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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연암 박지원의 허세

by 변리사 허성원 2024. 7. 15.

연암 박지원의 허세

 

** 연암 박지원이 열하에서 잠시 짬을 내어 술집 한 곳에 홀로 들어갔다. 윗층으로 올라가니 온통 오란한 색상의 복장을 한 몽고족과 회족들뿐이다. 그들이 워낙 사납고 더러워서 등골은 섬뜩하고 금세라도 달아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후회하기는 늦었으니, 기죽지 않으려고 마음껏 치기어린 허세를 부린다. 이 부분을 읽다 그 모습이 생생하게 체감되어 혼자서 박장대소를 하였다.
이 글은 열
하일기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중의 한 부분이다. 해학과 장난끼가 가득한 그의 행동이 너무도 재미있어, 한국고전종합DB의 번역문을 참조하여, 내 나름으로 읽기 쉽게 풀어보았다.

 

**
열하일기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중에서
(정조4년 1780년) 8월11일 맑음

>> 길 건너에 술집이 보인다. 술집의 깃발이 바람이 펄럭이고, 술 항아리와 병들이 처마 밑에 어지러이 널려있다. 공중에 걸친 난간은 푸른 색인데 햇빛에 비친 간판은 금빛으로 빛난다. 좌우에 걸린 주렴에는, "신선이 옥패를 저당 잡히고, 정승 판서가 담비 가죽 때를 벗도다(神仙留玉佩 公卿解金貂)"라고 씌어 있다. 다락 아래에 수레 몇 대와 말 탄 이들이 있고, 다락 위에서는 사람들의 소리가 벌떼나 모기떼처럼 시끄럽다.

나는 발길 닿는 대로 계단을 밟고 위로 올라갔다. 탁자 둘레의 의자에 서넛 혹은 대여섯 명씩 사람들이 앉아있다. 모두 몽고인과 회족뿐으로 대충 열 몇 무리는 되어 보인다. 몽고인들은 마치 우리나라 쟁반 같은 것을 머리에 쓰고 있고, 모두 누런 웃옷에 붉은 바지를 입었다. 회족은 붉은 옷이나 검은 옷을 입었고, 앞뒤로 길쭉하고 끝이 뾰족한 모자를 썼는데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나는 갓을 쓰고 있었는데, 거기에 은 장식을 새기고 공작 깃을 꽂은 데다 갓끈에 수정을 달았으니, 저 오랑캐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만주족이나 한족 등 중국인은 이 다락 위에 아무도 없었다.

 오랑캐들은 한결같이 그 모습이 사납고 더러워서,
이 다락에
올라온 것이 후회스러워졌다.
하지만
이미 술을 청해버렸으니, 할 수 없이 그 가운데 편한 의자를 골라 앉았다.

술심부름꾼이 와서 묻는다. 
“술을 몇 냥()어치 마시겠습니까?” 여기서는 술을 무게로 판다.
나는 "넉 냥 따뤄오게"라고 주문했다.
심부름꾼이 술을 데우려 하기에,
나는 “술은 데우면 안돼. 찬 것을 그대로 가져 와”라고 소리쳤다.

술심부름꾼은 웃으면서 술을 따뤄와서는, 먼저 작은 잔 두개를 탁자 위에 벌여 놓는다. 나는 담뱃대로 그 잔들을 밀어 버리고 말했다. 

큰 잔을 가져오게.”
그러고는
큰 잔에 술을 몽땅 부어 단번에 들이켰다.
되놈 무리들이
서로 돌아보며 놀라지 않는 자가 없었다.
내가 호기롭게
마시는 모습을 대단히 사내답다고 여길 것이다.

중국의 음주법은 매우 얌전한 편이다. 한여름에도 반드시 데워 마신다. 소주도 그렇게 한다. 술잔은 은행알만한데 그것조차도 잔에다 이빨을 걸쳐서 조금씩 마시고, 탁상에 남겨 두었다가 수시로 다시 마시곤 하며, 단번에 시원하게 들이키는 법이 없다. 그리고 큰 술잔이나 사발로 마시는 일은 아예 없다.

내가 찬 술을 주문해서 넉 냥 술을 단숨에 마신 것은,
저들이 두려움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대담한 척한 것이다.
이는 실로 겁쟁이 짓이며 용기라 할 수가 없는 일이다

내가 찬 술을 주문할 때 되놈들은 이미 상당히 놀랬을 텐데, 그것을 단숨에 마시는 것을 보고는 더 크게 놀라서 이제는 나를 두려워하는 듯하다.

