 박고 싸울 때 형왕은 위에 있고 임금께서 아래에 있었던 것은 임금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고 형왕은 머리를 숙여 자기의 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나라와 나라를 主力으로 삼고 나라와 나라가 우리를 돕고 있으니, 우리는 天道에 부합합니다. 人事만으로도 이길 수가 있으니, 진실로 우리가 승리할 것입니다.”진 문공이 구범의 말을 따랐는데, 형나라 사람이 크게 패배하였다.

33. 吳亦饑,請糴於越,越王不與而攻之,遂破吳

越饑,句踐懼。四水進諫曰:「夫饑,越之福也,而吳之禍也。夫吳國甚富而財有餘,其君好名而不思後患。若我卑辭重幣以請糴於吳,吳必與我,與我則吳可取也。」越王從之。吳將與之,子胥諫曰:「不可。夫吳越接地鄰境,道易通,仇讎敵戰之國也。非吳有越,越必有吳矣,夫齊晉不能越三江五湖以亡吳越,不如因而攻之,是吾先王闔廬之所以霸也。且夫饑何哉?亦猶淵也,敗伐之事,誰國無有?君若不攻而輸之糴,則利去而凶至,財匱而民怨,悔無及也。」吳王曰:「吾聞義兵不服仁人,不以餓饑而攻之,雖得十越,吾不為也。」遂與糴,三年,吳亦饑,請糴於越,越王不與而攻之,遂破吳

나라에 흉년이 들어 句踐이 걱정하니, 四水諫言을 올렸다. “흉년이 든 것은 나라의 복이고 나라의 재앙입니다. 오나라는 매우 부유하여 재물이 넉넉하고 그 임금은 虛名을 좋아하여 後患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겸손한 말과 많은 예물로 오나라에 양식을 팔라고 요청하면 오나라는 반드시 우리에게 양식을 줄 것이니, 우리에게 양식을 주면 오나라를 취할 수 있습니다.”

越王이 이 말을 따랐다. 오나라가 양식을 주려고 하니, 伍子胥하였다. “안 됩니다. 오나라와 월나라는 땅이 이어져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도로가 서로 통하기 쉽고 원수 관계로 이 되어 交戰하는 나라입니다. 오나라가 월나라를 점유하지 않으면 월나라가 반드시 오나라를 점유할 것입니다나라와 나라는 三江五湖를 넘어와서 오나라와 월나라를 멸망시키지 못합니다. 월나라에 흉년이 든 기회를 틈타 공격하는 것만 못하니, 이는 우리 先王 闔廬께서 霸業을 이룬 원인입니다. 또 흉년이란 무엇입니까? 역시 한량이 없는 깊은 연못과 같습니다정벌하다가 실패하는 일이 어느 나란들 없겠습니까. 임금께서 만일 월나라를 공격하지 않고 양식을 팔아 보내주시면 유리한 기회를 놓쳐 흉한 일이 도래하고 재물이 결핍되어 백성들이 원망할 것입니다. 그때는 뉘우쳐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오왕이 말했다. “나는 들으니, 義兵은 복종한 사람을 공격하지 않고 仁人은 굶주린 사람에게 양식을 내어 먹여준다 하였소. 지금 월나라가 복종하였는데 공격하는 것은 비록 열 개의 월나라를 얻는다 하더라도 나는 하지 않을 것이오.”

그러고는 마침내 월나라에 양식을 팔았다. 3년이 지난 뒤에 오나라도 흉년이 들어 월나라에 양식을 팔 것을 요청하였으나, 월왕은 양식을 주지 않고 도리어 공격하여 마침내 오나라를 격파하였다.

