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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세상살이/기업

[한식당 전원] “단골손님에 집중 … 테이블 다섯개 22년째 고수”_중앙일보_090215

by 변리사 허성원 2009. 3. 22.

“단골손님에 집중 … 테이블 다섯개 22년째 고수”

한식당 ‘전원’에서 배우는 ‘스몰캡’ 경영

이상재 | 제101호 | 20090215 입력 블로그 바로가기
서울 장충동에 있는 한식당 ‘전원’ 앞에 선 문분선 사장. 같은 음식이지만 ‘색다른 포인트’로 차별화해 20년 넘게 알토란 같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증권가에선 우량 중소기업을 ‘스몰캡’이라고 부른다. 스몰캡은 시가총액 1000억원 이하 기업으로 대개 오너가 하나부터 열까지 챙기면서 암팡지게 경영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 장충동에 있는 조그마한 한식당 ‘전원’도 스몰캡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다. 1988년 문을 연 이 식당은 내로라하는 ‘대기업 총수’도 보름은 기다려야 그 깊은 맛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음식 솜씨만 일품인 게 아니라 ‘경영 솜씨’도 일품이다.

“사위에게도 따뜻한 밥 못 해줘”
경남 진해가 고향인 문분선(62·여) 사장은 처음엔 현재의 식당 자리에서 ‘멋’이라는 의상실을 운영했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옷 만드는 손맛도 좋지만 음식 만드는 손맛이 더 좋다”고 권유해 업종 전환을 결심했다. 간판도 없이 5개의 식탁을 들여놓고 알음알음 손님을 받다가 “이름도 없는 식당이 어딨냐”는 핀잔을 받고 90년에야 ‘전원(田園)’이란 이름을 내걸었다.

왜 이름을 ‘전원’으로 지었는지는 좁다란 계단을 따라 다락방 같은 2층에 올라가면 바로 알 수 있다. 이곳 테라스는 봄부터 가을까지 금낭화·마거리트·들국화가 번갈아 꽃을 피우며 도심 속 전원을 연출한다. 이 테라스 옆자리를 차지하려면 두 달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전원에는 따로 차림표도 없다. 그냥 점심 3만원, 저녁 10만원을 받는다. 스무 가지가 넘는 음식은 ‘주인 마음대로’다. 봄이면 도다리가, 가을이면 전어가 고향인 진해에서 직송된다. 문 사장은 “제철 음식이 가장 좋다. 요즘은 굴과 가오리 회, 두릅이 제철”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흔한 육류는 없다. 쇠고기를 찾는 손님이 있으면 “고기 전문점에 가시라”고 응대한다. 평소 문 사장이 육류를 즐기지 않아서 그렇단다. “잘할 수 있는 것만 정성스럽게 내놓으면 된다”는 소신에서다.

심지어 그는 전화도 잘 받지 않는다. 된장찌개가 끓고 있는데 불안해서 전화기에 손이 가지 않는다고 한다. 문 사장은 “내가 한 가지밖에 집중을 못해서…. 어떨 때는 전화소리도 안 들린다”며 작게 웃었다.

이뿐이 아니다. 단골손님이 아니면 저녁 예약을 받지 않을 때도 있다. 왜 이렇게 배짱을 부리느냐고 묻자 “에이 (식당이) 좁고 초라한데…”라며 얼버무리려고 한다. 똑같은 질문을 한 번 더 하자 이내 “손님이 격(格)이 있어야 식당도 격이 산다. 10년, 20년 단골이 전원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준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손님 중에 어느 분이 ‘생긴 지 얼마 안 된 회사와는 거래하지 않는다’고 얘기하더군요. 돈 거래할 때 그만큼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겠지요. 저도 비슷해요. (무턱대고 손님을 받으면) 매출이 올라갈지 모르지만 자칫 10년 단골을 놓칠 수도 있잖아요(웃음).”

문 사장은 좋은 음식점 주인이 갖춰야 할 첫 번째 ‘투자’ 덕목으로 건강을 꼽았다. 건강이 먼저고 그 다음이 음식이라고 딱 부러지게 말했다. 문 사장은 “몸이 아프면 으레 입맛부터 잃기 마련이다. 그러면 당연히 음식의 간을 보기 싫어진다”며 “이러면 어떻게 음식을 하나”라고 되물었다. 그의 하루 일과는 헬스클럽에서 시작한다. 길 건너편 앰배서더 호텔에서 오전 6시부터 1시간가량 달리기를 한 다음 시장으로 달려간다.

그는 하루 두 차례 장을 본다. 오전에는 인근 남대문시장·중부시장에 나가 싱싱한 채소와 밑반찬거리를 고른다. 오후 3시30분쯤 되면 지하철을 타고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으로 간다. 그는 “장안을 다 다녀봤는데 여기 생선이 가장 좋더라”고 칭찬했다.

분점 내자는 제언에 “아휴”라고만
전원의 상차림은 여느 음식점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하나같이 ‘차별화된 사연’이 있다. 깻잎은 양념을 해서 두 번 끓인 젓국으로 간을 했다. 그래서 간장 양념보다 맛이 깊다. 소금에 절인 자반고등어는 쌀뜨물에 담가 짠맛을 우려낸 다음 물기를 빼고 굽는다. 그래서 더 담백하다. 미역은 부산 기장에서 올라오는데 멸치젓갈을 찍어먹도록 권한다. 그래야 바다 향을 느낄 수 있단다. 흔히 먹는 반찬 종류지만 맛의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마포에 살던 문 사장네가 장충동 식당 근처로 이사온 것은 김치 때문이다. 김치는 바로 썰어 식탁에 올려야 맛이 사는데 마포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래서 음식점에서 1분 거리 떨어진 곳으로 집을 옮기고 김치냉장고도 여덟 개 장만했다. 손님에게 너무 많은 신경을 쓰다 보니 정작 그의 가족은 스무 가지 넘게 올라오는 정식 요리를 제대로 맛볼 기회가 없단다. 일을 마치고 나면 힘이 다 풀려 아무것도 손에 잡을 수 없어서다. 문 사장은 “밥을 사먹이기만 해 사위에게 특히 미안하다”고 말했다.

전원의 식탁은 지금도 다섯 개다. 저녁에는 ‘어지간하면’ 한 팀만 받는다. ‘식당을 넓힐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조용히 문을 열고 아들 손창범(36)씨가 운영하는 파스타 전문점 ‘라 깜빠냐’로 기자 일행을 안내했다(라 깜빠냐는 이탈리아어로 전원을 가리킨다). 전원과 바짝 붙어 있는 이곳은 달랑 의자 네 개가 주방을 보고 일렬로 앉게 돼 있다. 문 사장은 “그래도 예약 잡으려면 일주일은 기다려야 한다. 여기에 비하면 전원은 넓은 바다 같다”며 싱긋 웃기만 했다.

“얼마 전 한 유명 호텔에서 분점을 내자고 하더군요. ‘아휴’라고만 했어요. 제 손으로 지지고 볶지 않으면 절대로 안 합니다. (직영 음식점이) 두 개, 세 개 되면 아무래도 제 손이 가기 힘들 테고, 맛을 잃게 되겠지요. 그러면 다 잃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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