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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옳음과 옳음 사이의 갈등 _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

by 변리사 허성원 2022. 1. 18.

옳음과 옳음 사이의 갈등 _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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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이 잦은 직원이 있었다. 그 점을 지적했더니 나름 변명 겸 반발을 한다. 아침 잠이 많아 어쩔 수 없이 좀 늦게 출근하긴 하지만 충분히 늦게 남아 일을 해서 해야할일은 어김없이 제대로 한다는 것이다. 그 말도 수긍이 갔다. 이런 직원이 더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근태 규정을 바꾸어 늦은 출근을 허용하는 시차출근제를 도입하였다. 정상 출근보다 1시간 늦은 출근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시차 출근자가 한둘 있는 듯 하더니 얼마 가지 않아 이용자가 없어졌다. 늦게 출근해보니 분위기, 모임 등과 관련하여 편치 않은 점들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C회장이라는 잘 아는 의사가 한 분 있다. 2년전 내출혈로 쓰러졌다가 놀라운 의지와 노력으로 거의 정상을 회복하여 지인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그런 그가 최근 코로나 백신 때문에 심기가 많이 불편하다. 고혈압 등의 지병이 있어 코로나 백신 접종을 삼가하였는데, 백신 패스가 시행되어 사회 활동에 지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의 여러 큰 단체에서 맡고 있는 묵직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어, 정부의 방역정책에 대한 불만이 대단히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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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당국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엄중한 세계적 팬데믹 상황에서 국가 전체의 감염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개인의 개별적인 사정을 일일이 배려하고 누구나 수긍이 가는 합리적인 방법을 추구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전체를 위해 개인의 권익이 부당히 희생되는 것도 곤란한 문제다.

법과 제도의 집행에는 항상 갈등이 존재한다. 작은 조직의 규칙이든 국가의 법률이든 그 존재이유는 정의 즉 옳음의 실현이다. 그런데 그 옳음이 오직 하나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데 갈등의 원인이 있다. 집단에게 옳은 것이 개인에게 부당할 수 있다. 어느 개인에게 좋고 옳은 것이 다른 개인에게는 나쁘고 그른 것일 수 있다. 이를 '합목적성'과 '법적 안정성'의 충돌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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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목적성'이란 법이 사회의 보편적 가치 기준이나 목적에 부합하여야 한다는 이념이다. 법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서 평등하고 정의롭게 적용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를 잘 표현한 것으로서,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국민이 원하는 것이 법이다,' '민중의 행복이 최고의 법률이다,' '목적은 모든 법의 창조자이다' 등의 법언이 있다. 법 집행이 모든 개별적 구체적 상황에서 적절하여야 한다는 '구체적 타당성'을 추구한다. 이 이념의 입장에서는 '악법은 법이 아니다.' 

'법적 안정성'은 국민의 생활과 사회를 규율하는 데 있어서의 안정성을 의미한다. 법이 사람에 따라 혹은 때에 따라 달리 적용되어 예측 불가하다면 법적 안정성이 매우 낮은 것이다. '구체적 타당성'에 기초한 '합목적성'을 너무 추구하면, '법적 안정성'이 손상되어 법이 오히려 사회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법의 집행에 있어서는 '법적 안정성'의 이념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법적 안정성을 강조하면 '악법도 법이다.' 

'정의의 극치는 부정의의 극치다.' 보편적 정의를 극도로 추구하면 구체적 정의는 지킬 수 없다는 말이다. 방역패스는 질병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정부가 그것을 강하게 밀어부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을 추구한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사유로 백신을 맞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지극히 불공정하고 부정의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전시에 준하는 비상 상황이라 여기고 개인의 권익을 잠정적으로 억제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소송이 계속 중에 있고, 일부 판결은 구체적 타당성을 고려하여 방역지침에 제동을 걸고 있다.

