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恍惚)의 시대
'살바토레 가라우'라는 이탈리아 조각가가 있다. 얼마 전 그의 조각 작품이 예술품 경매에서 약 2000만원에 팔렸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작품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것이다. 작품을 얹는 좌대만 덩그러니 존재한다. 그 작품은 원래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김선달은 적어도 ‘없는 것’을 팔아먹지는 않았다.
그런 '없는 것'을 버젓이 파는 사람이나 그걸 감상하고 구입하는 사람이나 모두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대단한 경지의 사람들이다. 논란이 없을 수 없다. 그러자 가라우는 이렇게 말한다. “이 예술 작품은 '없음'이 아니라 '비움'이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공기와 영혼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어쩐지 노자 철학의 향기가 느껴진다.
노자 도덕경 제14장에 이런 말이 있다. 보아도 볼 수 없고 들어도 들을 수 없고 잡아도 잡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끝없이 서로 엮여 있어 뭐라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물질이 없는 상태’로서, 이를 '황홀(恍惚)'이라 부른다.
도(道)의 속성이 그렇다는 말이다. 도(道)라는 것은, 시각, 청각, 촉각과 같은 감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부단히 변화하고 연속되니 뭐라 특정할 수도 없고, 물질로부터 벗어나니 형상도 물체도 없는 미묘한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 미묘함을 '황홀(恍惚)'이라 부른다. '황홀'은 우리가 흔히 ‘황홀하다’라고 말하는 ‘눈부시게 찬란하고 화려한 상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도덕경에서처럼 ‘미묘하여 헤아려 알기 어려운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가라우의 작품이 바로 그렇다. 오감으로 느낄 수 없으니 그야말로 도덕경에서 말하는 ‘황홀’ 그 자체이다. 느낄 수 없는 그런 ‘황홀’한 재화를 사고파는 것이 터무니없이 황당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황홀의 시대’에 깊이 들어와 살고 있다. 바로 오감으로 느낄 수 없는 재화인 무체자산 때문이다. 그 ‘황홀’한 무체자산이 이미 실물 유체자산보다 우리 경제활동에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고 점차 더 커지고 있다. 기업들의 자산이 부동산, 설비 등 유체로부터 급격히 무체자산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무체자산은 주로 특허, 상표, 영업비밀,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모델, 정보, 데이터 등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대표적인 무체자산인 특허는 최근 미국 특허등록 중 60% 이상이 소프트웨어에 관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무체 기술의 창조와 그에 대한 무체자산의 취득이 대세 주류가 되고 있다.
미국 S&P 500대 기업들의 전체 자산 중 무체자산의 비율은 2019년 기준 평균 80% 정도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무체자산은 20%를 넘지 못했었는데, 이제 그 비율이 반전된 것이다. 에너지나 자원 등의 분야에서는 그 업의 특성상 여전히 유체자산의 비율이 높지만, 설비 의존도가 높은 제조업 분야에서조차 무체자산은 80%에 육박하고 있고, 정보통신, 제약, 금융 등의 분야에서는 90% 이상이다. 그리고 기업가치가 높을수록 무체자산의 비율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아마존의 무체자산 비율이 93%, 마이크로소프트가 90%, 애플이 77%, 페이스북이 79%이며, 유체자산이 비교적 많은 구글의 알파벳도 65%이다.
애플, 나이키, 선키스트 등은 제조업이면서도 생산 공장이 없다. 이처럼 ‘황홀한 공장’을 가진 기업들이 많아지고 있고 그들은 공장을 가진 기업들보다 더 강한 경쟁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최근의 유니콘 스타트업들은 그들 비즈니스의 핵심요소인 유체자산을 아예 갖지 않기도 한다. 세계 최대의 택시회사인 우버는 보유 택시가 한 대도 없고, 세계 최대의 여행 숙박 기업인 에어비앤비는 자체 호텔방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며, 세계 최대의 사무실 임대회사인 위워크는 그들 소유의 건물이 없다. 가히 '없음의 경제'의 시대라 할만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유니콘들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체자산이 기업의 핵심가치가 되고, ‘무체’가 갖는 무한한 확장성과 유연성으로 폭발적인 경제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그래서 '황홀'한 자산의 비율이 높은 기업일수록 더욱 눈부시도록 '황홀'하게 성장한다. 황홀한 성장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황홀한 자산으로 무장하라.
