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림에서 어우름으로
레프 톨스토이의 명작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는 경마와 관련된 대단히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소설 전체의 비극적 구조를 하나의 장면으로 압축해 보여주는 대목이다. 주인공 안나 카레니나의 상대인 귀족 장교 알렉세이 브론스키가 자신의 애마 프루프루를 타고 장애물 경마에 출전한 장면이다. 톨스토이는 이 경마 장면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며, 단순한 스포츠 묘사를 넘어 인간의 욕망과 통제력의 한계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였다.
프루프루는 영국에서 들여온 명마 혈통으로, 체격은 작지만 날렵하고 폭발적인 힘을 지닌 암말인데, 그런 만큼 예민한 성질을 가졌다. 브론스키는 이 말을 진심으로 아꼈지만, 그 애정의 이면에는 말을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하려는 지배적 욕구도 깔려 있다. 흥미로운 것은 프루프루라는 이름 자체가 여성용 실크 치마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에서 따온 것이라는 점이다. 그에게 이 말은 우아한 장식품이자 과시의 수단이기도 했다. 프루프루는 헌신적이지만 취약하고 사회적 위험에 노출된 주인공 안나 카리나를 상징한다.
브론스키에게 있어 경마는 귀족이자 장교로서 자신의 용맹과 기술을 증명하는 사회적 과시의 수단이다. 동시에 그의 내면적 열망을 투사하는 전장이다. 그런데 경마 당일, 브론스키의 정서 상태는 이미 많이 망가져 있었다. 경주 전에 안나에게서 임신 소식을 들었고, 어머니와 형이 찾아와 비난하자 분노와 증오를 드러내기도 했었다. 게다가 안나의 남편 카레닌까지 관중석에 앉아 있었으며,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 찬 자신의 위치에 대한 도덕적 혐오감도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경주가 시작되자 프루프루는 채찍 없이도 기수와 하나가 되어 훌륭하게 달렸다. 브론스키의 생각을 읽는 것처럼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고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며, 9개의 장애물 중 가장 어려운 '아이리시 바리케이드'까지 완벽하게 넘었다. 브론스키는 승리를 확신하며 프루프루에 대한 애정과 환희를 느꼈다.
그런데 비극은 바로 그 직후, 평범한 마지막 도랑에서 찾아왔다. 승리에 도취한 브론스키가 너무 일찍 안장을 뒤로 옮기며 고삐를 당긴 것이다. 숙련된 기수라면 도약의 정점에서 말의 머리를 자유롭게 두어 균형을 잡게 해야 했다. 그러나 브론스키의 부주의한 동작은 프루프루의 무게중심을 뒤로 쏠리게 만들었고, 착지가 잘못된 프루프루의 척추는 그대로 꺾였다.
프루프루가 쓰러진 뒤 브론스키가 보인 반응은 더욱 처참했다. 그는 말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고, 자신이 경주에서 졌다는 사실에만 분노하며, 쓰러진 말의 배를 박차로 차고 고삐를 거칠게 잡아당겨 다시 일어나기를 강요했다. "경주를 망쳤다!"라고 외치며 자신의 실패만을 한탄했다. 프루프루는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다가 결국 총에 안락사되었다.
기업으로 옮겨보면
브론스키를 CEO로, 프루프루를 기업으로 바꾸면 절묘한 대응이 드러난다. 프루프루는 잠재력은 크지만 섬세한 배려가 필요한 혁신 기업이고, 경기의 경쟁마였던 글래디에이터는 견고한 대기업과 같다. 글래디에이터는 거대하고 안정적이며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근력이 뛰어났다. 반면 프루프루는 날렵하고 민첩하지만, 기수와의 깊은 교감을 필요로 하는 존재였다. 프루프루가 무너진 것은 말의 암수나 기량의 차이가 아니라 기수의 차이였다. 말에게 필요했던 것은 더 강한 다스림이 아니라 더 깊은 어우름이었던 것이다.
프루프루의 조련사 코드는 경주 전에 말을 자극하지 말라고 충고했지만, 브론스키는 무시했다. 기업에서도 전문가의 조언을 꺼리는 리더가 많다. 변호사, 변리사, 세무사 등 전문가를 찾아 조언 구하기를 기피 혹은 게을리하거나, 현장 전문가 등이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라고 말해도 자신의 직감을 앞세워 무리하게 일을 벌이는 경영자들이 있다. 그것은 게으름이나 오만 때문이며, 브론스키처럼 치명적인 결과에 직면할 수 있다.
