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명은 하늘에서 받는가 지게문에서 받는가
삼국지를 읽다가 책을 내던지며 한숨짓게 되는 장면이 몇 번 있다. 관우와 유비가 죽을 때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제갈량의 죽음이 가장 안타깝고 드라마틱하다. 제갈량은 그의 신묘한 능력에 걸맞게 자신의 죽음을 예지한다. 오장원에서 위나라 군대와 대치하던 중에 천문을 살펴보고 장수 강유에게 말한다. "삼태성 가운데에 객성이 침범하여 배나 밝고 주인별은 그 빛이 어두우니 내 명이 머지않았다." 그 말을 들은 강유가 물었다. "천상(天象)이 그러하다면 어찌하여 하늘에 빌어 액을 푸는 방법을 쓰지 않으십니까?"
이에 제갈량은 액을 풀어 명을 연장하기 위한 보강답두(步罡踏斗)를 시행한다. 북두칠성을 따라 49개의 등을 밝히고 이레 동안 보법에 따라 걷는 것이다. 엿새째 밤까지 모든 등들이 밝게 제 자리를 잘 지켰다. 그런데 장수 위연이 급한 보고를 위해 영채에 뛰어 들다 그만 주등을 밟아 꺼트리고 말았다. 제갈량은 탄식한다. "죽고 사는 것은 정해진 운명이 있으니 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구나." 그러고 며칠 후 제갈량은 54세의 삶을 마감한다.
어릴 적 이 대목을 읽으면서 제갈량과 함께 탄식했다. 그 엄한 정성을 드리면서 사람의 출입을 어찌 그리 허술히 통제했단 말인가. 그리고 삼태성이 재상의 명을 관장한다면, 천하의 많은 나라에 다들 재상이 있을 터인데 왜 하필이면 제갈량의 운명인가. 무엇보다 '운명'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제갈량의 탄식처럼 인간은 정녕 주어진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단 말인가. 그렇다면 삼국지의 그 많은 영웅들은 왜 그토록 번민하고 갈등하고 죽고 죽이며 절절한 드라마를 만들어낸 것일까. 과연 운명이란 무엇인가.
제(齊)나라의 명재상 맹상군 전문(田文)은 정곽군 전영(田嬰)의 천첩에게서 태어났다. 전영은 태어난 날이 불길하다 하여 아이를 버리라고 했지만 어미는 숨겨 키웠다. 전영이 뒤늦게 알고 어미를 심히 책망하자, 다 자란 전문이 그 이유를 아비에게 물으니, 전영은 “5월 5일에 태어난 아이는 지게문 높이만큼 자라면 부모에게 이롭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이에 전문이 “사람이 태어날 때 하늘에서 명을 받습니까? 아니면 지게문에서 명을 받습니까?” 하니, 전영은 말이 없었다. 전문은 “하늘에서 명을 받는다고 하면 아버님은 무슨 걱정을 하십니까? 굳이 지게문에서 명을 받는다고 하면, 그 지게문을 높여버리면 누가 거기에 닿을 수 있겠습니까?”
어린 아들을 내다버리려 했던 아비의 미신은 합리적인 논리에 허술하게 무너졌다. 그러나 운명론자는 세상만사가 미리 정해진 피할 수 없는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고 믿는다. 그 법칙의 작동원리는 과학이나 논리로는 설명되지 못한다. 그저 인간사 일체를 관장하는 어떤 전능의 힘이 존재한다고 여기면서, 대부분 주술, 역술, 무속, 점성술, 풍수, 미신 등과 같은 초자연적 비과학적 현상을 통해 운명을 알아내고자 한다. 이런 삶의 태도는, 인간의 과학 기술과 지식이 덜 발달했을 옛날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 과학의 시대에서는 진정 부자연 불합리의 착오(錯誤)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운명론에 따르면 운명은 정해져 있고 피할 수 없다. 인간은 그저 체념하고 순종하면 된다. 체념과 순종은 자유의지가 거세된 상태이다. 그런 대중은 권력 집단이 수월하게 다룰 수 있어, 옛날의 권력자들은 운명론을 통치 수단으로 이용하여 왔다. 하지만 이제 ‘자유의지’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가치임을 각성하고 있다. 자유의지가 있기에 인간의 궁극적인 윤리이자 최고의 선인 ‘사랑’이 존재하고, 민주주의, 자본주의 등과 같이 이 시대를 움직이는 이념들이 순조로이 작동될 수 있는 것이다. 순종과 거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없고 누군가의 선택이나 명령에만 따라야 하는 삶을 상상해보라. 그곳은 노예의 세상이다.
