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ews.joins.com/article/22841122
以隣爲壑<이린위학>
- 기자
이에 맹자가 백규의 치수 방식이 우 임금에 미치지 못함을 지적한다. “우는 물을 다스릴 때 물이 길을 따라 흘러가게 했다. 그래서 우는 사해(四海, 바다)를 물이 빠지는 골짜기로 삼았다. 그러나 오늘날 그대는 이웃나라를 구렁으로 삼고 있지 않은가(禹之治水 水之道也 是故禹以四海爲壑 今吾子以隣國爲壑)”. 백규는 물길을 막기 위해 높은 둑을 쌓는 방식을 이용했는데 이는 자기 나라 입장에선 홍수를 막을 수 있어 좋았다. 문제는 물길이 역으로 흘러가는 바람에 이웃나라에 홍수가 발생해 큰 수해(水害)를 입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이린위학이란 말이 나오게 됐으며 이후 남에게 큰 피해를 끼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행위를 뜻하게 됐다.
요임금 때 황하 유역은 홍수로 큰 피해를 입었다. 요임금은 숭(崇)의 수령인 곤에게 치수를 명한다. 그는 하늘에서 절로 자라는 흙인 식양(息壤)을 훔치는 등 편법을 동원했지만 수해는 더 커져만 갔다. 제방을 쌓아 물을 막는 방법이라 홍수가 나면 제방이 터져 피해를 키웠다. 그러던 와중 요임금이 순에게 왕위를 물려(禪讓)줘 정권이 바뀐다.
집권한 순임금 정권은 곤을 적폐로 몰아 처형하고는 아들 우에게 치수를 명한다. 우는 막기보다는 물길을 트고 소통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백성들과 함께 물길을 파서 황하 물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지류를 만드는 한편, 농사를 위한 수리 시설을 마련한다. 전설에 따르면, 물길을 잡으려 노력하느라 13년 동안 3번이나 자신의 집 앞을 지나면서도 한 번도 들르지는 않았다고 한다.
** 이린위학(以鄰為壑)
"이웃을 물웅덩이로 만들다"
백규가 “제가 치수한 것이 우(禹)보다 낫습니다.”하고 말하자, 맹자가 말했다.
“그대가 잘못 알고 있소. 우(禹)의 치수는 물의 도(道)에 따랐소. 그래서 우(禹)는 사해(四海)를 물이 모이는 물웅덩이로 삼았던 것이오. 지금 그대는 이웃 나라를 물웅덩이로 삼으니 물이 거꾸로 흘러 홍수가 나게 되었오. 홍수가 되어 범람하니 백성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수 없는 일이오. 그러니 그대가 그른 것이오."
白圭曰:「丹之治水也愈於禹。」孟子曰:「子過矣。禹之治水,水之道也。是故禹以四海為壑。今吾子以鄰國為壑。水逆行,謂之洚水;洚水者,洪水也,仁人之所惡也。吾子過矣。」 _ 맹자(孟子) 고자장구하(告子章句下)
** 곤(鲧)의 치수(治水)
洪水滔天。鲧窃帝之息壤以堙洪水, 不待帝命。帝令祝融杀鲧于羽郊。鲧复生禹。 帝乃命禹卒布土, 以定九州。
<山海經 海內經>
홍수가 하늘까지 차올랐다. 곤(鲧)은 천제의 식양(息壤)을 훔쳐 홍수를 막고는 천제의 명을 기다리지 않았다. 천제가 축융(祝融)에게 명하여 곤을 우산 근처에서 죽이게 했다. 곤(鲧)은 우(禹)로 되살아났다. 천제는 우(禹)에게 땅을 다져서 9주를 다스리게 했다.
** 우(禹)의 치수(治水) 史記 夏本紀
致費於溝淢 물길을 내는 데 비용을 쓰다.
及山川之便利 산천의 편의에 따르다.
** 곤우치수(鯀禹治水)
하우(夏禹)는 이름을 문명(文命)이라 했다. 우의 아버지는 곤(鯀)이라 했고, 곤의 아버지가 제전욱이다. 전욱의 아버지는 창의(昌意)이고, 창의의 아버지가 황제(黃帝)이다. 우는 황제의 현손이자 전욱의 손자이다. 우의 증조부 창의와 아버지 곤은 모두 제위에 오르지 못하고 신하가 되었다.
