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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재산권보호/특허전략

특허제도에 저항하는 사람들

by 변리사 허성원 2026. 5. 6.

특허제도에 저항하는 사람들

우리가 상식으로 여기고 있는 특허제도에 대한 비판적 담론과 역사적 저항을 입체적으로 조명해본다. 
특허제도에 대한 비판은 그 출발에서부터 있어 왔다.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이미 폐지 직전까지 갔다. 네덜란드는 1869년부터 1912년까지 특허법을 폐지했고, 스위스는 1888년에야 첫 특허법을 도입했다. 마흐럽의 1958년 미 의회 보고서가 이 역사를 복원했다.

비판자들의 진영은 정치 스펙트럼의 양 극단에 걸쳐 있다. 자유지상주의 폐지론(킨셀라, 볼드린-르빈), 실증적 개혁론(베센-뮤어러), 반공유지론(헬러), 노벨상 진영(스티글리츠), 공유지론(보일), 사이버법학(레식), 글로벌 남(시바),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스톨먼), 미시 정책 개혁가(렘리)가 모두 이 진영에 속한다. 
특허제도가 자유시장 원리에도 반하고 글로벌 정의에도 반한다는 양면 비판을 동시에 받는 특이한 제도임을 알 수 있다.

들어가며: 이 자료집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특허제도에 저항한 사람들의 명단을 모으다 보면 약간 당혹스러운 경험을 하게 된다. 저항의 진영이 우리가 막연히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학술적으로 단단하며, 무엇보다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특허제도 비판을 21세기의 새로운 현상으로 떠올린다. 거대 IT 기업의 특허 분쟁, 특허괴물의 부상, 코로나19 백신 특허 논쟁 같은 동시대 사건들이 비판의 표면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자료집을 읽고 나면 다른 그림이 보일 것이다. 특허제도 비판은 제도 자체와 거의 동시에 시작되었으며, 19세기 중반의 유럽에서는 거의 승리하기 직전까지 갔다. 오늘날의 비판은 그 오랜 전통의 재발견이자 갱신이다.

또 하나의 흔한 오해는 비판자들이 정치적 좌파에 몰려 있다는 인식이다. 실제 지형은 그렇지 않다. 한쪽 끝에는 자유시장 원리에 충실한 자유지상주의 우파가 있고, 다른 쪽 끝에는 탈식민주의 좌파가 있다. 그 사이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변리사 출신 무정부자본주의자, 환경운동가, 사이버법학자, 대학 교수가 모두 들어와 있다. 좌파만의 비판도, 우파만의 비판도 아닌 것이다. 이는 특허제도가 자유시장 원리에도 반하고, 글로벌 정의에도 반한다는 양면 비판을 동시에 받는 드문 제도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 자료집은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부분(I~III장)은 특허제도가 무엇인지, 어떤 역사를 거쳐 왔는지, 저항자들이 어디를 표적으로 삼는지를 짚는다. 비판자들의 논변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그 표적이 어디인지를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부분(IV장 이하)은 저항 진영을 열한 개로 나누어 분석한다. 각 진영마다 역사적 맥락, 핵심 인물과 저작, 논변의 구조, 대표 인용문, 학술적 영향력, 약점과 비판, 변리사로서의 메모 일곱 개 항목으로 구성했다. 이 형식이 다소 엄격해 보일 수 있지만, 진영들을 동일한 척도로 비교하기 위해 이 형식을 고수했다.

I. 특허제도란 무엇인가: 골격을 먼저 짚는다

저항자들의 논변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그들이 무엇을 표적으로 삼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특허제도의 골격을 짧게나마 짚을 필요가 있다.

거래의 구조

특허제도의 본질은 거래다. 영어 표현으로 *거래의 대가(quid pro quo)*다. 발명자가 자신의 발명을 공개하는 대가로, 국가가 한시적 독점을 부여한다. 이 거래의 양쪽이 모두 핵심이다.

발명자 입장에서 공개는 손해다. 영업비밀로 숨겨두면 영원히 자기 것일 수 있는데, 공개하면 누구나 알 수 있게 된다. 그 손해를 상쇄하기 위해 국가는 일정 기간 동안 다른 사람이 그 발명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아준다. 보통 20년이다.

사회 입장에서도 거래다. 한시적으로 독점을 허용하는 대신, 발명의 공개를 얻는다. 공개된 발명은 누구나 학습할 수 있고, 그 위에 새 발명을 쌓아 올릴 수 있다. 20년이 지나면 발명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공의 자산이 된다.

제도의 네 기둥

특허제도가 작동하려면 네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신규성(novelty)이다. 이미 알려진 기술에는 특허를 줄 수 없다. 출원 시점에 세상 어디에도 공개된 적이 없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 진보성(inventive step)이다. 신규성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분야의 보통 기술자가 보기에 자명하지 않은 발전이어야 한다. 자명한 변경에까지 특허를 주면 누구나 다 떠올릴 수 있는 일에 독점이 부여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셋째, 산업상 이용 가능성(industrial applicability)이다. 단순한 자연 법칙의 발견이나 추상적 아이디어는 안 된다. 실제로 산업에 응용 가능한 구체적 기술이어야 한다.

넷째, 충분한 공개(sufficient disclosure)다. 명세서에 그 분야 보통 기술자가 재현 가능할 정도로 상세히 발명을 적어야 한다. 공개가 부실하면 거래의 한쪽이 무너진다.

이 네 기둥은 모든 현대 특허법 체계가 공유하는 골격이다. 한국 특허법, 미국 특허법, 유럽 특허법이 세부 표현은 달라도 이 네 기둥은 같다.

보호의 범위와 한계

특허는 *청구항(claim)*이라는 문서로 보호 범위가 정해진다. 청구항은 발명의 경계선을 그리는 글이다. 이 경계 안에 들어오면 침해이고, 밖에 있으면 침해가 아니다.

청구항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보호 범위가 크게 달라진다. 좁게 쓰면 회피 설계가 쉽고, 넓게 쓰면 무효 위험이 커진다. 이 균형을 잡는 일이 변리사의 핵심 업무 중 하나다.

특허는 영토 단위로 부여된다. 한국 특허청에서 받은 특허는 한국에서만 효력이 있다. 미국에서 보호받으려면 미국 특허청에 별도로 출원해야 한다. 이 점이 글로벌 무역과 관련하여 끊임없이 분쟁의 씨앗이 된다. 1995년 WTO TRIPS 협정이 출범한 이유도 여기 있다. 모든 가입국이 최소한의 IP 보호 수준을 의무적으로 도입하도록 한 것이다.

저항자들이 공격하는 다섯 지점

이제 저항자들이 어디를 표적으로 삼는지가 보인다. 정확히 다섯 지점이다.

첫째 지점은 거래의 정당성 자체다. 국가가 한시적 독점을 부여할 권한이 있는가? 자유시장 원리와 양립 가능한가? 19세기 자유무역론자, 21세기 자유지상주의 폐지론자가 이 지점을 공격한다.

둘째 지점은 재산권 자격이다. 아이디어는 비경합적이고 비배타적이다. 한 사람이 사용해도 다른 사람의 사용이 줄지 않는다. 그런 것에 재산권이 가능한가? 킨셀라 같은 자연권 자유지상주의자가 이 지점을 공격한다.

셋째 지점은 경계선의 모호함이다. 청구항이라는 글로 경계를 정하지만, 그 경계는 부동산 등기부의 경계처럼 명확하지 않다. 사후적으로 법원이 정해야 한다. 이 모호함이 NPE의 협박 무기가 된다. 베센-뮤어러의 통지 기능 실패 분석이 이 지점을 공격한다.

넷째 지점은 보호의 누적 효과다. 한 분야에 특허가 너무 많이 쌓이면 후속 혁신이 봉쇄된다. 헬러의 반공유지의 비극이 이 지점을 공격한다.

다섯째 지점은 글로벌 비대칭이다. 자원은 남반구에 있고 특허는 북반구가 가진다. 의약품 가격은 선진국 기준으로 매겨지고 빈곤국 환자는 약값을 감당할 수 없다. 시바, 스티글리츠, MSF가 이 지점을 공격한다.

이 다섯 지점을 머릿속에 두면, 이어지는 진영별 분석에서 각 비판자가 어디를 겨냥하는지가 명료해진다.

II. 특허제도의 역사: 550년의 궤적

저항자들의 비판이 단순한 반동이 아니라 제도의 본질에 대한 응답임을 이해하려면 이 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를 알아야 한다.

1474년 베네치아 특허법: 시작점

특허제도의 기원에 대해서는 학설이 분분하지만, 최초의 일반 특허법이라는 영예는 대체로 1474년 3월 19일 베네치아 공화국이 제정한 특허법(Venetian Patent Statute)에 돌아간다.[^1] 이 법은 베네치아에서 새 발명을 만든 사람에게 10년간의 독점권을 부여하고, 베네치아 영토 내에서 누구도 그 발명을 모방할 수 없도록 했다. 모방하려면 발명자의 동의와 라이선스를 얻어야 했다.

이 법이 특별한 이유는 개별적 특혜의 부여가 아니라 일반적 규칙의 적용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그 이전에도 베네치아에서 발명자에게 독점을 부여한 사례는 있었으나, 그것은 청원에 따른 개별 특혜에 가까웠다. 1474년 법은 발명자라는 사실 자체가 권리의 근거가 된다고 선언했다. 1474년부터 1788년 사이 베네치아 원로원은 약 2,000건의 특허를 부여했다.[^2]

베네치아의 모델은 점차 유럽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16세기에는 영국, 프랑스, 독일 영방국가들이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다.

1623년 영국 독점법: 권력 제한과 결합한 발명

영국에서 특허제도의 결정적 전환점은 1623년의 *독점법(Statute of Monopolies)*이다.[^3] 이 법의 본래 목적은 발명 보호가 아니라 왕권 제한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와 제임스 1세가 자신의 측근들에게 무분별하게 부여한 왕실 독점권에 대한 의회의 반발이 이 법을 낳았다.

법의 골자는 이렇다. 모든 독점은 보통법(common law)에 반하므로 무효다. 다만 최초의 진정한 발명자에게 부여되는 14년 이하의 독점은 예외로 한다.

이 법의 역사적 함의는 두 가지다. 첫째, 특허는 자연권이 아니라 왕권 남용에 대한 의회의 절충에서 출발했다. 둘째, 14년이라는 기간은 도제 제도에서 유래한 우연적 숫자였다. 도제 한 세대(7년)의 두 배라는 의미였다. 이 우연한 숫자가 후세대 특허법의 기간 산정 표준이 되었다.

자유지상주의 폐지론자들이 역사적 환원 논변을 펼 때 이 1623년 법을 자주 인용한다. 특허가 자연권이 아니라 왕권 남용을 제한하기 위한 정치적 절충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은, 오늘날 특허를 자연권처럼 신성시하는 태도에 대한 강력한 반박이 된다.

1790년 미국 특허법과 1791년 프랑스 특허법: 근대적 정초

근대 특허제도의 정초는 미국과 프랑스에서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1790년 미국 특허법은 미국 헌법 제1조 8항의 IP 조항(과학과 유용한 기술의 진보를 촉진하기 위해)을 구체화한 입법이었다. 토머스 제퍼슨이 초기 특허청 심사관 역할을 맡았다.

제퍼슨의 1813년 편지는 특허제도의 철학적 본질을 가장 명료하게 짚은 문서로 남아 있다. 그는 발명자의 권리가 자연권이 아니라, 사회가 발명의 공개를 유도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부여한 한시적 보상이라고 명시했다. 이 명제는 오늘날까지도 특허제도의 가장 정직한 자기 이해로 인용된다.

프랑스 특허법은 1791년 혁명 직후 제정되었다. 흥미롭게도 프랑스 혁명기의 특허법은 발명자의 자연권을 명시적으로 표명했다. 미국이 정책적 도구로 특허를 정의했다면 프랑스는 자연권으로 정의한 셈이다. 이 두 정의 사이의 긴장은 오늘날까지 IP 철학 논쟁의 두 축으로 남아 있다.

1850~1873년 반특허 운동: 거의 폐지될 뻔한 시기

19세기 중반 유럽은 자유무역 운동의 시대였다. 자유무역론자들의 눈에 특허는 국가가 부여한 보호주의적 독점이었다. 이 시기 영국,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에서 특허제도 폐지론이 강력한 정치적 세력을 형성했다.

