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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칼럼

[경남시론] 이 나이를 위해 평생을 달려왔다

by 변리사 허성원 2022. 12. 17.

이 나이를 위해 평생을 달려왔다

 

이번 연말에는 송년회 등에서 유독 '이 나이에'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이 나이에'는 어중간한 나이의 중늙은이들이 스스로 늙었음을 자조할 때, 혹은 뭔가 새로운 일을 벌이기에 열정이 식었음을 자인할 때 쓰곤 하는 말이다. 친구들에게서 이런 말을 들으면 온몸의 김이 쏙 빠져나가는 것 같다. 이 친구들에게 최근 내게 자극을 주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다.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라틴 그래미 시상식에서, 무려 95세나 된 할머니 가수가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쿠바 출신의 앙헬라 알바레스는 1962년 쿠바 혁명 때 미국에 와서, 청소부 등 힘든 일을 하며 직접 곡을 쓰고 노래하여, 지난해에 비로소 첫 앨범을 냈다. 그 수상 소감은 이렇게 마무리하였다.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늘 싸웠습니다. .. 내가 보증하지요.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It’s never too late).”

지난 일요일 나훈아의 데뷔 55주년 공연을 보았다. 그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내에게 이끌려 공연을 처음 보고는, 그가 좋아졌다. 2시간 넘게 쉬지 않고 뛰고 굴리며 청중들을 쥐락펴락 열광하게 만드는 그의 체력과 열정, 팬 서비스 정신은 빈틈이 없었다. 그의 나이를 확인하니 47년생의 상당한 고령이다. 정작 놀라운 것은 여러 신곡들이었다. 그 나이에도 여전히 식지 않는 창작 열정에 존경심이 절로 우러났다.

얼마 전에 오랜 친구들과 오랜만의 송년회 자리를 가졌다. 대부분 은퇴했기에 모임의 분위기가 다소 나른해진 느낌이다. 그런데 몇 년 전 대기업을 정년퇴직한 한 친구만이 유독 볼 살이 쏙 빠지고 눈빛이 형형하다. 그의 강렬한 젊음의 에너지가 심상치 않아 물어보니, 무려 35일간의 노르웨이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그것도 암 투병 중인 아내를 데리고. 렌터카를 타고 1만 킬로가 넘는 여정을 텐트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도 하며 돌아다녔고, 그 보고 느낀 것들을 블로그에 생생히 기록으로 남겼다. 블로그에 남겨진 그 북유럽 대자연의 강렬하고도 황홀한 장면보다, 그런 여행을 준비하고 결행해낸 그의 젊음과 사랑이 너무도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호서대 설립자인 고 강석규 박사가 95세 되던 해에 쓴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라는 큰 울림의 글이 있다.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덕에 65세 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죠. 그런 내가 30년 후인 95살 생일 때.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 만일 내가 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날, 95살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 분은 우리의 이 나이에 은퇴하시어 103세에 돌아가셨다.

위 이야기들은 최근에 좀 느슨해지려는 나를 호되게 일깨워주는 죽비가 되어 주었다. 가끔 이 나이에라는 말을 자주 쓰는 친구들에게 엄한 타박을 놓기도 하지만, 어느새 그 말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 친구들에게 그리고 특히 나에게, 위 이야기들에 더하여,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여보게. 우리 나이는 누가 강제로 떠먹인 게 아니니 억울할 것도 슬퍼할 일도 아니지 않은가. 이 나이는 우리가 잘못 살아온 벌이 아니라, 이 험한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남아 쟁취한 보상이며, 먼저 떠난 사람들이 누리지 못한 특권이라네. 지금껏 죽기 살기로 달려온 것은 이 나이에 이르기 위한 것이지. 우리는 이 나이를 위해 평생을 달려왔네. 그리고 언젠가 닥치게 될 미래의 이 나이를 위해 다시 달려야할 출발점이라네."

 

이 글은 아우 장천 김성태에게 요청하여 받은 멋진 작품이다.

 

Angela Álvarez crowned best new artist at Latin Grammys – aged 95

Cuban American musician, who started recording career at 90 after decades of performing for family and friends, says ‘it’s never too late’

www.theguardian.com

“There are people who give up, but I did not give up – I always fought,”  “I promise you – it’s never too late.”

 

 

103세 별세, 강석규 호서대 설립자의 ‘95세 수기’ 뭉클

호서대 설립자이자 명예총장인 강석규 박사가 지난 달 31일 오후 11시 노환으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103세. 그가 95세 되던 해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라는 글을 하나 썼습니다. 젊은 시절 가난

biz.heraldcorp.com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 _ 호서대 설립자 강석규 박사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5세 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죠. 그런 내가 30년 후인 95살 생일 때.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 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30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살이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날. 95살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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