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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파리는 미사를 올릴 가치가 있다

by 변리사 허성원 2026. 4. 20.

파리는 미사를 올릴 가치가 있다: 개종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 1593년 앙리 4세는 프랑스 왕위를 얻기 위해 위그노 신앙을 버리고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파리는 미사를 올릴 가치가 있다"는 경구는 이 결단을 압축한다. 표면은 정치적 실용주의지만, 깊이 보면 자신의 순수성보다 공동체의 생명에 책임지는 베버의 책임 윤리다. 그는 5년 뒤 낭트 칙령으로 자신이 버린 신앙의 자유를 법제화하여 변절이 아님을 증명했다. 이 구조는 지금도 살아있다. 덴마크 DONG Energy는 2017년 석유가스 부문을 매각하고 외르스테드로 개명해 세계 최대 해상풍력 기업이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나델라 체제에서 "Microsoft loves Linux"를 공개 선언하며 윈도우 교리를 폐기하고 클라우드·AI 시대의 주도권을 잡았다. 개종과 변절을 가르는 기준은 규모의 대칭성, 후속 책임, 그리고 더 깊은 본질의 발견이다. 표면의 정체성을 버리되 더 깊은 본질을 되찾는 것, 이것이 살아남는 자의 지혜다.)

1593년 7월 어느 새벽, 한 남자가 생드니 대성당 문 앞에 섰다. 그의 이름은 앙리 드 나바르. 30년간 프랑스인이 서로를 학살해온 종교전쟁의 마지막 장면이 그 문을 여는 그의 손끝에 달려 있었다. 위그노의 수장이 가톨릭 미사를 받으러 들어가는 그 순간, 한 왕조가 시작되고 또 하나의 시대가 끝났다. "파리는 미사를 올릴 가치가 있다." 이 냉소 같은 경구는 이후 400년간 정치적 결단과 기업 경영의 가장 난해한 문제를 푸는 열쇠로 반복되어 왔다.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때, 그 버림은 변절인가 구원인가.

한 왕의 개종

앙리 드 나바르는 1553년 프랑스 남서부 나바르 왕국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잔 달브레는 철저한 칼뱅주의자였고, 앙리는 위그노(프랑스 개신교) 신앙을 어머니의 젖과 함께 물려받았다. 이 신앙이 그의 삶 전부를 결정했다.

그가 열아홉이던 1572년, 그는 프랑스 왕가의 공주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와 결혼하기 위해 파리에 왔다. 위그노 왕자와 가톨릭 공주의 결혼은 오랜 종교 갈등을 봉합할 상징으로 준비되었다. 그러나 결혼식이 끝난 지 엿새 만인 8월 24일 새벽, 파리의 종들이 울렸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이 시작된 것이다. 파리에서만 3천 명의 위그노가 살해되었고, 전국으로 번진 학살은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앙리는 살아남기 위해 강요된 첫 번째 개종을 받아들였다. 루브르 궁에 사실상 연금된 채 가톨릭으로 살아야 했다. 그러나 1576년 탈출에 성공한 그는 곧바로 위그노 진영으로 복귀하여 신앙을 회복했다. 첫 번째 개종은 칼끝에서 나온 거짓이었고, 그 거짓을 그는 몸으로 증명하여 부인했다.

13년 뒤, 역사는 다시 그를 선택 앞에 세웠다. 1589년 앙리 3세가 암살되면서 발루아 왕조가 단절되었다. 살리카법에 의해 가장 가까운 남계 친족인 앙리 드 나바르가 프랑스 왕위의 법적 계승자가 되었다. 그러나 가톨릭 프랑스는 이단의 왕을 인정할 수 없었다. 가톨릭 동맹(Sainte Ligue)은 스페인의 지원을 업고 파리를 장악했고, 앙리는 자신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는 왕이 되었다.