'구체적 타당성'(합목적성)과 '법적 안정성'은 그 본질상 양립하기 어렵다. 상호 모순되는 이념이다. '법적 안정성'을 추구하면 구체적 정의를 실현할 수 없고, 구체적 타당성에 집착하면 법적 안정성이 무너진다. 그러니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절묘한 균형이 필요하다. 그래서 모든 법에는 양 이념을 최대한 배려하여 상호보완적으로 규정되고 집행되도록 하려는 노력이 숨어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모든 국민에게 조금의 불편부당이 없는 공평무사한 법의 자비를 항상 기대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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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음과 옳음의 다툼 사이에서도 희생자는 생겨난다. 그런 희생이 존재하였기에 사회는 진보와 성숙의 역사를 이어왔다. 우리 사무소에서 시차출근제를 제정한 것은 개별 직원들의 니즈에 따라 구체적 타당성을 추구한 것이지만, 결국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구체적 타당성은 명분을 잃고 법적 안정성만 살아남았다.

방역패스의 피해자인 C회장은 법적 안정성의 희생자로서 자신의 개별적 정의를 구하기 위해 외치고 있다. 그의 자유가 억압되고 그로 인해 감수하여야 할 불편과 희생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하지만 개인적 정의를 위해 정부 정책 시행의 안정성이 흔들리고 혼란이 발생하는 것도 선뜻 받아들하기 어렵다. 개인의 주장도 나름 옳고 정부의 억지스런 집행도 나름 옳다. 옳음과 옳음이 이렇듯 첨예하게 갈등하고 다투고 있는 것이다.

** (사족)
한적한 산길을 걸으며 그 지긋지긋한 마스크를 벗어버리고 시원하게 맑은 공기를 들이마신다. 그러다 앞에 누군가가 나타나면 반사적으로 허겁지겁 마스크를 꺼내 쓴다. 그렇게 꺼내쓰면서도 '이 너른 산속에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고 스스로에게 반문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마스크를 쓰지 않고 나를 지나쳐가는 사람이 있다. 순간 어색할 뿐만 아니라 마음이 적잖이 불편하다. 내로남불의 심리이다. 

결국 마스크 쓰기의 의미 중 상당 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 예방효과는 차치하고라도, 내가 쓰고 다녀야만 나를 보는 사람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정한 이 세상에 나까지 불안과 불편을 보탤 필요는 없다. 마스크를 다부지게 쓰고 다녀야할 다른 의미를 하나 더 새로이 발견한 셈이다.

불교에서는 베풂 즉 보시의 일종으로 ‘무외시(無畏施)’라는 것이 있다. 재보시(財布施), 법보시(法布施)와 함께 불교의 3대 보시 중 하나이다. 재보시(財布施)는 재물을 베푸는 것이고 법보시(法布施)는 가르침을 베푸는 것이며, 무외시(無畏施)는 사람들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보시이다. 즉 남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다. 부처님의 자애로운 미소를 떠올려보면 된다.
그러니까 재보시는 사람들의 손에, 법보시는 머리에, 무외시는 가슴에 베푸는 보시라 불러도 되겠다. 아무래도 가슴에 베푸는 보시가 손이나 머리에 베푸는 것보다 큰 울림을 줄 것같다. 

여러가지로 혼란한 시기이다. 이런 시기에는 그저 묵묵히 지침에 성실히 따르는 것은 작은 무외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적으로도 우리 국민들만큼 별 저항없이 방역지침을 잘 지키는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개개 국민들이 방출하는 무외시를 모으면 그 양과 강도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나라를 경제 및 문화의 강국으로 만드는 에너지가 된 게 아닐까. 

 

정의의 여신 디케.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손엔 칼을 들고 있다. 눈을 가린 것은 공정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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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여신은 한 손에 저울을 다른 손에 칼을 들고 있다. 저울로는 권리의 무게를 재고 칼로는 정의를 집행한다. 저울 없는 칼은 무자비한 폭력이고, 칼 없는 저울은 무기력하다. 저울과 칼은 함께 있어야 한다. 법이 완전한 상태가 된다는 것은, 정의의 여신이 든 칼의 권력이 그녀의 저울 다루는 기량과 동등하게 된 때를 가리킨다." _ 루돌프 폰 예링의 '법의 기원' 중에서

Justice which, in one hand, holds the scales, in which she weighs the right, carries in the other the sword with which she executes it. The sword without the scales is brute force, the scales without the sword is the impotence of law. The scales and the sword belong together, and the state of the law is perfect only where the power with which Justice carries the sword is equalled by the skill with which she holds the scales. (from 'ORIGIN OF THE LAW' by Rudolf von Jher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