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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쇼펜하우어의 연민론

by 변리사 허성원 2026. 10. 31.

쇼펜하우어의 연민론

_ 마음 다 쓰고도 안 지치는 법

쇼펜하우어는 삶이 고통이라 보았고, 바로 그래서 연민을 도덕의 유일한 토대로 세웠다. 우리가 남의 고통을 지나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 하나를 여럿으로 쪼개 보이게 하는 착시, 곧 마야의 베일 때문이다. 연민은 그 베일을 꿰뚫는 가장 높은 인식이며, 타인의 고통을 막거나 없애는 데 참여하는 것이다. 순서는 해치지 않기가 먼저, 돕기가 나중이다. 사람을 태우는 것은 연민이 아니라 연민으로 전환되지 못한 공감적 고통이다. 따라서 리더는 주어를 "나"에서 "그"로 바꾸고, 대상을 판별해 불운에는 연민을, 부도덕에는 정의를 주어야 한다. 연민은 결정의 내용이 아니라 방식을 바꾼다. 결심은 꺼지지만 구조는 남으니, 연민을 제도로 설계하고 자기 자신도 돌보라. 자기에게 잔인한 사람은 결국 남에게도 잔인해지기 때문이다.

 

전체 구조와 핵심 논지

이 에세이는 쇼펜하우어의 연민론을 축으로 삼아 세 질문에 답한다. 연민은 약함인가 가장 높은 인식인가. 연민은 누구를 향해야 하는가. 마음을 다 쓰고도 지치지 않으려면 무엇을 알고 무엇을 설계해야 하는가.

관통하는 명제는 다섯이다.

  1. 연민은 따뜻함이 아니라 고통의 인식에서 시작한다.
  2. 연민은 개체화의 착시를 꿰뚫는 가장 높은 인식이다. 약함이 아니다.
  3. 연민은 고통을 "막거나 없애는" 데 참여하는 것이다. 고통을 옮기거나 늘리는 온정은 연민이 아니다.
  4. 사람을 태우는 것은 연민이 아니라, 연민으로 전환되지 못한 공감적 고통이다.
  5. 연민은 결심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연민이 꺼지는 조건을 알고 구조로 설계해야 한다.

서장 · 새벽 두 시의 손

감원 명단 앞에서 펜이 멈칫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경영은 이 멈칫함을 감상으로 불러 왔지만, 조직에는 "마음을 쓰거나 냉철하거나"로 설명되지 않는 다섯 유형이 있다.

  • 잘 잔 사람: 악해서가 아니라 이름이 보이지 않아서
  • 문을 닫은 임원: 감원 뒤 너무 아파서 사람을 번호로 부르게 됨
  • 따뜻한 사장: 봐주다가 성실한 사람부터 잃음. 연민이 모자란 게 아니라 겨냥이 틀림
  • 마비된 회사: 지표는 녹색인데 사고 뒤 "현장은 알고 있었다"
  • 손이 멈칫한 사람: 이 에세이의 독자

정명도의 "손발 마비를 불인(不仁)이라 한다"가 마비된 조직의 이름이 된다.

제1부 · 고통에서 시작하는 연민

제1장 · 세 사람이 본 고통

  • 쇼펜하우어: 1804년 툴롱 군항에서 갤리선 노예를 보고 "붓다처럼 삶의 비참함에 사로잡혔다"고 회고
  • 붓다: 사문유관. 범부는 늙음을 꺼리며 "자기 처지를 잊는다". 고성제와 일체개고 위에 자비(karuṇā)가 선다
  • 맹자: 우물로 기어가는 아이를 "문득(乍)" 볼 때 생기는 측은지심. 계산도 평판도 아니다. 실마리(端)이므로 확충해야 하고, 끝내 불인인지정(不忍人之政), 곧 제도가 되어야 한다

세 사람 모두 연민의 뿌리를 고통에 둔다. 맹자에게 고통은 연민을 깨우는 장면이고, 붓다와 쇼펜하우어에게는 존재의 조건이다. 쇼펜하우어를 주연으로 세우는 이유는 삶이 왜 고통인지, 왜 남의 고통을 못 보는지, 볼 때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하나의 논증으로 묶었기 때문이다.