그는 군사적으로 모든 주요 전투에서 이겼다. 1590년 이브리 전투에서 "내 투구의 흰 깃털을 따라오라"고 외친 그의 기병대가 적을 쓸어버렸다. 그러나 파리는 함락되지 않았다. 포위전은 길어졌고, 파리 시민은 아사자를 쏟아내고 있었다. 전쟁은 어느 쪽도 이기지 못한 채 프랑스 전체를 말라죽이고 있었다.

이 교착을 푼 것이 바로 개종이었다. 1593년 7월 25일 생드니 대성당에서 앙리는 공개적으로 가톨릭 신앙을 고백했다. 그로부터 이듬해 3월 파리가 성문을 열었다. 앙리 4세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다시 5년 뒤인 1598년, 그는 낭트 칙령을 반포했다. 위그노에게 신앙의 자유와 일정한 안전 지역을 보장한 이 칙령은 유럽 최초의 본격적 종교 관용 법안이었다. 자신이 버린 신앙의 자유를 왕으로서 법으로 지켜낸 것이다.

"파리는 미사를 올릴 가치가 있다." 이 말이 누구의 입에서 처음 나왔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앙리 자신이 했다는 설, 측근 쉴리 공작이 조언으로 올렸다는 설, 심지어 위그노 진영에서 조롱으로 뱉었다는 설까지 있다. 동시대 기록은 없고 17세기 말에 이르러 굳어진 apocryphal한 경구다. 그러나 이 말이 4세기를 살아남은 이유는 한 개인의 어록이어서가 아니다. 한 시대 전체가 만들어낸 집단적 통찰이기 때문이다.

경구의 세 층위

표면적으로 이 말은 정치적 실용주의, 곧 리얼폴리티크의 고전적 표현이다. 왕관을 얻기 위해 신앙을 교환하는 거래의 냉철한 인정이다.

그러나 한 층 더 들어가면 이는 막스 베버가 말한 책임 윤리의 선언이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의 두 윤리를 구분했다. 자신의 신념에 순수하게 충실한 신념 윤리와, 자기 결정의 예측 가능한 결과 전체에 책임지는 책임 윤리다. 앙리가 개종을 거부했다면 위그노로서의 순수성은 지켜졌겠지만 전쟁은 계속되었을 것이고 수만 명이 더 죽었을 것이다. 베버의 관점에서 정치 지도자의 가장 큰 죄는 자신의 영혼을 더럽히지 않으려다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이다.

가장 깊은 층위에서 이 경구는 마키아벨리와 키르케고르 사이의 영원한 긴장을 품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필요하다면 선의 겉옷을 입고 악을 행할 것을 가르쳤다. 앙리의 개종은 이 가르침의 교과서적 적용이다. 그러나 키르케고르의 관점에서 개종은 단독자 되기의 실패, 자신의 가장 내밀한 진실을 거래한 영혼의 타락이다. 정치는 이 두 입장 사이 어딘가에서만 성립한다. 순수성만 고집하면 아무것도 통치할 수 없고, 순수성을 완전히 포기하면 이미 정치가 아니라 기술이다.

앙리의 위대함은 이 긴장을 한쪽으로 해소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그는 미사를 드렸지만 낭트 칙령으로 위그노의 신앙을 지켰다. 마키아벨리적 수단을 썼지만 그 결과를 키르케고르적 단독자의 책임으로 떠안았다. 기회주의자와 책임 있는 실용주의자를 가르는 선이 바로 여기다.

기업의 파리, 기업의 미사

이 구조는 정치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기업은 살면서 최소한 한 번은 자신의 파리를 마주친다. 자기 자신의 핵심 정체성을 버리지 않으면 그 도시에 들어갈 수 없는 순간이다. 그때 그 기업이 미사를 드릴 수 있는가, 그리고 미사 이후에 낭트 칙령까지 써낼 수 있는가가 기업의 수명을 결정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선택 앞에서 기업이 취하는 태도가 놀랍도록 앙리 4세의 구조를 반복한다는 점이다. 단순한 변절은 시장이 벌한다. 단순한 고집도 시장이 벌한다. 살아남는 기업은 자기 정체성을 버리되 그 버림 너머의 더 깊은 본질을 발견하고 거기에 새로운 법을 세운다.

