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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잡학잡식] 인터뷰의 기술 _ 한강 작가 인터뷰 기사를 보고

by 변리사 허성원 2024. 10. 14.

[잡학잡식] 인터뷰의 기술 _ 한강 작가 인터뷰 기사를 보고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확정되었다는 뉴스가 나온 바로 다음 날,
매일경제에 한강 작가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인터뷰어는 김유태 기자.
그 인터뷰 기사는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절묘했다.
인터뷰는 노벨상 수상 발표가 있기 직전에 수상 여부를 모른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니,
신문사나 기자 개인의 입장에서 한 마디로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아마 그의 기자 인생에서 그만큼 짜릿한 경험을 다시 겪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그 타이밍보다 정작 멋진 것은 인터뷰의 내용이다.
페이스북 등에서 다들 좋은 인터뷰라고 언급하기에 일부러 찾아서 읽어 보았다.
과연 그랬다. 기자의 질문은 그 품질이 우리가 통상 보아오던 그런 통속적인 수준이 아니었다.
시쳇말로 넘사벽의 고퀄이었다.

작가의 작품 세계는 물론 그 정신세계마저 훤히 꿰뚫고 있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질문들이었다.
그리고 질문의 언어 그 자체도 그저 자신의 언어를 쓴 것이 아니라,
작가의 감각과 시적 취향, 그 지성에 동조하도록 정밀하게 조율한 노력이 드러난다.
마치 명창과 고수가 절묘하게 호흡을 맞추듯.

작가의 답변 못지않게 기자의 질문이 돋보이는 기가 막힌 현문현답의 인터뷰를 경험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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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용>

<한강 단독 인터뷰> 창밖은 고요합니다…고단한 날에도 한 문단이라도 읽고 잠들어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지금 선생님이 위치하신 장소의 풍경이 궁금합니다. 창문 바깥의 풍경엔 어떤 사람들이 지나가고 탁자엔 어떤 사물이 있는지, 또 어떤 책이 펼쳐져 있는지.

▷지금은 일요일 새벽(6일)이라 창밖에 아무도 지나가지 않고 고요합니다. 최근까지 조해진 작가의 '빛과 멜로디', 김애란 작가의 '이중 하나는 거짓말'을 읽었고 지금은 유디트 샬란스키의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과 장 자크 루소의 '루소의 식물학 강의'를 번갈아 읽고 있습니다. 사이사이 문예지들도 손 가는 대로 읽고요. 저는 쓰는 사람이기 전에 읽는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고단한 날에도 한 문단이라도 읽고 잠들어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선생님 소설의 시원(始原)은 '붉은 닻'일 겁니다. 갯벌에 점점 잠기던 녹슨 붉은 닻들의 풍경은, 훗날 선생님 소설에 등장할 인물들을 전부 예고하는 하나의 선언적인 메타포로 남게 됐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효용을 다하고 방치된 것들, 변색되다 침잠하는 가련한 생들에 대한 기억이랄까요.

▷대학을 졸업하고 '샘터'에 입사해 일하던 때 영종도로 직원 수련회를 갔는데, 해 질 무렵 썰물이 빠져나간 모래펄에 녹슨 닻들이 박혀 있는 것을 보고 그 풍경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첫 단편집 '여수의 사랑'에 묶인 소설들을 쓰던 시기에는 고단함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삶을 버티고, 떠나기를 몰래 꿈꾸고, 저마다 홀로 피로와 시련을 감당해 내는가 하는 것이 관심사였습니다.

한강의 소설을 결국 관통하는 주제는 '기억과 상처'일까요. 한때 '몽고반점'이 탐미주의 소설로 오독되기도 했는데 당시의 인물들과 최근작의 인물들은 사실 서로 '기억과 상처'라는 심리적인 그물로 연결돼 있습니다. '상처를 복원하고 그것을 문장으로 꿰어 독자들과 공유하는 것, 그렇게 집필된 소설을 독자가 읽는 것'은 어떤 힘을 가질까요. 결국 소설의 쓸모와 효용에 관한 질문이 되었는데, 이에 대한 견해를 여쭙고자 합니다.

▷저는 언제나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그리고 산다는 게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자꾸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고민을 매번 다른 방식의 소설들로 다루고 싶어했고요. 제 소설들을 읽어주신 분들과 그 암중모색을 나눌 수 있었던 것에 작은 의미가 있었기를 빕니다. 요즈음의 저는 생명 자체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품고 솟아나는 것들에 관심이 생깁니다. 다음 소설에서는 그런 생명의 감각을 다뤄보고 싶습니다.

