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발명의 신 테우트 _ 플라톤의 『파이드로스』
_ 기억, 기술, 그리고 로고스의 정치학에 관한 심층 연구 보고서
서론: 대화편 『파이드로스』의 구조적 특이성과 신화의 위치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인 『파이드로스(Phaedrus)』는 서구 철학사에서 가장 독특하고 복합적인 텍스트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 대화편은 표면적으로는 '에로스(Eros, 사랑)'와 '레토리케(Rhetoric, 수사학)'라는 두 가지 상이한 주제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심층적으로는 인간 영혼의 본질, 진리에 이르는 변증법적 방법론, 그리고 구술(Orality)과 문자(Literacy)라는 매체 간의 긴장 관계를 치밀하게 엮어내고 있다.1 특히 대화편의 말미(274c-275b)에 등장하는 이집트의 신 테우트(Theuth)와 타무스(Thamus) 왕의 신화는 단순한 예화나 우화적 장식을 넘어, 서구 형이상학의 근간을 이루는 '로고스 중심주의(Logocentrism)'의 기원이자, 동시에 그 해체의 단초를 제공하는 결정적인 텍스트로 기능한다.
이 테우트 신화를 중심으로 플라톤이 제기한 문자 비판의 논리를 철학적, 문헌학적, 매체론적 관점에서 해부하고, 나아가 이를 현대 철학의 거장인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와 베르나르 스티글레르(Bernard Stiegler)의 시선을 통해 재해석함으로써, 고대 그리스의 문자 논쟁이 오늘날 디지털 인공지능 시대의 기억과 지혜의 문제와 어떻게 직결되는지를 규명하도록 한다.
1.1 대화의 배경: 아테네 성 밖의 탈주와 파르마콘의 출현
『파이드로스』는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성벽을 벗어나 일리소스(Ilissus) 강가로 나아가는 이례적인 장면으로 시작된다. 평소 "나무와 들판은 나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며 도시 안의 아고라에 머물기를 고집하던 소크라테스를 성 밖으로 유인해 낸 것은 파이드로스가 옷자락 밑에 숨겨온 리시아스(Lysias)의 연설문 '두루마리(biblion)'였다.2 소크라테스는 이 두루마리를 보며 "배고픈 가축 앞에 흔드는 잎사귀"와 같다고 말하며, 자신을 성 밖으로 이끌어낸 '약(pharmakon)'이라고 칭한다.5
이 도입부는 대화편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메타포를 제시한다. 즉, 기록된 텍스트(문자)는 사람을 홀리는 마법의 약이자, 일상의 공간(도시)을 벗어나게 만드는 유혹의 도구로 등장한다. 여기서 '파르마콘'이라는 단어는 이미 약(cure)이자 독(poison), 그리고 마법의 주문(spell)이라는 복합적인 의미망을 형성하며 독자에게 제시된다.7 파이드로스가 숨겨온 두루마리는 소크라테스와의 대화를 촉발하는 매개체이지만, 동시에 소크라테스가 이후 신화를 통해 비판하게 될 '죽은 지식'의 전형이기도 하다.
1.2 에로스의 광기에서 로고스의 기술로
대화는 리시아스의 연설(사랑하지 않는 자에게 몸을 맡기는 것이 낫다는 역설적 주장)에 대한 낭독으로 시작하여, 소크라테스의 첫 번째 연설(에로스에 대한 비판),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두 번째 연설(에로스에 대한 찬미와 팔리노디아)로 이어진다.2 이 과정에서 소크라테스는 영혼을 마차와 두 마리 말(백마와 흑마)의 비유로 설명하며, 참된 에로스는 이데아의 세계를 상기(anamnesis)하게 만드는 신성한 광기(theia mania)임을 역설한다.