인류는 역사를 통해 쟁취하고 진보시킨 문명을 바탕으로 미신과 운명론을 밀어내고, 이성에 따라 각자의 고귀한 자유의지로 행동할 수 있도록 진화해왔다. 그러니 이 밝은 시대에 그 음산한 운명론이나 미신으로 고귀한 자유의지를 위축시키려는 시도는 반문명적이고 반역사적이며 그러기에 결코 용납될 수 없다. 혹여 나타날지 모르는 그런 리더들에게 한비자는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군주가 좋은 날과 때를 가려 쓰고, 귀신을 섬기며 점과 굿을 믿고, 제사를 좋아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用時日 事鬼神 信卜筮 而好祭祀者 可亡也 _ ‘亡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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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에게는 아들이 40여명이 있었는데, 천첩이 낳은 아들 이름이 문이었고, 문은 5월 5일에 태어났다. 전영은 그 어미에게 “아이를 키우지 말라.”고 했지만, 그 어미가 몰래 거두어 길렀다. 아이가 자라자 그 어미는 그 형제들을 통해 전영에게 그 아들 전문을 보게 했다. 전영이 그 어미에게 화를 내며 “내가 너에게 이 아이를 버리라고 했는데, 감히 그를 키웠으니 어찌된 것이냐?” 하니, 전문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아버지께서 5월의 아들을 키우지 못하게 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니, 전영이 “5월에 태어난 아이는 키가 지게문 높이만큼 자라면 장차 부모에게 이롭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전문이 “사람이 태어날 때 하늘에서 명을 받습니까? 아니면 지게문에서 명을 받습니까?” 하니, 전영이 말이 없었다. 전문은 “하늘에서 명을 받는다고 하면 아버님은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굳이 지게문에서 명을 받는다고 하면 그 지게문을 높이면 될 것이니, 누가 거기에 닿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전영이 “아들은 그만하라.”라고 했다.
<田嬰>有子四十餘人, 其賤妾有子名<文>, <文>以五月五日生. <嬰>告其母曰: “勿擧也.” 其母竊擧生之. 及長, 其母因兄弟而見其子<文>於<田嬰>. <田嬰>怒其母曰: “吾令若去此子, 而敢生之, 何也?” <文>頓首, 因曰: “君所以不擧五月子者, 何故?” <嬰>曰: “五月子者, 長與戶齊, 將不利其父母.” <文>曰: “人生受命於天乎? 將受命於戶邪” <嬰>黙然. <文>曰: “必受命於天, 君何憂焉. 必受命於戶, 則可高其戶耳, 誰能至者!” <嬰>曰: “子休矣.” _ 孟嘗君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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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가 좋은 날과 때를 가려 쓰고, 귀신을 섬기며 점과 굿을 믿으면서, 제사 지내기를 좋아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用時日 事鬼神 信卜筮 而好祭祀者 可亡也.) _ 한비자(韓非子) 망징(亡徵) 편
** (from 이순신포럼 이부경)
답진도독린서(答陳都督璘書, 1598.11.17. 戊戌)
< 진린 도독이 이순신에게 보낸 편지 >
내가 밤이면 천문을 보고 낮이면 사람의 일을 살펴왔는데, 동방에 대장별이 희미해져 가니 멀지 않아 공(公)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공이 어찌 이를 모를 리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어찌하여 무후(武候 : 제갈량)의 예방하는 법을 쓰지 않으십니까?
< 진린 도독에게 답하는 글 (答陳都督璘書) >
저는 충성이 무후(武候)만 못하고, 덕망이 무후만 못하고, 재주가 무후만 못합니다. 세 가지 모두 다 무후만 못하므로 비록 무후의 법을 쓴다 한들 어찌 하늘이 들어줄 리 있겠습니까?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 에서 발췌
위의 기록들은 진린이 보낸 편지에 대하여 무술년 11월 17일에 이순신이 쓴 답장으로, 중국 청산도에 있는 진린(陳璘) 도독의 비문에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이순신의 편지를 받은 이튿날 과연 큰 별이 바다에 떨어지는 이변이 있었으며 1598년 11월 19일(庚子) 오전 10시경(巳時),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은 전사하였습니다.
** <삼국연의(三國演義) 중 제갈공명의 보강답두(踏罡步斗)>
제갈공명이 말했다.
"내가 보니 삼태성(三台星) 가운데 손님별(客星)이 배나 밝고, 주인별(主星)이 뭇별과 어울리는데, 그 빛이 어둡네. 하늘의 상(天象)이 이러하니 내 운명을 알 만하네."
강유가 물었다.
"천상(天象)이 그러하다면 승상께서는 어찌하여 기도를 드려 액을 푸는 방법으로 만회하지 않으십니까?"
제갈공명이 대답했다.
