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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아버지

아버지와 산소

by 변리사 허성원 2017. 7. 28.

아버지와 산소


말 그대로 온 삭신이 쑤신다.

그저께 아버지 호출로 산소의 잡초를 제거하느라 하루를 사역하였더니 그 후유증이다. 평소 안하던 노동에 안쓰던 근육을 썼으니 편할 턱이 없다. 앉아도 누워도 도통 편하질 않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괜찮으시단다. 함께 일한 90세 노인보다 못한 내가 부끄럽다.

아버지의 산소관리에 대한 집착은 남다르시다.
어머니 말씀대로 산소 잔디를 그야말로 공단 같이 가꾸신다. 15~6년 전에 내가 충청도 웅천에까지 가서 석물을 해와 모든 산소를 일괄적으로 정비하면서, 그 때 잔디를 공들여 깔았었는데.. 그 후로 잡초 하나 없이 유지되어 왔었다. 그렇게 유지된 건 순전히 아버지의 까탈스런 관리 덕이다.

산소에 가보니 잡초가 적잖이 나 있다. 잎넓은 풀들은 시들어있고 군데군데 마른 풀더미가 있는 걸 보니 다녀가신지 1주일도 안된 거 같다. 여쭤보니 손수 제초제를 치셨단다. 분무기를 손수 메고 오셔서.. ㅠㅠ.. 집에서 거리가 족히 2키로는 될 텐데 아마도 자전거에 싣고 오셨나 보다. 자전거를 타고 오시지는 못하셨을테니 짐을 싣고 그냥 끌고 오셨을 거다. 산으로 오르는 길도 응당 10번 이상은 멈추고 숨을 고르셨겠지.

감히 뭐라 어찌 해볼 수 없는 아버지의 이런 사명감과 지극 정성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진정 조상의 음덕에 대한 신념이 이토록 투철하신 걸까. 아니면 이 성실치 못한 아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과도히 무리를 하시는 걸까. 모르긴 해도 반세기 이상을 곁에서 지켜본 바에 따르면 아버지의 정성은 가히 종교적이다.

내가 물려받으면 아버지처럼 관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아마도 그걸 알고 계시기는 할텐데.. 이 미덥지 못한 이 아들에게 어찌 물려주려 하시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더 애가 타고 마음이 바쁘실 것이다. 

그럼에도 항상 열심히 설명해주신다.
'황새배기(억새 종류)는 뿌리가 깊고 넓어서 뿌리채 제거가 안된다. 잎사귀를 기울여 근사미(제초제 일종)에 담그면 뿌리까지 죽일 수 있다.'
'왕포아풀처럼 씨번식이 강한 것은 수시로 한달에 두어번 와서 뽑아주는 방법 밖에 없다. 조금만 때를 놓치면 자칫 온통 그 잡초들 천지가 될 수 있다.' 등..


내가 보기엔 모두 산소를 푸르게 덮어주고 있는 푸른 풀인데.. 꼭 그렇게 인종 차별 아니 초종 차별을 해야할까 싶다. 인간의 욕심이 죄없는 풀을 박해하고 있지나 않나 생각하면서도.. 초종 차별에 적극적으로 가담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한 가지 가르침을 주신다.

"강한 놈이 사실은 가장 약한 기라.

황새배기는 뿌리가 질기고 잘 죽지 않지만

웃자라서 드러나기 때문에 반드시 제거될 수밖에 없는 기라.

모난 돌이 정 맞듯이.

인간도 마찬가지다.

씰데 없이 웃자라면 어디든 배기지 못하는 법이다."


겸손을 가르치신다.

그나저나 걱정은 걱정이다. 말없이 일은 했지만, 속으로는 머잖아 내 손으로 산소를 정리해야 할 것이라는 불경스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대의 아이들이 이 넓은 세상의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지 우찌 알겠나..

(2017.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