1863년 독일경제학자대회는 발명특허는 공공복리에 해롭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4] 1869년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특허법이 머지않아 폐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5] 같은 해 네덜란드는 1817년부터 운영하던 특허법을 완전히 폐지했다. 이 폐지는 1912년 새 특허법이 제정될 때까지 무려 43년간 지속되었다.[^6] 스위스는 더 극단적이다. 1888년에야 첫 특허법을 도입했고, 보호 범위를 본격적으로 확대한 것은 1907년이었다.[^7]

이 시기의 논쟁은 1873년 빈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반전된다. 박람회 출품국들이 자국 발명의 보호를 요구하면서, 국제적으로 상호 특허 보호가 정상적인 외교 의제로 자리 잡았다. 그 결정적 결과가 1883년 파리협약(Paris Convention)이다. 이는 국제적 특허 협력의 첫 출발이었다.

19세기 반특허 운동의 역사를 가장 정밀하게 복원한 작업이 프리츠 마흐럽과 이디스 펜로즈의 1950년 논문 「19세기 특허 논쟁(The Patent Controversy in the Nineteenth Century)」이다.[^8] 이 논문이 자료집의 첫 비판 진영(IV장)을 여는 출발점이 된다.

1883년 파리협약과 국제 체제의 형성

1883년 파리협약은 국제 특허 협력의 첫 다자 협정이다. 핵심 원칙은 *내국민 대우(national treatment)*와 *우선권(priority right)*이었다. 한 가입국에서 출원한 발명이 다른 가입국에서 12개월 이내에 출원할 때 우선권을 인정받는다. 이는 국가 간 출원 시차를 흡수하기 위한 장치였다.

파리협약은 특허법의 통일을 강제하지는 않았다. 각국은 여전히 자국 특허법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었다. 다만 외국 출원자에게 자국민과 동일한 대우를 해줘야 했고, 우선권을 인정해야 했다.

1970년 PCT와 출원 절차의 국제화

1970년 특허협력조약(Patent Cooperation Treaty, PCT)이 체결되었다. PCT는 하나의 국제 출원으로 다수 국가에 대한 출원 효과를 발생시키는 절차다. 변리사 실무에 가장 직접적 영향을 미친 국제 협약이다. 다만 PCT도 심사와 등록은 각국 특허청이 따로 진행하므로, 진정한 의미의 국제 특허는 아니다.

1995년 TRIPS 협정: 결정적 전환점

1995년 WTO 출범과 함께 발효된 *무역관련 지식재산권 협정(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TRIPS)*은 글로벌 IP 체제의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TRIPS의 핵심은 모든 WTO 가입국이 최소 IP 보호 수준을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장 중요한 조항은 모든 기술 분야의 발명에 20년 특허 보호를 부여한다는 규정이다.

TRIPS 이전까지 인도, 브라질, 태국 같은 국가들은 의약품 특허를 인정하지 않거나 짧은 보호 기간만 인정했다. 이는 자국 제네릭 의약품 산업의 발전을 위한 정책적 선택이었다. TRIPS는 이 선택지를 봉쇄했다. 모든 가입국이 의약품에도 20년 특허를 부여해야 하게 된 것이다.

이 변화는 글로벌 남(South) 진영의 강력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AIDS 환자의 항레트로바이러스 약물 접근 위기가 그 직접적 결과였다. 2001년 WTO 도하 선언(Doha Declaration on TRIPS and Public Health)은 이 저항의 첫 정치적 승리였다. 공중보건 위기 시 강제실시권 발동의 정당성이 명문화되었다.

21세기: NPE 부상과 새로운 위기들

21세기 들어 특허제도는 새로운 위기들에 직면한다. 미국에서 비실시기업(Non-Practicing Entity, NPE) 또는 *특허괴물(patent troll)*이 부상했다. 이들은 자신은 발명도 제품 생산도 하지 않으면서 특허를 매입하여 침해 소송 협박으로 합의금을 뜯어내는 사업 모델을 만들었다. 2012년 한 해 미국에서 NPE의 직접 비용이 290억 달러, 기업 가치 손실까지 합치면 600억 달러로 추산되었다.[^9]

소프트웨어 특허, AI 학습 데이터 IP, 합성 생물학 특허 같은 새로운 영역들도 등장했다. 코로나19 백신 특허 유예 논쟁(2020~2022)은 글로벌 정의 진영의 또 한 번의 정치적 압력이었다.

이 550년의 궤적이 보여주는 것은 명료하다. 특허제도는 자연법칙이 아니라 정치적 구성물이다. 그것은 베네치아에서 시작되었고, 영국에서 왕권 제한과 결합했고, 미국과 프랑스에서 두 가지 다른 철학으로 정초되었으며, 19세기에 거의 폐지될 뻔했고, 20세기 후반 TRIPS로 글로벌화되었고, 21세기에 다시 새로운 도전들에 직면하고 있다. 이 모든 단계마다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자료집은 그들의 목소리를 정리한다.

III. 저항자들의 다섯 표적: 본문을 읽기 전 지도

이제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더 정리하자. 앞서 짚은 저항자들이 공격하는 다섯 지점을, 각 진영이 어떻게 분담하는지를 미리 보여주는 것이 본문 이해에 도움이 된다.

첫째 표적인 거래의 정당성 자체는 19세기 반특허 운동(IV장)과 자유지상주의 폐지론(V장)이 공격한다. 자유무역 원칙과 양립하지 않으며 자유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막는 장치라는 비판이다.

둘째 표적인 재산권 자격은 자유지상주의 폐지론(V장), 특히 변리사 출신 폐지론자 킨셀라가 가장 정밀하게 공격한다. 아이디어는 비경합적이고 비배타적이라 재산권의 후보가 될 수 없다는 자연권 논변이다.

셋째 표적인 경계선의 모호함은 실증적 개혁론(VI장)과 미시 정책 개혁가(XIII장)가 공격한다. 베센-뮤어러의 통지 기능 실패, 렘리의 합리적 무지가 핵심 개념이다.

넷째 표적인 보호의 누적 효과는 반공유지의 비극론(VII장), 공유지론(IX장),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XII장)이 공격한다. 특허 덤불, 제2의 인클로저 운동 같은 개념이 핵심이다.

다섯째 표적인 글로벌 비대칭은 노벨상 진영(VIII장), 사이버법학(X장), 글로벌 남 진영(XI장)이 공격한다. 의약품 접근성, 생물해적행위, 콜럼버스의 두 번째 도래 같은 개념이 핵심이다.

각 진영이 정확히 한 표적만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 진영들은 여러 표적에 동시에 관여한다. 다만 주된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미리 알면, 본문에서 각 진영의 논변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저항하는 사람들을 만나볼 차례다.

IV. 19세기 반특허 운동: 잊혀진 첫 번째 패배

역사적 맥락

특허제도는 자명한 제도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치 자명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19세기 중반의 유럽으로 시간을 되돌려보면, 특허제도가 진지한 정치적 의제로서 폐지의 위기에 몰렸던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시기 유럽에서는 자유무역 운동이 강력한 정치적 흐름이었다. 자유무역론자들의 눈에 특허는 국가가 부여한 보호주의적 독점이었다. 관세가 외국 상품에 대한 보호주의라면, 특허는 외국 발명에 대한 보호주의였던 것이다. 이 논리에 따라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에서 특허제도 폐지론이 강력한 정치적 세력을 형성했다.

핵심 사건들을 연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850년대에 영국에서 자유무역 운동의 일환으로 특허제도 비판이 본격화된다. 1863년에는 독일경제학자대회(Congress of German Economists)가 발명특허는 공공복리에 해롭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10] 이는 19세기 반특허 운동의 가장 강력한 학술적 선언이었다. 1869년에는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가 특허법이 머지않아 폐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기에 이른다.[^11]

같은 해 1869년, 네덜란드는 1817년부터 운영하던 특허법을 완전히 폐지했다.[^12] 이 폐지는 1912년 새 특허법이 제정될 때까지 무려 43년간 지속된다. 폐지의 이유는 자유무역 원칙과의 충돌, 그리고 외국 특허권자의 압도적 우위로 인한 국내 산업의 압박이었다. 1851년부터 1865년 사이 네덜란드 특허의 88.6%가 외국인에게 부여되었다는 통계는 이 위기감을 보여준다.[^13]

스위스의 사례는 더 극단적이다. 스위스는 1888년에야 첫 특허법을 도입했고, 보호 범위를 본격적으로 확대한 것은 1907년이었다.[^14] 그 이전까지 스위스는 사실상 특허 없는 산업화의 시기를 보냈다. 그럼에도 스위스 화학 산업과 시계 산업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춰갔다.

1869년에서 1873년 사이 분위기가 극적으로 반전된다. 보불전쟁의 충격과 1873년 빈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특허 옹호 진영이 정치적 반격에 나선 것이다. 박람회 출품국들이 자국 발명의 보호를 요구하면서, 국제적으로 상호 특허 보호가 정상적인 외교 의제로 자리 잡았다. 1883년 파리협약(Paris Convention)이 그 결정적 결과였다.

이 시기의 논쟁을 누구보다 정밀하게 정리한 사람이 프리츠 마흐럽과 이디스 펜로즈였다.

핵심 인물과 저작

프리츠 마흐럽(Fritz Machlup, 1902~1983)은 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경제학자다. 빈에서 미제스의 제자로 출발했으나 미국으로 이주한 후 더 절충적이고 학술적인 입장으로 나아갔다. 1966년 미국경제학회(AEA) 회장을 지낸 인물이다.[^15]

마흐럽의 가장 중요한 작업은 1958년 미국 상원 사법위원회 산하 특허·상표·저작권 소위원회의 의뢰로 작성한 「특허제도의 경제적 검토(An Economic Review of the Patent System)」다.[^16] 이는 미국 의회가 특허제도 자체의 경제적 정당성을 학술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마흐럽에게 위촉한 공식 연구였다. 이 보고서는 19세기 반특허 운동을 *반특허 운동의 발흥(1850-1873)*이라는 별도의 장으로 다루었다.

이디스 펜로즈(Edith Penrose, 1914~1996)는 미국 출신 영국 경제학자로, 후에 『기업 성장의 이론(The Theory of the Growth of the Firm)』(1959)으로 경영학사에 결정적 기여를 한 인물이다. 마흐럽과 1950년에 공저로 발표한 「19세기 특허 논쟁(The Patent Controversy in the Nineteenth Century)」은 이 시기의 표준 사료가 되었다.[^17]

R. A. 매크피(Robert Andrew Macfie, 1811~1893)는 스코틀랜드 출신 영국 사업가이자 정치가로, 19세기 반특허 운동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옹호자였다. 그의 1869년 저서와 1883년 후속 저서는 마흐럽의 분석에서도 핵심 자료로 인용된다.

논변의 구조

19세기 반특허론자들의 논변은 네 갈래로 정리된다.

첫째, 자유무역과의 충돌이라는 논거다. 특허는 본질적으로 국가가 부여한 보호주의적 독점이며, 자유무역의 원칙과 모순된다. 자유무역론자가 관세에 반대하는 논리는 그대로 특허에도 적용된다. 둘 다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막는 장치라는 것이다.

둘째, 보상 메커니즘 대안의 존재라는 논거다. 발명자에 대한 보상은 특허 독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도 가능하다. 정부 보조금, 산업협회의 포상, 그리고 무엇보다 *선점 효과(lead time)*가 발명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제공할 수 있다. 한 발명자가 새 기술을 처음 개발하면 모방자가 따라잡기 전까지 시간적 우위가 있고, 이 시간 동안 충분한 이윤을 회수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셋째, 산업 발전의 실증적 가능성이라는 논거다. 네덜란드와 스위스의 특허 없는 산업화 사례가 이 가능성을 보여준다. 필립스(네덜란드 전자), 그리고 화학·시계 산업(스위스)이 모두 특허 없는 시기에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했다.

넷째, 정치경제학적 비판이라는 논거다. 특허는 왕권의 자의적 독점 부여에서 유래했고, 그 후예가 19세기에도 살아남아 있다는 분석이다. 영국 독점법(Statute of Monopolies, 1623)도 사실 왕권의 독점 부여를 제한하기 위한 법이지 자연권을 인정하는 법이 아니었다.

대표 인용문

마흐럽의 1958년 의회 보고서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결론은 다음의 절묘한 양면 회의주의다. 핵심을 의역하여 옮긴다.

우리가 이미 특허제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효과에 대한 현재의 지식만으로는 특허제도를 도입하라고 권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오랫동안 특허제도를 가져왔기 때문에, 그 효과에 대한 우리의 지식만으로는 특허제도를 폐지하라고 권고할 수도 없다.

이 문장이 절묘한 이유는 어느 쪽으로도 결론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흐럽은 특허 옹호자도 폐지론자도 학문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가 미국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은 학문적 정직성의 정점이다.