제2장 · 연민의 철학자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아홉 장면)

연도 장면 의미

1788 단치히 상인의 아들로 출생 상인 승계 계획과 책의 긴장
1805 아버지가 운하에서 숨진 채 발견 상점을 떠나 의학과 철학으로. 몸에서 출발하는 철학
1814 어머니와 영구 결별, 같은 달 『우프네카트』를 만남 "그것이 바로 너다"를 얻은 달에 어머니를 타인으로 만듦
1819 주저 출간, 판매 실패. 헤겔과 같은 시간 강의, 참패 핵심 개념은 이미 이때 완성
1821 재봉사 마르케를 밀쳐 20년 배상. 사망 시 "노파가 죽으니 짐이 떠났다" 연민은 기질이 아니라 인식이고, 분노·피로·영역 다툼에서 꺼진다
1831 콜레라 피신, 프랑크푸르트 정착, 푸들 아트마, 매일 플루트 동물에 대한 연민, 미적 관조의 일상화
1840 덴마크 학술원 현상 논문, 단독 응모에 낙선 "도덕을 설교하기는 쉽고 정초하기는 어렵다"
1851 『파레르가와 파랄리포메나』로 늦은 명성 고슴도치 우화의 출처
1860 소파 구석에서 사망 유언장은 종장에서 공개

교훈은 경영자가 배울 것은 따뜻함이 아니라 시력이라는 점이다. 철학자 자신이 연민에 자주 실패했고, 그 실패가 "구조로 관리하라"는 처방의 출발점이 된다.

제2부 · 쇼펜하우어 연민론의 해부

제3장 · 삶은 고통이다

  • 칸트가 닫아 둔 사물 자체의 문을 몸이라는 열쇠로 연다. 밖에서 본 몸은 표상, 안에서 느끼는 몸은 의지. 모든 현상의 안쪽은 하나의 의지다
  • 의지는 맹목적이고 지성은 그 하인("의지의 등불"). 경영 번역: 의지는 전략 이전의 조직 관성, 전략 문서는 등불
  • 의지에는 목표가 없다. 모든 원함은 결핍에서 나오고, 하나가 이루어지면 열이 남는다
  • 진자: 얻지 못하면 고통, 얻으면 권태. 목표 상향의 무한 반복이 번아웃의 구조적 원천
  • 고통만이 적극적이고 행복은 소극적이다. 그래서 연민의 대상은 고통이다
  • 경영 번역: 몰입도·만족도는 소극적 지표. 이직 사유 원문, 아차 사고, 결제 지연일수 같은 고통 지표를 대시보드에 올려라
  • 붓다의 dukkha와 출발점(무상·무아 대 맹목적 의지)은 다르지만 결론은 같다. 고통은 예외가 아니라 조건

제4장 · 왜 우리는 남의 고통을 보지 못하는가

  • 표상: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 경영 번역은 보고서. 틀에 고통의 칸이 없으면 고통은 안 보인다
  • 개체화의 원리: 시간과 공간이 하나를 여럿으로 보이게 한다. 경영 번역은 조직도와 칸막이
  • 제 선왕의 소와 양: "소는 보았고 양은 보지 못했다". 개체화의 원리는 본사와 협력사 공장 사이의 킬로미터다. 처방은 가 보는 것
  • 마야의 베일: 이기심은 악의 이전에 형이상학적 착시. 꾸짖지 말고 시력을 바꿔야 한다. 베일의 두께 분포가 각 사람의 반경
  • 베일이 걷히는 두 순간: 미적 관조는 세계에서 물러나 의지를 끄고, 연민은 세계로 들어가 의지를 타인에게 돌린다. 연민이 한 등급 높다. 리더에게는 관조의 시간과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 모두 필요하다
  • 정직한 유보: 쇼펜하우어의 우파니샤드는 중역본이었고, 인도 철학의 계승이라기보다 창조적 공명
  • 결론: 악한 사람에게 타인은 비아(非我), 선한 사람에게 타인은 "한 번 더 있는 나"

제5장 · 연민이란 무엇인가

  • 칸트 비판: 당위는 명령자와 상벌을 전제하며, 정언명령 안에는 이기심이 숨어 있다. 기업 윤리 강령은 설교이지 정초가 아니다
  • 도덕적 가치의 기준: 이기적 동기의 부재
  • 연민의 정의(네 부품): 즉각, 부수적 고려로부터 독립, 무엇보다 고통에, 막거나 없애는 데 참여. 마지막 부품이 제4부 전체의 잣대
  • "그의 고통을 그의 것으로 느끼며 우리 것으로 상상하지 않는다". 스미스식 상상의 자리바꿈과 다르다. 공감은 고통을 복제해 경계를 무너뜨리고, 연민은 경계를 유지해 움직일 힘을 남긴다
  • 세 동기: 이기심(정렬하라), 악의(차단하라), 연민(기억하고 제도화하라)
  • 연민의 두 단계: "누구도 해치지 말라(정의), 할 수 있는 한 도우라(인간애)". 순서가 핵심. 공정이 먼저, 지원이 나중. 대금을 110일 미루며 봉사 사진을 올리는 회사는 위선
  • 눈물의 분석: 운다는 것은 출발점으로 되던져진 연민. 연민의 회로는 하나이고, 자기연민은 거리의 산물(제14장에서 재사용)