주머니에서 8푼을 꺼내어 심부름꾼에게 술값을 치러 주고 나오려는데,
여러 되놈들이 우루루 일어나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앉기를 청한다.
그 중 하나가 제 자리를 비워서 나를 붙들어 앉힌다.
저들은 좋은 뜻에서 그러는 듯하지만, 나는 벌써 등에서 땀이 솟아났다.

한 사람이 일어나 술 석 잔을 부어놓고 탁자를 두드리며 마시기를 권한다.

나는 일어나 찻잔에 남은 차를 난간 밖으로 쏟아버리고는,
찻잔에다
그 석 잔을 모두 부어 단숨에 쭈욱 들이켰다.
그리고는
한 번 읍을 하고는 큰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오는데,
머리칼이 오싹하며 누군가가 뒤따라오는 것 같다
.
길에
나와 서서 다락을 올려보니, 웃고 떠드는 소리가 요란하다.
아마 내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 (원문)
對樓酒旗。飄颺檻前。銀壺錫甁。舞蹲檐外。綠欄行空。金扁映日。左右靑帘。題神仙留玉佩。公卿解金貂。樓下車騎若干。而樓上人聲如蜂鬧蚊沸。余信步而上。則胡梯十二級矣。圍卓坐椅者。或三四或五六。皆蒙古回子。而無慮數十對。蒙古所戴。如我東錚盤而無帽。上施羊毛而染黃。或有著笠者。制如我東氈笠。而或藤或皮。表裏塗金。或以五釆。錯畵雲物。皆黃衣朱袴。回子衣朱。亦多黑衣。以紅氈作弁。而帽子太長。只有南北兩簷。形如出水卷荷。又如硏藥鐵。兩端尖銳。輕佻可笑。余所著笠。如氈笠。所謂笠範巨只。 飾鏤銀。頂懸孔雀羽。頷結水精纓。彼兩虜眼中以爲如何。無論滿漢。無一中國人。在樓上者。兩虜皆獰醜。雖悔上樓。而業已喚酒矣。遂揀一好椅而坐。酒傭問飮幾兩酒。盖秤酒重也。余敎斟四兩。酒傭去湯。余叫無用湯。湯生酒秤來。酒傭笑而斟來。先把兩小盞。鋪卓面。余以烟竹。掃倒其盞。叫持大鍾來。余都注一吸而盡。群胡面面相顧。莫不驚異。盖壯余飮快也。大約中國飮法甚雅。雖盛夏。必湯飮。雖燒露亦湯。杯如杏子。掛齒細呷。留餘卓上。移時更呷。未甞健倒。諸胡虜飮政大同。俗所謂大鍾大椀。絶無飮者。余叫斟生酒。一吸四兩。所以畏彼。特大膽如是。眞怯而非勇也。吾叫生酒時。群胡已驚三分。及見一吸。乃大驚。反似怕吾者。余囊出八葉錢。計與酒傭。方起身。群胡皆降椅頓首。齊請更坐一坐。一虜起。自虛其椅。扶余坐。彼雖好意。余背已汗矣。余幼時見儓隷群飮。其令有過門不入。七十生男子。汗出沾背。吾性不耐笑。三日腰酸。今朝萬里塞上。忽與群胡飮。若爲觴令。當曰汗出沾背矣。一胡起斟三盞。敲卓勸飮。余起潑椀中殘茶於欄外。都注三盞。一傾快嚼。回身一揖。大步下梯。毛髮淅淅然。疑有來追也。出立道中。回望樓上。猶動喧笑。似議余也。 _ 출처 한국고전종합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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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仙留玉佩 公卿解金貂(신선유옥패 공굥해금초)

연암이 들어간 술집의 주렴에 씌어진 이 말은 원래 여동빈(呂洞賓, 당나라 때 도교 신선)의 어록에서 따온 것이다.
신선(神仙)의 옥패(玉佩)는 재물을 의미하고, 공경(公卿)의 금초(金貂, 고위 관료의 담비 가죽 띠)는 권력을 의미한다. 아마도 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손님에게 부와 권력을 기대하도록 하는 취지로 주인이 걸어두었을 것 같다.
하지만, 술집에 걸어둔 주렴이기에 살짝 다르게 번역해보았다. '신선이 자신의 옥패를 저당 잡히고, 정승 판서가 담비 가죽 띠를 잡히고서라도 술을 마시리라.' 술이 워낙 맛있으면 부귀든 권력이든 팽개칠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