마흐럽과 펜로즈의 1950년 논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특허제도는 최근 의회 위원회의 조사를 받아왔고, 가장 심각한 비판들에 대응하기 위한 개혁안들이 제안되어 왔다.[^18] 그들이 19세기 논쟁을 복원한 이유는 명확했다. 경제 환경의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에 관한 우리의 사고는 한 세기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19]

학술적 영향력

마흐럽의 1958년 보고서는 미국 의회가 특허제도 자체의 정당성을 학술적으로 검토한 가장 권위 있는 문서로 남아 있다. 이후의 모든 학술적 특허 논쟁이 이 보고서를 출발점으로 삼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속 연구자들의 평가에 따르면 이 보고서는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IP 학자들이 특허제도가 경제 발전에 미치는 효과를 평가할 때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20]

19세기 반특허 운동의 사례 연구로 가장 유명한 것은 에릭 시프(Eric Schiff)의 1971년 책 『국가 특허 없는 산업화: 네덜란드 1869-1912, 스위스 1850-1907(Industrialization Without National Patents: The Netherlands, 1869-1912; Switzerland, 1850-1907)』이다.[^21] 이 책은 두 나라의 특허 없는 시기의 산업 발전을 데이터로 분석했고, 특허가 없어도 산업화가 가능했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약점과 비판

19세기 반특허 운동이 결국 패배한 이유에 대한 분석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1873년 빈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한 특허 옹호 진영의 정치적 반격이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다. 다른 하나는 산업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특허가 대기업의 R&D 투자 회수 도구로 기능하게 되면서 산업계의 이해관계가 친특허로 정렬되었다는 분석이다.

또 하나의 한계는 19세기 반특허론자들이 대안 메커니즘을 충분히 정교하게 설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부 보조금, 산업협회 포상, 선점 효과 같은 일반적 대안은 제시했지만, 그것들이 특허 독점을 실제로 대체할 수 있는 구체적 제도 설계로는 발전하지 않았다.

변리사로서의 메모

19세기 반특허 운동을 발견하는 일은 변리사로서 약간의 충격이다. 우리가 자명한 제도라고 여기는 것이 한때 거의 폐지 직전까지 갔던 제도라는 사실은 직업적 자긍심의 토대를 흔든다. 동시에 그것은 해방적이기도 하다. 이 제도가 자연법칙이 아니라 역사적 우연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그 제도를 더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다. 마흐럽의 양면 회의주의는 변리사가 가져야 할 가장 성숙한 직업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V. 자유지상주의 폐지론: 자연권 논변의 정점

역사적 맥락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까지 자유지상주의 진영, 특히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과 무정부자본주의 진영에서 특허제도 폐지론이 다시 강력하게 등장했다.

이 진영의 특이성은 그들이 재산권의 옹호자이면서도 지적재산권은 거부한다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좌파의 비판으로 인식되는 특허 폐지론이 재산권 자유주의의 가장 강경한 진영에서도 동시에 제기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해준다. 특허제도가 재산권의 자연스러운 연장이 아니라 별개의 정치적 구성물이라는 것을, 자유지상주의자들조차 인정한다는 점이다.

이 진영의 학술적 거점은 미제스 연구소(Mises Institute)이며, 핵심 학술지는 『자유지상주의 연구지(Journal of Libertarian Studies)』다. 머리 로스바드(Murray Rothbard, 1926~1995)와 한스헤르만 호페(Hans-Hermann Hoppe)의 자연권 이론을 토대로 삼는다.

핵심 인물과 저작

스테판 킨셀라(N. Stephan Kinsella, 1965~)는 미국 변리사 출신의 무정부자본주의 법이론가다. 루이지애나 주립대에서 전기공학 학사·석사를 마친 후 같은 대학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킹스칼리지 런던에서 LL.M.을 취득했다. 휴스턴에서 변리사로 일하다가 은퇴했다. 미제스 연구소의 부속 학자로 활동했으며, 『자유지상주의 연구지』의 서평 편집인을 지냈다.[^22] 현재는 본인이 설립한 혁신적 자유 연구센터(Center for the Study of Innovative Freedom, C4SIF)의 이사다.

킨셀라가 특별한 이유는 그의 직업 때문이다. 변리사가 특허제도 폐지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그의 입장은 직업윤리적 무게를 더한다. 그것은 단순한 학술적 입장이 아니라 직업적 자기 부정에 가깝다.

대표 저작은 『지적재산권에 반대한다(Against Intellectual Property)』(2008, 미제스 연구소)이며, 그 토대가 된 논문은 동명의 글이 『자유지상주의 연구지』 15권 2호에 실린 것이다.[^23] 이 논문은 2002년 미제스 연구소의 알포드 상(O.P. Alford III Prize)을 받았다.

미셸 볼드린(Michele Boldrin)과 데이비드 르빈(David K. Levine)은 각각 워싱턴대(세인트루이스)와 UCLA의 경제학자다. 자유지상주의 진영보다는 주류 경제학 내부의 폐지론자로 분류되지만, 실제 정책적 결론은 킨셀라와 일치한다.

대표 저작은 『지적 독점에 반대한다(Against Intellectual Monopoly)』(2008, 케임브리지대 출판부)이다.[^24] 이 책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에드워드 프레스콧(Edward Prescott)과 더글러스 노스(Douglass North)의 추천을 받아 학술적 권위를 확보했다. 이 추천이 특허 비판 운동에서 가지는 의미는 작지 않다. 노벨상 수상자가 추천한다는 것은 학계 변두리의 의견이 아니라 진지한 학술적 입장임을 공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논변의 구조

자유지상주의 폐지론의 논변은 다섯 갈래로 정리된다.

첫째는 희소성 논거다. 진정한 재산권은 희소한 물리적 자원에 대한 권리다. 두 사람이 같은 사과를 동시에 먹을 수는 없으므로 사과에 대한 재산권은 정당화된다. 그러나 두 사람이 같은 아이디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데는 충돌이 발생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어떤 알고리즘을 사용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같은 알고리즘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아이디어는 재산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킨셀라의 핵심 주장이다.

둘째는 충돌 방지 기능 논거다. 재산권의 본질적 기능은 희소 자원을 둘러싼 사람 간 충돌을 방지하는 것이다. 비경합적 자원, 즉 한 사람이 사용해도 다른 사람의 사용이 줄지 않는 자원에는 충돌이 발생할 수 없으므로 재산권 부여 자체가 기능적 근거를 결여한다. 재산권이 해결할 문제가 없는데 재산권을 부여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논증이다.

셋째는 부조리 논증이다. 만약 아이디어에 영구적 재산권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동굴에서 처음 나와 오두막을 지은 원시인의 후손에게 허락받지 않고는 집을 지을 수 없을 것이다. 어느 부유한 후손의 허락 없이는 식수를 끓이거나 음식을 절일 수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부조리한 결과를 피하려면 재산권 기간을 임의로 정해야 하는데, 그 임의성 자체가 자연권 논거와 충돌한다. 자연권이라면 왜 20년인가? 왜 70년인가? 자연권에 기간이 있는가?

넷째는 역사적 환원이다. 특허는 자연권이 아니라 17~18세기 절대왕정의 독점 특권 부여에서 유래했다. 영국 독점법(Statute of Monopolies, 1623)도 왕권의 자의적 독점 부여를 제한하기 위한 법이지 자연권을 인정하는 법이 아니었다. 특허제도가 자연법칙처럼 보이는 외피는 19세기 후반에 들어 만들어진 역사적 구성물이라는 분석이다.

다섯째는 효과 검증의 부재다. 볼드린-르빈은 자연권 논변이 아닌 효용 논변에서도 폐지론을 옹호한다. 와트의 증기기관 특허가 후속 발전을 봉쇄한 사례, 1981년 이전 소프트웨어 산업이 특허 보호 없이 번성한 사례 등을 들어 특허가 혁신을 촉진하기보다 저해해 왔음을 보인다.

대표 인용문

킨셀라의 핵심 명제는 다음과 같다.[^25]

자연은 경제적으로 희소한 것들을 포함한다. 어떤 것에 대한 나의 사용은 너의 사용과 충돌(배제)하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 재산권의 기능은 희소 자원을 둘러싼 사람 간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자원의 배타적 소유권을 특정 개인에게 할당하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결정적 한 줄을 던진다. 아이디어의 사용에 대해서는 그 사용을 둘러싼 충돌이 발생할 수 없으므로, 아이디어는 재산권의 후보가 될 수 없다.

볼드린과 르빈의 명제는 더 도발적이다.[^26]

지적재산이라 불리는 것은 사실 '지적 독점'이며, 우리에게 부와 혁신을 가져다준 경쟁적 자유시장 체제를 돕기보다 방해한다. 따라야 할 유일하게 합리적인 정책은 현재 존재하는 형태의 특허와 저작권 체제를 폐지하는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에드워드 프레스콧의 추천사는 학술적 권위의 무게를 보여준다. 나는 그들이 독점권 부여가 혁신을 늦춘다는 논거를 잘 세웠다고 생각한다.[^27] 또 다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더글러스 노스의 추천사도 마찬가지다. 볼드린과 르빈은 지적재산권이 진화해 온 형태가 효율적 경제 조직에 해롭다는 강력한 논거를 제시한다.[^28]

학술적 영향력

볼드린-르빈의 책은 케임브리지대 출판부에서 출간되어 학술적 정통성을 확보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두 명(프레스콧, 노스)의 명시적 지지를 받았다는 점에서 학술계 내부의 진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킨셀라의 작업은 학술계보다는 자유지상주의 정치 운동과 무정부자본주의 학술 네트워크에서 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C4SIF는 그가 설립한 IP 비판 연구센터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후속 실증 연구가 폐지론을 일부 뒷받침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모저와 보에나(Petra Moser & Alessandra Voena)의 연구는 1917년 미국 적성국교역법이 독일인 보유 미국 IP를 사실상 폐지했을 때 오히려 혁신이 증가했음을 보여주었다.[^29] 이는 폐지론의 효과 논변에 실증적 근거를 제공한다. 자연실험적 증거이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시기에는 특허제도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를 비교할 수 없지만, 전쟁이라는 외생적 충격으로 한쪽 집단의 IP가 사라진 사례는 비교 실험의 자연적 조건을 만들어준다.

약점과 비판

자유지상주의 폐지론의 가장 큰 약점은 제약·화학 산업의 R&D 투자 회수 메커니즘에 대한 답변의 미진함이다. 신약 한 개를 시장에 내놓기까지 평균 10억 달러 이상의 R&D 투자가 필요한 산업에서, 특허 독점이 사라지면 그 투자를 어떻게 회수할 것인가? 이 질문에 킨셀라와 볼드린-르빈 모두 공공 자금 R&D, 임상시험 비용 공공 부담, 상금제, 사전 약속 시장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이것들이 현실에서 정치경제학적으로 실현 가능한지에 대한 답은 충분히 다듬어져 있지 않다.

리처드 길버트(Richard Gilbert)의 미국경제학회지(Journal of Economic Literature) 서평은 절충적 비판을 제시한다.[^30] 저자들은 지적재산의 중요한 기능들을 간과하지만, 그들의 분석은 지적재산권법의 추가 개혁을 뒷받침한다. 즉 폐지론의 과격함은 거부하되 그 비판적 통찰은 개혁 논의에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변리사로서의 메모

변리사가 변리사 출신 폐지론자의 논변을 마주하는 일은 직업적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킨셀라의 논변에서 가장 무거운 부분은 자연권 논변이 아니라 역사적 환원 논변이다. 특허가 왕권의 자의적 독점 부여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변리사가 보유한 직업적 자긍심의 역사적 토대가 생각보다 얇다는 점을 일깨운다.

동시에 우리는 19세기 이후 특허제도가 자연권의 외피를 두르기 시작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 외피를 벗기는 것이 정직한 직업윤리의 출발점이다. 토머스 제퍼슨이 이미 1813년 편지에서 그렇게 했다. 그는 발명자에 대한 한시적 독점이 자연권의 인정이 아니라 사회적 효용을 증진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정책적 선택이라고 명시했다. 변리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자기 이해가 여기 있다.

VI. 실증적 개혁론: 학술적 정통의 우회로

역사적 맥락

2000년대 중반부터 특허제도 비판의 학술적 무게중심은 폐지론에서 실증적 개혁론으로 옮겨갔다. 폐지론이 자연권 논변과 효용 논변의 추상적 차원에서 작동했다면, 실증적 개혁론은 대규모 데이터를 바탕으로 특허제도의 경험적 작동 방식을 분석한다.

이 진영의 부상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미국이 1982년에 연방순회항소법원(CAFC)을 설립한 이후 친특허 기조가 강화되었고, 특허 출원과 소송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990년대부터는 특허괴물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학술적 응답이 실증적 개혁론이었다.

핵심 인물과 저작

제임스 베센(James Bessen)은 보스턴대 로스쿨의 강사이자 경제학자다. 변리사 자격은 없으나 소프트웨어 개발자 출신 CEO 경력을 가진 실무 경험자다. 그가 학술적 권위를 가진 이유는 실무 경험 위에 학술적 정밀함을 쌓았기 때문이다. 마이클 뮤어러(Michael J. Meurer)는 같은 대학 로스쿨의 마이클스 교수직 연구 학자다.

