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과연 죽음을 슬퍼하고
나는 과연 삶을 기뻐하고 있는가?
열자(列子)가 여행 중에 길에서 밥을 먹다가
백년 쯤 묵은 해골을 보게 되었다.
쑥대를 뽑아 해골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와 그대만이 알지.
온전한 죽음도 없고 온전한 삶도 없다는 것을.
그대는 과연 죽음을 슬퍼하고 있고,
나는 과연 삶을 기뻐하고 있는가?"
列子行食於道 從見百歲髑髏 攓蓬而指之曰
"唯予與汝知而未嘗死,未嘗生也。若果養乎? 予果歡乎?"
_ 장자(莊子) 지락(至樂)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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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는 죽었으니 죽음의 슬픔을 모르고,
산 자는 삶이 버거우니 살아있음을 누리지 못한다.
죽은 자가 죽음을 슬퍼하지 못하고,
산 자는 삶을 즐기지 못하니,
죽었어도 진정한 죽음이 아니고,
살았어도 진정한 삶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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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모두 '기(幾)'에서 생겨나와 '기(幾)'로 되돌아간다
위 해골 이야기에 이어지는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다.
- 모든 만물(種)에는 기(幾, 기미/조짐)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 '기(幾)'는 조건에 따라 다양한 생명체가 된다. 물을 만나면 물때가 되고, 물과 흙을 함께 만나면 이끼가 되고, 언덕에서는 질경이가 되고 거름 속에서는 알뿌리가 된다. 이것은 다시 굼벵이, 나비, 귀뚜라미, 새 등을 거쳐 나중에는 표범과 말을 만들고, 사람까지도 생성된다. 사람 또한 결국에는 '기(幾)'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만물은 모두 '기(幾)'에서 생겨나와 '기(幾)'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
種有幾, 得水則爲㡭, 得水土之際 則爲鼃蠙之衣, 生於陵屯 則爲陵舃, 陵舃得鬱棲則爲烏足. 烏足之根 爲蠐螬, 其葉爲胡蝶. 胡蝶胥也 化而爲蟲, 生於竈下, 其狀若脫, 其名爲鴝掇. 鴝掇千日爲鳥, 其名爲乾餘骨. 乾餘骨之沫爲斯彌, 斯彌爲食醯. 頤輅生乎食醯. 黃軦生乎九猷. 瞀芮生乎腐蠸. 羊奚比乎不箰, 久竹生靑寧. 靑寧生程, 程生馬, 馬生人, 人又反入於機. 萬物皆出於機, 皆入於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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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가 '온전한 죽음도 없고 온전한 삶도 없다(未嘗死 未嘗生)'고 한 것은 만물이 '기(幾)'라는 원소에서 나와 다시 이 '기(幾)'로 되돌아가는 무한 순환의 고리 속에 있어 잠시 그 존재가 어떤 모습을 가졌다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될 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죽음을 슬퍼할 이유도 없고 이 삶을 기뻐할 이유도 없음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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