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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그게 무슨 사과냐?

by 변리사 허성원 2022. 1. 14.

그게 무슨 사과냐?

 

사람은 누구나 작든 크든 실수나 잘못을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그 잘못으로 인해 누군가 피해를 입었다면 응당 사과를 해야 한다. 그런데 자존심 때문이나 잘못에 대해 죄의식이 없으면 사과가 선뜻 행동으로 표현되지 못한다. 해야할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로 인해 일어나는 사후의 문제는 스스로 책임지면 될 것이다.

사과를 할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많은 경우 상황에 떠밀려 사과를 억지로 한다고 했는데, 그게 긁어 부스럼이 되어 상황을 악화시기도 한다.
사과의 목적은 용서를 받고 신뢰를 되찾는 것이다. 사과의 방법이 적절치 못하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부적절한 사과는 작은 위기를 오히려 더 키우고, 적절한 사과는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킨다. 

"책상을 탁쳤더니 억하고 말라서"라는 광고 카피가 있었다. 무신사의 양말 광고이었다. 박종철을 고문치사한 공안 경찰의 발언을 패러디했으니 비난과 항의가 빗발쳤다. 무신사는 지체하지 않고 연거푸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모든 잘못의 시인, 담당자 징계, 재발 방지 대책, 박종철기념사업회에 후원 의사 등을 신속히 발표하였다. 논란은 곧 수그러들고 회사의 신뢰는 오히려 좋아졌다. 적절한 사과가 위기를 기회로 만든 것이다.
그 반대로 임블리는 작은 위기를 눈덩이처럼 더 키워 회사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곰팡이 핀 호박즙 사건은 즉각적인 조치만 취했더라면 조용히 가라앉을 일이었다. 회사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성의없이 늑장 대응하다가 결국 문제가 된 것 일부만 교환해주겠다는 등 소극적으로 대처하다 비난을 키웠다. 거기다 명품 복제 등 다른 일까지 겹쳐 코너에 몰리게 되자 본격적으로 사과를 하였지만 이미 소비자들의 믿음은 떠난 상태였다. 그때 입은 타격은 아직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나로 인해 동료와 고객이 한 명이라도 발길을 돌린다면 어떤 것도 정당성을 잃는다! 저의 자유로 상처받은 분이 있다면 전적으로 제 부족함입니다”

이 말은 신세계 부회장의 정용진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과문(?)이다. 한동안 멸공놀이로 사회적 논란이 증폭되어 주가가 폭락하고 노조가 반발하자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이 메시지를 보고 언론들은 그가 '사과'를 하였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사과냐? 도저히 사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으며 그 잘못을 치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리고 반성과 재발 방지의 약속도 없다. 그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한 넋두리 정도에 불과하다.

조건부 사과

특히 거슬리는 것은 '조건부'이다. '~돌린다면', '~있다면'과 같은 조건은 비겁한 인간들이 즐겨 쓰는 언어이다. '유가족이나 피해자분들께 아픔을 드렸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 유감을 표합니다'와 같은 얍삽한 사과의 표본이다. 이런 조건부 사과는 상황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거나 희석하는 짓이다. 발길을 돌리거나 상처받거나 아파했던 사람에게 상당한 책임이 있음을 은근히 지적하는 말이다. 자신은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피해자들이 괜히 오해하여 그깟 일로 발길을 돌리거나 상처를 받았다고 되려 질타하는 뉘앙스가 깔려있다.
피해자가 너무 유약하거나 관용이 부족해서 일어난 일이니, 그들이 아파하기에 좀 불편한 마음이 있긴 하지만, 나는 반성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잘못을 저지른 자아와 반성해야 할 자아를 철저히 분리하고 있다.

그리고 '조건부 사과'는 사과의 범위를 상대가 표현한 행위나 그들에게 일어난 상황에만 한정한다. 발길을 돌리거나 상처 입은 그 부분에 대해서만 거론하겠다는 말이다. 신세계나 이마트를 여전히 이용하는 사람이나 상처를 입지 않은 사람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피해'와 '가해자의 과오'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많이 희석된다. '가해자의 과오'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의 과오에 대한 사과는 필요가 없다. 오로지 쓸데 없이 발길을 돌리거나 성처를 입은 사람 그 사람들에게만 부담을 느낄 따름이다.