대표 저작은 『특허 실패: 어떻게 판사, 관료, 변호사가 혁신가를 위험에 빠뜨리는가(Patent Failure: How Judges, Bureaucrats, and Lawyers Put Innovators at Risk)』(2008, 프린스턴대 출판부)다.[^31] 이 책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에릭 메이스킨(Eric Maskin)의 추천을 받았다. 메이스킨 자신도 베센과 함께 이론 작업을 한 바 있다. 그들의 공동 논문 「순차적 혁신, 특허, 모방(Sequential Innovation, Patents, and Imitation)」은 RAND 경제학 저널 2009년 겨울호에 게재되었다.[^32] 이 논문은 순차적 혁신 환경에서 특허가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론적 모델을 제시했다.

페트라 모저(Petra Moser)는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의 경제사학자다. NBER 워킹페이퍼 시리즈를 통해 19세기 만국박람회 데이터, 1917년 미국 적성국교역법의 자연실험 등을 분석하여 특허의 효과에 대한 실증 연구를 주도했다. 대표 논문은 「특허와 혁신: 경제사로부터의 증거(Patents and Innovation: Evidence from Economic History)」, 미국경제학회지(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27권 1호(2013년 겨울)에 실렸다.[^33]

마크 렘리(Mark Lemley)는 스탠퍼드 로스쿨 교수로, 특허제도의 미시 정책 개혁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학자다. 그의 2001년 논문 「특허청의 합리적 무지(Rational Ignorance at the Patent Office)」는 노스웨스턴 로 리뷰 95권 1495쪽에 실렸으며, 1,200회 이상 인용된 특허법 학계의 고전이다.[^34]

논변의 구조

실증적 개혁론의 논변은 다섯 갈래로 정리된다.

첫째는 산업별 차등 분석이다. 특허제도의 효과는 산업에 따라 극단적으로 다르다. 제약과 화학 산업에서는 특허의 편익이 비용을 상회하지만, 대부분의 다른 산업에서는 그 반대다. 따라서 모든 산업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특허제도는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 베센-뮤어러의 핵심 주장이다.

둘째는 통지 기능의 실패(failure of notice function)다. 부동산 재산권이 작동하는 핵심 이유는 경계선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등기부에 토지의 경계가 정확히 표시되어 있어 누구나 그 경계를 알 수 있다. 특허는 청구항이 추상적이라 침해 여부 자체가 사후적으로만 확정되는 경계선이 흐릿한 재산권이다. 이로 인해 혁신적 기업도 부지불식간에 특허 침해 책임을 지게 될 수 있다.

셋째는 비용-편익 역전이다. 베센-뮤어러의 데이터 분석 결과,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는 특허로부터 얻는 편익보다 특허 분쟁으로 인한 비용이 더 크다. 즉 특허 시스템 전체가 순(net) 손실을 발생시키고 있다는 충격적 결론이다.

넷째는 합리적 무지(rational ignorance) 문제다. 렘리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특허청은 합리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특허가 경제적으로 무의미하기 때문에, 특허청이 모든 출원을 엄격히 심사하는 것보다 문제가 되는 소수만 사후적으로 소송에서 무효화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효율적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 합리적 무지가 NPE에게 협상 무기로 활용되는 나쁜 특허의 양산으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후속 연구에서 제기된다.[^35]

다섯째는 자연실험 증거다. 모저는 19세기 만국박람회 데이터를 통해 특허법이 혁신의 양보다는 방향에 영향을 미쳤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1917년 적성국교역법의 자연실험은 특허 폐지가 오히려 혁신을 증가시켰음을 보여준다.

대표 인용문

베센-뮤어러의 핵심 결론은 다음과 같다.[^36]

특허가 R&D와 상업화에 투자할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에게 특허는 예측 가능한 재산권을 제공하지 못하며, 오히려 비용이 큰 분쟁과 과도한 소송을 발생시켜 그 긍정적 인센티브를 상쇄한다. 제약 산업 같은 일부 부문에서만 특허가 광고된 대로 작동하며 그 편익이 관련 비용을 상회한다.

메이스킨의 추천사는 학술적 무게를 더한다.[^37]

미국 특허제도가 그 존재 이유, 즉 혁신 촉진이라는 목적에 미치지 못한 방식들을 정량화하려는 선구적이고 영웅적인 시도이며, 이 책은 논쟁적일 것이지만 저자들은 들을 가치가 있는 강력한 논거를 제시한다.

모저의 NBER 메타 분석 결론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38]

전통적으로 특허가 혁신의 일차적 동력이라는 견해가 있었으나, 새로운 데이터셋과 식별 방법을 갖춘 최근 연구들은 이 전통적 견해에 도전하며, 특허권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거나 강력했을 때 오히려 혁신을 저해했다는 보다 미묘한 견해를 제시한다.

베센과 메이스킨의 RAND 논문 추상도 인용할 가치가 있다.[^39]

혁신이 순차적이고 보완적일 때(즉 각 후속 발명이 선행 발명에 본질적으로 의존하고, 각 잠재적 혁신가가 다른 연구 노선을 취할 때), 특허 보호는 정태적 환경에서만큼 혁신 촉진에 유용하지 않다. 사실 사회와 발명자 자신조차도 그러한 보호 없이 더 나을 수 있다.

학술적 영향력

이 진영은 특허법 학계의 주류 정통에 가장 가깝다. 베센-뮤어러의 책은 프린스턴대 출판부에서 출간되어 학술적 권위를 확보했고, 모저의 논문들은 미국경제학회지와 NBER을 통해 표준 자료로 자리 잡았다. 렘리의 합리적 무지 논문은 미국 특허법 정책 논쟁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진영의 영향력은 미국 특허법 개혁 입법에도 직접 반영되었다. 2011년 미국발명법(America Invents Act, AIA)이 도입한 특허청 사후심사 절차(IPR, PGR, CBM)는 나쁜 특허를 사후적으로 걸러내는 매커니즘을 강화한 것으로, 베센-뮤어러와 렘리의 분석이 정책적으로 구현된 사례로 평가된다.

약점과 비판

이 진영에 대한 가장 강력한 학술적 반박은 이벤트 연구(event study) 방법론의 한계에 관한 것이다. 베센-뮤어러는 특허 분쟁이 발생했을 때의 주가 변동을 통해 비용을 추산했는데, 이 방법론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또한 이 진영은 개혁에 머물고 폐지까지 가지 않기 때문에, 폐지론자들로부터는 제도의 본질적 결함을 봉합하는 미봉책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동시에 친특허 진영으로부터는 제도의 근본적 가치를 과소평가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양쪽에서 공격받는 중간 입장이지만, 그 중간 입장이 정책적 영향력을 가장 크게 발휘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변리사로서의 메모

변리사 실무자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와닿는 진영은 이쪽이다. 통지 기능의 실패는 청구항 작성 실무에서 매일 마주하는 문제이며, NPE 남용은 한국에서도 점점 가시화되는 사안이다. 폐지론은 직업적 거울이지만 실증적 개혁론은 직업적 작업도구다. 청구항 명확성을 강화하고, 자명성 기준을 상향하고, 패자부담 원칙을 도입하는 미시 개혁들은 변리사 실무의 작업 환경을 직접 개선한다. 베센-뮤어러의 책은 변리사가 한 번은 정독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본다.

VII. 반공유지의 비극론: 봉쇄의 경제학

역사적 맥락

1968년 개럿 하딘(Garrett Hardin)이 사이언스에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을 발표했다. 이는 환경경제학의 표준 개념이 되었다. 공유 자원이 과잉 사용되어 고갈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30년 후인 1998년, 미시건 로스쿨의 마이클 헬러(Michael Heller)와 레베카 아이젠버그(Rebecca Eisenberg)는 같은 사이언스에 정반대 개념을 발표했다. 「특허가 혁신을 저해할 수 있는가? 생물의학 연구의 반공유지(Can Patents Deter Innovation? The Anticommons in Biomedical Research)」다.[^40] 너무 많은 권리자에게 너무 좁은 권리가 분산되어 자원이 과잉 봉쇄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 개념은 곧 특허제도 비판의 강력한 이론적 무기가 되었다. 한 신약을 개발하려면 수십 개의 연구도구 특허를 통과해야 하는 생명공학 산업에서 특히 그렇다.

핵심 인물과 저작

마이클 헬러(Michael Heller)는 컬럼비아 로스쿨 교수로, 재산권 이론의 권위자다. 그의 단행본 『그리들록 경제: 너무 많은 소유권이 어떻게 시장을 망가뜨리고 혁신을 막고 생명을 앗아가는가(The Gridlock Economy)』(2008)는 반공유지론의 대중화 작업이다.

레베카 아이젠버그(Rebecca Eisenberg)는 미시건 로스쿨 교수로, 생명공학 IP의 선구적 학자다. 헬러와의 1998년 사이언스 공동 논문이 그녀의 대표 작업이다.

칼 샤피로(Carl Shapiro)는 UC 버클리 하스 경영대학원 교수로, 헬러의 통찰을 특허 덤불(patent thicket) 개념으로 산업 정책에 적용했다. 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으려면 통과해야 할 특허의 수가 너무 많아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가는 것과 같다는 비유다.

논변의 구조

반공유지론의 논변은 네 갈래로 정리된다.

첫째는 봉쇄의 기제다. 공유지의 비극이 권리 부재로 인한 과잉 사용이라면, 반공유지의 비극은 권리 과잉으로 인한 사용 봉쇄다. 너무 많은 권리자가 각자의 거부권을 가지면, 어느 한 사람의 거부만으로도 자원의 사용이 차단된다.

둘째는 거래비용의 폭증이다. 각 권리자와의 라이선스 협상에 드는 거래비용이 합쳐지면 집계 거래비용이 폭증한다. 헬러와 아이젠버그는 이 거래비용이 인지적 편향과 전략적 행위로 인해 더욱 악화된다고 분석한다. 각 권리자가 자신의 협상력을 극대화하려 하면서 협상 자체가 결렬되는 반공유지의 비극이 발생한다.

셋째는 생명공학 분야의 특수성이다. 한 신약을 개발하려면 수십 개의 연구도구 특허(research tool patents), 유전자 서열 특허, 단백질 특허를 통과해야 한다. 각 특허권자는 자신의 협상력을 극대화하려 하고, 그 결과 신약 개발 자체가 봉쇄된다.

넷째는 특허 덤불이다. 헬러의 분석을 칼 샤피로가 특허 덤불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반도체, 통신, 생명공학 산업이 대표적이다.

대표 인용문

헬러와 아이젠버그의 1998년 사이언스 논문 추상은 다음과 같이 압축된다.[^41]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은유는 사람들이 공유 자원을 과잉 사용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생물의학 연구에서 지적재산권의 최근 확산은 다른 비극을 시사한다. 너무 많은 소유자가 서로를 봉쇄할 수 있어서 사람들이 희소 자원을 과소 사용하는 '반공유지'다. 생물의학 연구의 사유화는 상류 연구와 하류 제품 개발을 모두 지속하기 위해 더 신중하게 배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은 지적재산권이 역설적으로 인간 건강 개선에 더 적은 유용한 제품으로 이어질 수 있다.

헬러는 다른 글에서 이렇게 압축한다. 사유화는 한 비극을 해결할 수 있지만 다른 비극을 일으킬 수 있다.[^42]

학술적 영향력

반공유지론은 생명공학 분야 IP 정책의 기본 어휘가 되었다. 특허 풀(patent pool), 의약품 특허 풀(MPP), 표준 필수 특허(SEP)에 대한 RAND 의무 같은 정책 도구들이 모두 반공유지의 비극을 완화하기 위한 메커니즘으로 정당화된다.

미국 대법원의 Mayo v. Prometheus(2012), Myriad Genetics(2013), Alice Corp. v. CLS Bank(2014) 등 추상적 아이디어와 자연 법칙의 특허 가능성을 제한한 판결들도 반공유지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약점과 비판

반공유지론의 가장 큰 학술적 약점은 실증 증거의 부족이다. 후속 연구의 평가에 따르면 반공유지 이론이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예측을 확증하거나 반박할 실증 연구는 거의 없으며, 사회과학자들이 공공 및 민간 부문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특허가 자신들의 연구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최선의 연구들은 생명공학 발명의 특허화가 생의학 혁신을 저해한다는 명확한 증거를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43]

즉 반공유지론은 강력한 이론적 통찰이지만 그 실증적 뒷받침은 아직 진행 중이다. 헬러 자신도 이 한계를 인정하며, 자신의 작업이 경각심을 일깨우는 이론적 틀임을 강조한다.

