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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 #144 특허통수권① 범의 송곳니를 개에게 주지 마라

by 변리사 허성원 2024. 1. 16.

특허통수권① 범의 송곳니를 개에게 주지 마라

 

'특허'는 기업의 특성에 따라 그 무게나 의존도가 다르다. 그리고 많은 기업을 성공의 고속도로로 안내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적잖은 기업을 좌절에 빠트리기도 한다. 전문가가 아니면 쉽게 다루기 힘든 무겁고 예리한 칼과 같아서, 경영자들은 대체로 관련 업무를 연구담당 임원 등에게 가벼이 위임해버리고 관심을 거둔다. 그러다 회사의 운명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큰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기업의 경영자들에게 '특허통수권'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특허통수권'이라는 말이 생소하겠지만 그 의미는 짐작이 갈 것이다. 국가의 군대에 대한 최고지휘권을 군통수권이라 하듯, 기업의 특허시스템에 대한 최고지휘권을 가리킨다. 여기서 말하는 '특허'는 단지 문언상의 특허 그 자체에 한하지 않고, 특허에 전후 단계에 연결된 밸류체인을 총괄하는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특허 취득, 활용 및 분쟁과 같은 통상의 영역 외에, 특허의 창출을 위한 연구 개발 프로세스, 연구원의 창의력 관리, 핵심역량이나 성장 엔진에 관련한 전략 수립과 수행 등을 아우르는 총괄적 기술 관리 시스템이라고 보면 되겠다.

군통수권이 국가원수에게 집중되어 있지 않으면 국가의 운명이 위태로워지거나 큰 혼란을 겪을 수 있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확인 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도 80년대에 그 혼란과 후유증을 처절히 겪은 바 있고, 태국과 같이 수시로 쿠데타를 통해 정권이 바뀌는 나라도 있다. 기업의 혼란이나 위기도 특허통수권으로 인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 하더라도 '통수권'이라는 말을 거창하게 가져다붙인 것은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니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면 가벼운 사례 한 가지를 소개하겠다.

김 대표가 경영하는 A사는 정밀가공 전문 기업으로서 오랫동안 대기업에 가공부품을 납품하여왔다. 대기업의 협력업체들은 대체로 갑의 우월한 지위에 짓눌린 을의 서러움이 쌓여 크고 작은 한이 되어있다. 그래서 강단이 있는 경영자라면 큰 기업에 대한 예속을 조금이라도 완화시켜 보고자 독자의 시장 제품을 개발하여 나름의 자유로운 시장 마케팅을 하려는 로망을 가진다. A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김 대표는 지인의 소개로 소형 농기구(가상의 예임)를 개발한 경험을 가진 박 팀장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박 팀장의 비전을 설명들은 김 대표는 솔깃하였다. 우리나라의 소규모 농업 환경을 생각하면 대형 농기구보다는 작은 논밭에서 쓰기 편한 소형 농기구의 보급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고, 그 시장의 규모도 박 팀장의 분석 데이터를 보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그 팀을 통째로 영입하기로 결정하고 급여 등 구체적인 영입 조건을 합의하였다. 김 대표가 잘 모르는 기술 분야이기도 하고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기에, 팀의 운영은 박 팀장의 호언과 역량을 믿고 전적으로 그에게 맡겼다. 그리고 근 2년간 적잖은 자금이 투입되었다.

그 투자가 성공하였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기대는 의심으로 변하고 결국 실망으로 귀결되었다. 매출은 미미했고 그마저도 온갖 품질 문제로 대부분 반품되었다. 고심 끝에 결국 박 팀장과 그 팀을 정리하기로 했지만, 그 과정에서마저도 송사 등 과외의 비용이 지출되었다. 그런데 그 사업을 직접 관리해보려고 개발 상황을 들여다보니, 이렇다 할 개발 성과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좀 더 지나고 나서야 특허 등 개발 알맹이를 박 팀장이 고스란히 빼돌려 챙겨나간 것을 알았다. 구체적인 실상을 제대로 입증하기 어려운 데다 다툴 여력도 없고 그 사업에 대한 의지마저 꺾여 그 회수를 포기하였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알게 모르게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경영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다음 먹을거리, 다른 성장엔진, 핵심역량의 전환에 항상 목말라 한다. 그 목마름이 뼈아픈 수업료를 재촉하는 것이다. 가끔은 수업료 정도에 그치지 않고 회복 불가할 정도로 위태로워지기도 한다. 그 실패의 이유 중 결정적인 부분은 최고경영자가 그 기술 개발의 전략 수립과 개발 과정의 관리에 직접 관여하지 못하고 타인의 손에 의존한 데에 기인한다. '특허통수권'을 섣불리 남에게 넘긴 결과이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한비자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한비자는, 군주가 신하를 이끌어 제어하는 데에는 두 개의 칼자루가 있으니 그것은 형()과 덕()이라고 하였다. ()은 벌주는 것이고 덕()은 상을 주는 것이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신하에게 주어버리면 백성들은 모두 신하를 좇게 되어 군주에게 재앙이 된다고 하며 이렇게 비유하였다. "대저 범이 능히 개를 복종케 하는 바는 발톱과 어금니가 있는 까닭이다. 범이 그 발톱과 송곳니를 내놓아 개에게 사용하게 하면 범은 도리어 개에게 복종당할 것이다."