논의가 에로스에서 수사학으로 전환되는 지점에서, 소크라테스는 '글쓰기(graphe)'의 문제에 천착한다. 참된 수사학은 진리를 아는 자가 듣는이의 영혼에 맞추어 살아있는 말을 심는 변증술(dialectic)이어야 한다. 반면, 리시아스의 연설문처럼 고정된 문자는 진리를 전달하기에 부적합한 매체로 지목된다. 이러한 논의의 정점에서 소크라테스는 논리적 논증 대신 이집트의 신화를 끌어들인다. 이는 문자의 기원과 본질에 대한 논의가 단순한 기술적 효용성의 차원을 넘어, 신적 권위와 인간 인식의 한계가 얽힌 형이상학적 문제임을 암시한다.1
2. 텍스트의 정밀 독해: 테우트와 타무스 신화의 현상학
2.1 나우크라티스의 지리적, 상징적 위상
소크라테스는 이야기의 배경을 이집트의 나우크라티스로 특정한다. 나우크라티스는 기원전 7세기경 이집트 파라오가 그리스 상인들에게 거주와 무역을 허용한 나일강 델타의 항구 도시였다.9 이곳은 그리스와 이집트의 문명이 교차하고, 물자뿐만 아니라 지식과 신화가 번역되고 교환되는 접경지대였다.
플라톤이 이곳을 배경으로 삼은 것은 문자가 본질적으로 '교환'과 '번역', 그리고 '상업적 유통'의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이집트는 그리스인들에게 '오래된 지혜'의 원천이자 불변하는 전통의 나라로 인식되었기에, 문자의 권위를 논하기에 최적의 무대였다. 그러나 동시에 소크라테스는 "나는 들었다(I heard)"라는 전승의 화법을 사용함으로써, 이 이야기의 출처가 자신의 창작이 아닌 고대의 권위에 있음을 가장하면서도, 그 진위 여부보다는 그 안에 담긴 진실성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3
2.2 테우트(Theuth): 기술적 합리성의 대변자
신화의 주인공인 테우트(Theuth)는 이집트 신화의 토트(Thoth)에 해당한다. 그는 따오기(ibis)를 성조로 거느리며, 수(number), 셈(calculation), 기하학(geometry), 천문학(astronomy)을 발명한 신이다.9 이 발명품들의 공통점은 세계를 분석하고, 측정하고, 정량화하는 이성적 도구들이라는 점이다. 테우트는 또한 장기(draughts)와 주사위(dice) 놀이도 발명했는데, 이는 규칙에 따른 조합과 확률적 계산을 필요로 하는 유희들이다.
테우트의 마지막이자 최고의 발명품은 '문자(grammata)'였다. 그는 문자를 들고 당시 이집트 전체의 왕이었던 타무스(Thamus)에게 나아간다. 여기서 테우트의 태도는 전형적인 '기술자(technician)' 혹은 '엔지니어'의 태도를 보인다. 그는 자신이 만든 기술이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 즉 효율성의 증대에만 몰두해 있다. 그는 문자가 가져올 부작용이나 사회적 파장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은 채, 이를 "이집트인들을 더 지혜롭게 만들고 기억력을 좋게 해 줄 묘약"이라고 확신한다.9
2.3 파르마콘(Pharmakon)의 이중성과 오해
테우트가 타무스 앞에서 문자를 소개하며 사용한 핵심 단어는 **'파르마콘(pharmakon)'**이다.
"왕이여, 이 배움(mathema)은 이집트 사람들을 더 지혜롭게 만들고 기억력을 높여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억(mneme)과 지혜(sophia)의 약(pharmakon)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274e)
여기서 테우트는 파르마콘을 '치료제(remedy)' 혹은 '비약(elixir)'의 의미로 사용했다. 그는 문자가 인간의 한계인 망각을 치유하고, 지혜를 축적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 단어의 선택은 치명적인 역설을 내포하고 있다. 파르마콘은 본질적으로 약이면서 동시에 독(poison)이고, 치료제이면서 동시에 마법의 주문(spell)이기 때문이다.6 테우트는 문자의 '보존적 기능'만을 보았지만, 그 보존의 방식이 인간의 내면적 능력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독성'을 간과했다.
