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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재산권보호/특허의도

'기술 가치평가'를 표준화한다고 하는데

by 변리사 허성원 2021. 8. 24.

'기술 가치평가'를 표준화한다고 하는데

 

"옛날 어느 송나라 사람은 손 트지 않는 약’(不龜手之藥불균수지약)에 관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 기술로 대대로 남의 솜을 빨아주는 일을 했고, 어느 날 한 객이 찾아와 그 처방을 백금에 사겠다고 했다. 이에 송나라 사람은 큰돈이 생기게 됨을 기뻐하며 처방을 팔았다. 객은 그 처방을 가지고 오나라에 가서 왕을 설득했고, 오나라는 그 약의 도움으로 월나라와의 겨울철 수전(水戰)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에 오나라 왕은 땅을 쪼개어 봉토를 하사하였다. 장자 소요유에 나오는 불균수지약(不龜手之藥) 고사이다."

동일한 하나의 기술로 어떤 이는 대대로 남의 솜을 빨아주며 살고, 어떤 이는 한 나라의 봉토를 가진 영주가 되었다. 그 기술의 가치를 평가한다면 어느쪽의 것을 기준으로 하여야 할까. 남의 솜을 빨아주며 근근이 일가족을 건사하는 수단으로서의 가치로 보아야 할까, 봉토를 지배하면서 떵떵거리며 사는 영주의 권력 수단으로서의 가치에 기준하여야 할까?

'기술'이란 것은 그 자체로서 객관적인 가치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활용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였을 때 비로소 그 기여분에 대해 가치가 인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술'은 그것을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의 가치가 나타날 수 있다. 불구수지약을 송나라 사람에 의해 솜빠는 데 사용되었을 때의 가치와, 오나라 왕에 의해 수전에서 병사들의 전투에 사용되었을 때의 가치를 비교해보라.

최근 정부에서 기술과 지식재산의 가치 평가 체계를 대폭 개선하여 활성화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기술 등과 같은 지식재산의 가치 평가 체계를 국가가 나서 표준화하겠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여러 복잡한 생각이 든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써본다. 입안자들이 이런 점들을 고려해봤는지는 몰라도.. 

1. 가치는 가격인가?
'가치평가'에서 말하는 가치는 가격을 의미하는 듯하다. 기술을 금전 수치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가격'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객관적인 값어치이다. 돈으로 표현된다.
반면에 '가치'는 미래에 발휘할 효용 잠재력을 의미한다. 가끔 '가격'을 뜻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훨씬 다면적으로 쓰인다.

기술의 '가치'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거래될 때의 '거래 가치'가 있는가 하면,
부가적 이익을 창출하는 역량의 관점에서 '경제적 가치'가 있다.
얼마나 큰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였는지, 혹은 후발주자 등 경쟁자들과 얼마나 큰 기술적 격차를 별였는지를 의미하는 말 그대로 '기술적 가치'도 있고,
특허 등에 의해 보호되는 독점배타적 '권능의 가치'도 있다. 
하다못해 그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의 정서에 작용하는 '정서적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모든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면, 그건 응당 진정한 '가치평가'라 불리울 만한다.
그러나 '가격'만을 알고자 한다면 '가격평가'라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2. 가치(가격)는 주체, 시기, 장소, 방법 등에 따라 다르게 발휘된다.
앞에서 말한 불구수지약의 경우처럼, 기술은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창출되는 가치가 판이하다.
그것을 평가하는 '표준'을 만든다면 그것은 어떤 주체, 어떤 시기, 어떤 비즈니스모델을 상정할까? 상상되지 않는다.

특정의 기술을 생각하면, 그 기술을 필요로 하는 주체와 시기 및 비즈니스 지역 등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그 구체적 상황에 대한 가치 평가는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불특정의 주체, 시기 등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범용적 표준은 사실상 별 의미가 없다.

현재 해당 기술을 이용하여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기업의 경우라면, 그 기술의 기여도를 비교적 정확히 반영하여 매우 현실적인 평가는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 '가격'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객관적 가격이라 될 수는 없다.
다른 누군가에게 기술이 넘어간다면, 그 기술의 실시 상황이 완전히 변경되기 때문이다.  

3. 시장 가치는 시장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시장은 불특정 다수의 공급자와 수요자가 만나는 곳이다. 그들이 동종의 상품에 대해 거래를 반복하여 형성된 교환가치가 가격이다.
그런데 '기술'은 동종의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술의 거래는 대체로 특정된 1:1 내지 소수의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서 일어난다.
그렇기에 정부가 표준까지 마련하여 시장 가격을 굳이 매기려 할 필요는 없다.
파는 쪽과 사는 쪽의 직접적인 흥정이 훨씬 합리적이다.

4. 그럼에도 가치평가는 필요하다.
현물출자, 특수관계자와의 거래, 담보 등의 상황에서는 기술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기술을 실시하는 주체가 정해져 있고, 기존의 비즈니스 실적을 충분히 참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잘못된 '표준'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되고 만다.
기술 가치평가는 '개별적 구체적 가치'에 대한 평가가 중시해야할 영역임에도,
표준이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를 고집하다보면, 어떤 땐 잡아끌어 늘려야 하고 어떤 땐 다리나 머리를 잘라야 하는 기괴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표준화에 대해.. 굳이 어떻게 하자는 뜻은 아니고, 그냥 떠오르는 상념을 대충 적어보았다.
표준화 안이 구체적으로 나오면, 그를 고려하여 이 글을 다시 정리하기로 하고.. 

여하튼 쉽지 않은 시도이다.
추사 김정희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
"법은 있어서도 안 되고 법이 없어서도 안 된다(有法不可無法亦不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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