필름을 버린 필름 회사, 후지필름

2000년 전후 디지털 카메라의 급부상은 필름 산업 전체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이 위기 앞에 두 거인이 서 있었다. 미국의 코닥(Eastman Kodak)과 일본의 후지필름(Fujifilm)이다. 둘은 같은 사망 선고를 받았지만 전혀 다른 길을 갔다.

코닥은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못했다. 흥미롭게도 디지털 카메라의 원형을 1975년 세계 최초로 만든 곳이 코닥이었다. 그러나 코닥은 이 기술이 자신의 필름 사업을 잠식할까 두려워 적극적으로 키우지 않았다. 경영진은 "우리는 필름 회사다"라는 정체성에 갇혀 있었다. 2012년 코닥은 파산을 신청했다.

후지필름은 달랐다. 2000년 CEO에 오른 고모리 시게타카(古森重隆)는 필름 매출이 10년 안에 사라질 것을 예측하고 전사적 전환을 시작했다. 그는 후지필름이 필름 회사가 아니라 화학 기술 회사라고 재정의했다. 필름 제조의 핵심 기술은 정밀 화학, 나노 입자 제어, 콜라겐 처리, 산화 방지 기술이었다. 이 기술들은 필름 바깥에서도 쓸 곳이 많았다.

결과는 극적이었다. 후지필름은 콜라겐과 산화 방지 기술을 이용해 2006년 화장품 브랜드 아스타리프트(Astalift)를 출시했다. 필름의 이미징 기술을 의료 영상 기기로 확장했고, 화학 기술을 바이오 의약품 제조 위탁(CDMO) 사업으로 발전시켰다. 2020년대 후지필름의 매출에서 전통 사진 필름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수준으로 떨어졌고, 헬스케어와 고기능 소재가 매출의 큰 축을 이루고 있다. 회사 이름은 여전히 후지필름이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다른 기업이 되었다.

후지필름의 개종은 앙리 4세의 구조를 그대로 반복한다. 표면의 정체성(필름)을 버렸으나, 그 아래의 더 깊은 본질(정밀 화학 기술)을 살려내어 새로운 영역에 적용했다. 이것이 기회주의적 변절과 구별되는 진짜 개종이다. 단순히 트렌드를 좇아 사업을 바꾼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원래 누구였는지를 더 깊은 층위에서 재발견한 것이다.

코닥은 필름을 버리지 못해서가 아니라, 필름 너머의 자기 자신을 발견하지 못해서 죽었다.

화투를 버린 화투 회사, 닌텐도

닌텐도(任天堂)는 1889년 교토에서 화투 제조업체로 시작했다. 창업자 야마우치 후사지로가 수제 화투를 팔면서 출발한 이 회사는 20세기 중반까지 일본 최대의 카드 제조업체였다. 1953년에는 일본 최초로 플라스틱 카드를 출시했고, 1959년에는 디즈니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 캐릭터 카드 시장을 장악했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카드 시장은 포화에 이르렀고 파친코와 볼링이 여가 시장을 잠식했다. 3대 사장 야마우치 히로시는 생존을 위해 카드가 아닌 모든 것을 시도했다. 인스턴트 라면, 택시 회사, 러브호텔, 청소기 등 온갖 사업에 손댔고 대부분 실패했다. 회사는 거의 망할 뻔했다.

그러던 1970년대 초, 닌텐도는 장난감 사업에서 우연히 전환점을 발견했다. 직원 요코이 군페이가 만든 울트라 핸드라는 단순한 집게 장난감이 히트했고, 이것이 닌텐도를 완구 회사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1977년, 닌텐도는 미쓰비시전기와 손잡고 가정용 TV 게임기 컬러 TV 게임 6을 출시했다. 화투 회사에서 비디오 게임 회사로의 개종이 시작된 것이다.