2.4 타무스(Thamus)의 판결: 권위와 비판
타무스 왕은 이집트의 테베(Thebes)에 거주하며, 그리스인들에게는 제우스에 해당하는 암몬(Ammon) 신과 동일시된다.9 그는 태양신 라(Ra)의 현신으로서, 말(speech)의 절대적 권위와 현전(presence)을 상징한다. 타무스는 테우트의 발명품들을 하나하나 검토하며 칭찬하거나 비난한다. 이는 기술 그 자체가 가치 중립적이지 않으며, 상위의 정치적, 철학적 판단에 의해 통제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플라톤의 기술관을 반영한다.13
문자에 대한 타무스의 판결은 냉혹하다. 그는 테우트가 발명자로서의 애착(fatherly love) 때문에 문자의 효능을 정반대로 평가했다고 지적한다.
"가장 기술이 뛰어난 테우트여, 기술을 낳는 사람과 그 기술이 사용자에게 해를 끼칠지 이익을 줄지 판정하는 사람은 따로 있소." (274e)
타무스는 문자가 기억의 치료제가 아니라, '망각(lethe)의 제조제'라고 선언한다.
"이것은 배운 사람들의 영혼에 망각을 낳을 것입니다. 그들은 글쓰기에 신뢰를 두어, 외부로부터 낯선 자국(typoi)들에 의해 상기(remind)될 뿐, 내부로부터 자기 자신에 의해(autous hauton) 상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75a) 9
이 판결은 두 가지 중요한 철학적 구분을 도입한다.
- 기억(Mneme) vs. 상기(Hypomnesis): 진정한 기억은 내면의 능동적 활동인 반면, 문자는 외부의 수동적 자극에 불과하다.
지혜(Sophia) vs. 지혜의 겉모습(Doxosophia): 문자를 통해 지식을 접한 자들은 선생 없이 정보를 습득하므로, 실제로는 무지하면서도 많이 아는 체하게 된다. 그들은 "지혜로운 자가 아니라 지혜로운 체하는 자(appear to be wise instead of really being so)"가 되어 사회적 짐이 된다.11
3. 플라톤적 형이상학의 심층 구조: 므네메와 아남네시스
이 신화가 단순한 기술 비판을 넘어 형이상학적 함의를 갖는 이유는 플라톤의 인식론, 특히 **상기설(Anamnesis)**과 긴밀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3.1 영혼의 불멸성과 진리의 내재성
『메논(Meno)』와 『파이돈(Phaedo)』에서 정립된 상기설에 따르면, 인간의 영혼은 육체에 들어오기 전 이데아의 세계에서 참된 실재(Truth)를 목격했다. 학습이란 외부에서 새로운 정보를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망각되었던 이 영원한 진리를 영혼 깊은 곳에서 다시 길어 올리는 과정이다.15
따라서 진정한 앎(Episteme)은 영혼이 스스로(auto) 진리에 도달하는 내재적 운동이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스승의 역할은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산파(midwife)처럼 영혼이 스스로 진리를 낳도록 돕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문답법(Dialectic)의 본질이다.
3.2 문자의 존재론적 결함: 죽은 로고스
타무스의 관점에서 문자는 이러한 상기의 과정을 근본적으로 훼손한다. 문자는 지식을 영혼 내부에 새기는 것이 아니라, 영혼 외부의 물질(종이, 파피루스)에 보관한다. 사용자는 정보가 외부에 안전하게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자신의 내면적 기억 근육을 사용하지 않게 된다.17
더 나아가 소크라테스는 문자를 그림(zographia)에 비유하며 그 존재론적 한계를 지적한다.
