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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 #63 복은 화에 기대어 있다

by 변리사 허성원 2022. 3. 12.

복은 화에 기대어 있다

 

미국 앨라배마주의 엔터프라이즈에는 도시 한가운데에 동상이 하나 서있다. 여신이 커다란 벌레 한 마리가 담긴 바구니를 머리 위로 들고 있는 모습이다. 벌레는 원래 새끼손가락 손톱보다도 작은 바구미의 일종으로서, 목화 꽃이 필 무렵 어린 꽃을 갉아먹어 농사를 망치는 해충이다. 그 동상에는 이런 안내판이 있다. “이 기념물은 우리에게 번영을 가져다준 바구미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담아 엔터프라이즈 시민들이 세운 것이다.”

무슨 이유로 기념물까지 세워 해충의 고마움을 기리는 것일까? 남부에 위치한 그 지역은 전통적으로 목화 농사를 생업으로 하였다. 그런데 1800년대 말에 들어 바구미가 극도로 기승을 부려 농사를 완전히 망쳐놓았다. 그로 인해 빈곤과 질병으로 힘들어하던 사람들은 견디다 못해 목화를 포기하고 땅콩을 주 작물로 대체하였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학섬유가 대량 공급되면서 목화 산업은 급속히 사양산업으로 전락한 것이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은 일찌감치 작물을 전환하였기에 다른 남부 지역들과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고 번영을 누렸다. 이에 해충이 가져다준 화가 오히려 큰 행운이 되었기에 그 고마움을 기리면서, 기회는 재앙의 탈을 쓰고 나타난다는 가르침을 오래 기억하고자 기념물을 세운 것이다.

생업을 바꾸게 만든 큰 재앙이 그들에게 변화의 기회를 제공한 행운이 된 것이니, 말 그대로 전화위복(轉禍爲福) 혹은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좋은 사례라 할 것이다. 이같이 불운 혹은 불행 속에 숨은 행운이나 축복을 영어에서는 '위장된 축복'(Blessing in disguise)이라 부른다. 이렇게 재난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위장 축복’은 개인의 인생, 기업 활동 혹은 국가의 운명 등에서 심심찮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많은 투자와 함께 심혈을 기울인 기술 개발이 실망스런 실패로 끝났지만 그 과정에서 엉뚱한 다른 기술이 발견되어 예상치 못한 성공의 동력이 되어주는 세렌디피티의 경우가 그러하다.

한동안 시끄러웠던 일본과의 경제 전쟁도 우리나라의 산업에는 '위장 축복'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은 20197월에 마치 기습공격을 하듯 갑작스레 수출규제 조치를 발표하였다. 대일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였던 반도체 공정의 3대 핵심 소재들에 대해서였다. 많은 우려가 있었고 정치적으로도 논란이 거세었지만, 우리 정부와 업계는 소재를 무기화하여 우리 산업에 타격을 가하고자 한 일본의 저열한 처사에 굴복하지 않고 의연히 대응하였다. 이참에 탈일본 소재 자립의 기반을 구축하여 우리 산업의 자립성과 건실성을 제고하고자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결국 2년이 지나지 않아 3대 소재뿐만 아니라 다른 소재, 부품, 장비에 관련된 많은 핵심 품목에 대해서까지 일본 의존도를 대폭 낮출 수 있었다. 결국 일본의 경제 전쟁 도발은 우리의 산업구조를 건강하게 만들어준 축복이 되었다. 그런 기회를 제공해준 아베 전 수상에게 감사의 뜻으로 기념물이라도 건립하는 건 어떨까 싶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이 위장된 축복인지 여부를 간파한다. 혹은 자신의 불운이나 불행을 스스로 축복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자전거 점포에서 심부름꾼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으나, 내쇼날, 파나소닉 등을 포함한 570개 기업을 거느린 그룹 총수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하느님이 주신 세 가지 은혜 덕분에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 첫째 집이 몹시 가난해 어릴 적부터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 힘든 일을 하며 세상살이에 필요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둘째 태어날 때부터 몸이 몹시 약해 항상 운동에 힘써 왔기 때문에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셋째 나는 학교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던 덕분에 모든 사람을 다 나의 스승으로 여기고 누구에게나 묻고 배우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처럼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불운을 은혜로운 축복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지혜와 태도를 가졌다면 어떠한 화()도 복()이 되게 만들고 어떤 실패도 성공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善因禍而爲福, 轉敗而爲功. _ 史記 管晏列傳). 시련과 역경은 어리석은 자에게는 나아감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지만, 지혜로운 자에게는 성공과 번영으로 안내하는 든든한 돌계단의 섬돌이 된다. 그래서 복은 화에 기대어 있다(禍兮福之所倚 _ 도덕경)’고 한다.

 

 

The historical marker in Enterprise, Alabama describing the significance of the stat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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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_ 도덕경 제58장
화에 복이 기대어있고, 복에 화가 엎드려있으니 그 끝을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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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은 국정을 수행하면서 화가 될 것도 복이 되게 하고, 실패할 것도 성공시켰다. 
其為政也, 善因禍而為福, 転敗而為功. _ 권62 「관안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