변리사로서의 메모

생명공학 분야에서 일하는 변리사라면 반공유지의 비극이 추상이 아니라 일상적 작업 환경임을 안다. 한 신약 출원의 자유실시(freedom to operate, FTO) 분석에서 검토해야 할 특허의 수가 수십 개를 넘는 일이 흔하다. 각 권리자와의 라이선스 협상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R&D 투자보다 클 수도 있다. 헬러의 통찰은 이론적이지만 그 처방, 즉 특허 풀과 RAND 의무는 실무적이다. 변리사가 단순히 권리 확보만이 아니라 권리 통합의 메커니즘을 설계하는 데 기여할 여지가 여기에 있다.

VIII. 노벨상 진영: 정의의 거시경제학

역사적 맥락

2000년대 이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특허제도 비판에 직접 가세했다. 이 가세는 학술적 권위의 무게를 결정적으로 변화시켰다. 더 이상 특허 비판이 변두리 의견이 아니라 학술계 주류의 진지한 논쟁임을 확인시킨 사건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2001년 수상), 에릭 메이스킨(Eric Maskin, 2007년 수상), 더글러스 노스(Douglass North, 1993년 수상), 에드워드 프레스콧(Edward Prescott, 2004년 수상)이 모두 명시적으로 특허제도 개혁 또는 폐지를 지지했다. 이는 한 시대의 학술적 풍경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핵심 인물과 저작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는 컬럼비아대 교수이자 정보경제학으로 노벨상을 받은 거시경제학자다. 그의 IP 비판은 단편적인 발언이 아니라 체계적인 거시경제학적 분석이다.

대표 저작은 다음과 같다. 단행본으로는 『불평등의 대가(The Price of Inequality)』(2012), 브루스 그린월드와의 공저 『학습 사회 만들기(Creating a Learning Society)』(2014)가 있다. 학술 논문으로는 「지적재산권의 경제적 토대(Economic Foundation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듀크 로 저널 60권 4호(2010)에 실린 글이 가장 정교하다.[^44] 딘 베이커, 아르준 자야데브와의 공동 보고서 「혁신, 지적재산, 발전: 21세기를 위한 더 나은 접근 방식(Innovation, Intellectual Property, and Development: A Better Set of Approaches for the 21st Century)」(2017)은 정책적 처방을 제시한다.[^45]

에릭 메이스킨(Eric Maskin)은 하버드대 교수로, 메커니즘 디자인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베센과의 공동 연구는 이미 III장에서 소개했다.

더글러스 노스(Douglass North)는 워싱턴대(세인트루이스) 교수로, 신제도경제학의 창시자다. 볼드린-르빈의 폐지론을 지지했다.

에드워드 프레스콧(Edward Prescott)은 미네소타대 교수로, 거시경제학의 실물경기변동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독점권 부여가 혁신을 늦춘다는 볼드린-르빈의 핵심 명제에 명시적으로 동의했다.

논변의 구조

노벨상 진영의 논변은 거시경제학적 정의론의 결을 띤다. 다섯 갈래로 정리된다.

첫째는 지식 공공재 논거다. 스티글리츠의 출발점은 지식이 글로벌 공공재라는 명제다. 한 사람이 사용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없게 되지 않는 비경합성과, 사용을 배제하기 어려운 비배타성을 가진다. 따라서 지식의 사적 소유는 시장 실패를 발생시킨다.

둘째는 인센티브 왜곡 논거다. 특허제도는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정당화되지만, 실제로는 잘못된 방향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제약 산업의 경우 *특허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약간의 변경(me-too drugs)*에 R&D가 집중되고, 진정으로 새로운 치료가 필요한 영역(말라리아, 결핵 같은 빈곤국 질병)은 외면받는다.

셋째는 거래비용 논거다. 특허에 대한 도전은 공공재다. 한 사람이 나쁜 특허에 도전하여 무효화하면 모든 사람이 그 혜택을 받는다. 이는 나쁜 특허에 맞서 싸우는 데 과소투자가 발생함을 의미한다. 그 결과 특허청이 부여한 부적절한 특허들이 시장에 잔존한다.

넷째는 글로벌 정의 논거다. 특허 시행의 높은 비용은 개발도상국을 불리하게 만든다. 특허 분쟁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선진국 다국적 기업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이 비대칭은 생물해적행위 위험과 결합하여 글로벌 부정의를 심화시킨다.

다섯째는 대안 메커니즘 논거다. 스티글리츠는 폐지론자가 아니지만 대안 인센티브 시스템과의 병행을 강조한다. 정부 자금 지원 R&D, 상금제(prize fund), 사전 약속 시장(advance market commitment), 의약품 특허 풀(MPP) 등을 특허제도와 병행하는 다원적 인센티브 체제가 그의 처방이다.

대표 인용문

스티글리츠, 베이커, 자야데브의 공동 명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46]

선진국이 선호하는 IP 표준은 일반적으로 혁신과 과학적 진보를 극대화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 거대 제약회사와 무역 협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다른 주체들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스티글리츠의 듀크 로 저널 논문 핵심 분석은 다음과 같다.[^47]

특허에 대한 도전은 공공재이며, 그 결과 나쁜 특허에 맞서 싸우는 데 과소투자가 발생한다. 또한 IPR 시행의 높은 비용, 특히 특허 도전의 높은 비용은 개발도상국을 불리하게 만들어 생물해적행위 위험을 악화시킨다.

코로나19 이후 그의 진단은 더 첨예하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지적재산 체제의 결함을 드러냈다.[^48] 이는 mRNA 백신 특허 보유자들의 가격 정책과 특허 유예 협상의 난항을 겨냥한 발언이다.

학술적 영향력

노벨상 진영의 학술적 가세는 특허제도 비판의 지위를 결정적으로 격상시켰다. 이전까지 비판은 학계 변두리 또는 활동가 영역으로 인식되었지만, 노벨상 수상자 네 명의 명시적 지지로 학계 정통의 진지한 논쟁이 되었다.

스티글리츠의 영향력은 정책 영역에서도 작동한다. WHO, UNAIDS, UNDP 같은 국제기구의 IP 정책 권고에 그의 분석이 반영되어 있다. 코로나19 백신 특허 유예(TRIPS waiver) 논쟁에서 스티글리츠가 노벨상 수상자 60여 명을 결집한 공개서한은 정치적 압력의 정점이었다.

약점과 비판

노벨상 진영의 약점은 대안 메커니즘의 정치경제학적 실현 가능성에 있다. 상금제, 사전 약속 시장, 정부 자금 R&D 같은 대안들이 이론적으로 정교해도, 그것들이 실제로 특허제도를 대체할 만한 정치적 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가는 별개 문제다.

ITIF(미국 정보기술혁신재단) 같은 친특허 싱크탱크는 이를 정면 공격한다. 그들의 핵심 비판은 상금제가 특허제도의 정보 발견 기능을 대체할 수 없으며, 어떤 연구를 보상할지 결정하는 중앙 계획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49]

변리사로서의 메모

노벨상 진영은 거시경제학의 추상적 차원에서 작동한다. 변리사 실무에 직접적인 함의는 적지만, 우리가 일하는 제도적 환경 전체의 정당성에 대한 도전이라는 점에서 무겁다. 특히 글로벌 정의 논거는 우리가 매일 작성하는 청구항이 제3세계의 어느 환자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가끔 떠올리게 한다. 직업적 정밀함이 도덕적 무관심으로 굳지 않도록 하는 거울 역할을 한다.

IX. 공유지론: 두 번째 인클로저 운동

역사적 맥락

16~19세기 영국에서 공유 목초지가 사유 재산으로 *인클로저(enclosure)*되었다. 이 인클로저 운동은 영국 자본주의의 형성과 농민의 토지 박탈이라는 양면적 의미를 가진다.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본원적 축적의 핵심 사례로 분석한 사건이다.

2000년대 초 듀크 로스쿨의 제임스 보일(James Boyle)은 이 역사적 사건에 빗대어 *제2의 인클로저 운동(Second Enclosure Movement)*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20세기 후반부터 진행된 지식과 정보의 사유화가 16세기 토지 인클로저의 21세기 후예라는 분석이다.

핵심 인물과 저작

제임스 보일(James Boyle, 1959~)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듀크 로스쿨 교수로, 윌리엄 닐 레이놀즈 법학 교수직을 맡고 있다. 글래스고대를 졸업한 후 하버드 로스쿨에서 수학했다.[^50] 듀크 로스쿨의 *공공영역 연구센터(Center for the Study of the Public Domain)*의 창립자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의 초기 이사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대표 저작은 다음과 같다. 학술 논문으로는 「제2의 인클로저 운동과 공공영역의 구성(The Second Enclosure Movement and the Construction of the Public Domain)」, 법과 동시대 문제(Law and Contemporary Problems) 66권(2003년 겨울)에 실린 글이 있다.[^51] 단행본으로는 『공공영역: 마음의 공유지를 둘러싸다(The Public Domain: Enclosing the Commons of the Mind)』(2008, 예일대 출판부)가 있다.[^52] 이 책은 2008년 맥개넌 상과 2009년 미국정보과학기술학회 올해의 책 상을 받았다. 그의 책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로 출간되어 자유롭게 다운로드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의 사상의 실천이기도 하다.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도 이 진영의 학술적 토대 중 하나다. 그녀의 공유 자원 관리 이론은 공유지의 비극이 필연적이지 않으며 적절한 제도 설계로 관리 가능함을 보였다. 보일의 작업은 오스트롬의 통찰을 지식 공유지에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논변의 구조

공유지론의 논변은 네 갈래로 정리된다.

첫째는 역사적 유비다. 16세기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이 농민에게서 공유 목초지를 빼앗아 사유 재산으로 만들었듯, 20세기 후반의 IP 확장은 시민에게서 지식 공유지를 빼앗아 사유 재산으로 만들고 있다.

둘째는 균형의 상실이다. 보일의 분석에 따르면 원래 IP 제도의 핵심 원칙은 공공영역에 남아 있어야 할 지식과 사유화 가능한 지식 사이의 균형이었으나, 이 균형이 깨졌다.

셋째는 환경운동의 모델이다. 보일의 가장 독창적인 기여는 공공영역 보호 운동을 환경운동의 모델로 정초한 것이다. 환경 개념이 발명되기 전까지 환경 파괴는 각각의 개별 사건으로만 인식되었다. 환경이라는 통합 개념이 발명되자 비로소 환경 보호 운동이 가능해졌다. 마찬가지로 공공영역이라는 통합 개념이 발명되어야 그것을 보호하는 운동이 가능해진다.

넷째는 새로운 인클로저의 영역들이다. 보일은 다양한 영역에서 인클로저가 진행 중임을 분석한다. 유전자 특허, 데이터베이스 권리, 사업 방법 특허, 디지털 권리 관리(DRM), 저작권 기간 연장 등이 모두 제2의 인클로저 운동의 사례다.

대표 인용문

보일이 자신의 2003년 논문 모두에 인용한 17세기 영국 무명 시인의 시구는 인클로저 운동의 도덕적 무게를 압축한다. 풍자시의 결을 살려 옮기면 다음과 같다.[^53]

공유지에서 거위를 훔치는 자는 법이 가두지만, 거위에게서 공유지를 훔치는 더 큰 악당은 풀어준다. 우리가 우리 것이 아닌 것을 가져갈 때 법은 속죄를 요구하지만, 너희와 나의 것을 가져가는 고관대작들은 풀어준다.

보일의 핵심 명제는 다음과 같다.[^54]

환경이라는 개념의 발명이 그 자체로 흩어진 일련의 쟁점들을 묶고, 이전 사고방식에 함축된 맹점에 대한 분석적 통찰을 제공하며,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공통 이익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진 것처럼, 공공영역도 발명되어야 보호될 수 있다.

학술적 영향력

공유지론은 IP 비판의 통합 어휘를 제공한 작업으로 평가된다. 그 이전까지 IP 비판은 각각의 개별 영역(특허, 저작권, 영업비밀)에서 따로 진행되었으나, 보일의 제2의 인클로저 운동 개념이 이들을 하나의 통합된 정치적 의제로 묶어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 오픈 액세스 운동, 의약품 특허 풀(MPP) 같은 실천적 운동들이 공유지론의 학술적 토대 위에서 작동한다.

약점과 비판

공유지론의 가장 큰 약점은 역사적 유비의 정확성에 있다. 16세기 인클로저 운동은 기존에 있던 공유지를 사유화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21세기 IP 확장은 원래 사유 재산이 아니었던 것을 새로 사유화한 것이라기보다 원래 IP였던 영역의 강도와 범위를 확장한 것에 가깝다. 이 차이를 무시하면 유비가 과장될 수 있다.