"그림의 자식들은 살아 있는 것처럼 서 있지만, 자네가 무언가를 물으면 근엄하게 침묵한다네. 문자도 그와 같지." (275d) 19
살아있는 대화(Live Speech)는 질문에 즉각 반응하고, 상대방의 이해 수준에 맞춰 설명을 수정하며, 오해를 방어할 수 있다. 반면 기록된 문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치명적 결함을 가진다:
- 고정성(Rigidity): 문자는 천 번을 물어봐도 항상 같은 말만 반복한다. 20
- 무차별성(Indiscriminateness): 문자는 그것을 이해할 자격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가리지 않고, "이리저리 굴러다닌다(rolls around everywhere)." 44
- 고아성(Orphanhood): 문자가 부당하게 비판받거나 오용될 때, 그것을 낳은 아버지(저자)는 그 자리에 없다. 문자는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이 없는 무기력한 존재다. 6
3.3 아도니스의 정원과 농부의 비유
소크라테스는 글쓰기를 '아도니스의 정원(Garden of Adonis)'에 비유한다. 아도니스 축제 때 여인들은 화분이나 바구니에 씨앗을 심어 8일 만에 싹을 틔우게 하지만, 뿌리가 얕은 이 식물들은 축제가 끝나면 곧 시들어버린다. 이는 일시적인 유희(paidia)를 상징한다.1
반면, 지혜로운 농부(철학자)는 씨앗(진리)을 적절한 토양(제자의 영혼)에 심고, 8개월 동안 정성껏 가꾼다. 이렇게 심어진 '살아있는 말(zonta logon)'은 제자의 영혼 속에서 자라나 결실을 맺고, 다시 다른 영혼들에게로 퍼져나가는 불멸의 생명력을 얻는다.
플라톤에게 글쓰기는 전면적으로 금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진지한 목적(spoude)이 아닌 '유희'나 노년의 망각을 대비한 '메모' 정도로 그 역할이 축소되어야 한다.22 진정한 철학적 작업은 오직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변증술적 대화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4. 해체주의적 전복: 자크 데리다의 『플라톤의 약국』 분석
현대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1972년 발표한 에세이 『플라톤의 약국(Plato's Pharmacy)』에서 이 신화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해체한다. 그는 플라톤이 구축하려 했던 '말 중심주의(Logocentrism)'의 위계가 텍스트 내부의 미끄러짐에 의해 어떻게 스스로 붕괴하는지를 치밀하게 입증한다.23
4.1 파르마콘(Pharmakon)의 번역 불가능성과 결정 불가능성
데리다 독해의 출발점은 '파르마콘'이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치료제(remedy)', '독(poison)', '마법의 약(philter)', '화장품(paint)', '희생양(scapegoat)' 등 모순적인 의미들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6
대부분의 번역자들은 문맥에 따라 이를 '약'이나 '독' 중 하나로 고정시켜 번역함으로써 텍스트의 다의성을 제거해왔다. 그러나 데리다는 플라톤이 이 단어를 선택한 것 자체가, 글쓰기가 가진 결정 불가능한(undecidable) 본질을 드러낸다고 본다.
- 문자는 기억을 죽이는 독이지만, 동시에 기억을 보존하는 약이다. 문자가 없으면 역설적으로 소크라테스의 가르침도 보존될 수 없었다.
- 소크라테스 자신도 대화편 내에서 파르마콘으로 묘사된다. 그는 청년들을 홀리는 마법사(pharmakeus)이자, 영혼을 치료하는 의사이며, 동시에 도시를 정화하기 위해 죽어야 했던 독배의 희생자이다.