제6장 · 성품, 자유, 영원한 정의

  • 세 성품: 예지적(불변), 경험적(위기에서 드러남), 획득된(자기를 알고 그에 맞게 삶). 성품은 못 바꿔도 구조는 바꿀 수 있다. 처방이 감수성 훈련이 아니라 설계인 이유
  • 맹자와 연민 훈련 연구는 불변론을 보완한다. 연민의 시력은 기를 수 있다. 다만 명령이 아니라 노출과 반복으로
  • 두 번째 길: 큰 고통이 베일을 찢을 수 있다. 찢어진 자리를 냉담으로 채우느냐 연민으로 채우느냐는 본인 몫
  • 영원한 정의: 괴롭히는 자와 괴롭힘당하는 자는 하나. 경영 번역은 "외부란 없다". 라나 플라자 붕괴처럼 외부화한 고통은 지연을 거쳐 돌아온다
  • 주연과 갈라서는 곳: 쇼펜하우어의 결론인 의지의 부정(금욕)은 받지 않는다. 경영은 삶을 조직하는 일이므로. 대신 맹자의 확충, 왕양명의 사상마련, 유마힐의 "중생이 병드니 내가 병든다" 같은 세상 안으로 들어가는 방향을 택한다
  • 니체의 반론: 연민은 힘을 잃게 하고, 받는 자를 모욕하며, 고통을 권력으로 만든다. 그러나 니체가 공격한 것은 공감적 침몰과 동정이다. "위대한 사랑은 창조하고자 한다"는 쇼펜하우어의 "막거나 없앤다"와 같은 방향. 옳은 진단에 틀린 병명
  • 제2부 요약표: 의지, 고통의 적극성, 표상, 개체화의 원리, 마야의 베일, 연민, 두 단계, 획득된 성품, 영원한 정의, 의지의 부정을 경영 번역과 함께 한 장으로 정리

제3부 · 연민의 지도

제7장 · 열세 개의 이웃

어원부터 가른다. empathy는 1909년 티치너의 신조어, pity에는 내려다보는 시선, compassion과 Mitleid는 "함께 겪다". 그런데 쇼펜하우어는 이를 고통의 복제가 아니라 의지의 움직임으로 정의했다.

역지사지: 우와 직의 문장에서 결정적인 것은 처지 바꾸기가 아니라 "자기가 빠뜨린 것처럼 여겼다"는 책임의 방향이다. 관점 취하기 자체에는 도덕적 방향이 없다(사기꾼도 능하다).

닮은 일곱:

  • 공감: 감정 복제, 소진의 원인
  • 동정심: 위에서 아래로의 지위 격차
  • 불쌍함: 아리스토텔레스식 판정("그럴 만하지 않은 불운"과 "나에게도 올 수 있음"). 판정이 바뀌면 사라짐
  • 안타까움: 구경꾼의 언어
  • 친절: 고통을 전제하지 않음
  • 배려: 미래의 곤란을 미리 치움. 실패형은 장자의 혼돈 우화. 제1규율은 먼저 묻기
  • 자비: 자(즐거움을 줌)와 비(고통을 덜어 줌). 사무량심의 사(捨, 평정)가 지치지 않는 구조의 원형

반대편 여섯: 무관심, 무심함(무신경과 선적 무심의 두 얼굴), 매정함(부도덕한 자에게는 정의가 됨), 냉담(데었던 자리, 회복이 더 어려움), 거리두기(상대를 위한 거리와 나를 위한 거리), 시기심(쇼펜하우어가 놓은 진짜 정반대, 해독제는 희喜).

결론: 연민의 가까운 적은 감상적 침몰, 평정의 가까운 적은 무관심. 연민은 고통을 정확히 보고, 상대를 낮추지 않고, 그를 위해 움직이며, 경계를 지키는 네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는 자리다.

