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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세상살이/열하일기

박지원의 양반전 “세상에 양반보다 더 큰 이문은 없다."

by 변리사 허성원 2021. 11. 13.

박지원의 '양반전(兩班傳)'
한글 번역본 전문(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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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이란 사족(士族)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강원도 정선 고을에 한 양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성품이 무척 어질고 긁읽기를 매양 좋아했다. 이 고을에 새로 부임해오는 군수는 으레 이 양반을 먼저 찾아보고 그에게 두터운 경의를 표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워낙 집이 가난해서 관곡을 꾸어 먹은 것이 여러 해 동안에 1000석이나 되었다. 어느 때 관찰사가 그 고을을 순행하게 되었다. 관곡을 조사해보고 난 관찰사는 몹시 노했다.

"어떤 놈의 양반이 군량에 쓸 곡식을 축냈단 말이냐."

이렇게 호통을 치고 나서 그 양반이란 자를 잡아 가두라고 했다. 명령을 받은 군수는 속으로 그 양반을 무척 불쌍히 여겼다. 하지만 갚을 방도가 없으니 어찌하랴. 차마 잡아다가 가둘 수는 없고 상사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수도 없어, 일은 매우 딱하게 되었다.

이 지경에 이른 양반은 밤낮으로 울기만 할뿐, 아무런 대책도 세울 수 없었다. 그 아내가 남편에게 푸념을 했다.

"당신이 평생 앉아서 글만 읽더니 이제 관곡을 갚을 방도도 없게 되었구려. 에이! 더럽소. 양반 양반 하더니 그 양반이란 것이 한푼 값어치도 못 되는 것이로구려."

그 마을에는 부자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양반이 봉변을 당하게 된 내력을 듣고 집안끼리 의논이 벌어졌다.

"양반이란 아무리 가난해도 항상 존귀하고 영화스러운 것. 나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항상 비천을 면치 못한단 말이야. 말을 한 번 타보지도 못하고, 양반만 만나면 쩔쩔매고 코를 끌고 무릎으로 기어야 하니 참으로 더러운 일이란 말이야. 그런데 지금 양반이 관곡을 못 갚아서 군색을 당하게 되었다니. 이제는 그 양반을 지탱할 수가 없을 거야. 그러니 내가 그 양반을 사서 행세하는 게 어떻겠는가."

의논을 매듭지은 부자는 즉시 양반을 찾아가서, 자기가 관곡을 갚겠노라고 자청했다. 양반은 몹시 기뻐했다. 약속대로 부자가 관청에 나가 그 관곡을 모두 갚아주었다. 군수는 영문을 모르고 깜짝 놀라서 양반을 찾아 까닭을 물었다. 양반은 벙거지를 쓰고 잠방이 바람으로 땅에 엎드려 쩔쩔매면서 '소인' '소인'하고 자기를 낮추고 감히 군수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군수는 더욱 놀라서 양반을 붙들어 일으키면서 말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오. 대관절 왜 이러는 거요?"

그러나 양반은 더욱 황송해하면서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린 채 말했다.

"황송하옵니다. 소인이 양반을 팔아서 관곡을 갚은 것이옵니다. 하오니 이제부터는 저 건너 부자가 양반입니다. 소인이 어찌 다시 옛 모양으로 거만하게 굴 수가 있겠습니까?"

듣고 나서 군수는 감탄하였다.

"참 군자고 양반이오 그려, 그 부자란 사람은! 부자가 되었으면서도 인색하지 않으니 이것은 의리가 있는 것이요, 남의 어려운 일을 자기 일처럼 급하게 여겼으니 이것은 어진 것이요, 낮은 것을 미워하고 높은 것을 사모하니 이는 지혜가 있는 것입니다그려. 이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양반이로군요. 그렇지만 양반을 사사로이 두 사람이서만 매매하고 아무런 증서도 만들지 않고 보면 후일에 반드시 소송이 일기 쉽소, 그러니 내가 고을 사람을 모아놓고 증인을 서주고 증서도 만들어야만 모든 사람들이 신용할 게요. 그리고 군수인 내가 서명을 해주겠소."

이렇게 되어 군수는 마침내 고을 안에 사는 모든 양반들을 불렀다. 그 밖의 농사꾼, 공장, 장사치까지 모두 모이라 했다.
부자는 오른편 높직한 자리에 앉히고, 양반은 뜰 밑에 세워놓았다. 그러고는 증서를 만들어 읽었다.