34. 憎人而能害之;有患而能處之;欲用民而能附之;一舉而三物俱至

趙簡子使成何、涉他與衛靈公盟於鄟澤。靈公未喋盟。成何、涉他捘靈公之手而撙之,靈公怒,欲反趙。王孫商曰:「君欲反趙,不如與百姓同惡之。」公曰:「若何?」對曰:「請命臣令於國曰:『有姑姊妹女者家一人,質於趙。』百姓必怨,君因反之矣。」君曰:「善。」乃令之三日,遂徵之五日,而令畢國人巷哭。君乃召國大夫而謀曰:「趙為無道,反之可乎?」大夫皆曰:「可。」乃出西門,閉東門,越王聞之,縛涉他而斬之,以謝於衛,成何走燕。子貢曰:「王孫商可謂善謀矣。憎人而能害之;有患而能處之;欲用民而能附之;一舉而三物俱至,可謂善謀矣。」

趙簡子成何涉他를 보내 衛 靈公剸澤에서 맹약하게 하였다. 靈公이 피를 마셔 맹약하지 않으니, 성하와 섭타가 영공의 손을 밀치고 내리누르자 영공이 노하여 趙氏를 배반하려고 하였다그러자 王孫商이 말했다. “임금께서 조씨를 배반하는 것보다는 백성들과 함께 조씨를 미워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영공이 말했다. “어떻게 하면 되겠소?”

공손상이 대답했다. “에게 명하여 나라 안에 명령을 내리기를 고모누이누이동생딸이 있으면 집집마다 한 사람을 조씨에게 인질로 보내겠다.’라고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백성들은 반드시 조씨를 원망할 것이니, 임금께서 이 기회를 틈타 배반하면 됩니다.”

영공은 좋은 말이오.” 하고는 그대로 명령하였다. 3일이 지난 뒤에 마침내 인질들을 徵集하여 5일 만에 마치게 하니, 國人들이 거리에 모여서 통곡하였다. 영공이 곧 국내의 大夫들을 소집하고 의논하였다. “조씨가 무도한 짓을 하니, 배반해도 되겠소?” 대부들이 모두 말했다. “배반해도 됩니다.”이에 西門으로만 출입하고 나라와 통하는 東門을 폐쇄하였다. 조씨가 이 소식을 듣고 섭타를 결박해 죽여서 위나라에 사과하니, 성하는 나라로 달아났다.

子貢이 말했다. “왕손상은 계책을 잘 쓴다고 이를 만하다. 미워하는 사람을 죽이고, 환난을 해결하고 백성을 이용하여 결집되게 하니, 한 번에 세 가지 일을 모두 이루었으니, 가히 좋은 계책이라 이를 만하다.

35. 君之臣乃君之有也;為民,君也

楚成王贊諸屬諸侯,使魯君為僕,魯君致大夫而謀曰:「我雖小,亦周之建國也。今成王以我為僕,可乎?」大夫皆曰:「不可。」公儀休曰:「不可不聽楚王,身死國亡,君之臣乃君之有也;為民,君也!」魯君遂為僕。

楚 成王이 제후들을 소집하고 魯君을 마부로 삼아 수레를 몰게 하려고 하자, 노군이 大夫들을 불러 의논하였다. “우리나라가 작지만 그래도 나라가 세워준 나라이다. 지금 초 성왕이 나를 마부로 삼아 수레를 몰게 하려고 하니, 되겠는가?” 대부들이 모두 말했다. “안 됩니다.”

公儀休가 말했다. “楚王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으니, 따르지 않으면몸은 죽고 나라는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임금의 신하는 곧 임금의 소유이고, 임금은 백성의 임금입니다.” 노군이 마침내 마부가 되어 수레를 몰았다.

36. 不能令則莫若從

齊景公以其子妻闔廬,送諸郊。泣曰:「余死不汝見矣。」高夢子曰:「齊負海而縣山,縱不能全收天下,誰干我君?愛則勿行!」公曰:「余有齊國之固,不能以令諸侯,又不能聽,是生亂也。寡人聞之,不能令則莫若從,且夫吳若蜂蠆然,不棄毒於人則不靜,余恐棄毒於我也。」遂遣之。

齊 景公이 자기의 딸을 闔廬에게 시집보내면서 교외에 나가 전송할 때 울면서 말했다. “내가 죽을 때까지 너를 만나지 못하겠구나.” 高夢子가 말했다. “나라는 바다를 등지고 높은 산이 솟아 있으니, 천하를 완전히 점유하지는 못하더라도 누가 우리 임금을 침범하겠습니까? 딸을 사랑하신다면 보내지 마십시오.”