1980년대 패미컴(Family Computer)의 폭발적 성공, 1996년 닌텐도 64, 2006년 Wii, 2017년 Switch에 이르기까지 닌텐도는 세계 비디오 게임 산업의 중심에 서 있다. 140년 된 이 회사에서 화투는 여전히 판매되지만 매출의 의미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러나 닌텐도는 여전히 자신을 "놀이를 만드는 회사"로 규정한다. 화투도 놀이였고 비디오 게임도 놀이다. 표면은 극단적으로 바뀌었으나 그 아래의 정체성은 일관되다.

닌텐도의 개종이 주는 교훈은 또 다른 차원에 있다. 개종의 순간은 예고되지 않는다. 야마우치 히로시는 수많은 실패를 거친 끝에 우연히 맞는 길을 찾았다. 앙리 4세가 이브리 전투에서 이기고도 파리에 들어가지 못한 채 수년을 헤맸듯, 기업도 자신의 파리 앞에서 수년간 문을 두드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문이 열리는 순간 미사를 드릴 준비가 되어 있는가다.

하드웨어를 버린 하드웨어 회사, IBM

IBM은 20세기 내내 "컴퓨터"의 동의어였다. 1960년대 메인프레임 시장의 70%를 장악한 이 회사는 미국 기업 세계의 상징이었다. 기업 신입사원에게 파란 셔츠와 넥타이를 강요하는 사내 문화는 "빅 블루(Big Blue)"라는 별명을 낳았다.

1981년 IBM이 내놓은 IBM PC는 세계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표준이 되었다. 그러나 바로 이 성공이 IBM을 내부에서 갉아먹었다. PC 시장이 범용화되면서 하드웨어 마진이 급락했고, 그 대신 IBM이 무심코 외주를 준 운영체제(마이크로소프트)와 CPU(인텔)가 모든 수익을 가져갔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IBM은 3년 연속 기록적 적자를 냈고, 1993년에는 한 해에만 80억 달러 손실을 기록했다. 월스트리트는 IBM의 분할을 요구했다.

1993년 CEO로 취임한 루 거스너(Louis Gerstner)는 이 분할을 거부하고 정반대의 결단을 내렸다. IBM은 하드웨어 회사가 아니라 서비스와 솔루션 회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제조업 출신도 IT 출신도 아닌 RJR 나비스코 CEO 출신이었다. 쿠키와 담배를 팔던 사람이 빅 블루에 와서 IBM의 미사를 집전한 셈이다.

거스너의 개종은 극단적이었다. 2002년 IBM은 PwC 컨설팅을 인수하며 서비스 회사로의 전환을 본격화했다. 그리고 2004년 12월, IBM은 자신이 창시한 PC 사업부 전체를 중국 기업 레노버에 17억 5천만 달러에 매각했다. 컴퓨터의 대명사가 컴퓨터를 판 것이다. 앙리 4세가 자신의 신앙을 버린 것만큼이나 상징적인 포기였다.

이 포기의 대가로 IBM은 컨설팅과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회사로 재탄생했다. 2010년대 들어 클라우드와 AI 쪽으로 다시 한 번 전환하면서 왓슨(Watson), 레드햇(Red Hat) 인수 등으로 행보를 이어갔다. IBM이 계속 PC에 매달렸다면 오늘날 HP나 델 정도의 중견 제조사로 쪼그라들었을 것이다. 자기가 만든 시장을 스스로 포기한 결단이 회사를 살렸다.

개종과 변절을 가르는 것

그러나 모든 전환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기업이 전환을 시도하다 죽는다. GE는 2000년대 이후 금융(GE Capital)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며 제조업체의 정체성을 희석시켰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장기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야후는 20년간 검색 엔진, 포털, 미디어 기업 사이를 헤매다 본질을 잃었다. Sears는 소매 유통의 거인에서 금융과 부동산으로 관심을 돌리다 파산했다.

앙리 4세의 개종과 이들의 실패 사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세 가지 기준으로 정리된다.

