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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 #52 부릴 것인가 부림을 당할 것인가

by 변리사 허성원 2021. 12. 12.

부릴 것인가 부림을 당할 것인가

 

조카가 고시원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재능이 뛰어나 장래가 기대되는 아이이기에 은근히 다른 길로 유도해봤지만 듣지 않는다. 올해 유일한 수능 만점자도 공무원이 장래 희망이라 한다. 불확실을 기피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가치관이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기엔 아쉬움이 있다. 뛰어난 인재라면 안정보다는 좀 더 도전적으로 나라와 인류를 위해 큰 가치를 추구해주길 바라는 기대 때문이다.

전문직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도 그러했었지만, 한 번의 시험 혹은 일시의 고생을 거치기만 하면 평생 수월하게(?)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다소 약은 기대가 있었다. 산업사회에 이어진 지식사회는 전문직, 공무원 등 지식인들이 주도하였다. 때로는 권력의 모습으로 때로는 권력에 저항하는 모습으로 한 시대의 주역 노릇을 하였기에,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에는 선망과 로망이 남아 있는 듯하다. 하지만 기술 혁신에 따라 사회 환경이 급변하면서 전문직 등의 역할과 위상이 예전 같지가 않다.

진로 상담을 자주 하는 편이다. 변리사 등 전문직을 희망하는 친구의 자제 등이 주 대상이다. 그들에게 그저 전문직의 특성과 미래를 설명했을 뿐인데, 내 이야기를 듣고 난 그들 대부분이 생각을 바꾼다. 내 말의 설득력이 상당한 모양이다. 전문직이란 자신의 전문 지식을 타인을 위해 사용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받는 자격을 가진 직업이다. 이 말 속에 전문직의 특성을 알 수 있는 키워드들, 지식’, ‘타인’, ‘대가’, ‘자격이 있다. 이 키워드들을 하나씩 곱씹어 보면 전문직의 미래가 보인다.

먼저 지식은 전문직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역량이다. 시험 통과와 업무 수행을 위해 부단히 많은 공부를 한다. 그런 강도 높은 학습을 통해 전문 지식을 실질적으로 독점하였다. 그러나 요즘의 지식은 어떤가. 어디서든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가볍게 질문을 띄우면 해당 전문가들이 상세히 답을 달아준다. 지식이 평탄화된 것이다. 누구에게나 접근이 허용된 지식은 이제 더 이상 전문직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리고 타인을 위해 일한다. '타인'의 요청이나 지시에 따라, 타인이 생성한 가치를 보호하거나 그들이 처한 상황을 해결한다. 타인의 필요와 이용에 자신을 제공하는 것이 전문직의 존재이유다. 변리사는 타인의 지적 창작에, 변호사는 타인의 분쟁에, 의사는 환자의 질병 덕분에 업을 유지한다. 그래서 전문직의 운명은 타인의 창작, 분쟁 혹은 질병에 기생(寄生)하며 사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창출할 수 있는 가치는 남을 도와준 노력에 대한 대가즉 수수료이다. ‘대가는 투입된 노동 시간에 비례한다. 그래서 전문직이 많은 돈을 번다면 정말 일을 많이 하였거나 아니면 부당한 수수료를 받아 챙긴 부도덕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근본적으로 돈을 많이 벌 수도 없고 과도히 많이 벌어서도 안 되는 직업이다. 기업의 산업 활동에서는 한 톨의 볍씨로 수백 개의 새로운 볍씨를 수확하듯 무한히 큰 가치를 확대 재생산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들의 재능이 창출할 수 있는 레버리지 효율은 터무니없이 낮다.

그리고 전문직은 자격인 동시에 족쇄이기도 하다. ‘자격은 업의 안정과 확실성을 어느 정도 보장한다. 그러나 꿈꾸는 자들이 추구하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는 언제나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다. 불확실에 도전하는 꿈과 용기는 핑계와 두려움을 극복하여야 한다. ‘자격의 안정과 확실성은 두려움과 핑계를 키우고 꿈과 용기를 거세한다. 그래서 전문직은 그곳에 일단 발을 들이고 나면 쉬이 떠날 수 없는 깊은 덫과 같다.

전문직을 비하하거나 기피하자는 뜻은 아니다. 전문직은 각기 나름의 고귀한 존재이유를 가지고 있어 젊음을 걸어볼만한 가치가 충분이 있다. 하지만 그 삶이 독립변수가 아닌 종속변수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타인의 가치에 의존하는 삶을 거부하고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는 주도적인 삶을 원하는 젊은이라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도전정신과 그럴 재능을 가진 젊은이라면, 그 길에서 후회와 좌절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니 우수한 재능을 가진 우리 젊은이들아. 미래를 주도하며 세상을 변화시킬 야심을 품고 있는가. 그렇다면 무한한 가능성의 불확실에 도전하라. 전문직이 되기보다는 전문직을 부리는 사람이 돼라! 부릴 것인가 부림을 당할 것인가를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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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리사들의 전공은 대체로 엔지니어이다. 그중에는 뛰어난 연구성과를 가진 사람들도 있고, 전공 분야에서 석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도 적지 않다.
그들과 함께 일을 하다 보면, 그들에 재능과 역량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 안타까움은 천리마가 소금 수레를 끄는 모습(기복염거驥服鹽車)이나 닭을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모습(할계우도割鷄牛刀)을 보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