"건륭 10년 9월일에 이 증서를 만든다. 양반을 팔아서 관곡을 갚았으니 그 값이 곡식으로 1000석이나 된다. 원래 양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글만 읽는 것은 선비요, 정치에 종사하면 대부라 하고, 덕이 있는 자는 군자라고 한다. 무반은 서쪽에 서고 문반은 동쪽에 선다. 그래서 이것을 양반이라고 한다. 이 중에서 너는 맘대로 고르면 된다. 절대로 비루한 일은 하지 말아야 하고, 옛사람들 본받아 그 뜻을 숭상해야 할 것이다. 새벽 오경이면 일어나 촛불을 돋우고 앉아서 눈으로는 코끝을 내려다보고 무릎을 꿇어 발꿈치는 궁둥이를 받친다. 『동래박의』를 마치 얼음 위에 박을 굴리듯이 술술 외워야 한다. 배가 고픈 것을 참고 추운 것도 견디어 내며 입으로 가난하단 말을 하지 않는다. 이를 마주 부딪치면서 뒤통수를 주먹으로 두드리고 작은 기침에 입맛을 다신다. 소맷자락으로 관을 쓸어서 쓰는데, 먼지 터는 소맷자락이 마치 물결이 이는 듯해야 한다. 손을 씻을 때 주먹을 쥐고 문지르지 말며 양치질을 해서 냄새가 나지 않게 한다. 긴 목소리로 종을 부르고 느린 걸음걸음이로 신을 끈다. 『고문진보』나 『당시품휘』를 베끼는데, 깨알처럼 글씨를 잘게 한 줄에 100자씩 쓴다. 손으로 돈을 만지지 않고 쌀값을 묻는 법이 없다. 아무리 더워도 버선을 벗지 않고, 밥을 먹을 때 맨상투 바람으로 먹지 않는다. 밥먹을 때에는 먼저 국부터 마시지 말고 넘어가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젓가락을 방아찧듯이 자주 놀리지 않고 날파를 먹지 않는다. 술을 마실 때 수염을 빨지 않고, 담배를 피울 때 볼이 불러지도록 연기를 들이마시지 않는다. 아무리 화가 나도 아내를 때리지 않고, 노여운 일이 있다고 해도 그릇을 던지지 않는다. 주먹으로 아이들을 때리지 않고, 종놈을 '죽일 놈'이라고 꾸짖지 않는다. 소나 말을 나무랄 때에 그 주인은 욕하지 않는다. 화로에 손을 쬐지 않고, 말할 때 침이 튀지 않게 한다. 소를 잡아먹지 않고, 돈 놓고 노름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100가지 행동이 만일 양반과 틀릴 때에는 이 문서를 가지고 관청에 가서 고치게 할 것이다.

이렇게 쓰고 성주 정선군수가 수결을 하고, 좌수와 별감도 모두 서명을 했다. 이것이 끝나자 통인이 도장을 내다가 여기저기 찍었다. 그 소리는 마치 큰북을 치는 소리와 같았고 찍어놓은 모양은 별들이 벌여 있는 것 같았다.

이것을 호장이 다 읽고 나자 부자는 좋지 않은 안색으로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양반이란 겨우 이것뿐입니까? 내가 듣기에 양반은 신선과 같다던데 겨우 이것뿐이라면 별로 신통한 맛이 없군요. 더 좀 좋은 일이 있도록 고쳐주십시오."

이에 군수는 문서를 고쳐 다시 썼다.

"하늘이 이 백성을 낼 때, 네 종류의 백성을 만들었다. 이 네 가지 백성 중에 가장 귀한 것이 선비요. 이것을 양반이라 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농사도 짓지 않고 장사도 하지 않아도 된다. 글만 조금 하면 크게는 문과로 나가게 되고 작아도 진사는 된다. 문과의 홍패라는 것은 크기가 두 자도 못 되지만, 여기에는 100가지 물건이 갖추어져 있다. 이것을 돈자루라고 부른다. 진사는 나이 30에 초사를 해도 이름이 나고 딴 모든 벼슬도 할 수가 있다. 귓머리는 일산 바람에 희어지고, 배는 종놈들의 '예!' 하는 소리에 불러진다. 방에는 기생이나 앉혀두고, 뜰에 서 있는 나무에는 학을 친다. 궁한 선비가 되어 시골에 살아도 자기 맘대로 할 수가 있으니, 이웃집 소를 가져다가 자기 밭 먼저 갈고, 마을 사람을 불러다가 내 밭 먼저 김매게 한다. 이렇게 해도 어느 누구도 욕하지 못한다. 잡아다가 잿물을 코에 들이붓고 상투를 잡아매어 벌을 준대도 아무도 원망하지 못한다."

부자는 그 증서를 받자 혀를 내밀어 보이면서 말했다.

"제발 그만두시오. 맹랑합니다 그려. 나를 도둑놈으로 만들 작정이시오?"

이렇게 말하고 부자는 머리를 손으로 싸고서 달아나 버렸다. 그러고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양반'이란 말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손자 박주수가 그린 연암 박지원의 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