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업무상 그런 사례를 적잖게 만납니다.
개인적인 이야기 1: 유사과학이 우려스럽다고요? 그래서 뭘 하셨습니까?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해보려 합니다. 에피소드들이 흥미롭고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얘기들일 겁니다:-)
1. 2001년 무렵이었습니다. 유사과학의 대명사로 과학자들이 자주 언급하고 그토록 조롱하는 에모토 마사루의 ’물은 답을 알고 있다‘를 기억할 겁니다. 클래식 음악이나 ‘사랑, 감사’라는 단어를 보여준 물은 결정 구조가 아름답고, ‘망할 놈’이란 단어나 헤비메탈 같은 음악을 들려준 물의 결정은 흉측하더라는 주장입니다. (이 책의 식물 버전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지요. ㅜㅜ)
이 책이 나왔을 때, 그리고 수십만 부가 팔리고 독자들 사이에 화제가 됐을 때, 한국 과학계는 어떤 행동들을 했을까요?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반박 논쟁 비판’ 같은 단어들로 검색해보시면, 단번에 아실 수 있습니다. 단 한 건의 논쟁만 등장합니다. 언론사 지면에 저랑 이 책을 출간한 출판사 주간과의 3주에 걸친 서면 논쟁입니다. (예를 들어: https://m.cafe.daum.net/readandchange/a1WI/51 )
당시 저는 전임교수도 아니어서 설화에 휘말리면 정규직도 위태로운 직위였지만, 여러 교수님들께 ‘함께 뭔가를 해보자’고 도움을 요청드렸지만 다들 냉담하셨습니다. ‘언급할 가치가 없고, 굳이 내가 왜 공식적으로 반론을 제기해야 하는지’라며 꺼려하셨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로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1) 저는 집에서 정교하게 컨트롤된 상태에서 이 실험을 해보고 화학과 실험실에서 물 분자 구조를 분석했으며, 이 실험은 재현되지 않음을 관찰했습니다. (2) 출판사 주간님과 주거니 받거니 세 번에 걸친 신문 지면 논쟁을 했습니다. (3) 그리고 저자인 에모토 마사루에게 재현가능하게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과학저널의 정식 리뷰를 받으라고 공개 서한을 보냈습니다. 물론 답장을 받지는 못 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물은 답을 알고 있다’가 맞는 얘기인가? 과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라는 의문이 들어 검색을 하면, 바로 제 논쟁의 글들을 보실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과학자들은 재현가능하지 않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명확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2. 1998년 무렵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뇌파 학습기 ‘엠씨스퀘어’를 만든 회사로부터 제 지도교수님이 연구 프로젝트를 의뢰 받으셨습니다. ‘엠씨스퀘어가 학습 효과가 있는지 실험적으로 검증해달라’는 내용이었으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연구비를 받았습니다. 당시 엠씨스퀘어는 매주 몇 번씩 신문지면에 사용자 후기 전면 광고를 하곤 했는데, 가장 결정적인 광고 즉 ‘KAIST 물리학과 연구실에서 과학적으로 검증된 학습 효과’라는 표현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들은 실험결과를 확신하는 듯 보였습니다. 실제로 엠씨스퀘어를 20분 정도 한 후 공부를 하면 학습효과가 더 높다는 걸 그들이 내부적으로 확인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재현 가능한지’ 이 실험을 제가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섭외해 준 피험자들, 엠씨스퀘어를 사용해 본 적 없는 학생들, 엠씨스퀘어를 사용한지 석 달 된 학생들, 오래 사용해 숙련된 학생들 약 40명을 대상으로 8개 뇌인지행동실험을 진행하고, 뇌파 분석을 했으며, 32개 뇌인지 지표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 엠씨스퀘어를 한 그룹이 32개 지표 중 겨우 3개 지표에서 학습 상승 효과가 나타나긴 했는데, 그마저도 ‘엠씨스퀘어를 머리에 썼으나 실제로는 작동시키지 않고 그냥 20분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쉬었다가 학습을 시작한 그룹’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습니다.
뇌과학에서는 이런 실험 그룹을 sham그룹이라고 부릅니다. 장치에 의한 효과인지 플라시보 효과인지 구별하기 위해서 장치를 썼으나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은 그룹과 비교를 하는 거지요.
다시 말해, 엠씨스퀘어를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잠시 가만히 앉아있다가 마음을 추스르고 공부를 하면 집중이 더 잘 된다, 즉 뇌파학습기의 효과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연구비를 받았으나 ‘유의미한 학습 효과가 없다’는 결과보고서를 쓴 힘없는 대학원생이 겪었을 고초를 여러분은 짐작하지 못합니다. (지도교수는 거액의 연구비를 받았으나, 저는 이 실험을 하는 동안 추가로 인건비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이 회사는 신문 전면 광고에 학습 효과에 대한 결론은 언급하지 않은 채, ‘KAIST 물리학과에서 실험한’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광고를 해서 화가 났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이 회사는 경영 악화로 휘청거리다가 이제는 뇌파학습기가 아니라 마음을 안정하는 장치로 이 장비를 팔고 있으며, 몇 해 전 회장님을 만나서 웃으며 옛 얘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3. 비슷한 시기인 1998년 무렵입니다. 뇌호흡을 주창하는 곳에서 뇌호흡 수련자들이 ‘초감각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검증해 달라고 찾아오셨습니다. 뇌호흡 수련자들이 안대로 눈을 가린 채 사물을 투시하는 등 오감을 통하지 않고 외부 정보를 인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이 오랜 수련자들과 함께 안대와 카드 등 실험 기구들까지도 준비해서 찾아오겠다고 하더라구요.