우리는 ‘황홀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귀사는 얼마나 황홀한가.
** 황홀(恍惚) _ 도덕경 14장
보아도 볼 수 없는 것, 이름하여 이(夷)라 한다.
들어도 들을 수 없는 것, 이름하여 희(希)라 한다.
잡아도 잡을 수 없는 것, 이름하여 미(微)라 한다.
이 셋은 따져 나눌 수 없이 혼재되어 하나를 이룬다.
그 위가 밝은 것도 아니고 그 아래가 어두운 것도 아니다.
끝없이 서로 엮여 있으니 뭐라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
결국 '물질이 없는 상태(無物)'로 돌아가니,
이는 '형상이 없는 상태(無狀之狀)', 혹은 '물질이 없는 모습(無物之象)'이라 하며,
이를 '황홀(恍惚)'이라 부른다.
앞에서 보아도 그 머리를 볼 수 없고, 뒤를 따라도 그 뒤를 볼 수 없다.
옛날의 도를 가지고 지금의 것을 다루어보면,
옛 것이 어떻게 시작된 지를 알 수 있으니, 이를 도의 실마리(道紀)라 한다.
視之不見, 名曰夷. 聽之不聞, 名曰希. 搏之不得, 名曰微. 此三者, 不可致詰. 故混而爲一. 其上不曒, 其下不昧, 繩繩不可名, 復歸於無物. 是謂無狀之狀, 無物之象. 是謂恍惚. 迎之不見其首, 隨之不見其後. 執古之道, 以御今之有. 能知古始, 是謂道紀. _ 도덕경 제14장
** Italian Artist Salvatore Garau Sells “Invisible” Sculpture For $18,000
** INTANGIBLE ASSETS REPRESENT 80% OF THE VALUE OF THE S&P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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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angible Assets: A Hidden but Crucial Driver of Company 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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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토레 가라우'와 비슷한 일이 덴마크에도 일어났다.
"덴마크의 예술가 옌스 하닝(57)이 작품 제작을 위해 미술관으로부터 1억원 상당의 돈을 받은 뒤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백지 작품을 제출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하닝은 현지 라디오 매체와 인터뷰에서 "그 작업은 내가 그들의 돈을 가져간 것"이라면서 "그건 절도가 아니다. 계약 위반이고, 계약 위반은 그 작품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1억 받고 '그냥 백지' 보낸 먹튀 예술가…작품명도 '돈을 갖고 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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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해프닝도 있습니다.
‘난 정말 너 같은 멍청이가 이런 쓰레기를 진짜로 살지 몰랐어'
"가디언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5일(현지시간) 소더비의 현대미술 판매전에서 뱅크시의 ‘풍선과 소녀’는 전화로 참여한 경매자에게 104만 파운드(약 15억4000만원)에 낙찰됐다.
진행자가 낙찰봉을 내려친 순간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천이 액자 밑으로 내려오며 세로로 잘려나갔다. 소녀가 그려진 그림의 아랫부분은 완전히 파쇄됐고, 액자 안에는 붉은색 풍선이 담긴 그림의 윗부분만 남았다."
"15억 낙찰" 봉 내리치는 순간, 본인 작품 파쇄해버린 화가
이 작품이 다시 경매 시장이 나오자 약 300억원에 팔렸다.
낙찰된 직후 갈가리 찢겨 화제가 됐던 작품… 3년 만에 재경매 나오자 팔린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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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대에 이런 황당한 소리를 하는 기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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