제요 때 홍수가 하늘에 흘러넘쳐 산을 무너뜨리고 언덕을 침수시켜서 인민들이 크게 걱정했다. 요가 물을 다스릴 수 있는 자를 구하자 신하들과 사악이 모두 곤이 할 수 있다고 했다. 요는 “곤은 명을 어기고 종족을 훼손시켰으니 안 되오”라 했다. 사악은 “곤보다 더 나은 사람은 없사오니 임금께서 그를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라고 했다. 이에 요는 사악의 말을 듣고 곤을 기용하여 물을 다스리게 했다. 9년 동안 물은 다스려지지 않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에 제요는 바로 사람을 구해 다시 순을 얻었다. 순이 등용되어 천자의 정치를 섭정하면서 순수를 다녔다. 다니면서 곤의 치수에 드러난 바가 없다는 것을 보고는 바로 곤을 우산(羽山)에서 죽였다. 천하가 모두 순이 곤을 죽인 것을 옳다고 여겼다. 이어 순은 곤의 아들 우를 천거하여 그로 하여금 곤이 하던 일을 잇게 했다.
요가 세상을 뜨자 제순은 사악에게 “요의 사업을 잘 이룰 수 있도록 자리를 맡길 사람이 있겠소”라고 물었다. 모두가 “백우가 사공으로서 요의 공적을 완수할 수 있습니”라 했다. 순은 “오, 그렇소”이라고 하고는 우에게 “그대는 물과 땅을 다스리는 오로지 온 힘을 다 하시오”라고 명했다. 우는 머리를 조아리고 절을 하면서 설, 후직, 고요에게 양보했으나 순은 “그대는 얼른 가서 이 일을 돌보도록 하시오”라고 했다.
우는 사람됨이 영민하고 의지가 강하며 부지런했다. 그 덕은 어김이 없었고, 어질어서 가까워지기 쉽고, 말에는 믿음이 있었다. 목소리는 화기애애했고, 행동은 법도에 맞았으며, 일을 공평하게 처리했다. 반듯하고 부지런하여 위아래의 모범이 되었다.
우는 곧 익, 후직과 함께 임금의 명을 받들어서 제후와 백관들에게 사람들을 동원해 공사를 시작하게 했다. 산으로 가서 나무를 세워 높은 산과 큰물들을 측정하는 표시로 삼았다. 우는 선친 곤이 공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것이 마음 아파 노신초사(勞身焦思)하면서 13년을 밖에서 지냈는데 집 대문 앞을 지나면서도 감히 들어가지 못했다. 입고 먹는 것을 간소하게 해서 귀신에게 정성를 다했으며, 누추한 궁실에 살면서 절약한 비용을 도랑을 파는 일에 들였다. 육지를 다닐 때는 수레를 탔고, 물로 갈 때는 배를 탔다. 진흙탕은 썰매를 탔고, 산길은 바닥에 징을 박은 신발을 신었다. 왼손에는 수준기와 먹줄을 들었고 오른손에는 그림쇠와 직각자를 들고 다녔다. 사계절을 측량하고 아홉 개의 주(구주九州)를 개척하고, 아홉 개의 큰 길(구도九道)를 뚫었다. 아홉 개의 큰 연못(구택九澤)을 조성하고, 아홉 개의 큰 산(구산九山)에 길을 냈다. 익에게는 백성들에게 볍씨를 주어 낮고 습한 땅에 심도록 명했다. 후직에게는 백성들이 얻기 어려운 먹거리를 나눠주라고 명했다. 먹을 것이 적은 곳은 남는 곳의 것을 조정하여 서로 주고받음으로써 제후들의 균형을 맞추었다. 우는 또 디니면서 그 땅에 맞는 것을 공물로 삼되 산과 하천의 편리함에 따랐다.
[네이버 지식백과] 권2. 하본기 [卷二. 夏本紀] - 한글 번역문 (사기: 본기(번역문), 2013. 5. 1., 사마천,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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