기술과 특허는 기업의 핵심역량이며 무형자산인 동시에 기술전쟁의 엄중한 무기다. 이와 동시에 기술이나 특허의 창출은 연구원들의 창의적인 노력의 결과이기에, 그 성과에 대해 회사의 보상시스템이 공정하게 가동되어야만 그들의 창의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곧 특허시스템은 한비자가 말하는 형()과 덕() 그 자체이다. 그러니 이를 남의 손에 맡기면 회사와 최고경영자는 그것을 쥐고 있는 임원의 역량이나 결정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바로 자신의 발톱과 송곳니를 개에게 넘긴 범의 운명이다.

이제 특허통수권의 개념에 대해 대강이나마 그 의미를 맛보기로 느꼈을 것이다. 특허통수권은 앞의 사례를 초월하여 기업의 비전, 투자 및 재산 운영, 시장지배력, 조직의 집단 창의력, 시장 경쟁 전략 등 기업 경영에 매우 광범위한 분야에서 전략적으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후 몇 차례에 걸쳐 특허통수권의 구체적인 의미와 위험 및 전략 등에 대해 하나씩 토론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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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두 가지 칼자루(한비자 이병 二柄)

明主之所導制其臣者, 二柄而已矣. 二柄者, 德也. 何謂刑德? 曰: 殺戮之謂刑, 慶賞之謂德. 臣者畏誅罰而利慶賞, 故人主自用其刑德, 則群臣畏其威而歸其利矣.
故世之姦臣則不然所惡則能得之其主而罪之所愛則能得之其主而賞之今人主非使賞罰之威利出於己也聽其臣而行其賞罰則一國之人皆畏其臣而易其君歸其臣而去其君矣此人主失刑德之患也夫虎之所以能服狗者爪牙也使虎釋其爪牙而使狗用之則虎反服於狗矣人主者以刑德制臣者也今君人者釋其刑德而使臣用之則君反制於臣矣。_ 韓非子 二柄

밝은 군주가 신하를 이끌어 제어하는 데에는 두 개의 칼자루가 있을 뿐이다.  두 개의 칼자루는 형(刑)과 덕(德)이다.
무엇을 형(刑)과 덕(德)이라 하는가? 죽이는 것을 형(刑)이라 하고 상을 주는 것을 덕(德)이라 한다.
남의 신하가 된 자는 벌주는 것을 두려워하고 상 받는 것을 이롭다 여기기에, 군주는 직접 형덕(德)을 사용하여야 한다.
그런 즉 신하들은 권위를 두려워하고 그 이로움을 좇게 되는 것이다.
런데 세상의 간신들은 그러지 아니하다. 미워하는 자에게는 그 군주의 마음을 얻어 죄를 주고, 좋아하는 자에게는 군주의 마음을 얻어 상을 준다.
만약 군주가 상벌의 권위와 이로움이 자신에게서 나오도록 쓰지 않고, 신하의 말만 듣고 상벌을 행한다면, 한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 신하를 두려워하고 그 군주를 쉽게 여길 것이며, 그 신하를 좇고 군주를 떠날 것이다. 이것이 군주가 형덕을 잃은 재앙이다.
대저 범이 능히 개를 복종케 하는 바는 발톱과 송곳니가 있는 까닭이다. 범이 그 발톱과 송곳니를 내놓아 개에게 사용하게 하면 범은 도리어 개에게 복종당할 것이다.
군주는 형덕으로 신하를 제어한다. 만약 타인의 군주된 자가 형덕을 내놓아 신하로 하여금 그것을 사용하게 하면, 군주는 도리어 신하의 제어를 당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