제8장 · 과학의 판독

  • 징거: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볼 때 내 통증 관련 정서 영역이 함께 켜진다
  • 클리메키·징거: 공감 훈련 집단은 부정 정서 증가, 연민 훈련 집단은 긍정 정서 증가와 보상·돌봄 회로 활성화(표본·단순화·기대효과의 한계 명시)
  • 공감적 고통(feeling with) 대 연민(feeling for): "공감 피로"는 잘못된 이름. 냉담은 공감의 반대가 아니라 종착지일 수 있다(문 닫은 임원의 설명)
  • 슬로빅의 심리적 마비: 숫자가 커질수록 반응이 준다. 정명도의 불인과 같은 낱말
  • 블룸의 스포트라이트: 공감은 일부만 비춘다. 연민은 조명 설계여야 한다
  • 권력감과 관점 취하기 감소(재현성 논쟁 있음), 수면 부족과 편도체 반응: 사람에 관한 중대 결정을 밤에 하지 말라

제4부 · 경영 현장의 연민

제9장 · 마비된 조직과 다섯 관문

  • 그렌펠 타워: 주민 경고는 "민원", 다시 "처리 건수"로 바뀌며 고통이 아니게 되었다. 악당이 아니라 칸막이와 절차의 문제이며, 연민 첫째 단계의 실패
  • 반두라의 도덕적 이탈: 완곡어법과 비인간화는 얼굴을 지운다. KPI를 버리라는 게 아니라 숫자 옆에 얼굴 하나를
  • 연민이 경영 성과인 이유: 정보, 유지, 판단

관문 핵심 질문 실패하면

1 직면 나는 못 보는가, 안 보는가 (결제 60일이 실제 110일이었던 회장) 마비
2 관찰 다른 사람이었어도 같았겠는가 (스미스의 공정한 관찰자, 네 질문) 정실
3 전환 머릿속 문장의 주어가 "나"인가 "그"인가 소진
4 행동 이 조치는 그를 서게 하는가 (구체성, 역량 지향, 단호함과의 양립) 감상
5 회복 내 안에 열이 있는가 (고슴도치, 사捨) 냉담

"창조"를 자처하는 조직 폭력을 막는 안전장치가 정의 먼저, 인간애 나중이라는 순서다.

제10장 · 연민이 넘쳐 결단하지 못할 때

공통 질문: 이 연민은 고통을 막거나 없애는가, 옮기거나 늘리는가.

  1. 창업 공신이 조직의 암일 때: 읍참마속을 정사로 끝까지 읽으면 처형만이 아니라 자폄삼등(책임), 유족 돌봄(처우), 당대 반론까지 있다. 처방은 권한 회수(이직보원), 명예로운 퇴장(이덕보덕), 리더의 "내가 너무 늦었다"
  2. 가정 형편이 어려운 옛 에이스: 기회 연장은 고통을 줄이지 않고 팀원에게 옮긴다. 경제적 고통은 지원(悲)으로, 역할의 고통은 기한 있는 기회나 병행 가능한 자리(慈)로
  3. 승진 심사: 절박한 후보를 미는 팀장들의 연민은 진짜지만, 성과를 낸 조용한 후보가 양이다. 연민을 꺾지 말고, 정보 확인, 기준 우선, 처우 별도 설계, 그리고 "떨어지면 떠나야 하는" 제도 자체를 점검
  4. 매일 외투를 벗어 주는 남편: 마르티누스는 망토의 반을 주었다. 공감적 고통의 해소인지, 고통을 실제로 없애는지, 가족을 해치지 않는지를 물어야 한다. 처방은 나눔 예산과 쉼터 연결

제11장 · 연민이 모자라 실패할 때

  1. 미드스태퍼드셔 병원: 재정 목표 몰두 속에 환자 방치. 표상이 실재를 가린 극단. 사명이 연민일수록 꺼진 자리는 더 깊다
  2. 라디오섀크 이메일 해고: 얼굴은 저항하고 문자는 저항하지 않는다(레비나스). 문자 해고는 잔인함보다 회피. 대면 통보, 직속 상사, 지원 문서, 남은 이들에 대한 설명을 평시에 문서화
  3. 우버와 수전 파울러: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 보지 않았다. 외면된 고통은 신뢰와 경영진 교체로 돌아왔다. "외면은 가장 비싼 절약"

제12장 · 연민이 중용을 지킬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마땅한 때, 대상, 사람, 목적, 방식"이 기준이다.