"내 이전부터 비는 방법이여 잘 알지만 하늘의 뜻이 어떠한지 모르겠네. 자네는 갑옷 입은 무사 49명을 데리고 장막 밖에 빙 둘러서되 각기 검은 깃발을 들고 검은 옷을 입히게. 나는 장막 안에서 북두(北斗)에 빌겠네. 만약 이레 동안 주등(主燈)이 꺼지지 않으면 내 목숨이 12년(一紀) 늘어나고, 만약 등이 꺼지면 나는 틀림없이 죽네. 그러니 관계없는 잡인들은 절대 들여보내지 말게. 무릇 일에 쓰이는 물건들은 어린아이 둘을 시켜 나르게 하게."
영채 속에서 굳게 지키던 사마의가 어느 날 밤, 하늘을 우러러보다가 대단히 기뻐하며 하후패에게 말했다.
"내가 보니 장수별이 자리를 잃었으니 공명은 틀림없이 병에 걸려 오래지 않아 반드시 죽는다. 너는 1000명 군사를 거느리고 오장원에 가서 정탐해보아라. 촉군이 우왕좌왕하면서 나와 맞받아 싸우지 않으면, 공명은 틀림없이 병에 걸린 것이다. 그러면 틈을 타서 치겠다."
공명이 장막 안에서 하늘에 비는데 벌써 여섯 밤이 되도록 주등이 환해서 속으로 매우 기뻤다. 강유가 장막에 들어가 보니 마침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검을 들어 북두칠성의 모양을 따라 걸으면서(踏罡步斗) 장수별을 누르고 있었다(壓鎮將星).
이떼 느닷없이 영채 밖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울렸다. 강유가 막 나가 물어보게 하려는데, 위연이 나는 듯이 뚸어 들어오면서 소리쳤다. " 위군이 왔습니다."
급히 발을 내디디던 위연은 그만 주등을 밟아서 꺼버렸다. 제갈량은 검을 내던지고 한숨을 쉬었다.
"죽고 사는 것은 정해진 운명이 있으니 빌서어서는 아니 되는구나!"
위연은 황송해서 땅에 엎드려 죄에 벌을 청했다. 강유가 분노하여 검을 뽑아들고 위연을 죽이려 했다.
이야말로..
만사는 사람에게 달려있지 않았으니 萬事不由人做主
마음만으로 운명과 싸위 어렵더라 一心難與命爭衡
孔明嘆曰:「吾心昏亂,舊病復發,恐不能生矣!」是夜孔明扶病出帳,仰觀天文,十分驚慌:入帳謂姜維曰:「吾命在旦夕矣!」維曰:「丞相何出此言?」孔明曰:「吾見三台星中,客星倍明,主星幽隱,相輔列曜,其光昏暗:天象如此,吾命可知!」維曰:「天象雖則如此,丞相何不用祈禳之法挽回之?」孔明曰:「吾素諳祈禳之法,但未知天意若何。汝可引甲士四十九人,各執皂旗,穿皂衣,環遶帳外;我自於帳中祈禳北斗。若七日內主燈不滅,吾壽可增一紀;如燈滅,吾必死矣。閒雜人等,休教放入。凡一應需用之物,只令二小童搬運。」姜維領命,自去準備。
時值八月中秋,是夜銀河耿耿,玉露零零;旌旗不動,刁斗無聲。姜維在帳外引四十九人守護。孔明自於帳中設香花祭物。地上分布七盞大燈,外布四十九盞小燈,內安本命燈一盞。孔明拜祝曰:「亮生於亂世,甘老林泉;承昭烈皇帝三顧之恩,託孤之重,不敢不竭犬馬之勞,誓討國賊。不意將星欲墜,陽壽將終。謹書尺素,上告穹蒼。伏望天慈,俯垂鑒聽,曲延臣算,使得上報君恩,下救民命,克復舊物,永延漢祀。非敢妄祈,實由情切。」拜祝畢,就帳中俯伏待旦。次日,扶病理事,吐血不止;日則計議軍機,夜則布罡踏斗。
卻說司馬懿在營中堅守,忽一夜仰觀天文,大喜,謂夏侯霸曰:「吾見將星失位,孔明必然有病,不久便死。你可引一千軍去五丈原哨探。若蜀人攘亂不出接戰,孔明必然患病矣。吾當乘勢擊之。」霸引兵而去。孔明在帳中祈禳已及六夜,見主燈明亮,心中甚喜。姜維入帳,正見孔明披髮仗劍,踏罡步斗,壓鎮將星。忽聽得寨外吶喊,方欲令人出問,魏延飛步入告曰:「魏兵至矣!」延腳步急,竟將主燈撲滅。孔明棄劍而嘆曰:「死生有命,不可得而禳也!」魏延惶恐,伏地請罪。姜維忿怒,拔劍欲殺魏延。正是:萬事不由人做主,一心難與命爭衡。
未知魏延性命如何,且看下文分解。 _ 三國演義/第103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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