또한 공유지론은 어디까지가 공유지여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공하지 않는다. 모든 IP를 공유지로 만들 수도 없고, 모든 것을 사유화할 수도 없다. 그 중간선의 원리가 공유지론에서는 충분히 정교화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다.

변리사로서의 메모

공유지론은 변리사가 제도 외부에서 제도를 바라보는 시선을 제공한다. 매일 청구항을 작성하면서 우리는 권리 확보의 관점에 갇히기 쉽다. 보일의 분석은 우리가 공공영역을 빼앗는 측에 서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모든 출원에 대해 그런 도덕적 부담을 느끼는 것은 과도하지만, 가끔 시야를 외부로 돌리는 일은 직업적 건강에 좋다고 본다.

X. 사이버법학: 디지털 시대의 IP 비판

역사적 맥락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의 부상과 함께 새로운 IP 비판 진영이 등장했다. 이들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가능성을 IP 확장이 봉쇄하고 있다는 진단을 공유한다. 스탠퍼드 로스쿨에 *인터넷과 사회 센터(Center for Internet and Society)*가 설립된 2000년대 초반이 이 진영의 학술적 형성기였다.

이 진영의 주된 표적은 저작권법이지만 특허제도, 특히 소프트웨어 특허에 대해서도 명확한 비판 입장을 가진다.

핵심 인물과 저작

로런스 레식(Lawrence Lessig)은 하버드 로스쿨 교수(전 스탠퍼드 로스쿨)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창립자다.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FSF) 이사회 멤버이기도 했다.[^55]

대표 저작은 다음과 같다. 『코드(Code and Other Laws of Cyberspace)』(1999), 『아이디어의 미래(The Future of Ideas)』(2001), 『자유 문화(Free Culture)』(2004), 『리믹스(Remix)』(2008). 『자유 문화』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로 출간되어 자유롭게 배포 가능하다.

요차이 벤클러(Yochai Benkler)는 하버드 로스쿨 교수로, 『네트워크의 부(The Wealth of Networks)』(2006)에서 공유 기반 동료 생산(commons-based peer production) 모델을 정초했다. 위키피디아, 리눅스 같은 협력 생산이 IP 독점 없이 작동함을 보인 작업이다.

논변의 구조

사이버법학의 논변은 다섯 갈래로 정리된다.

첫째는 균형 회복 논거다. 미국 헌법의 IP 조항(과학과 유용한 기술의 진보를 촉진하기 위해)은 IP를 수단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의 IP 확장은 IP를 목적으로 만들었다. 이 균형의 회복이 필요하다.

둘째는 디지털 가능성의 봉쇄다. 디지털 기술은 무한 복제와 무제한 재조합을 가능케 한다. 이는 새로운 형태의 창의성과 협력을 가능케 하지만, IP 확장은 이 가능성을 봉쇄한다.

셋째는 소프트웨어 특허 비판이다. 레식은 소프트웨어 특허를 자유 소프트웨어,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그리고 혁신에 대한 떠오르는 위협으로 본다. 소프트웨어가 문학적 표현에 가까운 것이지 물리적 발명이 아니라는 점에서 저작권으로 충분하고 특허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넷째는 의약품 접근성 논거다. 레식은 『자유 문화』 결론부에서 가장 강한 도덕적 톤으로 의약품 특허 문제를 다룬다. 아프리카와 다른 가난한 국가들의 HIV 환자의 비대칭적 숫자가 IP 통제가 상식에 반함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다섯째는 대안의 실천이다. 레식은 비판에 머물지 않고 대안을 만들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는 저작권을 완전히 거부하지 않고 유연한 라이선스 옵션을 제공함으로써, 기존 IP 체제 안에서 공공영역을 확장하는 실천적 도구다.

대표 인용문

레식의 『자유 문화』 결론부는 다음과 같이 압축된다.[^56]

저작권 카르텔이 디지털 세계, 음악, 영화에 대한 절대적 통제를 입찰하면서 기술 혁신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고, 수많은 사람이 혜택을 입어온 공공영역에 대한 대부분의 기여를 중단시켰다.

레식의 핵심 진단은 다음과 같다. 21세기는 전례 없는 창의성의 세기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자유 문화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때만 가능하다.

학술적 영향력

사이버법학은 디지털 IP 정책 논쟁의 기본 어휘를 제공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는 학술 출판, 미디어, 교육 자료에서 사실상의 표준이 되었다. 위키피디아 자체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를 사용한다.

소프트웨어 특허 영역에서 사이버법학의 영향은 정치적 성과로 이어졌다. 유럽연합의 2005년 컴퓨터 구현 발명 지침(CIID) 부결, 미국 대법원의 2014년 Alice Corp. 판결은 모두 사이버법학 진영의 오랜 압박이 반영된 결과로 평가된다.

약점과 비판

사이버법학의 약점은 주된 관심이 저작권이라는 점에서 특허제도 전반에 대한 분석이 상대적으로 얕다는 데 있다. 소프트웨어 특허 비판은 정교하지만, 제약이나 화학 산업의 특허에 대해서는 상세한 분석이 부족하다.

또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모델 자체에 대한 비판도 있다. 자유가 라이선스되어야 한다는 아이러니에 레식이 거의 둔감하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가 기존 저작권 체제를 전제하면서 그 안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체제의 근본적 변화보다는 적응에 머물 수 있다는 한계 지적이다.

변리사로서의 메모

소프트웨어 특허는 한국 변리사 업계에서도 점점 무시할 수 없는 영역이다. 추상적 아이디어와 구체적 발명의 경계가 흐릿하고, 청구항의 범위가 과도하게 넓어지면 NPE 활동의 무대가 된다. 레식의 분석은 한국 실무에도 직접 적용 가능하다.

XI. 글로벌 남(南) 진영: 탈식민주의의 IP 비판

역사적 맥락

1995년 WTO TRIPS 협정의 발효는 글로벌 IP 체제의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이전까지 각국이 자국 산업 발전 단계에 맞춰 IP 정책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었다면, TRIPS 이후 모든 WTO 회원국은 최소 IP 보호 수준을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했다. 이는 인도, 브라질, 남아공 같은 신흥국들의 제네릭 의약품 산업에 직접적 위협이었다.

이 위기 속에서 글로벌 남(South) 진영의 IP 비판이 강력하게 결집했다. 그 학술적 정점이 인도 출신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다.

핵심 인물과 저작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 1952~)는 인도의 환경운동가, 농업 활동가, 작가다. 본래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에서 과학철학(물리학의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이다. 박사 논문 제목은 「양자 이론에서의 숨은 변수와 비국소성(Hidden Variables and Non-locality in Quantum Theory)」(1978)이었다.[^57] 1993년 대안 노벨평화상으로 불리는 라이트 라이블리후드(Right Livelihood Award)를 수상했다.[^58] 인도에 본부를 둔 농업 NGO Navdanya의 공동 설립자다.

대표 저작은 다음과 같다. 『생물해적행위: 자연과 지식의 약탈(Biopiracy: The Plunder of Nature and Knowledge)』(1997).[^59] 『도둑맞은 수확(Stolen Harvest: The Hijacking of the Global Food Supply)』(2000). 『지구 민주주의(Earth Democracy)』(2005).

폴 파머(Paul Farmer, 1959~2022)는 미국 의사이자 의학인류학자로, 구조적 폭력(structural violence) 개념을 글로벌 보건 영역에 도입했다. 직접 IP를 비판한 학자는 아니지만 그의 개념은 IP 비판에 강력한 도덕철학적 무기를 제공했다.

논변의 구조

글로벌 남 진영의 논변은 다섯 갈래로 정리된다.

첫째는 자원의 비대칭이다. 시바의 가장 강력한 한 줄은 다음과 같다. 유전자 자원의 90%는 남반구에 있고, 특허의 90%는 북반구에 있다.[^60] 이 비대칭은 우연이 아니라 식민주의의 연속이다.

둘째는 식민주의의 연속성이다. 시바는 IP 체제를 콜럼버스의 두 번째 도래라고 부른다. 16세기 식민주의가 토지와 자원을 약탈했다면, 21세기 IP 체제는 유전자 자원과 전통 지식을 약탈한다. 법적 도구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같다는 분석이다.

셋째는 전통 지식의 사유화다. 인도의 님(Neem) 나무, 강황(turmeric), 바스마티 쌀 같은 전통 자원에 대한 서구 기업의 특허 출원이 대표 사례다. 이들은 인도 농민들이 수천 년 동안 사용해 온 지식인데, 서구 기업이 현대 과학의 외피를 두르고 특허를 출원했다.

넷째는 강제 단작의 메커니즘이다. 시바의 분석에 따르면 특허받은 종자는 농민들에게 강제 단작을 강요한다. 농민들은 더 이상 종자를 교환할 수 없게 되고(IP 위반이 되므로), 매년 종자 회사에서 새 종자를 구입해야 한다. 이는 농민 자율성의 박탈이자 생물다양성의 파괴다.

다섯째는 의약품 접근성이다. 폴 파머의 구조적 폭력 개념을 IP에 적용하면, 의약품 특허로 인한 빈곤국 환자의 죽음은 고의가 없어도 구조적 폭력에 해당한다. 2001년 AIDS 유행 정점에서 미국 대학들이 항레트로바이러스 약물 특허의 약 25%를 보유했고, 그해 보고된 300만 명의 AIDS 사망자 중 다수가 저렴한 치료에 대한 접근 부족에 기인했다는 사실은 이 구조적 폭력의 가장 가시적 사례다.[^61]

대표 인용문

시바의 핵심 명제는 다음과 같다.[^62]

헌장과 특허는 따라서 해적행위를 신의 뜻으로 변환시켰다.

이 한 줄은 16세기 식민주의의 법적 도구(헌장)와 21세기 IP 체제의 법적 도구(특허)가 동일한 약탈을 정당화하는 다른 옷이라는 분석을 압축한다.

님 나무 분쟁에 대한 시바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자유로운 나무가 더 이상 자유롭지 않다. 인도의 공유 자원이었던 님 나무가 서구 기업의 특허로 사유화된 사건의 도덕적 무게를 응축한 표현이다.

『생물해적행위』의 도입부는 다음과 같다.[^63]

유전공학과 유기체 복제는 과학의 상업화와 자연의 상품화의 궁극적 표현이다. 생명 자체가 식민화되고 있다.

학술적 영향력

글로벌 남 진영의 영향력은 학술계보다 국제 정책과 시민사회 운동에서 가장 강력하다. 2001년 WTO 도하 선언(Doha Declaration on TRIPS and Public Health)은 이 진영의 정치적 승리였다. 이 선언은 공중보건 위기 시 강제실시권 발동의 정당성을 명시했다.

UNAIDS, MSF(국경없는의사회), 의약품 특허 풀(MPP)의 활동도 이 진영의 학술적 토대 위에서 작동한다. 코로나19 백신 특허 유예 논쟁(2020~2022)에서 인도와 남아공이 주도한 TRIPS 유예 제안도 이 진영의 직접적 후예다.

약점과 비판

글로벌 남 진영의 약점은 학술적 정밀성과 활동가적 수사의 균형이 때때로 어긋난다는 데 있다. 시바의 글은 강력한 도덕적 호소력을 가지지만, 일부 비판자들은 그녀의 사실 주장에 과장이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글로벌 남 진영은 산업 발전 단계에 따른 IP 정책의 차등에 충분히 답하지 못한다. 인도가 자국 제네릭 산업을 위해 IP 보호를 제한해야 한다는 논리는, 인도가 IP 의존 산업으로 발전한 이후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진영 내부의 답은 분열되어 있다.

변리사로서의 메모

글로벌 남 진영의 분석은 변리사가 가장 불편하게 마주해야 할 진영이다. 매일 청구항의 보호범위를 한 줄이라도 더 넓히려는 직업적 정밀함이, 누군가의 생명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분석은 직업적 자긍심에 직접 충돌한다. 그 충돌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이 변리사의 도덕적 성숙이라고 본다. TRIPS 유연성 조항의 활용, 의약품 특허 풀, 차등 가격제 같은 보완 장치들이 단순한 PR이 아니라 제도의 도덕적 부담을 실제로 덜어내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 진영의 비판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XII.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 영역별 폐지론

역사적 맥락

1980년대 초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특허가 본격적으로 인정되기 시작했다. 1981년 Diamond v. Diehr 대법원 판결, 1998년 State Street Bank 연방순회항소법원 판결로 소프트웨어 특허와 비즈니스 방법 특허의 길이 열렸다. 이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저항이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에서 나왔다.

이 진영은 특허제도 전반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특허에 한정해 폐지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영역별 폐지론으로 분류된다.

핵심 인물과 저작

리처드 스톨먼(Richard Stallman, 1953~)은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FSF)의 창립자다. GNU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GPL(GNU General Public License) 라이선스를 설계했다. MIT 인공지능 연구소 출신이다.