  1. 연민과 분노: 카밀루스가 팔레리이의 배신한 선생을 아이들에게 매질당하며 돌려보냄. 분노는 연민의 경호원. 도시는 스스로 항복했다
  2. 연민과 슬픔과 결단: 스키피오는 카르타고를 불태우며 로마의 미래를 보고 울었고, 그래도 집행했다. 연민은 결정의 내용이 아니라 결정자의 시력을 바꾼다
  3. 연민과 승리의 기쁨: 녹스존스턴은 승리를 누리면서 상금을 크로우허스트 유족에게 보냈다. 반대편 거울로, 분식은 대개 탐욕이 아니라 견딜 수 없음에서 시작된다. 물을 것은 "나쁜 소식을 가져오는 일이 얼마나 견딜 수 없게 되어 있는가"

제13장 · 누구에게 연민을, 누구에게 정의를

농부와 뱀: 농부의 잘못은 도운 것이 아니라 대상을 확인하지 않은 것.

판별의 두 축은 통제 가능했는가, 남을 해쳤는가.

유형 연민의 형태 함께 줄 것

1 선천적 조건·불가항력 온전한 연민 배려와 구조 조정(낮은 목표가 아니라 경사로)
2 능력 부족 연민과 정직 다른 자리. 세 문장("지금 부족하다", "부족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함께 찾자")이 모두 있어야 함
3 실수 연민과 학습 재발 방지 설계
4 실패 연민과 재기회 결정과 결과를 분리해 평가
5 부주의 제한적 "구조는 우리가 고치고, 당신 책임은 이만큼"
6 반복된 부주의 거의 없음 배제 또는 이동
7 부도덕 0 정의

7번에 대한 세 단서: 연민 0은 행위에 대한 것이지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다, 절차는 더 정중해야 한다, 판정은 조사 뒤 가장 늦게.

  • 공적 영역: 사적 예외는 미담, 공적 예외는 선례가 되고 선례는 제도가 된다(대의멸친은 1인칭 원칙으로만)
  • 배리웨밀러 2008: 감원 대신 전원 4주 무급휴가 분담. 형편 나은 직원이 동료 몫을 대신 씀. 핵심은 마음이 아니라 형식(극기복례). 단서로 비상장, 1년 내 회복 명시
  • 핵심 명제: 연민은 결정의 내용을 바꾸지 않고 방식을 바꾼다. 들어갈 자리는 결정 이전, 집행 방식, 결정 이후. 들어가면 안 될 자리는 결정 내용 그 자체
  • 세 규율: 판단과 처우 분리, 예외에 기록과 기준, 이 방에 없는 사람 불러내기. 평시 세 문서: 감원 원칙서, 지원 패키지, 위기 소통 원칙

제14장 · 마음 다 쓰고도 안 지치는 법

  • 개념 정리: 마슬락의 번아웃 세 요소(소진, 비인간화, 성취감 저하), 피글리의 연민 피로. 문제는 연민이 아니라 연민에 도달하지 못한 것
  • 선한 사람이 무너지는 다섯 조건: 공감 회로에 머묾, 권한 없는 목격, 기여 지표 부재, 경계 모호, "힘들다고 하면 안 된다"는 규범. 리더가 구성원에게 공감만 요구하면 감정노동의 강요(혹실드)
  • 나이팅게일: 병상의 공감에서 무너진 뒤 통계로 구조를 설계. 선의는 고갈되지만 제도는 고갈되지 않는다
  • 그랜트의 기버·테이커·매처: 바닥과 꼭대기 모두 기버. 자기희생형은 공감적 고통형, 타자지향형은 연민형. 매처는 칸트 속 숨은 이기심의 논리. 리더의 역할은 기버를 식별·보호하고 기여를 보이게 하는 것
  • 자기연민: 자기동정이 아니다. 자기 고통을 일체개고의 한 사례로 보는 것, 자기에게서 떨어지는 것. "누구도 해치지 말라"의 누구에는 나도 포함. 붓다의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남을 해치지 않는다". 네프의 세 요소(자기친절, 공통 인간성, 마음챙김). 자기합리화와 달리 사실은 그대로 두고 견딜 수 있게 한다
  • 자기돌봄: 소방관의 "자기, 동료, 요구조자" 순서, 산소마스크는 내 것 먼저
  • 리더의 다섯 처방: 주어를 바꾸라, 물러나는 시간(관조)을 지키라, 게라심 한 사람을 확보하라, 결과를 확인하라, 큰 결정은 밤에 하지 말라
  • 조직 처방: 기버들에게 역할·한계 문서화, 권한 부여, 기여 지표, "힘들다"고 말해도 불이익 없는 전례, 순환 근무와 동료 지지 모임
  • 다섯 성찰 질문: 고통(원문으로 마주한 시간), 반경(화제를 바꾸고 싶어지는 동심원), 방향(주어와 막거나 없앴는가), 순서(해치지 않기를 지키는가, 대가를 치를 사람은 이 방에 있는가), 자기("참아야 한다" 말고 다른 문장이 있는가)