따라서 문자를 배제하고 순수한 말의 세계를 지키려는 시도는, 파르마콘의 본질적 양가성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약과 독은 분리될 수 없으며, 문자는 진리의 내부에 이미 침투해 있다.5
4.2 로고스의 아버지와 파르리사이드(Parricide)
데리다는 플라톤의 텍스트가 철저히 가부장적 도식(paternal metaphor)에 의존하고 있음을 폭로한다.12
- 말(Logos) = 아들(Son) = 생명(Life) = 현전(Presence) = 굿(Good)
- 글(Writing) = 고아/사생아 = 죽음(Death) = 부재(Absence) = 악(Evil)
플라톤에게 말하는 주체는 자신의 말(Logos)의 아버지이다. 그는 말의 탄생 순간에 현전하며, 말이 공격받을 때 이를 방어하고 책임진다. 반면 글은 아버지 없이 태어난 사생아거나, 아버지를 살해하고(patricide) 그 자리를 찬탈하려는 반역자이다.6
그러나 데리다는 이러한 '아버지'의 지위가 사실은 로고스(언어 체계)에 의해 사후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지적한다. 아버지는 아들(언어) 없이는 아버지로 불릴 수 없다. 즉, 기원은 이미 보충(supplement)을 필요로 한다. 글쓰기가 말의 불완전한 모방인 것이 아니라, 말 자체가 이미 기호의 체계, 즉 '아르케-글쓰기(arche-writing)'의 구조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언어는 반복 가능성(iterability)과 차연(différance)을 전제로 하며, 이는 글쓰기의 특성이다.28
4.3 파르마코스(Pharmakos): 희생양 의식과 글쓰기의 추방
데리다는 텍스트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어원적으로 연결된 '파르마코스(Pharmakos)' 개념을 소환한다.26 고대 아테네의 타르겔리아(Thargelia) 축제에서는 도시의 재난이나 전염병을 막기 위해 인간 희생양(파르마코스)을 도시 밖으로 추방하거나 처형하는 의식이 있었다.
- 구조적 유사성: 파르마코스는 도시 내부의 '악'이나 '오염'을 한 몸에 짊어지고 밖으로 나감으로써 내부를 정화한다. 그러나 파르마코스는 정화를 위해 역설적으로 내부에 반드시 존재해야 했던 요소이다.
- 철학적 적용: 플라톤은 철학의 순수성(진리, 이성, 말)을 보존하기 위해 글쓰기(문자, 신화, 시)를 철학의 성벽 밖으로 추방하려 한다. 문자는 철학적 로고스를 오염시키는 파르마코스이다.
데리다의 반전: 그러나 희생양이 도시의 안녕을 위한 필수 조건이었듯, 글쓰기는 서구 형이상학의 성립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플라톤은 글쓰기를 혐오하면서도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수립했다. 이 '배제된 것의 귀환'이 해체주의 독해의 핵심이다.
5. 기술철학적 재구성: 베르나르 스티글레르와 제3의 기억
베르나르 스티글레르(Bernard Stiegler)는 데리다의 해체주의를 계승하면서도, 이를 기술(Technics)과 인간 진화의 문제로 구체화하여 독창적인 '기술철학'을 정립한다. 그는 테우트의 신화를 인류 기억의 진화 과정인 **'그라마티제이션(Grammatization)'**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17
5.1 제3의 기억(Tertiary Retention)과 후성적 진화
후설(Husserl)의 시간 의식 분석에서 기억은 '1차 파지(primary retention, 현재 지각되는 순간의 파지)'와 '2차 파지(secondary retention, 지난 일에 대한 심리적 회상)'로 구분된다. 스티글레르는 여기에 **'3차 파지(tertiary retention)'**라는 혁명적 개념을 추가한다.33
- 3차 파지: 사진, 녹음, 문자, 도구, 디지털 데이터 등 기억이 생물학적 신체 외부에 물질적으로 기록된 형태.
- 스티글레르의 주장: 인간의 의식과 2차 기억은 순수한 내면의 작용이 아니라, 항상 외부의 기술적 대상(3차 파지)에 의해 구성되고 선별된다. 즉, 인간은 기술적 보조물 없이는 인간일 수 없다. 이를 그는 '인간의 근원적 기술성(originary technicity)' 또는 **'후성적 진화(epiphylogenesis)'**라고 부른다.
따라서 타무스 왕이 주장한 "내면의 순수한 기억(Mneme)"은 환상이다. 인간의 기억은 언제나 이미 기술적 흔적(Hypomnesis)들에 의존해 왔다. 테우트의 발명품(문자)은 기억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인 것이다.17
5.2 그라마티제이션(Grammatization)의 역사
스티글레르는 문자의 발명을 **'그라마티제이션'**이라는 거대한 흐름의 한 단계로 파악한다. 그라마티제이션은 연속적인 흐름(flow)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행위나 말을 이산적인(discrete) 요소로 분절하여 기록하고 재생산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적 과정이다.17
- 알파벳: 말(speech)의 그라마티제이션. 구술적 흐름을 자모음으로 분절하여 기록.