경공이 말했다. “내가 險固한 제나라를 소유하고 있지만 제후를 호령하지 못하는데, 또 남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이는 난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寡人은 들으니, 남에게 명령을 내리지 못하면 남의 명령을 따르는 것만 못하다 하였다. 나라는 벌이나 전갈과 같아서 남에게 독을 쏘지 않으면 그치지 않을 것이니, 나는 그 독을 나에게 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그러고는 마침내 딸을 보냈다.

37. 受室以歸,人其以我為師婚乎?

齊欲妻鄭太子忽,太子忽辭,人問其故,太子曰:「人各有偶,齊大,非吾偶也。詩云:『自求多福。』在我而已矣。」後戎伐齊,齊請師于鄭。鄭太子忽率師而救齊,大敗戎師,齊又欲妻之。太子固辭,人問其故。對曰:「無事於齊,吾猶不敢。今以君命救齊之急,受室以歸,人其以我為師婚乎?」終辭之。

齊侯나라 太子 忽을 사위 삼으려 하니, 태자 홀이 사양하였다. 어떤 이가 그 까닭을 묻자, 태자가 말했다. “사람은 각기 자기에게 맞는 짝이 있다. 제나라는 强大하니, 나의 짝이 아니다. 詩經스스로 많은 복을 구한다.’ 하였으니, 나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

뒤에 北戎나라를 침공하니, 나라가 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였다. 정나라 태자 홀이 군대를 이끌고 나라를 구원하여 北戎의 군대를 패배시켰다. 齊侯가 또 정나라 태자 홀을 사위 삼으려 하니, 태자가 굳이 사양하였다.

어떤 이가 그 까닭을 묻자, 태자가 대답하였다. 齊나라에 아무 일이 없었을 적에도 내가 감히 장가들지 못했는데, 지금 임금의 명으로 齊나라의 위급함을 구원하러 왔다가 아내를 맞아 돌아간다면 사람들은 내가 전쟁을 틈타 혼인을 했다고 할 것이다.”그러고는 끝내 사양하였다.

38. 智不能及,明不能見,得無數卜乎?

孔子問漆雕馬人曰:「子事臧文仲、武仲、孺子容,三大夫者,孰為賢?」漆雕馬人對曰:「臧氏家有龜焉,名曰蔡;文仲立三年為一兆焉;武仲立三年為二兆焉;孺子容立三年為三兆焉,馬人立之矣。若夫三大夫之賢不賢,馬人不識也。」孔子曰:「君子哉!漆雕氏之子,其言人之美也,隱而顯;其言人之過也,微而著。故智不能及,明不能見,得無數卜乎?

孔子께서 漆雕馬人에게 물으셨다. “그대가 臧文仲臧武仲孺子容을 섬겼으니. 이 세 大夫 중에 누가 현명한가?”

칠조마인이 대답했다. “藏氏 집안에 거북이 있는데, 이름을 라고 합니다. 장문중이 執政 노릇을 한 지 3년 동안에 이 거북으로한 번 점을 쳤고, 장무중은 집정 노릇을 한 지 3년 동안에 두 번 점을 쳤으며, 유자용은 집정 노릇을 한 지 3년 동안에 세 번 점을 쳤습니다. 이는 제가 직접 본 일이지만, 세 대부 중에 누가 현명한지 여부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였다. “君子로구나. 칠조씨의 아들이여! 그가 남의 아름다움을 말할 적에는 숨기지만 환히 드러나고, 그가 남의 잘못을 말할 적에는 은미하지만 밝게 드러난다. 그러므로 지혜가 〈일을 해결하는 데〉 미치지 못하고, 총명이 〈일의 결과를〉 예견하지 못하면 자주 점을 치지 않겠는가.”