첫째, 규모의 대칭성이다. 앙리가 버린 것(개인의 신앙)과 얻은 것(프랑스의 평화)은 비교 가능한 수준의 무게였다. 버린 것이 더 가치 있었다면 그 결단은 어리석음이다. 기업이 핵심 사업을 버릴 때도 마찬가지다. 후지필름이 필름을 버린 것은 그 대가로 화학 기업으로서의 장기 생존을 얻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기업들은 유행에 쫓겨 멀쩡히 돌아가는 핵심 사업을 헐값에 내던지고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둘째, 후속 책임이다. 앙리의 개종이 단순한 변절이 아니었음을 증명한 것은 낭트 칙령이다. 개종 5년 뒤 그는 자신이 버린 신앙의 권리를 법으로 지켜냈다. 이것이 없었다면 앙리는 그저 왕관을 위해 영혼을 판 자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기업의 피봇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사업으로 옮긴 뒤 그 영역에서 진짜 경쟁력을 구축하는 후속 작업이 따라야 한다. 후지필름이 화학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하고도 헬스케어와 소재 분야에서 실제 경쟁력을 구축하지 못했다면 그 선언은 공허했을 것이다. 선언만 있고 실행이 없는 피봇은 단순한 기회주의다.

셋째, 더 깊은 본질의 발견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앙리는 가톨릭으로 개종했지만 그의 더 깊은 정체성은 "프랑스를 하나로 만드는 왕"이었다. 가톨릭 신앙은 그 본질을 수행하는 새로운 도구였을 뿐이다. 후지필름은 필름을 버렸지만 정밀 화학 기술자로서의 정체성은 유지했다. 닌텐도는 화투를 버렸지만 놀이를 만드는 회사라는 자기 규정은 유지했다. IBM은 PC를 버렸지만 기업의 복잡한 문제를 풀어주는 회사라는 더 깊은 본질은 유지했다.

변절과 개종의 차이가 여기다. 변절은 표면의 정체성을 버리면서 더 깊은 본질도 함께 잃어버리는 것이다. 개종은 표면의 정체성을 버리되 더 깊은 본질을 그 버림을 통해 오히려 회복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자기 자신의 일부를 버리는 역설, 이것이 살아남는 자의 지혜다.

맺음: 모든 조직의 생드니 대성당

어느 조직이든 언젠가 생드니 대성당 앞에 선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이 되어야 한다. 문 밖에 남으면 자기 자신인 채로 굶어 죽는다. 이 선택 앞에서 대부분의 조직은 문을 두드리지도 못한 채 굶주리거나, 문을 열고 들어갔으나 안에서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앙리 4세의 위대함은 그가 문을 열었다는 것이 아니다. 미사를 드리는 와중에도 자신이 왜 이 미사를 드리는지를 잊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미사 이후에 낭트 칙령을 써냈다는 것이다. 후지필름의 위대함은 필름을 버렸다는 것이 아니라 화학자로서의 자신을 재발견했다는 것이다. IBM의 위대함은 PC를 팔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판매 대금으로 서비스 회사의 새로운 법을 세웠다는 것이다.

"파리는 미사를 올릴 가치가 있다." 이 경구의 진짜 의미는 파리의 가치에 있지 않다. 미사를 드릴 줄 아는 왕의 자질에 있다. 자신의 일부를 내려놓는 것이 자신의 전체를 살리는 길임을 아는 지혜, 그리고 그 내려놓음의 대가로 얻은 왕관을 어떻게 쓸 것인지까지 설계할 수 있는 설계자의 역량.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을 때 개종은 변절이 아니라 구원이 된다.

모든 세대의 경영자는 자기 시대의 생드니 대성당을 가지고 있다. 그 대성당 앞에 섰을 때 앙리 4세가 우리 어깨 위에 서 있다. 그는 묻는다. 너의 파리는 무엇인가. 너는 그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미사로 바칠 것인가. 그리고 네가 왕관을 쓴 다음, 너의 낭트 칙령은 무엇이 될 것인가.

이 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경영자만이 자기 시대를 건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