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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 #166 글쓰기는 병법이다 _ 연암 박지원

by 변리사 허성원 2024. 6. 16.

글쓰기는 병법이다 _ 연암 박지원

 

연암 박지원의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을 깊게 읽었다. 이 글은 연암의 글쓰기 철학에 관한 글이다. 글쓰기를 병법에 비유하여 연암 특유의 문체로 유머러스하게 풀고 있어 매우 유쾌하게 읽을 수 있다. 글쓰기와 병법은 모두 그 요체가 상황에 맞춰 변화하는 변통의 묘리에 있는 것이니, 전쟁을 치를 때 오직 하나의 병법만을 고집해서는 안 되듯이, 글을 쓸 때에도 때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처신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추사 김정희의 난초를 그리는 데 있어, ()이 있어도 안 되고 법이 없어서도 안 된다(寫蘭 有法不可 無法亦不可)”라는 말과도 상통한다.

소단적치인은 그의 벗인 이중존(李仲存)이 엮은 소단적치(騷壇赤幟)’라는 책에 써준 서문이다. 소단(騷壇)은 문단 혹은 과거 시험장을 뜻하고, 적치(赤幟) 즉 붉은 깃발은 대장군의 상징이니, 소단적치는 고금의 우수한 과거 시험 명문장들을 모은 자료집인 셈이다. 소단적치인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좋은 해설들이 있지만, 좀 더 쉽게 풀어보고 싶어 감히 이 명문장을 마음대로 덜고 더하여 내 나름 풀이를 보태보았다. ~ 그럼 연암의 소단적치인을 함께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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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쓴다는 것은 병법을 잘 안다는 것일까
? 글자는 병사들에 비유되고, 글의 뜻은 장수에 비유된다. 논제는 맞싸워야 할 적국이며, 글 형식은 전쟁터에 구축한 진지와 같다. 글자를 엮어 구절을 만들고, 구절을 모아 문장을 이루니, 이는 마치 군대가 대오를 이루어 행진하는 것이다. 운율로 소리를 내고 문체로 빛을 내니, 이는 가히 전쟁터의 징과 북, 깃발이라 하리라. 앞뒤 언어가 어울리는 것은 봉화가 서로 솟는 것이요, 비유를 들어 말하는 것은 기병들이 질주하는 모습이다.

어조의 강약 변화를 반복하는 것은 적을 주살하려 몰아붙이는 것이며, 논제를 쪼개었다가 다시 모아 엮는 것은 성벽을 타고 올라 적을 사로잡는 것과 같다. 글을 함축적으로 쓰려 애쓰는 것은 전투에서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 인간다운 절제이고, 글에 여운을 남기는 것은 아군의 위세를 크게 떨친 다음 승리의 기쁨을 안고 개선하는 장면이다.

옛날 진()나라와 조()나라가 장평(長平)에서 큰 전투를 벌였는데, 전쟁 중에 조나라 장수가 염파(廉頗)에서 조괄(趙括)로 바뀌었다. 병사들은 그 용감함이나 비겁함이 전과 다름이 없고, , , 칼의 예리함이나 무딤이 변한 게 없는데, 염파가 장수로 있을 땐 승리하는 데 모자람이 없더니, 조괄이 그를 대신하자 그 40만 대군이 모두 갱살(坑殺)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니 전쟁을 잘하는 자는 버릴 병사가 없고, 글을 잘 쓰는 자는 가려서 버려야할 글자가 없는 것이다. 참으로 그런 장수를 얻는다면 호미, 곰방메, 가시나무 자루만 들고서도 모두 용맹한 군사가 될 것이고, 천을 찢어 장대에 걸어두는 것만으로도 그 기세나 형세가 완연히 달라질 것이다. 참으로 그런 이치를 얻었다면, 집안의 일상 이야기도 가히 교육 교재의 반열에 오를 수 있고, 아이들 노랫소리나 마을의 속된 이야기도 경전에 들 수 있다. 그러니 문장이 좋지 않은 것은 글자의 죄가 아니다.

글 구절이 우아한지 속된지를 평하고 문장의 높고 낮음을 논하는 자는 모두, 합침과 변화의 묘를 통해 전투에서 승리해내는 변통과 그 융통성을 알지 못한다. 그런 자는 비유하자면 용기 없는 장수와 같아서, 마음에 정한 책략도 없는데, 문득 굳센 성과 맞닥뜨린 것과 같다. 갑작스레 논제를 만나면, 산 위의 초목조차도 모두 적병들로 보여, 눈앞의 붓과 먹은 그 기세가 먼저 꺾여버리고, 가슴 속에 외워두었던 것들은 사막 가운데 풀어놓은 원숭이와 학처럼 패잔병이 되어 흩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자들은 글의 논지를 잡아내지 못하여 좁은 골목에서 홀로 갈 길을 잃고 헤매게 될까 항상 근심한다.

갈 길이 선명하지 않으면 글 한 자도 내려 쓰기 힘드니 그런 꽉 막혀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은 늘 크나큰 고통이다. 이는 비유컨데 항우가 사면초가의 상황을 피해 달아나다 음릉(陰陵)에서 길을 잃고 늪에 빠지자 명마인 오추마조차도 움쩍할 수 없는 상황과 같다. 논지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면 겉모습을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하더라도 그 내용의 허술함과 빈틈이 근심거리일 수밖에 없다. 이는 한무제 때 장수 곽거병이 무강거(武剛車)로 몇 겹으로 에워쌌었지만, 흉노의 군주 선우는 여섯 마리 노새가 끄는 수레를 타고서 유유히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 버린 것에 비할 수 있다.

