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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 #51 높은 곳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워라

by 변리사 허성원 2021. 12. 2.

높은 곳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워라

 

이 난의 칼럼이 50회를 넘겼다. 매주 하나씩 쓰겠다는 버거운 선언을 하며 올 초에 도전했던 것이 어느 듯 여기까지 이르렀다. 그동안 덜 익은 글을 애독하고 격려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리며, 한편으로 지치지 않고 이만큼 꾸준히 이어온 나 자신이 대견스럽다. 나는 이런 무모한 도전을 가끔 저지른다.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으면 우선 내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린다. 수년째 진행 중인 월례 조찬세미나와 어려운 고전 공부 등 여러 과업을 그렇게 해왔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든 해내게 된다. 그렇게 얻는 성취의 즐거움이 보통 쏠쏠하지 않다.

이 습관은 첫 직장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신입사원 때 현장에서 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첫 출근한 날, 연구소장이 책을 한 권 내밀며 '이 책을 읽어보고 1주일 후에 세미나를 여세요'라고 한다. 받아보니 일본어로 된 기술서적이다. 히라가나조차 제대로 읽을 수 없었던 나는 '저는 아직 일본어를 읽지 못합니다.'라고 했더니, '배워서 하세요.'라고 말하고는 씩 웃으며 가버린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내게 그런 가당찮은 지시를 내렸을까.

자랑 같지만 나는 그 책을 1주일 만에 다 읽어내고 그 며칠 후 세미나도 무사히 치렀다. 처음의 혼란이 대충 가라앉자 달리 도리가 없으니 일단 하는 데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몇 페이지를 복사해서 일일이 토를 다는 일부터 시작했다. 심봉사 젖동냥하듯 동기와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읽는 법부터 사전 찾기까지 일일이 묻고 한 줄씩 해석해나갔다. 첫날은 채 한 장도 해내지 못했지만, 밤잠을 줄이며 매달렸더니 점차 가속도가 붙었다. 그렇게 하여 나는 일본어 읽기를 1주일 만에 속성으로 정복하였다.

'높은 곳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워라.' 손자병법 구지(九地) 편에 나오는 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손자병법의 가르침 중 하나이다. 사다리를 타고 높은 곳에 올라갔는데 누군가가 사다리를 치웠다고 상상해보자. 정말 절박할 것이다. 손자병법은 말한다. 병사들은 피할 수 없는 '부득이(不得已)'한 상황이 되어야만 두려움을 잊고 죽음을 무릅쓰며 싸운다. 그래서 전쟁에 임할 때는 높은 곳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우거나(登高去梯), 돌아갈 배를 태우고 솥을 깨기도 하여(焚舟破釜), 병사들이 전력을 다하지 않을 수 없는 부득이한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처럼 절박한 상황을 의도적으로 연출하는 등고거제(登高去梯)’는 사람을 평가하거나 성장시키는 데 있어 매우 효율적이다. 그래서 군대, 기업, 학문 등 현장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알게 모르게 널리 활용되고 있다. 등고거제를 제대로 당한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는 큰 변화를 경험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인생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앞에서 언급한 '일본어 등고거제'는 그를 통해 내 개인의 잠재력을 새로이 인식하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인간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그것을 절묘하게 이끌어내는 방법이 있음을 알게 해준 큰 깨달음의 계기가 되었다.

등고거제는 시행자와 그 대상에 따라 세 가지 모습이 있다. 첫째는 수동적으로 타인에 의해 당하는 입장으로서, 그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 스스로의 잠재력을 확인한다. 둘째는 능동적으로 타인에게 시행하여 그들을 평가하고 성장과 각성의 기회를 부여하는 리더의 모습이다. 셋째는 스스로에게 시행하는 자율적 시행자이다. 극한의 과제를 자기 자신에게 부여하고 그 극복을 통해 자신의 변화와 성숙을 추구한다. 가히 최고 경지의 등고거제라 할 것이다.

이런 등고거제의 목표는 변화와 혁신이다. 그러기 위해 되돌아갈 수 없고 머무르거나 포기할 수도 없는 그곳에 자신을 데려다놓아야 한다. 그곳에 이르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리고 더욱 강해져야 한다. 스스로 강해지지 않고는 헤쳐 나갈 수 없고 일단 헤쳐 나가면 어느덧 더욱 강해져있다. 그렇게 성취를 이룬다. 성취는 성장과 지속가능성이다. 그러니 지속 성장에 성공한 리더와 기업은 예외 없이 자율적인 등고거제를 친숙한 벗으로 삼는다.

등고거제의 본질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스스로 가혹한 과제를 선정하여 자신에게 부여하고 스스로 그것을 극복해내는 과업이다. 그 싸움에서 자신을 이겨야만 진정한 강자(自勝者强)가 된다. 강자가 되고 싶은가. 그러면 우선 자신을 높은 곳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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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을 이끌 때에는
높은 곳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우는 것과 같이 하고,
병사들을 이끌고 적지 깊숙이 데리고 들어갔을 때,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배를 태우고 솥을 깨뜨리라."

 梯, 帥與之深入諸侯之地 而發其機 焚舟破釜
_ 손자병법(
孫子兵法) 구지(九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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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득이(不得已)'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이
말은 손자병법에 그대로 등장한다.

凡爲客之道
무릇 적지 내에서의 전쟁 요령은 다음과 같다.
深入則專, 主人不克
적지에 깊이 들어가면 병사들은 일체로 단합하게 되어, 적은 이를 이겨내지 못하게 된다.
掠於饒野, 三軍足食
풍요로운 들판에서 군량을 탈취해 전군을 넉넉히 먹인다.
謹養而勿勞, 倂氣積力, 運兵計謀, 爲不可測.
조심스럽게 숨기되 피로하지 않게 하여 사기를 가다듬고 전력을 축적하며,
병력 운용 계책은 적이 예측하지 못하도록 한다.
投之無所往 死且不北 死焉不得 士人盡力
갈 곳 없는 곳에 투입하면 죽을지언정 달아나지 않으며,
죽기로 싸우니 이루지 못할 일이 있겠는가. 장교와 사병은 전력을 다하게 된다.
兵士 甚陷則不懼, 無所往則固, 深入則拘, 不得已則鬪.
병사들은 깊이 빠지게 되면 오히려 두려움이 없어지고,
갈 곳이 없으면 더욱 굳세어지며
적지에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뭉쳐서 (: 잡을 구, 껴안을 구)
부득이하면 싸우게 된다.
是故 其兵 不修而戒, 不求而得, 不約而親, 不令而信
그래서 이런 군대는 다스리지 않아도 삼가고 (修 닦을 수 다스릴 수, 戒 경계할 계, 삼갈 계)
나무라지 않아도 깨닫고 (求 구할 구, 나무랄 구, 得 얻을 득, 깨달을 득)
묶어놓지 않아도 가까워지고(約 맺을 약, 묶을 약
강요하지 않아도 믿는다.
_ 손자병법(孫子兵法) 구지(九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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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옥추제(上
梯)
'지붕 위에 올라가게 한 뒤 사다리를 치워 버린다'

상대를 유인하여 곤궁한 상황에 처하게 함으로써 상황의 주도권을 잡는 전술.
삼십육계 중 제28번째 계책.

등고거제(登高去梯)는 아군이나 자신에게 시행하여 전투의지나 실행력을 강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인 반면,
상옥추제(上屋抽梯)는 적을 유인하여 곤궁한 상황에 빠틀고자 하는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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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韓信)의 배수진(背水陣)과 항우(項羽)의  파부침주(破釜沈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