―2016년 부커상 수상 즈음 인터뷰에서 "인간이란 주제는 제가 지금까지 소설을 쓴 동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에 대한 질문을 소설이란 형식으로 '거는' 것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를 지닙니까. 선생님의 과거 말씀(작가의 말 등)을 되짚어보면 작가가 소설을 잉태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 작가를 잉태하는 것이란 생각도 드는데요.

생각하고 서성이고 고민하고 질문하고 길을 잃고 우회하고 되돌아오고…. 그런 일이 소설을 쓰는 일이라고 지금도 느낍니다. 그렇게 질문들을 다루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것이라고요.

소설을 쓰고 읽는 행위의 힘, 다시 말해 세상에서 소설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거칠고 딱딱하기만 한 세상에서 소설은 어떤 힘을 가질까요.

▷우리는 일상 속에서 정말 깊은 진실을 보거나 보여주기 쉽지 않잖아요. 친구와 밥을 먹다가 '나는 요즘 산다는 게 뭔지 생각하고 있어'라고 고백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꺼내기 쉽지 않지만 표면 아래에서 우리를 흔드는 중요한 감정들, 깊은 의문들, 감각들을 문학이 다루면, 그걸 읽는 사람들은 문득 자신 안에 있던 그것들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읽고 있는 소설 속 사람이 되어보며 자신으로부터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순간을 반복하면 자아에 틈이 벌어지면서 투명하게 자신을 직시하는 경험도 하게 되고요. 그렇게 소설은 여분의 것이 아니라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 우리를 연결하는 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 마지막 질문이 가장 멋지다. 기자의 진정한 내공을 느끼게 한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어쩌면 이 질문을 드리기 위한 인터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집필하시는 순간, 선생님이 보시는 '골방의 풍경'이 궁금합니다. 집필 공간으로서의 물리적 풍경이 아니라 '쓰고 있는 순간에 선생님께서 보시는 상태의 정신적인 풍경'이 궁금합니다. 누가 지나가고, 누가 말을 거는지, 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심장 속, 아주 작은 불꽃이 타고 있는 곳. 전류와 비슷한 생명의 감각이 솟아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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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김유태 기자가 쓴 위의 인터뷰는 노벨문학상 발표와 함께 즉시 특종이 되었다.
기자는 그날의 기억을 후기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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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디트 샬란스키의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을 꺼냈다. 그분이 최근까지 읽었다고 소개해주신 책. 서문을 읽으며 전율했다. 샬란스키의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상실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잊는 것은 끔찍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아무것도 잊지 못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세계는 어느 정도는 조망이 불가능한 스스로의 아카이브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영원히 보존되지 못한다 해도, 어떤 것들은 다른 것보다 오래 보존된다... 쓰는 행위를 통해 아무것도 되찾을 수도 없다 해도, 모든 것을 경험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는 있다...""

"인터뷰 질문이 좋았다는 분들도 있었고 신문에 쓰기엔 너무 현학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는데, 사실 그분에게서 뭔가를 '이끌어내려면' 그와 비슷한 수준의 질문이 아니면 안 된다고 느꼈다. 그분의 단편과 장편, 작가의 말까지 전권을 모두 다시 읽었고(거짓이 아니다...) 주말 이틀 동안 질문지를 써내려갔다. 독자로서의 연서에 가까운 편지 한 장, 질문 두 장, 그리고 부끄러워 밝힐 수 없는 자료가 담긴 또 두 장.
그렇게 다섯 페이지에 준비한 질문 13개를 고봉밥처럼 꾹꾹 눌러 담았다. 나는 그분의 문(門)을 열어야만 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어떤 책인가요?'와 같은 수준의 저급한 질문을 던졌다간 그분이 그나마 여신 창문을 꽁꽁 닫으리라는 판단에 변함이 없다. 그러니까 질문은,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다. 만약 시간이 허락되어 리라이팅을 했다면 오히려 인터뷰 기사를 망쳤으리란 생각에도 변함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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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찬쉐 인터뷰는 작년에 감사히 해두었고, 옌롄커 선생님과는 이미 수차례 대면했으니, 난 이번 노벨문학상 기사에 실은 (아주 조금은) 자신이 있었다. 내심 옌롄커이거나, 최애 작가 크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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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태 기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역시 보통 기자가 아니다.

그는 현재 매일경제의 문학 전문 기자이다.
찾아보니, 1984년 생으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2018년 등단하여 시집 『그 일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을 낸 어엿한 그 자신도 작가였다.
그리고 최근 출간된 <나쁜책>이란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 책은 금서의 세계를 파헤친 것이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만한 유망한 작가다.

