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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칼럼

[경남시론] 사과의 정석

by 변리사 허성원 2022. 6. 23.

사과의 정석

 

얼마 전 음악인 유희열이 표절 논란에 대해 공개 사과하였다. 다른 지적들이 있긴 했지만, 사과문의 내용은 매우 모범적인 것으로 평가받았다. 구차한 변명 없이 책임을 인정하여 정중히 사과하면서, 깊은 반성과 함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가 잘 언급되어 있다. 그 덕분인지 원저작자는 아주 관대하게 응답하며 격려까지 얹어주었고, 이로써 그 논란은 일단락된 듯하다.

"책상을 탁 쳤더니 억하고 말라서"라는 광고 카피가 있었다. 무신사가 양말 광고에 박종철을 고문 치사한 공안 경찰의 발언을 패러디하여 썼던 것이다. 비난과 항의가 거셌다. 무신사는 지체 없이 모든 잘못을 시인하며 몇 차례 사과하고, 담당자 징계, 재발 방지 대책, 박종철기념사업회에 후원 의사 등도 연이어 발표하였다. 논란은 곧 수그러들었고 회사에 대한 신뢰는 그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이들처럼 적절한 사과는 위기를 극적으로 완화시키고 그것을 오히려 기회로 반전시킨다. 그러나 변명, 지체 등으로 소극적 혹은 부적절하게 대처하면 상황은 나빠진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누구나 뜻하지 않는 실수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하지만 잘못을 속히 시인하고 진심으로 사과하기는 쉽지 않다. 자존심이나 피해 보상 부담이 관련되기도 하고, 피해자의 입장에 대한 공감이 부족하거나 죄의식의 인식 차이로 인해 그럴 수 있다. 그러다 상황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사과의 흉내만 내기도 한다. 그런 억지 사과나 부적절한 대처가 작은 해프닝을 큰 위기로 키우게 된다.

그래서 사과에는 정석이 있다. 원칙에 따라 제대로 사과하면, 상대의 너그러운 용서를 이끌어내고 기업 이미지를 지키거나 더 높일 수 있다. 그런 좋은 사과에는 반드시 포함되는 필수 구성요소들이 있다. 다섯 개의 ‘R’로 정리된다. 유감 표명(Regret), 책임 인정(Responsibility), 보상 약속(Restitution), 반성(Repenting), 및 용서 요청(Requesting forgiveness)이다. ‘유감 표명에는, ‘나의 언행이 당신에게 정신적 아픔을 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와 같이, 주체, 행위, 상대의 피해 내용 및 사과의 뜻이 명료히 표시된다. ‘책임 인정은 책임의 소재를 명백히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든 것은 전적으로 나의 잘못된 인식에 기인한 것이며, 모든 책임을 감수하겠다와 같이 표현하면 된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 발생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는 모든 노력을 다해 보상하겠다와 같은 엄중한 보상 약속, 진지한 후회와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반성 의지를 밝히면서, 피해자에게 정중히 '용서'를 구하는 완벽한 사과문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다. 진정성이다. 사과 표현에 변명 등 사족을 덧붙이거나, 머뭇거리다 때를 놓치거나, 직접 나서지 않고 간접적으로 발표하는 것 등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임블리의 곰팡이 호박즙 사건, 대한항공의 땅콩 회황 사건 때의 대처가 그러했고, 그래서 당시 그 회사들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했었다.

상투적인 조건부 사과도 부적절하다. “나로 인해 동료와 고객이 한 명이라도 발길을 돌린다면 어떤 것도 정당성을 잃는다. 저의 자유로 상처받은 분이 있다면 전적으로 제 부족함입니다.” 이 말은 신세계 부회장이 한동안 멸공놀이로 논란이 증폭되자 마지못해 발표한 메시지다. 조건 ‘~하다면은 자신은 별 잘못이 없는데 사람들이 너무 편협하거나 관용이 부족해서 자신을 비난한다는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 상황의 책임을 은근히 타인에게 전가하여 희석시키면서 사과의 흉내를 낸 것에 불과하다.

진정성을 무장한 사과가 좋은 용서를 부른다. 좋은 용서는 가해자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면서, 피해자도 그 피해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한다. 그러니 이왕 사과를 하겠다면 제대로 하라. 그래야만 비로소 모두의 영혼이 함께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일본 사람들의 도게자(土下座どげざ). 땅 위에 바짝 엎드려서 절하며 사죄하는 모습.

