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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아낙사고라스(Anaxagoras) _ 달과 태양이 물체라고 주장하여 추방당하다

by 변리사 허성원 2024. 12. 28.

아낙사고라스(Anaxagoras)
고대 그리스 철학자,
달과 태양이 신이 아니라 자연적인 물체라는
주장을 한 것 때문에 체포되고 추방당했다.

 

아낙사고라스는 기원전 5세기의 철학자였으며,
자연 현상을 신화적 설명이 아닌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려 했다.
그는 태양이 불타는 거대한 돌덩어리이고, 달은 지구와 유사한 물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의 신앙에 정면으로 반하는 혁명적인 생각이었다.
그의 이러한 견해는 신성 모독으로 여겨졌고, 결국 아테네에서 추방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사건은 인간이 신화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자연과 우주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려는 초기 시도를 보여주는 사례로,
철학과 과학 발전의 중요한 전환점을 나타낸다.

** <위키피디아>

아낙사고라스(Ἀναξαγόρας, 기원전 500년경 - 기원전 428년경)는 고대 그리스 시대 소아시아 지역 가운데 하나였던 이오니아의 클라조메나이 출신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이다. 천체 현상을 비롯한 세상만물을 자연적 방법으로 이해하려 했으며, 원소들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여 만물을 이루게 하는 정신이자 운동 원리인 누스(Nous)를 강조했다.

아낙사고라스는 이오니아의 철학을 아테나이에 최초로 가져온 철학자로 여겨지고 있다. 아테나이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소피스트로 활동하였고 페리클레스와 같은 제자를 두었다. 저서로 <페리푸세우스>가 있다.

아낙사고라스는 오늘날 튀르키예 이즈미르 인근에 있던 이오니아의 클라조메나이 출신으로 비교적 부유한 가문 출신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오랜 여행을 마친 뒤 고향에 돌아왔을 때 그의 집은 이미 폐허로 변해버린 뒤였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는 아낙사고라스가 폐허로 변한 집 앞에서 “이곳이 폐허로 변하지 않았다면, 내가 그리 되었겠지.”라고 말했다고 기록하였다.

아낙사고라스는 서른여섯 살에 아테나이로 이주하여 소피스트로 살았다. 이 때문에 아낙사고라스는 이오니아의 철학을 아테나이로 전파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낙사고라스는 페리클레스와 같은 제자들을 두었다. 그는 만물은 모두 그 안에 수 없이 많은 “종자”를 품고 있다고 설파하였다. 예를 들면 아버지의 정자 속엔 이미 작은 사람이 들어서 있다는 설명이 이런 종자론에 해당한다.

아낙사고라스는 천체와 여러 자연 현상에 대해 관찰에 입각한 설명을 시도하였는데, 예를 들어 태양은 펠로폰네소스보다 더 큰 불타는 덩어리라고 하였고, 달이 빛을 내는 것은 태양빛이 반사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아낙사고라스의 자연현상에 대한 설명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불경죄로 여겼고, 결국 아낙사고라스는 추방되었다. 아낙사고라스가 불경죄로 몰린 이유는 정치적인 것이었다. 페리클레스의 정적들은 아낙사고라스를 공격함으로써 페리클레스의 정치적 영향력을 약화시키려고 하였다. 아네테에서 추방된 아낙사고라스는 트로아스의 영토였던 람파스카쿠스로 건너가 여생을 보냈다.

아낙사고라스는 만물엔 각자 그것을 이루는 종자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바위의 종자에서 바위가 생기고, 사람의 종자에서 사람이 생긴다고 본 것이다. 한편, 이 종자들 역시 모든 물체를 이루는 요소들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보았는데, 예를 들어 물의 종자에는 물뿐만 아니라 불, 흙, 공기와 같은 것들을 이루는 요소가 모두 있지만 그 가운데 물의 성질을 나타내는 것이 가장 많기에 물이 된다고 보았다. 아낙사고라스는 이와 같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요소들이 조합을 달리하여 물질이 되고 운동하기 위해서는 정신의 작용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이러한 정신 작용인 이성(Nous)이 우주의 혼돈을 바로잡아 질서를 이룬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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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년 2월 19일 - 1543년 5월 24일)는 당시 진리처럼 믿어온 지구중심설(천동설)의 오류를 지적하고 태양중심설(지동설)을 주장하여 근대 자연과학의 획기적인 전환, 이른바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을 가져온 폴란드의 천문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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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년 2월 15일 ~ 1642년 1월 8일)는 이탈리아의 철학자, 과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이다. 요하네스 케플러와 동시대 인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반박했고 교황청을 비롯한 종교계와 대립했다. 업적으로는 망원경을 개량하여 관찰한 것, 운동 법칙을 확립한 것 등이 있으며,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옹호하여 태양계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 태양임을 믿었다.

그의 연구 성과에 대하여 많은 반대가 있었기 때문에 자진하여 로마 교황청을 방문, 변명했으나 종교 재판에 회부되어 지동설의 포기를 명령받았다. 그러나 〈황금 측량자〉를 저술하여 지동설을 고집하였으며, 〈천문학 대화〉를 검열을 받고 출판했으나 문제가 생겨 로마에 감금되었다가 석방되었다. 갈릴레오는 결국 그의 지동설을 철회하도록 강요받았고, 그의 마지막 생애를 로마교황청의 명령에 따라 가택에서 구류되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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