39. 江乙善謀,安陵纏知時

安陵纏以顏色美壯,得幸於楚共王。江乙往見安陵纏,曰:「子之先人豈有矢石之功於王乎?」曰:「無有。」江乙曰:「子之身豈亦有乎?」曰:「無有。」江乙曰:「子之貴何以至於此乎?」曰:「僕不知所以。」江乙曰:「吾聞之,以財事人者,財盡而交疏;以色事人者,華落而愛衰。今子之華,有時而落,子何以長幸無解於王乎?」安陵纏曰:「臣年少愚陋,願委智於先生。」江乙曰:「獨從為殉可耳。」安陵纏曰:「敬聞命矣!」江乙去。居年,逢安陵纏,謂曰:「前日所諭子者,通於王乎?」曰:「未可也。」居年。江乙復見安陵纏曰:「子豈諭王乎?」安陵纏曰:「臣未得王之間也。」江乙曰:「子出與王同車,入與王同坐。居三年,言未得王之間,子以吾之說未可耳。」不悅而去。其年,共王獵江渚之野,野火之起若雲蜺,虎狼之嗥若雷霆。有狂兕從南方來,正觸王左驂,王舉旌旄,而使善射者射之,一發,兕死車下,王大喜,拊手而笑,顧謂安陵纏曰:「吾萬歲之後,子將誰與斯樂乎?」安陵纏乃逡巡而卻,泣下沾衿,抱王曰:「萬歲之後,臣將從為殉,安知樂此者誰?」於是共王乃封安陵纏於車下三百戶。故曰:「江乙善謀,安陵纏知時。」

安陵纏은 안색이 아름답고 신체가 건장하여 楚 共王에게 사랑을 받았다. 江乙이 안릉전을 찾아가 만나서 말했다. “그대의 先人이 혹 왕을 위해 矢石을 무릅쓴 戰功이 있어서 사랑을 받는 것이오?” 안릉전이 대답했다. “그런 공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대가 혹 그런 공이 있는 것이오?" 안릉전이 대답했다. "그런 공이 없습니다." 강을이 말했다. “그대의 존귀한 지위가 어떻게 여기에 이르게 되었소?” 안릉전이 대답했다. “나도 그 까닭을 알지 못합니다.” 

강을이 말했다. “나는 들으니, 재물을 가지고 남을 섬기는 사람은 재물이 다 떨어지면 交情이 멀어지고, 美色으로 남을 섬기는 사람은 화려한 안색이 시들면 사랑이 쇠퇴한다고 합니다. 지금 그대의 화려한 안색도 시들 때가 있을 텐데 그대는 무엇으로 초왕의 사랑이 영원히 해이해지는 일이 없게 하려오?”

안릉전이 대답했다. “저는 나이가 어리고 어리석으니, 선생께 몸을 맡기기를 원합니다.” 강을이 말했다. “다만 초왕을 따라 죽겠다고 표명하는 것이 좋을 뿐이오.” 안릉전이 말했다. “선생의 가르침을 공경히 따르겠습니다.”강을이 그곳을 떠났다.

1년이 지난 뒤에 강을이 안릉전을 만나 말했다. “지난날 그대에게 타이른 말을 왕에게 알렸소?” 안릉전이 말했다.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1년이 지난 뒤에 강을이 다시 안릉전을 만나 말했다. “그대는 혹 왕에게 말씀드렸소?” 안릉전이 말했다. “왕께 말씀드릴 틈을 얻지 못했습니다.”강을이 말했다. “그대가 외출할 적에는 왕과 수레를 함께 타고, 들어와서는 왕과 함께 자리에 앉아 있는데, 3년이 지나도록 왕에게 말씀드릴 틈을 얻지 못했단 말인가. 이는 내가 한 말을 옳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오.”그러고는 기분이 나빠 떠나버렸다.