- 산업 기계: 몸동작(gesture)의 그라마티제이션. 장인의 기술을 기계적 공정으로 분절하여 기록.
- 디지털/AI: 인지(cognition)와 신경 작용의 그라마티제이션. 사고 과정을 알고리즘으로 분절하여 자동화.
5.3 정신의 프롤레타리아화(Proletarianization of Spirit)
스티글레르는 플라톤의 우려가 현대의 **'초산업 사회(Hyper-industrial society)'**에서 비로소 현실화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마르크스가 육체노동자의 기술(savoir-faire)이 기계로 외재화되면서 노동자가 프롤레타리아화되었다고 분석했듯이, 스티글레르는 오늘날 기억과 지식이 디지털 기기로 전면 외재화되면서 **'정신의 프롤레타리아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37
현대인은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않으며, 길 찾기를 내비게이션에 의존하고, 지식 검색을 구글과 AI에게 맡긴다. 이는 단순한 편리함을 넘어, '삶을 살아가는 지혜(savoir-vivre)'의 상실을 의미한다. 타무스가 경고한 "지혜로운 체하는 자(doxosophos)"는 오늘날 검색 엔진의 결과를 자신의 지식으로 착각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정확히 겹쳐진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그것을 비판적으로 종합하고 내면화할 능력은 상실된 상태, 이것이 바로 디지털 파르마콘의 독성이다.40
5.4 주의력(Attention)의 생태학과 치료법
스티글레르는 테우트의 선물이 가진 독성을 치유하기 위해 새로운 **'주의력의 경제(Economy of Attention)'**가 아닌 **'주의력의 생태학(Ecology of Attention)'**을 제안한다.41
디지털 미디어(틱톡, 쇼츠 등)는 인간의 깊은 주의력(Deep Attention)을 파괴하고, 반사적인 초주의력(Hyper-attention)만을 자극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거부하는 러다이트 운동이 아니라, 기술을 '치료제'로 전유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Paideia)과 훈련이 필요하다.
그는 이를 위해 디지털 기기를 단순한 소비 도구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지적 생산과 협업의 도구로 전환하는 '아마추어(Amateur)의 정신' 회복을 강조한다. 아마추어는 기술을 사랑하고(amare) 돌보는 자로서, 기술의 독성을 약성으로 바꾸는 주체이다.43
6. 결론: 디지털 파르마콘 시대의 지혜와 돌봄
6.1 비교 분석 요약
다음 표는 본 연구에서 다룬 세 가지 관점을 비교 정리한 것이다.
| 구분 | 플라톤 (타무스) | 데리다 (해체주의) | 스티글레르 (기술철학) |
| 문자(Writing) | 기억의 적, 죽은 지식, 유희, 사생아 | 말의 기원이자 조건(차연), 억압된 흔적 | 제3의 기억(3차 파지), 후성적 진화의 도구 |
| 기억(Memory) | 내면적 진리 상기(Anamnesis) | 순수한 현전 기억의 불가능성 | 기술적으로 구성된 기억, 외재화가 본질 |
| 파르마콘 | 독(망각) vs 약(기억)의 양자택일 | 결정 불가능한 양가성, 약이면서 독 | 독성을 약성으로 전환해야 할 과제 |
| 현대적 함의 | 피상적 지식(가짜뉴스)에 대한 경고 | 텍스트의 무한한 해석 가능성 (AI의 환각) | 정신의 프롤레타리아화 vs 새로운 문해력 |
| 이상적 주체 | 변증술가 (Dialectician) | 해체론적 독자 (Deconstructionist) | 기술을 돌보는 아마추어 (Amateur) |
6.2 종합적 통찰: 타무스의 경고와 테우트의 선물 사이에서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 등장하는 테우트와 타무스 신화는 2,4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날 생성형 인공지능(Gen-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시급하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 매체의 불가피성: 우리는 매체(Media)를 떠나서 사유할 수 없다. 플라톤조차 자신의 문자 비판을 문자로 남겨야 했다. 순수한 영혼의 대화라는 이상은 언제나 기술적 매체를 매개로만 실현 가능하다.