그리고 사실 브론스키를 무너뜨린 것은 기술 부족이 아니라 자신의 내적 분열이었다. 여러 가지 심리적 압박이 집중력을 잠식했지만, 본인은 집중하고 있다고 믿었다. 이는 CEO가 핵심 사업에 집중해야 할 시점에 지배구조 분쟁, 경영권 다툼, 개인적 스캔들 등에 동시에 휘둘리는 상황과 겹친다. 겉으로는 침착하지만 내면이 갈라진 리더야말로 조직에 가장 위험한 존재다.
정작 중요한 것은 가장 어려운 장애물을 넘은 직후에, 평범한 도랑에서 추락했다는 점이다. 거대한 위기는 잘 넘긴다. 조직이 긴장하기 때문이다. 위험한 것은 승리 직후의 방심이다. 노키아는 피처폰의 절대 강자였지만 스마트폰 앞에서, 코닥은 필름의 왕좌에 앉아 디지털 카메라 앞에서, 블랙베리는 기업용 모바일을 석권한 뒤 터치스크린 앞에서 무너졌다. 모두 거대한 적이 아니라 자기 내부의 방심이라는 '평범한 도랑'에서 쓰러진 것이다. 기업이 가장 위험한 순간은 위기의 한복판이 아니라, 위기를 막 넘긴 직후다.
브론스키의 실수는 구체적이다. 도약이 완성되기 전에 안장 위치를 옮겨 착지 자세를 취했던 것이다. 경영에서 이에 해당하는 것은 성과의 정점에서 너무 서둘러 다음 단계로 이동하는 것이다. 성급한 조직 재편, 무리한 다각화, 과도한 인수합병. 모두 '너무 일찍 안장을 옮기는' 행위다. 도약의 정점에서 기수가 해야 할 일은 말의 머리를 자유롭게 두어 균형을 잡게 하는 것이었다. 기업이 도약하고 있을 때 리더가 해야 할 일도 같다. 조직에 새로운 방향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균형을 찾고 착지할 여유를 주는 것이다.
다스림인가, 어우름인가
브론스키는 프루프루와 일체감을 느꼈다고 생각했다. 경주 내내 프루프루는 채찍 없이도 기수의 의도를 읽으며 달렸고, 브론스키는 그 교감에 환희를 느꼈다. 그러나 결정적 순간에 그가 한 것은 말의 리듬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고삐를 당겼다. 어우름이라 믿었던 것이 실은 다스림이었던 것이다.
다스리는 리더는 조직을 자기 뜻대로 끌고 간다. 조직의 리듬보다 자신의 계획을 우선시하고, 조직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한다. 어우르는 리더는 조직의 리듬을 읽는다. 진정으로 교감하는 조직은 지시 없이도 리더의 비전을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우리는 한 팀'이라 말하면서 자기 뜻대로 끌고 가는 것, 이것이 가장 위험하고 가장 흔한 리더십의 함정이다.
프루프루가 쓰러진 뒤 브론스키는 말의 고통 대신 자기 패배만을 한탄했다. 이는 말을 생명체가 아닌 도구로 보았음을 말하는 것이다. 경영 실패 후에도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시장이 나빴다" "팀이 따라주지 못했다"며 자기 성찰 없이 다음 경주로 넘어가는 리더나, 이미 상처받은 조직에 무리한 구조조정이라는 또 다른 폭력을 가하는 리더는, 쓰러진 말을 발로 차는 리더와 같다. 그런 리더 밑에서 다시 달리고 싶은 말은 없다. 자신을 도구로 여기는 리더를 위해 열정을 바치는 조직원은 없다. 리더의 본질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의 순간에 드러난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브론스키에게 경마는 선택할 수 있는 '놀이'였지만, 프루프루에게는 삶과 죽음이 걸린 질주였다. 경영자에게 하나의 사업은 여러 포트폴리오 중 하나일 수 있지만, 그 사업에 몸담은 직원들에게는 생계와 경력이 걸린 문제다. 이 비대칭을 인식하지 못하면 그 리더는 브론스키가 된다.
오늘 수많은 리더가 프루프루의 등에 올라 있다. 그대의 프루프루가 묻는다. 당신의 마음은 평정한가? 도약이 끝나기 전에 안장을 이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당신은 다스리고 있는가 어우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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