그해에 공왕이 강가의 들판에서 사냥을 할 때에 들에서 일어난 불길이 마치 무지개 같고, 호랑이와 이리의 울부짖는 소리가 마치 우레 소리 같았다. 그때 미쳐 날뛰는 외뿔소가 남쪽에서 달려와 바로 왕이 탄 수레의 左驂에 들이받으려 하자, 왕이 깃발을 들어 활 잘 쏘는 사람에게 쏘게 하니, 한발에 명중시켜 코뿔소가 수레 아래에서 죽었다.

왕이 크게 기뻐하여 손뼉을 치고 웃으면서 안릉전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죽고 난 뒤에 그대는 누구와 이 즐거움을 누리겠느냐?” 안릉전이 곧 머뭇머뭇 뒤로 물러나며 눈물이 흘러 옷깃을 적시면서 왕을 안고 말했다. “대왕이 돌아가신 뒤에 은 장차 대왕을 따라 죽을 텐데 이 즐거움을 누릴 자가 누구인 줄 어찌 알겠습니까!” 이에 공왕은 곧 수레 앞에서 안릉전에게 300해주었다. 그러므로 강을은 계책을 잘 세우고, 안릉전은 시기를 파악할 줄 안다.라고 하는 것이다.

40. 陽處父知商臣之怨子上也

太子商臣怨令尹子上也。楚攻陳,晉救之。夾泜水而軍。陽處父知商臣之怨子上也,因謂子上曰:「少卻,吾涉而從子。」子上卻。因令晉軍曰:「楚遁矣。」使人告商臣曰:「子上受晉賂而去之。」商臣訴之成王,成王遂殺之。

太子 商臣令尹 子上을 원망하였다. 나라가 나라를 공격하자 나라가 나라를 구원하여 兩軍泜水를 사이에 두고 주둔하였다. 陽處父가 상신이 자상을 원망하는 것을 알고, 이 기회를 이용하여 자상에게 말했다. “조금 후퇴하면 나는 저수를 건너 그대를 따라 交戰하겠다.”

자상이 후퇴하자, 양처보가 나라 군대에 명령하여 말했다. “초나라 군대가 달아났다.” 그러고는 사람을 보내 상신에게 말했다. “자상이 나라의 뇌물을 받아먹고 물러갔다.” 상신이 楚 成王에게 보고하니, 성왕은 마침내 자상을 죽였다.

41. 無方之禮,無功之賞,禍之先也

智伯欲襲衛,故遺之乘馬,先之一璧,衛君大悅,酌酒,諸大夫皆喜。南文子獨不喜,有憂色。衛君曰:「大國禮寡人,寡人故酌諸大夫酒,諸大夫皆喜,而子獨不喜,有憂色者,何也?」南文子曰:「無方之禮,無功之賞,禍之先也。我未有往,彼有以來,是以憂也。」於是衛君乃修梁津而擬邊城。智伯聞衛兵在境上,乃還。

智伯나라를 습격하려고 고의로 衛君에게 좋은 말 네 을 보내면서 먼저 碧玉 한 개를 보냈다. 위군이 크게 기뻐하여 술잔치를 열자 여러 大夫들은 모두 기뻐하였는데, 南文子만 홀로 기뻐하지 아니하여 근심스러운 기색이 있었다.

위군이 말했다. “大國寡人에게 예물을 보내 대우하기에 과인이 그 때문에 여러 대부들에게 술잔치를 베풀자, 여러 대부들은 모두 기뻐하는데 그대만은 기뻐하지 않고 근심스러운 기색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오?”

남문자가 말했다. “정당하지 않은 예물과 공로도 없이 받는 賞은, 재앙이 일어날 조짐입니다. 우리가 저들에게 예물을 보낸 일이 없는데 저들이 우리에게 예물을 보내왔습니다. 저는 이 때문에 근심하는 것입니다.”

이에 위군이 곧 橋梁과 나루를 修築하고 변방의 성곽을 수축할 준비를 하니, 지백이 위나라 군대가 국경에 있다는 말을 듣고 곧장 돌아갔다.