이 실험도 ‘제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저희는 남녀 중고등학생 3-4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게 됐습니다. 철판 밑에 카드를 놓고 안대까지 한 상태에서 투시로 어떤 카드인지 알아맞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뇌파도 측정하였습니다.
결과가 어땠을까요? 그들은 철판 밑 카드의 색깔이나 모양을 대체로 정확히 맞췄습니다.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제가 누구입니까? 제가 준비한 안대와 카드로 실험을 해보자고 제안했고, 제가 미리 준비해둔 안대와 카드로 실험을 다시 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제대로 맞추지 못했습니다. 저는 카드에 도형이나 색깔 대신 글자를 썼습니다. 학생들이 당황하는 모습이 지금도 머릿속에 선합니다.
그 후 뇌호흡 창립자는 한국뇌과학연구원을 만들어 ‘초감각 인지능력을 재현하는데 성공했다’고 하고, 이들에 관한 연구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최소한 제가 실험했을 때에는 재현되지 않아, 저는 아직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요....
저는 29살에 ‘과학콘서트’라는 책으로 일찍 이름이 알려지고 KAIST라는 과학적 귄위를 가진 학교의 교수라는 이유로, 숱한 유사과학자들을 만났습니다. 여러분은 저보다 더 많은 ‘시간여행 장치’와 ‘영구 기관’의 도면들을 보신 적이 없으실 겁니다. 지금은 뜸하지만 매년 10명 이상은 학교로 찾아오셨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제게는 ‘제 뇌가 정부로부터 해킹을 당하고 있어요’, ‘꿈에 로또 번호 3개가 매주 보여요’, ‘옆 사람들이 속으로 하는 생각이 제겐 소리로 들려요’ 등을 주장하거나 호소하는 분들이 매년 20-30통은 이메일을 보내옵니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가능한 범위 안에서, 그분들의 말씀을 다 들어드립니다. 지금은 너무나 매번 뻔한 레파토리라서 대응을 잘 안 하지만, 예전에는 실험도 모두 해드렸습니다. 함께 검증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있으면 함께 실험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 중에서 ‘단 한 건도’ 재현된 적은 없습니다!
심지어, 옆 사람의 생각이 소리로 들린다는 사토라레 같은 능력을 가진 분은 정신과 의사선생님이셨기 때문에 실험결과가 자못 흥미롭기도 했는데, 실험을 시작하자 갑자기 두통이 온다며 그래서 옆 사람의 생각이 안 들린다고 하시더니, 두통이 나으면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셨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분의 두통은 계속 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저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죠.
저는 여러분만큼이나 유사과학, 사이비과학 등 과학을 참칭하는 모든 것들을 혐오합니다. 하지만 그들을 무시하거나 조롱하지 않습니다. 페이스북에서 근엄하게 꾸짖지도 않습니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별로 없으니까요.
놀랍게도, 그들의 주장을 경청하고, 과학적으로 조목조목 반박해드리면, 진지하게 들어주는 과학자에 고마워 하시고, 결국 잘못 생각했다고 인정하고 감사해 하십니다.
신뢰할 만큼 재현가능하지 않으면 절대 믿지 않으며, 결정적인 증거가 나타나면 언제든 받아들일 태도를 가지려 합니다. 어떠한 것도 ‘과학의 연구대상’이지만, 결코 과학적 접근과 태도를 포기하지 않으며, 근거없이 쉽게 믿지 않습니다.
허나, 저는 백에 하나, 아니 백만 분의 하나라도 과학적 진리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열린 태도’로 그들을 보려 하는 것이 과학자의 태도라고 믿습니다.
왜 그런 줄 아세요? 그게 훨씬 흥미진진한 과학자의 삶을 살게 해줍니다. 저는 타임머신을 발명했다며 자신의 도면을 열심히 설명하는 그 분의 뇌가 너무나 궁금합니다.
추신: 언론에 공개되길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끼리만 봐요.
https://m.cafe.daum.net/readandchange/a1WI/51
https://www.youtube.com/watch?v=rJnTm91mWL0
'경영과 세상살이 > 지혜로운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갈등(葛藤)의 의미 (0) | 2023.09.06 |
---|---|
登徒子好色賦(등도자호색부) (0) | 2023.08.10 |
신이 기도에 응답하는 방법 _ 영화 '에반 올마이티' 중에서 (0) | 2023.07.26 |
ChatGPT 활용과 원리 _ 성원용 교수 강의 _230621 (0) | 2023.06.21 |
이공계 인재들에게 의사소통 교육이 필요하다? (0) | 2023.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