- 자동화된 지혜의 위험: 타무스의 "지혜로운 체하는 자"에 대한 경고는 현대의 AI 의존성을 정조준한다. 챗GPT가 내놓는 유창한 답변은 우리에게 지식을 얻었다는 착각을 주지만, 그것이 우리의 내면적 비판 능력과 통찰력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지 '정보의 겉모습'일 뿐이다.
- 돌봄(Care)으로서의 기술 사용: 결론적으로, 테우트의 발명품은 타무스의 우려대로 독이 될 수도 있고, 테우트의 기대대로 약이 될 수도 있다. 그 결정권은 기술 자체에 내재된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 집단의 **'돌봄(Care)'**과 **'비판적 실천'**에 달려 있다.
우리는 테우트가 건네준 강력한 파르마콘(디지털 기술)을 손에 쥐고 있다. 이것을 단순한 망각의 독배로 들이킬 것인지, 아니면 집단 지성을 확장하고 새로운 사유를 가능케 하는 치료제로 조제할 것인지는, 우리가 타무스의 비판적 안목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것이 21세기에 『파이드로스』를 다시, 그리고 깊이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참고 자료
- Theuth, Thamus, and the Critique of Writing (Chapter 8) - Myth and Philosophy in Plato's Phaedrus - Cambridge University Press, 11월 27, 2025에 액세스, https://www.cambridge.org/core/books/myth-and-philosophy-in-platos-phaedrus/theuth-thamus-and-the-critique-of-writing/C644C2E0821AF38066420F53322D2DDD
- Phaedrus (dialogue) - Wikipedia, 11월 27, 2025에 액세스, https://en.wikipedia.org/wiki/Phaedrus_(dialogue)
- Phaedrus, by Plato - Project Gutenberg, 11월 27, 2025에 액세스, https://www.gutenberg.org/files/1636/1636-h/1636-h.htm
- Plato, Phaedrus - ToposText, 11월 27, 2025에 액세스, https://topostext.org/work/94
- The Pharmakon - Deconstruction in music, 11월 27, 2025에 액세스, https://www.deconstruction-in-music.com/deconstruction/the-pharmakon/221
- Plato's Pharmacy - Jason Tham, Ph.D., 11월 27, 2025에 액세스, https://jasontham.com/wp-content/uploads/2015/05/derrida-platospharmacy-pt1.pdf
- Pharmakon - Wikipedia, 11월 27, 2025에 액세스, https://en.wikipedia.org/wiki/Pharmak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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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amnesis and Hypomnesis - Ars Industrialis, 11월 27, 2025에 액세스, https://arsindustrialis.org/anamnesis-and-hypomnesis
- Questions Concerning Attention and Stiegler's Therapeutics | ARROW@TU Dublin, 11월 27, 2025에 액세스, https://arrow.tudublin.ie/context/gradcamart/article/1008/viewcontent/Preprint_Questions_concerning_attention_and_Stiegler_s_therapeutics.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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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Exploitation of the Technical – 3:AM Magazine, 11월 27, 2025에 액세스, https://www.3ammagazine.com/3am/the-exploitation-of-the-technical/
- Plato's Philosophical Answer to the Three Deficiencies of the Written Word, 11월 27, 2025에 액세스, https://www.ancientgreekphilosopher.com/2015/09/14/platos-philosophical-answer-to-the-three-deficiencies-of-the-written-word/
- The Limits of Writing Theme Analysis - Phaedrus - LitCharts, 11월 27, 2025에 액세스, https://www.litcharts.com/lit/phaedrus/themes/the-limits-of-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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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프롤레타리아화(Proletarianization of Spirit)>
베르나르 스티글레르(Bernard Stiegler)가 제시한 '정신의 프롤레타리아화(Proletarianization of Spirit)'는 현대 기술 사회, 특히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이 인간의 의식과 인지 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핵심 개념이다. 이는 마르크스의 초기 산업 자본주의 분석을 21세기 인지 자본주의(Cognitive Capitalism) 시대에 맞게 확장한 것이다.