42. 車過五乘,慎勿內也

智伯欲襲衛,乃佯亡其太子顏,使奔衛。南文子曰:「太子顏之為其君子也,甚愛。非有大罪也,而亡之?必有故!然人亡而不受不祥。」使吏逆之,曰:「車過五乘,慎勿內也。」智伯聞之,乃止。

智伯나라를 습격하려고 곧 그의 맏아들 을 거짓으로 망명하여 위나라로 달아나게 하였다南文子가 말했다. “太子 顔主君의 아들이다. 매우 사랑하고 큰 죄를 짓지 않았는데, 도망쳐오니 반드시 까닭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이 망명하는데 받아주지 않는 것은 하지 못하다.”

그러고는 관리를 보내 맞이하게 하고 분부하였다. “그의 수레가 다섯 채가 넘거든 모쪼록 받아들이지 말라.지백이 이 말을 듣고 이내 그 계획을 중지하였다.

43. 叔向之殺萇弘也

叔向之殺萇弘也,數見萇弘於周。因佯遺書曰:「萇弘謂叔向曰:『子起晉國之兵以攻周,吾廢劉氏而立單氏。』」劉氏請之。君曰:「此萇弘也。」乃殺之。

叔向이 萇弘을 죽이려고 할 적에 여러 차례 나라에 가서 장홍을 만나고, 이어서 편지를 유실한 것처럼 가장하였는데, 그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장홍이 숙향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나라의 군대를 출동시켜 주나라를 공격하면 나는 劉氏를 폐하고 單氏를 세우겠다.’고 하였다.” 유씨가 周王에게 요청하여 말했다. “이는 장홍의 서신입니다.”이에 주왕은 마침내 장홍을 죽였다.

44. 秦楚患壺丘之城

楚公子午使於秦,秦囚之,其弟獻三百金於叔向,叔向謂平公曰:「何不城壺丘?秦楚患壺丘之城。若秦恐而歸公子午,以止吾城也,君乃止,難亦未構,楚必德君。」平公曰:「善。」乃城之。秦恐,遂歸公子午使之晉,晉人輟城,楚獻晉賦三百車。

나라 公子 午나라에 사신으로 가니, 진나라는 그를 囚禁하였다. 그의 아우가 叔向에게 300을 바치자, 숙향이 晉 平公에게 말했다. “어찌 壺丘을 쌓지 않습니까? 秦나라와 楚나라는 우리가 호구에 성을 쌓을까 근심하고 있습니다. 만일 秦나라가 우리를 두려워하면 공자 오를 본국으로 돌려보내어 우리의 성 쌓는 일을 저지할 것이니, 임금님께서는 바로 성 쌓는 일을 중지하십시오. 그러면 禍難도 발생하지 않고, 초나라는 반드시 임금님의 은덕에 감사할 것입니다.”

晉 平公좋은 말이오.” 하고는 바로 성을 쌓으니, 나라가 두려워하여 마침내 공자 오를 돌려보내어 나라로 가게 하였다. 나라 사람이 성 쌓는 일을 철회하니, 초나라는 징수한 세금 300수레를 나라에 바쳤다.

45. 今我未以往,而簡子先以來,必有故。

趙簡子使人以明白之乘六,先以一璧,為遺於衛。衛叔文子曰:「見不意,可以生,故此小之所以事大也。今我未以往,而簡子先以來,必有故。」於是斬林除圍,聚斂蓄積,而後遣使者。簡子曰:「吾舉也,為不可知也。今既已知之矣,乃輟圍衛也。」

趙簡子가 사람을 파견하여 광택이 빛나는 수레 여섯 채를 나라에 보내면서 먼저 玉璧 하나를 보냈다.

위나라의 叔文子가 말했다. “생각하지 못한 일을 당했을 경우, 이것으로 어떤 변고가 발생할 것인지를 살펴야 하니, 이것이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방법입니다. 지금 우리가 예물을 보내지 않았는데 조간자가 먼저 예물을 보내 왔으니, 반드시 까닭이 있는 것입니다.

