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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존재자결주의 _ 외물(外物)에 휘둘리지 말라 _ 장자(莊子) 산목(山木)

by 변리사 허성원 2025. 1. 7.

외물(外物)에 휘둘리지 말라 

물물이불물어물(物物而不物於物) _ 장자(莊子) 산목(山木) 
외물(外物)을 외물로 다루되 외물(外物)의 지배를 받지 말라.

장자가 산 속을 걷다가 가지와 잎이 무성한 거목을 보았는데,
벌목꾼은 그 곁에 머무르면서도 그 나무를 베려 하지 않았다.
장자가 그 까닭을 물으니 쓸모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장자가 말했다.
“이 나무는 쓸모가 없기에 천수(天壽)를 다하는구나!”

장자가 산을 나와 친구 집에 들렀다.
친구가 기뻐하며 일하는 아이에게 거위를 잡아 삶아오라고 했다.
아이가 물었다. “잘 우는 놈과 잘 울지 못하는 놈이 있는데, 어떤 놈을 잡을까요?”
주인이 말했다.
“울지 못하는 놈을 잡아라!”

다음 날 제자가 장자에게 물었다.
“어제 산 속의 나무는 쓸모가 없어서 천수를 누릴 수 있었는데,
여기 주인의 거위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선생께서는 어떻게 처신하시렵니까?”

장자가 웃으며 답했다.
“그렇다면 쓸모있음과 쓸모없음의 사이에 있어 볼까?
'쓸모있음과 쓸모없음의 사이'는 비슷한 듯 해도 어느쪽도 아닌 것(似而非)이기에 허물을 피할 수 없다네.
하지만 도( 道)와 덕(德)에 올라타 부유한다면 그렇게 되지는 않지.
칭송의 소리도 헐뜯는 소리도
듣지 않고,
어떤 때에는 용이 되고 어떤 때는 뱀이 되어,
그 때의 상황과 함께 더불어 변하면서,
반드시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것이 없어야 하네
.
한번은 올라가고 한번은 내려가고 하면서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어 자연의 순리에 맞춰 부유하는 것이지.
외물(外物)을 외물로 다루되
외물(外物)의 지배를 받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네.

그러면 어찌 허물이
될 일이 있겠는가.
이게 바로 신농씨와 황제의 처세 법칙이라네.

그런데 만물의 실상과 인간사의 흐름은 그렇지가 못하다네.

모이면 흩어지고, 이루면 무너뜨리고, 곧으면 꺾이고, 귀하게 되면 헐뜯고,
일을 이루면 시기하고
, 어진 이에겐 모함하고, 어리석은 이에겐 속이려들지.

이러니 어찌 뜻대로만 살 수 있겠는가.
슬픈 일이다. 제자들은 알아두도록 하라.
오직 도(道)와 덕(德)만이 머물 만한 곳임을.”

_ 장자(莊子) 산목(山木)

莊子行於山中,見大木,枝葉盛茂。伐木者止其旁而不取也。
問其故,曰:「无所可用。」莊子曰:「此木以不材得終其天年。」
夫子出於山,舍於故人之家。故人喜,命豎子殺雁而烹之。
豎子請曰:「其一能鳴,其一不能鳴,請奚殺?」主人曰:「殺不能鳴者。」
明日,弟子問於莊子曰:「昨日山中之木,以不材得終其天年;今主人之雁,以不材死;先生將何處?」
莊子笑曰:「周將處乎材與不材之間。材與不材之間,似之而非也,故未免乎累。若夫乘道德而浮遊則不然。
无譽无訾,一龍一蛇,與時俱化,而无肯專為;一上一下,以和為量,浮遊乎萬物之祖;
物物而不物於物,則胡可得而累邪!此神農黃帝之法則也。若夫萬物之情,人倫之傳,則不然。
合則離,成則毀;廉則挫,尊則議,有為則虧,賢則謀,不肖則欺。
胡可得而必乎哉!悲夫,弟子志之,其唯道德之鄉乎!
_ 장자(莊子) 산목(山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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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물이불물어물(物物而不物於物)'의 해석

이 문장은 재미있게도 여덟 글자 중 절반인 네 자가 '物'이다.
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앞에서 번역한 대로
'외물을 외물로서 다루되 외물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취지는 대체로 일치한다.

하지만 그 취지가 딱 와 닿지 않고 이해하기가 적잖이 어렵다.

"萬物을 萬物로 존재하게 하면서도 스스로는 에 의해 로 규정받지 않으니" _ 동양고전종합DB   
"사물을 사물로서 부리되 외물에 의해  사물로서 부림을 받지 않을 것이니" _ 조관희 역 <장자>
" 물을 물로 하고 물에 물이 되지만 않는다면" _ 고전 번역자 이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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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이 이야기를 가지고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나무나 거위는 그 쓸모의 유무 때문에 생존이 엇갈리는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의 생존 여부는 순전히 인간들의 필요에 달려 있다.
인간은 자신의 필요나 판단에 따라, 어떤 때는 쓸모가 없어서 살려두고, 어떤 때는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죽인다.

그래서 이 에피소드는 마치 '쓸모 없음의 쓸모' 즉 무용지용(無用之用)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어떤 존재에게 있어 그 생존의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결정권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타자나 외물(外物)에 종속되어 있다는 말이다.

나무와 거위의 생존이 인간이 필요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나무와 거위는 그저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물건'(物物)에 불과한 한편,
나무 등은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주도적인 힘, 즉 인간이라는 '외물에 의해 지배를 당하지 않을 힘'(不物於物)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에피소드에서 장자는 존재의 자결주의(自決主義)에 대해 말하고 있다. 
존재자결주의는 다른 존재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사상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나는 존재 자결주의를 올바로 지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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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존재자결주의는 어떻게 지키는가?

'외물의 지배를 받지 않는 힘'(不物於物) 즉 존재자결주의를 구현하는 방법은 비교적 쉽다.

장자는 쓸모있음과 쓸모없음의 사이에서 줄타기해서는 
그저 사이비
(似而非)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도( 道)와 덕(德)에 올라타 부유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도( 道)와 덕(德)에 올라타서 부유하는 방법은..
외물을 외물이 있는 그대로 두고 그의 상태에 응하여 따르고 변하는 것이다.

남의 칭찬이나 비난에 귀 기울이지 말고,
시절의 변화에 응하여 변신하여, 
때론 하늘을 나는
용이 되고 때론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뱀이 되고,
반드시 무엇이 아니면 안 된다는 집착도 버리고,

삶의 부침을 받아들여
조화롭게 치우침 없이 자연의 순리에 맞춰 살면 된다는 말이다.

결국 존재자결주의는 홀로 무언가가 될 것을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처해진 상황에 따라 적응적으로 변할 수 있는 융통성에서 나오는 것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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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물이불물어물(物物而不物於物)'과 같은 가르침을 주는 말들..

"군자는 사물을 부리되 사물에 부림을 당하지 않는다."
"君子使物 不為物使" _ 管子

"군자는 사물을 부리고 소인은 사물에 부림을 당한다."
"君子役物, 小人役於物" _
荀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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