 

사과의 정석

이 기회에 사과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자. 여러 자료들에서는 좋은 사과의 구성요소로서 3R, 4R 혹은 5R을 꼽고 있다. 여기서는 5R을 정리해본다.

1. 유감(Regret)

"I am sorry"
"나의 언행이 당신에게 정신적 아픔을 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

주체, 행위, 상대의 피해 내용 및 사과의 뜻을 명료히 할 것.

2. 책임인정(Responsibility)

"모든 것은 전적으로 나의 잘못된 인식에 기인한 것이며, 모든 책임을 감수하겠다."

책임의 소재를 명백히 할 것.

3. 보상(Restitution)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여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보상하도록 하겠다. 이 일을 바로 잡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거리낌없이 알려주시길 부탁드린다."

4. 반성(Repenting)

"이 번 일은 나의 오만과 무지의 소치로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임을 굳게 약속한다."

진지한 반성과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

5. 용서 요청(Requesting forgiveness)

1~4번의 이행과 함께 정중히 용서를 빈다.

용서는 가해자를 자유롭게 하는 피해자의 자비이지만, 피해자도 용서를 통해 비로소 그 아픔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사과할 때 하지 말아야 할 것들

1. 변명(사족)

"I'am sorry, but"
"잘못을 사과드리긴 합니다만, ~ "

2. 조건부

"I'am sorry, if~"
"~하다면 죄송합니다."

 

3. 실기

뒤늦은 사과는 다른 폭력일 수 있다.

 

 

** 참고자료

 

The 5 Ways to Apologize Properly, According to Dr. Gary Chapman

Understanding what someone needs from your apology can make it much more effective.

verilymag.com

 

 

Five Languages Of Apology

Five Languages of Apology based on the book Five Languages of Apology by Gary Chapman and Jennifer Thomas

www.slideshare.net

 

 

The Five Ingredients of an Effective Apology

Most apologies don’t work — so here's how to fix them.

www.psychologytoday.com

 

 

잘나가는 패션 온라인몰, 위기 대처엔 극과 극…'사과의 정석' 무신사 vs '무성의 대응' 임블리

잘나가는 패션 온라인몰, 위기 대처엔 극과 극…'사과의 정석' 무신사 vs '무성의 대응' 임블리, 무신사의 9일 빠르고 진정성 있는 사과 임블리의 90일 비판 댓글 삭제·공식 SNS 폐쇄

www.hankyung.com

 

 

“탁쳤더니 억하고…” 박종철 사건 패러디한 광고로 논란된 무신사

양말 광고 게시물에 '책상을 탁쳤더니 억하고 말라서' 문구 사용

www.wikitree.co.kr

 

 

정용진, 노조 비판 하루 만에 ‘멸공 논란’ 사과... “전적으로 제 부족함”

정용진, 노조 비판 하루 만에 멸공 논란 사과... 전적으로 제 부족함 저의 자유로 상처받은 분 있다면 전적으로 제 부족함

biz.chosun.com

 

 

 

[배병삼의 타초경사(打草驚蛇)] 사과란 칼끝 위에 서는 것이다

하늘도 잘못을 저지른다. 비를 내리려면 고루고루 뿌려야 하실 터인데 소의 등을 경계로 한쪽은 빗물이 넘치고 또 한쪽에는 가뭄이 들 때가 그렇다. ‘하늘도 무...

www.busan.com

"그런데 또 사과라니! 사과(謝過)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남에게 용서를 비는 것이다(국어사전). 안회의 ‘철학 하기’는 그나마 자신의 과업에 그치지만, 사과는 타인에게 행하는 것이니 더욱 힘든 일이다. 마음에서 몸으로 나아가, 말로써 부끄러움을 드러내고 체면을 구겨야 한다. 사과의 속내는 실로 복잡하다. 먼저 눈길을 돌이켜 자기 말과 행동을 살펴보아야 하고, 거기서 잘못된 사건을 발견해야 하고, 그것이 잘못인 줄 판단해야 하며, 나아가 부끄러움과 대면하고 느껴야 하며, 또 그것을 말과 글로 남에게 고백해야 한다. 아, 사과란 그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이 자리가 칼끝 위다. 사과의 강을 건너지 못하고 강변을 배회하다 보면, 즉 변명이 늘어지면 제 목숨을 앗는 수가 있다. 다들 자기 등짝은 못 봐도 남의 등은 환히 보이는 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