책은 바로 주문했다.

<나쁜책> 에 대한 <출판사의 작품 소개>에서 눈에 띄는 말들..

- 나쁜 책을 두려워한 모든 이는 ‘안전한’ 사회를 원했다. 하지만 .. ‘안전하지 못한 책이 안전한 사회를 만든다’는 역설이다."

- 금서의 역사는 ‘오독의 역사’와 동의어다. 금서를 둘러싼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첫째, 안전하지 못한 사회를 초월적인 문장의 합으로 안전하게 만들려는 작가. 둘째, 작가에 대한 질투와 조바심으로 독서를 금지하려는 자. 셋째, 곤경에 처한 책들을 읽는 독자. 이 중 가장 중요한 부류는 금서의 독자다. 그들은 망각 속에 있는 책들을 눈부시게 되살려낸다. 가장 치열하게 사고하는 독자들이 체계 바깥으로 자취를 감췄던 책들을 현실 속으로 편입시키는 것이다. “독자가 책의 불온함을 제거해준다.”

- 이 책은 ‘나쁜 책’을 이렇게 정의한다. “날것처럼 세상을 투영하고 반영하는 것이 거부된 세상에서 무형의 마지노선인 ‘윤리’를 고민하며 그것을 회복하기 위한 선의로 가득한 책.” 저자는 이 선의로 가득한 책들을 구출하기 위해 『나쁜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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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태 “찢어질 때 우리는 저 깊은 곳에서 변화한다”
『나쁜 책』 김유태 저자 서면 인터뷰

- 중국 최다수 금서 작가인 옌롄커는 이 산문집에서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라고 자문하면서 “두려움과 배반을 오가는 글쓰기”가 본인의 문학이 되리라고 확언했습니다.

- 20세기에 문학적 성취의 기준이 됐던 유명한 문학상의 다수는 금서 작가들에게 돌아갔습니다. 토니 모리슨, 카밀로 호세 셀라,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이스마일 카다레, 밀란 쿤데라, 헨리 밀러, 주제 사라마구, 미셸 우엘벡, 나지브 마흐푸즈 등은 금서나 논쟁작을 쓴 작가들이고 그들은 문학상을 수상하며 세계문학사에서 이름을 알렸습니다. 물론 문학상 수상자로 호명되었다는 오로지 그 사실만으로 그들이 남들과 비교해 더 탁월한 문학적 과업을 이뤘다고 볼 순 없겠지만, 적어도 그들이 추구했던 논쟁적인 글쓰기가 골방의 언어로만 남지 않았으며 타인의 공감을 얻어 후대의 상찬을 받은 작품으로 기록됐다는 사실 역시 분명합니다. 우리는 금서 작가를 둘러싼 이런 사실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몰락은 패배이지만 몰락의 선택은 패배가 아니다”

- 저 금서 작가들에게서 공히 발견되는 윤리란 ‘경계 넘기를 통해 타인으로 확장되는 세계의 구축’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프란츠 카프카가 1904년 1월 27일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글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아주 유명한 문장인데 옮겨 적어볼게요.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무딘 칼로는 세계를 해부할 수 없고 고무망치로는 얼음산을 조각낼 수 없을 겁니다. 충격을 주는 문학만이 참된 문학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충격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상태에서의 독서는 문장의 안온함 속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유리알 유희’일 뿐이지 않을까요.
다만 덧붙여 말하자면, 여기서 말씀드리는 ‘충격’은 선정적인 표현과 선정적인 장면의 묘사를 독자가 수용해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독자에 대한 작가의 일방향적인 ‘정중한 폭력’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여기서의 충격은 ‘단 한 문장이라도 독자를 찌르는 대목이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  『나쁜 책』도 밝고 투명한 글만은 아니지만 좀 더 독자에게 다가가는 글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방향 사이에서의 글쓰기를 유지하는 것이 제게 주어진 상황임을 잘 알고 있고, 저는 독자분들이 흥미를 느끼는 글과 독자분들의 철저한 외면을 받는 글 사이에서의 글쓰기가 제가 동시에 걸어가야 하는 두 가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https://ch.yes24.com/Article/View/55632

 

김유태 “찢어질 때 우리는 저 깊은 곳에서 변화한다” | 예스24 채널예스

그들은 그런 위험하고도 불온한 시도를 통해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의 지평을 확장했습니다. 저 금서 작가들에게서 공히 발견되는 윤리란 ‘경계 넘기를 통해 타인으로 확장되는 세계의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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