1. 개념의 핵심: 지식(Savoir)의 상실
스티글레르는 '프롤레타리아화'를 단순히 가난해지는 것(pauperization)이 아니라, '지식(Savoir)을 기계나 시스템에 빼앗겨 더 이상 주체적으로 행위할 수 없는 상태'로 정의한다.
그는 이 과정을 역사적 기술 발달 단계에 따라 세 가지 지식의 상실로 설명한다.
1-1. **실행할 지식(Savoir-faire)의 상실 (19세기):**
마르크스가 분석했듯, 초기 산업화 시대에 장인들은 자신의 기술을 기계에 넘겨주었다. 기계가 작업을 수행하고 노동자는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하면서, 노동자는 더 이상 '어떻게 만들지'를 알지 못하게 되었다.
1-2. **살아갈 지식(Savoir-vivre)의 상실 (20세기):**
라디오, 텔레비전 등 매스미디어와 마케팅의 발달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지혜를 상실했다. 소비 패턴, 생활 양식, 사회적 관계 맺기 등이 미디어와 광고에 의해 표준화되고, 대중은 수동적인 소비자로 전락했다.
1-3. **생각할 지식(Savoir-penser)의 상실 (21세기):**
이것이 바로 **'정신의 프롤레타리아화'**입니다. 디지털 기술, 알고리즘,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해 인간은 기억, 판단, 결정, 이론화 같은 고등 정신 능력을 외부 시스템(스마트폰, 검색 엔진, AI)에 위탁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인간은 스스로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결단을 내리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2. 작동 원리: 그라마티제이션과 단락(Short-circuit)
스티글레르는 이 현상의 원인을 '그라마티제이션(Grammatization)'으로 설명한다. 이는 연속적인 인간의 경험이나 흐름을 이산적인 요소(데이터, 문자, 수치)로 분절하여 기록하고 재생산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적 과정이다.
오늘날 디지털 네트워크는 인간의 신경망과 인지 과정을 데이터로 변환하여 기계화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내면적 사유 과정(아남네시스)이 생략되고,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답을 즉각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스티글레르는 이를 "개인과 집단 간의 지식 형성과정(Transindividuation)이 **단락(short-circuit)**되었다"고 표현한다.
3. 결과: 시스템적 어리석음(Systemic Stupidity)
정신의 프롤레타리아화가 초래하는 가장 심각한 결과는 '시스템적 어리석음'이다.
- 탈숙련화 : 의사, 변호사, 금융가 등 고도의 지적 노동자조차도 전문가 시스템이나 알고리즘의 결정에 의존하게 되면서, 자신의 직무에 대한 근원적인 책임과 통찰력을 상실한다.
- 주의력 파괴 : 디지털 기기는 끊임없이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켜 깊은 사고(Deep Attention)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반사적인 초주의력(Hyper-attention)만을 남긴다.
- 존재의 상실 :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지 못하는 인간은 자신의 삶을 주도할 수 없으며, 이는 심리적, 사회적 위기로 이어진다.
요약
결국 '정신의 프롤레타리아화'는 플라톤이 『파이드로스』에서 걱정했던 "외부의 기록에 의존하여 내면의 기억과 지혜를 잃어버리는 상태"가 전면화된 현대적 위기다. 스티글레르는 우리가 스마트 기기의 '사용자(User)'나 '소비자'에 머물지 말고, 기술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돌보는 '아마추어(Amateur)'로서의 능력을 회복해야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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