글의 논지를 간단한 말로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은, 적이 예상하지 못한 눈 오는 밤에 적의 성에 교묘히 입성하여 가볍게 함락시키는 것과 같다. 글의 줄거리를 한 마디로 뽑아낼 수 있다면, 상대방의 기세가 다할 때를 기다렸다가 단번에 몰아붙여 적을 제압할 수 있다는 말이다. 글을 쓰는 도가 이와 같다면 참으로 지극한 경지에 오른 것이다.

벗 이중존이 우리나라 고금의 과거 시험 답안들을 모아 열 권으로 엮어서 소단적치(騷壇赤幟)라 이름 붙였다. 이들 문장은 모두 전쟁에서 승리한 군대요 백 번 싸우고도 살아남은 군사들이다. 비록 그 문체와 격조가 같지 않고, 정순하고 거친 것이 뒤섞여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제각기 남부럽지 않은 나름의 탁월함을 가졌으니, 공략하여 굴복시키지 못할 만큼 굳센 성이 없고, 그 날카로운 창끝과 예리한 칼날은 삼엄하기가 마치 무기 창고와 같으며, 때를 쫓아 적을 제압하는 움직임은 병법의 묘리와 일치한다. 그 문장들을 배워 글을 쓴다는 것은 그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니, 고금의 뛰어난 용맹과 온갖 위업이 바로 거기에 모여 있다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가르침이 비록 크다한들 맹목적으로 따르려해서는 안 될 일이다. 당나라 때 방관(房琯)은 전차 전투를 벌이면서 옛 사람의 전술을 그대로 본받았는데도 불구하고 크게 패하였고, 후한 때 우후(虞詡)는 손빈의 옛 전술을 반대로 뒤집어 오히려 아궁이 수를 늘였음에도 불구하고 승리하였다. 그러니 합변지권(合變之權) 즉 합침과 변화의 변통은 그 때와 상황에 따라야 하는 것이지 정해진 법에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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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종합DB

 

한국고전종합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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騷壇赤幟引

善爲文者, 其知兵乎. 字譬則士也, 意譬則將也, 題目者, 敵國也; 掌故者, 戰場墟壘也. 束字爲句, 團句成章, 猶隊伍行陣也; 韻以聲之, 詞以耀之, 猶金皷旌旗也. 照應者, 烽埈也; 譬喩者, 遊騎也. 抑揚反復者, 鏖戰撕殺也; 破題而結束者, 先登而擒敵也. 貴含蓄者, 不禽二毛也; 有餘音者, 振旅而凱旋也.

長平之卒, 其勇㥘非異於昔時也; 弓矛戈鋋, 其利鈍非變於前日也. 然而廉頗將之, 則足以制勝; 趙括代之, 則足以自坑. 故善爲兵者, 無可棄之卒; 善爲文者, 無可擇之字. 苟得其將, 則鉏耰棘矜, 盡化勁悍, 而裂幅揭竿, 頓新精彩矣; 苟得其理, 則家人常談, 猶列學官而童謳里諺, 亦屬爾雅矣. 故文之不工, 非字之罪也.

彼評字句之雅俗, 論篇章之高下者, 皆不識合變之機, 而制勝之權者也. 譬如不勇之將, 心無定策, 猝然臨題, 屹如堅城, 眼前之筆墨, 先挫於山上之草木, 而胸裏之記誦, 已化爲沙中之猿鶴矣. 故爲文者, 其患常在乎自迷蹊逕, 未得要領.

夫蹊逕之不明, 則一字難下, 而常病其遲澀; 要領之未得, 則周匝雖密, 而猶患其踈漏. 譬如陰陵失道而名騅不逝, 剛車重圍而六騾已遁矣. 苟能單辭而挈領, 如雪夜之入蔡; 片言而抽綮, 如三皷而奪關, 則爲文之道如此而至矣.

友人李仲存集東人古今科軆, 彙爲十卷, 名之曰『騷壇赤幟』 嗚呼! 此皆得勝之兵而百戰之餘也. 雖其軆格不同, 精粗雜進, 而各有勝籌, 攻無堅城. 其銛鋒利刃, 森如武庫, 趨時制敵, 動合兵機. 繼此而爲文者, 率此道也, 定遠之飛食, 燕然之勒銘, 其在是歟. 其在是歟. 雖然, 房琯之車戰, 效跡於前人而敗; 虞詡之增竈, 反機於古法而勝, 則所以合變之權, 其又在時而不在法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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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

과거합격자 모범답안 모음집을 보는 자세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 박지원(朴趾源) 글짓기와 병법의 유사점 善爲文者, 其知兵乎. 字譬則士也, 意譬則將也, 題目者, 敵國也; 掌故者, 戰場墟壘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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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변(合變)이란 가진 자원을 모아 변화를 도모한다는 뜻이다. 상황에 맞추어 그때그때 변통의 구사하는 것을 말한다. 장평전투 중에 조나라 왕이 염파를 대신하여 조사 장군의 아들 조괄을 쓰려하자, 인상여(藺相如)는 조괄이 병법을 아는 것은 한갖 제 아비의 글로 전하는 것뿐이라 교주고슬(膠柱鼓瑟)할 뿐 합변의 묘를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