리누스 토르발스(Linus Torvalds, 1969~)는 리눅스 커널의 창시자다. 스톨먼만큼 정치적 활동가는 아니지만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가장 가시적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

에릭 레이몬드(Eric S. Raymond)는 『대성당과 시장(The Cathedral and the Bazaar)』(1999)의 저자로,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을 오픈소스 운동으로 재포장한 인물이다.

논변의 구조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논변은 다섯 갈래로 정리된다.

첫째는 소프트웨어의 본질 논거다. 소프트웨어는 물리적 발명이 아니라 문학적 표현에 가깝다. 알고리즘은 수학이고, 코드는 텍스트다. 따라서 소프트웨어에는 저작권이 적합하지 특허는 부적절하다.

둘째는 누적적 혁신 논거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누적적이다. 모든 새 프로그램은 이전 프로그램의 코드, 알고리즘, 패턴을 토대로 한다. 추상적 알고리즘에 특허를 부여하면 이 누적적 혁신이 봉쇄된다.

셋째는 자명성 위기 논거다. 소프트웨어 특허는 자명성 기준이 지나치게 낮아 자명한 발명에 대한 특허가 양산된다. 특허청 심사관이 모든 사전 코드를 검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넷째는 자유의 도덕적 가치다. 스톨먼의 입장은 도덕철학적이다. 소프트웨어 사용자가 프로그램을 실행, 연구, 수정, 재배포할 자유를 가져야 하며, 이는 양도될 수 없는 도덕적 권리다. 소프트웨어 특허는 이 자유를 박탈한다.

다섯째는 카피레프트(copyleft)의 실천이다. 스톨먼의 GPL 라이선스는 단순한 자유 부여가 아니라 자유의 영구화를 강제한다. GPL 코드를 사용한 모든 파생 작품은 GPL로 공개되어야 한다. 이는 바이러스성 라이선스로 불리며, IP 체제 내부에서 공공영역을 확장하는 도구다.

대표 인용문

스톨먼의 자유 소프트웨어 정의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그가 제시한 네 가지 자유는 사용자가 프로그램을 어떤 목적으로든 실행할 자유, 프로그램의 작동 방식을 연구하고 수정할 자유, 사본을 배포할 자유, 수정된 사본을 배포할 자유다.

레식이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2002년 오라일리 오픈소스 컨벤션에서 그의 자유 문화 기조연설 중 몇 분이 소프트웨어 특허에 관한 것이었으며, 그는 소프트웨어 특허를 자유 소프트웨어,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그리고 혁신에 대한 떠오르는 위협으로 본다.[^64]

학술적 영향력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성과는 학술적이라기보다 실천적이다. 리눅스, GNU, Apache, MySQL 같은 자유 소프트웨어가 상용 소프트웨어와 경쟁하여 승리한 영역들이 있다. 인터넷 인프라의 상당 부분이 자유 소프트웨어 위에서 작동한다.

정책 영역에서도 성과가 있다. 유럽연합의 2005년 컴퓨터 구현 발명 지침(CIID) 부결은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정치적 승리였다. 미국 대법원의 Bilski v. Kappos(2010), Mayo v. Prometheus(2012), Alice Corp.(2014) 판결은 모두 추상적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방법 특허에 대한 법적 통제를 강화한 것으로, 이 진영의 오랜 압박과 무관하지 않다.

약점과 비판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약점은 제약·화학 산업의 특허 옹호와의 일관성 문제에 있다. 소프트웨어 특허는 부적절하고 제약 특허는 적절하다는 영역별 차등론은 직관적이지만, 그 차등의 원리가 충분히 정교화되지 않았다. 베센-뮤어러의 실증 분석이 이 차등의 경험적 근거를 제공하지만, 이론적 정초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또한 GPL 같은 바이러스성 라이선스가 기존 상용 소프트웨어 산업과의 공존을 어렵게 만든다는 비판도 있다. 이로 인해 GPL보다 덜 강제적인 MIT, BSD, Apache 라이선스가 더 널리 사용되는 추세다.

변리사로서의 메모

소프트웨어 특허는 한국 변리사 업계에서 점점 비중이 커지는 영역이다. AI, 핀테크, 플랫폼 산업의 특허가 모두 이 영역에 속한다.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비판은 한국 실무에도 직접 적용 가능하다. 청구항의 추상성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자명성 기준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는 한국 특허청과 법원도 매일 마주하는 문제다. 이 진영의 비판은 변리사의 작업 환경에 대한 자기 검토에 유용하다.

XIII. 미시 정책 개혁가: 가능한 변화의 영역

역사적 맥락

지금까지 살펴본 진영들이 거대 담론을 다룬다면, 이 진영은 지금 당장 가능한 절차 개혁에 집중한다. 학자뿐 아니라 변호사, 판사, 정책 입안자들이 섞여 있다. 이론적 야심은 작지만 실제 제도 변화에 대한 영향력은 가장 크다.

핵심 인물과 저작

마크 렘리(Mark Lemley)는 이미 III장에서 다뤘듯 이 진영의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다.

칼 샤피로(Carl Shapiro)는 UC 버클리 하스 경영대학원 교수로, 산업조직론과 특허 정책의 권위자다. 특허 덤불 개념을 정착시켰고, 클린턴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에서 정책 자문을 맡았다.

존 앨리슨(John Allison)은 텍사스대 맥콤스 경영대학원 교수로, 특허 데이터 실증 연구의 권위자다.

논변의 구조

미시 정책 개혁가들의 처방은 여섯 갈래로 정리된다.

첫째는 특허 청구항 명확성 요건 강화다. 베센-뮤어러의 통지 기능 실패 분석을 정책으로 구현하는 작업이다. 청구항의 경계선을 더 명확히 요구하는 심사 기준 강화다.

둘째는 자명성 기준 상향이다. 미국 KSR v. Teleflex(2007) 판결이 자명성 기준을 상식적으로 상향한 사례다. 이 진영의 학술적 압박이 반영된 결과다.

셋째는 패자부담 원칙 도입이다. 미국이 일반적으로 채택하는 각 당사자가 자기 비용을 부담하는 원칙이 NPE의 협박 소송을 가능케 한다. 유럽식 패자부담(loser pays) 원칙을 도입하면 NPE의 비용 구조가 달라진다.

넷째는 특허청 사후심사 강화다. 2011년 미국발명법(AIA)이 도입한 IPR(Inter Partes Review), PGR(Post-Grant Review), CBM(Covered Business Method Review) 절차가 이 진영의 정책적 성과다.

다섯째는 표준 필수 특허(SEP)에 대한 RAND 의무 강화다. 이동통신, 반도체 등 표준 기반 산업에서 SEP 보유자가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인(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라이선스를 의무화하는 정책이다.

여섯째는 국제무역위원회(ITC) 권한 축소다. ITC의 337조(불공정 수입) 조사가 NPE의 수입 금지 협박에 악용되는 문제를 다룬다.

대표 인용문

렘리의 합리적 무지 명제는 다음과 같이 압축된다.[^65]

대부분의 특허가 경제적으로 무의미하기 때문에, 특허청이 모든 출원을 엄격히 심사하는 것보다 문제가 되는 소수만 사후적으로 소송에서 무효화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효율적이다.

후속 비판 논문(프레이크스와 와서먼의 「비합리적 무지(Irrational Ignorance)」)의 핵심 명제는 다음과 같다.[^66] 심사관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는 데 따른 비용보다 사회적 편익이 더 크다는 새로운 실증 추정. 즉 렘리의 합리적 무지는 사실 비합리적일 수 있다는 반박이다.

ProMarket의 NPE 비판 분석은 다음과 같다.[^67]

특허괴물들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337조(불공정 수입) 조사를 악용하여 표적 기업이 수백만 달러의 합의금을 지불하도록 강요하며, ITC는 1916년 위조품 수입을 막기 위해 설립되었지 사실상의 특허 소송 영역이 되도록 의도되지 않았다.

학술적 영향력

이 진영의 영향력은 실제 제도 변화에서 가장 잘 측정된다. 2011년 미국발명법(AIA), 2014년 Alice Corp. 판결, 표준 필수 특허에 대한 RAND 의무화, ITC 권한 제한 입법 시도 등이 모두 이 진영의 학술적 토대 위에서 진행되었다.

한국에서도 이 진영의 영향력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특허청 심사 품질 강화, 특허법원의 무효 심결 강화, 표준 특허 라이선스 정책 등이 그 예다.

약점과 비판

이 진영의 약점은 근본적 변화에 대한 미온성이다. 폐지론이나 글로벌 정의 진영에서 보면 미시 개혁들은 체제 유지의 도구에 불과할 수 있다. 또한 미시 개혁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충분히 분석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변리사로서의 메모

변리사 실무자에게 가장 직접 와닿는 진영이다. 청구항 명확성 요건 강화, 자명성 기준 상향, 패자부담 원칙 도입, 사후심사 절차 강화는 모두 변리사의 일상적 작업 환경을 직접 변화시킨다. 한국에서 NPE 활동이 본격화되기 전에 이런 미시 개혁들을 선제적으로 도입할 수 있다면, 미국이 겪고 있는 NPE 비용 구조를 시차를 두고 한국이 겪지 않을 수 있다.

XIV. 새로 발견되는 진영들: 알고리즘, AI, 데이터의 시대

역사적 맥락

2010년대 이후 새롭게 부상하는 IP 비판 영역들이 있다. AI 학습 데이터의 IP 처리, 알고리즘 특허, 데이터베이스 권리, 합성 생물학 같은 영역이다. 이들은 아직 학술적으로 정착된 진영을 형성하지 못했지만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핵심 쟁점

첫째는 AI 학습 데이터의 IP다. 대규모 언어 모델이 저작권 보호 텍스트를 학습 데이터로 사용하는 것이 공정 사용에 해당하는가, 아니면 침해인가? 미국과 유럽에서 진행 중인 다수의 소송이 이 쟁점을 다룬다.

둘째는 AI 생성물의 IP 보호 가능성이다. AI가 생성한 작품에 저작권이나 특허가 부여될 수 있는가? 미국 저작권청은 인간 저자성을 요구하는 입장이지만 이 입장의 일관된 적용은 어렵다.

셋째는 합성 생물학과 IP다. CRISPR, 합성 유전자, 인공 단백질 같은 합성 생물학의 산물에 대한 특허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자연의 산물과 인공 발명의 경계는 어디인가?

넷째는 데이터 자체의 IP화다. 유럽연합의 데이터베이스 지침이 데이터에 대한 새로운 IP 권리를 창설했다. 보일이 분석한 제2의 인클로저 운동의 가장 새로운 영역이다.

대표 인물

이 영역에서 활발히 작업하는 학자로는 패멀라 새뮤얼슨(Pamela Samuelson, UC 버클리), 매슈 살자노(Matthew Sag, 에모리), 안드레스 과다무즈(Andres Guadamuz, 서식스), 라이언 아벗(Ryan Abbott, 서리) 등이 있다.

변리사로서의 메모

이 영역은 한국 변리사 업계의 가까운 미래다. AI 발명, AI 학습 데이터, 합성 생물학 발명에 대한 출원과 분쟁이 본격화되기 전에 학술적 토대를 이해하는 것이 직업적 준비다.

종합 평가: 진영 간 관계 지도

지금까지 분석한 열한 개 진영의 위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폐지의 강도에 따른 분류는 이렇다. 폐지 진영에는 자유지상주의 폐지론(킨셀라, 볼드린-르빈)이 있다. 영역별 폐지에는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스톨먼)이 있다. 급진 개혁 진영에는 글로벌 남(시바), 노벨상 진영(스티글리츠)이 있다. 개혁 진영에는 실증적 개혁론(베센-뮤어러), 반공유지론(헬러), 공유지론(보일), 사이버법학(레식), 미시 정책 개혁가(렘리, 샤피로)가 있다. 회의 진영에는 19세기 반특허 운동을 정리한 마흐럽이 있다. 그의 양면 회의주의는 어느 쪽으로도 결론을 강요하지 않는 학문적 정직성이다.

정치적 정향에 따른 분류는 이렇다. 자유지상주의 우파에는 킨셀라, 볼드린-르빈이 있다. 학술 중립에는 마흐럽, 베센-뮤어러, 헬러, 모저, 렘리, 샤피로가 있다. 좌파 자유주의에는 보일, 레식, 스톨먼이 있다. 좌파에는 스티글리츠가 있다. 탈식민주의 좌파에는 시바가 있다.