 

유희열, '표절 딱지'가 치명적인 이유 [ST포커스]

[스포츠투데이 윤혜영 기자] 가수 유희열이 일본 영화음악의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의 곡을 표절했다는 의혹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했으나 표절 의혹 제기 과정이 공개되며 대중의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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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충 _ 230720

<홍준표 대구시장이 7월 19일 '폭우 중 주말골프' 논란과 관련해 사과,
"주말 일정이고 재난 대응 매뉴얼에 위배되는 일도 없었지만 전국적으로 수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부적절했다는 지적은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이런 사과에서 진정성이 느껴지는가?
홍준표의 사과는, 위 칼럼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미 '
사과 표현에 변명 등 사족을 덧붙이거나', '머뭇거리다 때를 놓친' 경우에 해당하고,
자신은 별 잘못이 없는데 사람들이 너무 편협하거나 관용이 부족해서 자신을 비난한다는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 상황의 책임을 은근히 타인에게 전가하여 희석시키면서 사과의 흉내를 낸 것에 불과하다.

잘못된 사과의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

** (홍준표 사과 보충)
공개 사과를 한 바로 다음날 '과하지욕(袴下之辱)'이라고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뭔가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은 듯 스스로 지웠다.

참 못 말릴 사람이다. 설화(舌禍)를 스스로 자초하고 있다.

‘과하지욕(袴下之辱)’은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대장군 한신의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시장의 불량배가 시비를 걸자, 그와 싸우지 않기 위해 그 불량배의 가랑이 밑을 기어갔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이 말은 '큰 뜻을 지닌 사람은 일시의 작은 치욕을 참는다'는 뜻으로 쓰인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과하지욕(袴下之辱)’이라고 한 것은.. 전날 대국민 사과한 것이 자존심도 상하고 모양도 구겨지고 해서 영 내키지도 않다는 불편한 내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정말 국민들을 시장의 불량배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며,
자신이 전날 허리 굽혀 한 사과가 모두 헛소리였음을 직접 웅변으로 외치고 있는 것이다.
사과를 해놓고나서 그것을 스스로 뒤집는 것만큼 어리석은 최악의 위기관리는 없다.

참 오만하고 치졸한 데다, 시니어 정치인으로서의 품격이나 자기 관리가 전혀 안되는 사람이다.

** 이강인의 사과문을 보고 _ 240215
사과에는 두 가지 사과가 있다.
진정성 있는 반성의 사과와 떠밀려서 억지로 하는 형식적인 사과이다.
기업이나 유명인들의 사과는 대체로 이 둘 중 하나로 구분된다.
진정성을 잘 설득하는 참된 사과는 잘못을 이미지 반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마지 못해 하는 형식적인 사과는 오히려 그 잘못을 가중시킨다.

손흥민과 갈등을 빚어 물의를 일으킨 이강인이 사과문을 올렸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강인 선수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의 슛돌이 시절부터 TV 등에 나오는 그 깜찍한 장면들을 많이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이번 사과문을 읽어보면,
대충 읽어보아도 잘 된 사과로 여겨지지 않는다.
아직 어리다 할 유망한 축구선수의 이미지 관리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다.

먼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인식이다.
"손흥민 형과 언쟁을 벌였다는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자신이 언쟁을 벌였다는 점을 명확히 하지 않고, 기사가 보도되었기에 사과를 한다는 취지다. 기사가 없었다면 사과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는 인식이다.

"축구팬들께 큰 실망을 끼쳐드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축구 팬들에게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드리게 되어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자신의 행위가 잘못되었다면 그 행위를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런데 '축구팬들에게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드린' 것을 사과하고 있다.
사과의 이유가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 '좋지 못한 모습'인 것이다.

그리고 사과는 누구에게 해야 하는가?
행위에 대한 반성이 있다면, 그 행위의 피해자인 손흥민이 바로 사과를 받아야 할 당사자이다.
그런데 축구팬들에게 사과를 하고 있다. 축구팬은 당사자가 아니다.
축구팬의 실망은 2차적인 것이며, 이런 희한한 사과 태도는 축구팬들의 실망을 더 키우고 있다.

"제가 앞장 서서 형들의 말을 잘 따랐어야 했는데"
사과의 내용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이런 두루뭉술한 표현은 그 사실을 다시 거론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니,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인정하지 않는 비겁한 표현 방식이다.
무슨 일이 있었고 그 중에 어떤 점이 잘못된 일이며 그에 대해 어떤 반성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명확한 반성이 가능하다.

인간은 오류를 피할 수 없다.
그 오류를 반성하고 바로잡으면서 성장하고 지혜로워진다.
슛돌이 출신 이강인은 아직 우리 축구계의 꿈나무라 할 수 있다. 더 크고 더 든든한 대들보가 되기 위해서는 이번의 일에서 큰 가르침을 얻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