이에 수풀을 베어내고 짐승 기르는 울타리를 제거하며, 재물을 모아 축적한 뒤에 使臣을 파견하여 사례하였다조간자가 말했다. “나의 거사를 저들은 모를 것이라 여겼는데 지금 이미 알고 있구나.”그러고는 이내 위나라를 포위했던 군대를 철수하였다.

46.

鄭桓公將欲襲鄶,先問鄶之辨智果敢之士,書其名姓,擇鄶之良臣而與之,為官爵之名而書之,因為設壇於門外而埋之。釁之以猳,若盟狀。鄶君以為內難也,盡殺其良臣。桓公因襲之,遂取鄶。

鄭 桓公이 鄶나라를 습격하려고 할 적에, 먼저 회나라의 총명하고 용감한 사람을 물어 그들의 성명을 써서 회나라의 좋은 田地를 가려 그들에게 주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官爵의 이름을 써서 그대로 성문 밖에 壇을 설치하고 그 안에 이 명단을 묻고는 수퇘지의 피를 발라 마치 盟約을 맺은 듯한 흔적을 남겨두었다.

鄶君은 이들이 內亂을 일으키려 한다고 여겨 그 나라의 良臣을 모조리 죽이자, 정 환공은 그 기회를 이용하여 마침내 회나라를 차지하였다.

47. 時難得而易失也

鄭桓公東會封於鄭,暮舍於宋東之逆旅,逆旅之叟從外來,曰:「客將焉之?」曰:「會封於鄭。」逆旅之叟曰:「吾聞之:時難得而易失也。今客之寢安,殆非封也。」鄭桓公聞之,援轡自駕,其僕接淅而載之,行十日夜而至。釐何與之爭封。故以鄭桓公之賢,微逆旅之叟,幾不會封也。

鄭 桓公이 동쪽으로 가서 天子朝見하고 나라에 땅을 封地로 받기 위해 길을 떠나 날이 저물녘에 나라 동쪽의 여관에 묵게 되었다여관의 늙은이가 밖에서 들어와 말했다. “손님은 장차 어디로 가려 하십니까?” 정 환공이 말했다. “천자를 조현하고 정나라 땅을 봉지로 받기 위해 가는 길이오.”

여관의 늙은이가 말했다. “나는 들으니, 時機는 얻기는 어렵고 잃기는 쉽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손님이 이곳에서 편안히 잠을 잔다면, 어쩌면 천자를 조현하여 봉지를 받지 못하지 않을는지요.”

정 환공이 이 말을 듣고 말고삐를 잡고 직접 수레를 메워 떠나니, 그의 奴僕은 쌀을 일어 손에 받쳐 들고 함께 수레에 싣고서 밤낮으로 열흘 동안을 달려가서 당도하였다. 이 당시에 釐何鄭 桓公과 봉지를 다투고 있었다. 그러므로 정 환공의 현명함으로도 여관 늙은이의 깨우침이 아니었다면 천자를 조현하고 봉지를 받지 못할 뻔하였다.

48. 時難得而易失也

晉文公伐衛,入郭,坐士令食,曰:「今日必得大垣。」公子慮俛而笑之。文公曰:「奚笑?」對曰:「臣之妻歸,臣送之,反見桑者而助之。顧臣之妻則亦有送之者矣。」文公懼,還師而歸,至國,而貉人攻其地

晉 文公나라를 정벌할 적에 위나라의 外城[]進入하여 군사들에게 앉은 채로 밥을 먹게 하고 말했다. “오늘은 반드시 內城[大垣]에 바싹 다가가 공격할 것이다.” 公子 慮가 머리를 숙이고 웃자, 문공이 말했다. “어찌 웃느냐?”

공자 여가 대답했다. “의 아내가 친정에 간다기에 신이 바래다주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뽕을 따는 여인을 만나 그녀를 도와주며 신의 아내를 돌아보았더니, 그녀 역시 바래다주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이를 듣고 문공이 두려워하여 군대를 돌려 돌아와 나라에 당도해보니 貉人이 그의 국토를 공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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