이 분포의 가장 중요한 함의는 다음과 같다. 특허제도가 정치 스펙트럼의 양 극단과 학술적 권위의 정점에서 동시에 비판받는 드문 제도라는 점이다. 자유시장 원리에 충실한 자유지상주의 우파에서, 글로벌 정의에 충실한 탈식민주의 좌파까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네 명에서 변리사 출신 무정부자본주의자까지, 이 모든 진영이 동시에 특허제도에 비판적이라는 사실은 우연일 수 없다.

마무리: 변리사로서의 종합 메모

이 자료집을 정리하면서 변리사로서 가장 무겁게 다가온 통찰은 다음과 같다.

첫째, 특허제도는 자연법칙이 아니라 역사적 우연의 산물이다. 19세기 반특허 운동이 거의 승리할 뻔했다는 사실, 1873년 빈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정치적 반전이 일어났다는 사실, 네덜란드와 스위스가 특허 없이도 산업화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모두 이 우연성을 보여준다.

둘째, 특허제도 비판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환원되지 않는다. 자유시장 자유지상주의 우파와 탈식민주의 좌파가 동시에 특허제도를 비판한다는 사실은, 이 비판이 단순한 좌우 이념의 산물이 아니라 제도 자체의 본질적 결함에 대한 다양한 진영의 응답임을 보여준다.

셋째, 변리사의 직업적 자긍심은 특허제도의 신성함에 기대지 않아도 된다. 토머스 제퍼슨이 1813년 편지에서 이미 간파했듯, 특허는 자연권이 아니라 사회적 효용을 증진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정책적 선택이다. 이 정책적 선택의 효용을 매 순간 검증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운용하는 것이 변리사의 직업적 사명이다. 신성한 권리를 수호하는 사제가 아니라, 사회적 도구를 정밀하게 운용하는 기술자에 가깝다.

넷째, 가장 무거운 도덕적 부담은 의약품 접근성 문제다. 글로벌 남 진영, 노벨상 진영, 사이버법학 진영이 모두 이 문제를 가장 강한 도덕적 톤으로 다룬다. 이 진영들의 비판을 단순한 반IP 활동가의 수사로 치부하지 않고 진지하게 마주하는 것이 변리사의 도덕적 성숙이다.

다섯째, 미시 개혁의 여지는 크다. 한국에서 NPE 활동이 본격화되기 전에 패자부담 원칙, 청구항 명확성 강화, 사후심사 절차 강화 같은 미시 개혁을 선제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변리사 업계 전체의 작업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다.

이 자료집을 마치며 한 가지 덧붙이고 싶다. 특허제도에 맞서는 사람들의 명단을 모으는 일이 특허제도의 가치를 부정하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이 비판자들의 목소리를 정직하게 듣는 일이야말로 특허제도를 가장 건강하게 유지하는 길이다. 비판이 없는 제도는 자기 점검의 거울을 잃고 굳어간다. 굳어가는 제도는 결국 자신의 정당성을 스스로 갉아먹는다.

마흐럽의 양면 회의주의가 변리사 직업의 가장 성숙한 자세라고 본 이유가 여기 있다. 우리가 다루는 제도가 자명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효용을 매 순간 검증하며, 비판자의 목소리를 직업적 거울로 삼는 자세 말이다. 특허제도는 인류의 물질문명 발전에 큰 기여를 했고, 동시에 부작용도 적잖이 낳았다. 이 양면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일이 변리사의 직업적 성숙이고, 칼럼니스트의 지적 정직함이며,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의 책임이다.

이 자료집이 미래의 칼럼, 강연, 책 작업의 토대로 활용되기를 바란다. 비판자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우리의 제도가 더 성숙해지도록 돕는 가장 정직한 동료다.


각주

[^1]: "Venetian Patent Statute,"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Venetian_Patent_Statute. 1474년 3월 19일 베네치아 원로원이 제정한 일반 특허법. 발명자에게 10년간의 독점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 같은 자료. 1474년부터 1788년 사이 베네치아 원로원이 부여한 약 2,000건의 특허 통계.

[^3]: "Statute of Monopolies,"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Statute_of_Monopolies. 또한 English Origins of Intellectual Property Law, Constitution Annotated, https://constitution.congress.gov/browse/essay/artI-S8-C8-2-1/. 정확한 인용은 21 Jas. 1. c. 3 (1623년 의회 회기에 통과되어 1624년 5월 29일 왕실 재가).

[^4]: B. Zorina Khan, "An Economic History of Patent Institutions," EH.net Encyclopedia, https://eh.net/encyclopedia/an-economic-history-of-patent-institutions/. 1863년 독일경제학자대회 결의문 인용.

[^5]: The Economist, 5 June 1869, p. 656, cited in Fritz Machlup & Edith Penrose, "The Patent Controversy in the Nineteenth Century," Journal of Economic History 10, no. 1 (May 1950): 1-29.

[^6]: Eric Schiff, Industrialization Without National Patents: The Netherlands, 1869-1912; Switzerland, 1850-1907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1).

[^7]: 같은 책. 또한 B. Zorina Khan, "An Economic History of Patent Institutions" (위 자료).

[^8]: Fritz Machlup & Edith Penrose, "The Patent Controversy in the Nineteenth Century," Journal of Economic History 10, no. 1 (May 1950): 1-29.

[^9]: Roslyn Layton, "Patent Trolls Are Harming Innovation. Congress Can Help," ProMarket (March 2024). 2012년 NPE 비용 추산은 PwC, Patent Litigation Study 및 RPX Corporation의 데이터에 기초.

[^10]: B. Zorina Khan, "Trolls and Other Patent Inventions: Economic History and the Patent Controversy in the Twenty-First Century" (George Mason Center for the Protection of Intellectual Property, 2013), citing Machlup & Penrose (1950).

[^11]: The Economist, 5 June 1869, p. 656, cited in Fritz Machlup & Edith Penrose, "The Patent Controversy in the Nineteenth Century," Journal of Economic History 10, no. 1 (May 1950): 1-29.

[^12]: B. Zorina Khan, "An Economic History of Patent Institutions," EH.net Encyclopedia, https://eh.net/encyclopedia/an-economic-history-of-patent-institutions/.

[^13]: 같은 글.

[^14]: 같은 글.

[^15]: David R. Henderson, "Fritz Machlup," The Concise Encyclopedia of Economics, https://www.econlib.org/library/Enc/bios/Machlup.html.

[^16]: Fritz Machlup, An Economic Review of the Patent System, U.S. Senate Subcommittee on Patents, Trademarks & Copyrights, 85th Cong., 2nd Sess., Study No. 15 (Washington, D.C.: U.S. Government Printing Office, 1958).

[^17]: Fritz Machlup & Edith Penrose, "The Patent Controversy in the Nineteenth Century," Journal of Economic History 10, no. 1 (May 1950): 1-29.

[^18]: 같은 글, 1쪽.

[^19]: 같은 글에서 인용, B. Zorina Khan, "Trolls and Other Patent Inventions" (2013).

[^20]: Hanns Ullrich, "Fritz Machlup's Legacy," in Patent Law in Global Perspective (Springer, 2024), Chapter 51.

[^21]: Eric Schiff, Industrialization Without National Patents: The Netherlands, 1869-1912; Switzerland, 1850-1907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1).

[^22]: "Stephan Kinsella,"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Stephan_Kinsella.

[^23]: N. Stephan Kinsella, "Against Intellectual Property," Journal of Libertarian Studies 15, no. 2 (Spring 2001): 1-53.

[^24]: Michele Boldrin & David K. Levine, Against Intellectual Monopol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8).

[^25]: Kinsella, "Against Intellectual Property," reproduced at https://stephankinsella.com/publications/against-intellectual-property/.

[^26]: Boldrin & Levine, Against Intellectual Monopoly, 보일 출판사 추천사 인용.

[^27]: Edward C. Prescott의 추천사, Boldrin & Levine, Against Intellectual Monopoly 에 수록.

[^28]: Douglass C. North의 추천사, Boldrin & Levine, Against Intellectual Monopoly 에 수록.

[^29]: Petra Moser & Alessandra Voena, "Compulsory Licensing: Evidence from the Trading-with-the-Enemy Act," American Economic Review 102, no. 1 (2012): 396-427.

[^30]: Richard Gilbert, "A World without Intellectual Property? A Review of Michele Boldrin and David Levine's Against Intellectual Monopoly," Journal of Economic Literature 49, no. 2 (June 2011): 421-32.

[^31]: James Bessen & Michael J. Meurer, Patent Failure: How Judges, Bureaucrats, and Lawyers Put Innovators at Risk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8).

[^32]: James Bessen & Eric Maskin, "Sequential Innovation, Patents, and Imitation," RAND Journal of Economics 40, no. 4 (Winter 2009): 611-635.

[^33]: Petra Moser, "Patents and Innovation: Evidence from Economic History,"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27, no. 1 (Winter 2013): 23-44.

[^34]: Mark A. Lemley, "Rational Ignorance at the Patent Office," Northwestern University Law Review 95 (2001): 1495.

[^35]: Michael D. Frakes & Melissa F. Wasserman, "Irrational Ignorance at the Patent Office," Vanderbilt Law Review 72 (2019): 975.

[^36]: Bessen & Meurer, Patent Failure, p. 1 의 핵심 결론 요약.

[^37]: Eric Maskin, Patent Failure 추천사, Princeton University Press 출판사 페이지 인용.

[^38]: Petra Moser, "Patents and Innovation in Economic History," NBER Working Paper No. 21964 (February 2016).

[^39]: Bessen & Maskin, "Sequential Innovation, Patents, and Imitation" (2009), 추상.

[^40]: Michael A. Heller & Rebecca S. Eisenberg, "Can Patents Deter Innovation? The Anticommons in Biomedical Research," Science 280, no. 5364 (1 May 1998): 698-701, DOI: 10.1126/science.280.5364.698.

[^41]: 같은 논문 추상.

[^42]: 같은 논문에서 헬러의 명제 요약.

[^43]: David E. Adelman, "Patent Metrics: The Mismeasure of Innovation in the Biotech Patent Debate," 다음 자료에서 인용 https://www.law.berkeley.edu/files/Adelman_patent_metrics.pdf.

[^44]: Joseph E. Stiglitz, "Economic Foundation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Duke Law Journal 60, no. 4 (2010): 919-986.

[^45]: Dean Baker, Arjun Jayadev, & Joseph Stiglitz, Innovation, Intellectual Property, and Development: A Better Set of Approaches for the 21st Century (AccessIBSA, 2017).

[^46]: 같은 보고서 인용, Stephen Ezell, "Delinkage Debunked," ITIF (2020)에서 재인용.

[^47]: Stiglitz, "Economic Foundation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2010).

[^48]: Joseph Stiglitz, Columbia News 인터뷰, https://news.columbia.edu/news/joseph-stiglitz-co-edits-and-contributes-book-growing-inequality.

[^49]: Stephen Ezell, "Delinkage Debunked: Why Replacing Patents With Prizes for Drug Development Won't Work," ITIF (2020).

[^50]: "James Boyle (legal scholar),"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James_Boyle_(legal_scholar).

[^51]: James Boyle, "The Second Enclosure Movement and the Construction of the Public Domain," Law and Contemporary Problems 66, no. 1 (Winter 2003): 33-74.

[^52]: James Boyle, The Public Domain: Enclosing the Commons of the Mind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8).

[^53]: 17세기 영국 무명 시인의 시구, Boyle (2003) 모두에 인용.

[^54]: Boyle, "The Second Enclosure Movement" (2003).

[^55]: "Lawrence Lessig,"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Lawrence_Lessig.

[^56]: Lawrence Lessig, Free Culture (New York: Penguin, 2004), p. 116.

[^57]: "Vandana Shiva,"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Vandana_Shiva. 박사 논문 정확한 제목과 학위 분야에 관한 정보.

[^58]: 같은 자료, Right Livelihood Award 1993 수상.

[^59]: Vandana Shiva, Biopiracy: The Plunder of Nature and Knowledge (Boston: South End Press, 1997).

[^60]: 시바의 핵심 주장, Sandrine Bélier(EU 의원)와 함께 인용된 통계, Globallandscapesforum 자료에서 재인용.

[^61]: Til Bahmer & Lisa Forman, "Structural Violence and the Biomedical Innovation System," PMC8098909 (2021).

[^62]: Vandana Shiva, Biopiracy (1997)에서, Pulkit Sahu, "Biopiracy in India," IAM(2020) 인용을 통해 재인용.

[^63]: Shiva, Biopiracy, 도입부, Penguin Random House 출판사 페이지 인용.

[^64]: "Lawrence Lessig," Wikipedia,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 관련 부분.

[^65]: Lemley, "Rational Ignorance at the Patent Office" (2001) 핵심 명제 요약.

[^66]: Frakes & Wasserman, "Irrational Ignorance at the Patent Office" (2019).

[^67]: Roslyn Layton, "Patent Trolls Are Harming Innovation. Congress Can Help," ProMarket (March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