종장 · 유언장, 그리고 다시 새벽 두 시

쇼펜하우어는 재산 대부분을 1848~49년 소요 진압에서 다친 프로이센 병사와 유족 기금에 남겼다. 만난 적 없는 "보이지 않는 양"들이다. 툴롱의 소년이 평생의 실패 끝에 마지막 문서로 답을 적었고, 감정은 사라졌지만 문서는 그가 죽은 뒤에도 일했다. 불인인지심이 불인인지정이 된 장면이다.

서장의 다섯 유형에 대한 처방: 잘 잔 사람에게는 반경 바깥의 얼굴 하나, 문 닫은 임원에게는 회로 소진이라는 진단과 산소마스크, 따뜻한 사장에게는 일곱 유형 판별표, 마비된 회사에는 대시보드와 일정표의 변화, 멈칫한 손에는 아무것도 없앨 필요가 없고 도구만 쥐여 주면 된다.

마지막 메시지: 새벽의 멈칫함은 약함이 아니라 베일이 걷히는 소리다. 다섯 관문을 통과시키고, 누구에게 연민을 누구에게 정의를 줄지 겨냥하라.

엘 그레코의 「성 마르티누스와 걸인」(1597~99,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에세이 제10장의 넷째 장면에 나오는 바로 그 일화이다. 말 위의 군인이 칼로 망토를 반으로 잘라 헐벗은 걸인에게 건네는 순간을 그렸다. 이 그림이 에세이의 주제를 가장 정확히 담는 이유는 "반"에 있다. 전부를 주어 자기도 쓰러지는 공감적 침몰이 아니라, 반을 남겨 내일도 줄 수 있게 하는 연민이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마땅한 만큼"의 중용이다. 마르티누스의 시선이 자기 감정이 아니라 걸인을 향해 있다는 점도 "주어를 나에서 그로 바꾸라"는 제3관문과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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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연민 - Google Docs.pdf
0.69MB

** <마야의 베일>

마야(māyā)는 산스크리트어로 "환영", "미혹"을 뜻하는 인도 철학의 개념이다.

우파니샤드와 베단타 전통에서는 세계의 근원은 하나(브라만)인데, 우리 눈에는 그것이 서로 다른 수많은 사물과 개체로 나뉘어 보인다고 설명한다. 그 나뉨을 실재처럼 믿게 만드는 힘이 마야이고, 그것이 진실을 가리는 천과 같다고 해서 "베일"이라는 비유가 붙었다.

쇼펜하우어는 이 말을 빌려 자기 철학의 핵심 개념인 개체화의 원리(principium individuationis)를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세계의 본질은 하나의 의지인데,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인식의 틀을 통해서만 세계를 보기 때문에 그 하나가 "나"와 "너"로 갈라져 보인다. 마야의 베일은 바로 이 갈라짐을 세계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진짜 구분으로 착각하는 상태이다.

이 착시에서 두 가지가 나온다.

하나는 이기심이다. 베일 이쪽에서 각 개체는 자기를 세계의 중심으로 느끼고, 남의 고통은 남의 일이 된다. 쇼펜하우어가 이기심을 악한 마음이기 이전에 형이상학적 착시라고 본 이유이다.

다른 하나는 연민이다. 어떤 순간 베일이 투명해지면, 우리는 타인 속에서 자기를 알아본다. 그에게 타인은 "한 번 더 있는 나"가 되고, 그 고통이 곧바로 나를 움직인다. 그래서 연민은 감상이 아니라 세계를 평소보다 더 정확히 보는 인식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에세이의 경영 번역으로 말하면, 마야의 베일은 조직도와 칸막이, 본사와 협력사 사이의 거리, 이름을 숫자로 바꾸는 보고서의 언어이다. 악의가 없어도 그 베일 때문에 남의 고통이 보이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덧붙이면, 쇼펜하우어가 읽은 우파니샤드는 페르시아어 번역을 다시 라틴어로 옮긴 중역본이었고, 근원의 하나를 "맹목적 의지"로 이해한 것은 인도 전통의 브라만 개념과 거리가 있다. 그래서 그는 인도 사상을 그대로 계승했다기보다 창조적으로 차용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