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특허인들의 수호신
업역에 따라서는 그 분야에 종사한 사람들과 그 업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있는 경우가 있다. 법조계의 경우 대법원의 대법정 출입구에 정의의 여신 ‘디케’가 지키고 있다. 디케는 오른손엔 저울을 왼손엔 법전을 든 자세로 않아서 법 집행의 엄정함과 정의로움을 수호한다. 의료계에서는 누구든지 처음 의사가 될 때 그의 이름으로 선서하는 의사들의 윤리적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가 있다.
[히포크라테스]
우리 발명인이나 특허인들에게도 때때로 경건히 경배할만한 수호신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그 수호신은 발명인과 특허인들이 업을 올바르게 영위하도록 지혜로운 가르침을 주고 윤리적 규범과 질서를 관장할 것이다. 수호신은 때론 발명 특허인들의 기복을 들어주기도 하고, '신의 가르침에 따라' 혹은 '신의 이름으로' 발명특허인들이 그들의 행위를 스스로 규율하고 정당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발명인이나 특허인이 관련되는 지적재산권 분야에 적합한 수호신은 과연 어떤 신일까?
신을 찾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신의 보유량이 절대적으로 풍부한 그리스 신화를 먼저 뒤져 보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일 것이다. 그리스 신화를 두루 둘러보니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발명 특허 분야에 너무도 딱 맞아떨어지는 수호신감이 존재한다.
짐작한 분도 계실지 모르지만, 내가 찾은 그 신은 "아테나 여신"이다. 로마 신화에서 미네르바라 불리며 올림포스 12신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아테나는 지혜(지식)의 신인 동시에 전쟁과 기술(공예)의 신이다.
'지식', '전쟁' 및 '기술'. 이들 세 단어의 조합은 바로 지적재산권 분야를 설명하는 가장 핵심의 키워드가 아닌가? 아테나는 마치 현대의 발명특허인을 위해 고대 그리스인들이 미리 안배해 놓은 듯하다.
아테나는 아버지인 제우스의 ‘머리를 가르고’ 태어났다. 그래서 그 탄생부터가 너무도 ‘지적(intellectual)’이다. 아테나의 어머니 메티스는 제우스의 첫 번째 아내로서 제우스에게 그 선대의 신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준 여신이다. 그녀가 아테나를 임신하였을 때 제우스는 그녀로부터 태어난 아들이 제우스 자신을 내쫒을 거라는 예언을 믿고 그녀를 통째로 삼켜버린다. 그래서 제우스의 몸속 특히 머릿속에서 자란 아테나가 태어날 때가 다가오자 제우스는 극심한 두통에 시달린다. 이에 제우스는 자신의 아들인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에게 요청하여 자신의 머리를 가르게 하자 거기에서 무장한 아테나가 태어나게 된 것이다. 머릿속에서 자라 머리를 깨고 나와서 지혜, 기술 및 전쟁을 관장하는 신이 된 아테나! 사실상 발명 특허를 위한 맞춤 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제우스의 머리에서 튀어나오는 아테나]
아테나 여신의 최대 상징물은 아이기스라 불리는 방패이다. 아테나가 페르세우스에게 이 방패를 빌려주어 메두사를 물리칠 수 있도록 도와주었는데, 페르세우스는 그에 보답하여 메두사의 머리를 아이기스에 붙여주었다. 그래서 아이기스는 그것을 보는 사람을 돌로 만들어버리는 막강한 ‘공격형 방패’가 된 것이다. 마치 특허의 금지권적 효력을 암시하는 듯하다.
아테나는 전쟁의 신이지만 같은 전쟁의 신인 아레스와 질적으로 구별된다. 아레스는 오로지 용맹과 힘에 기초한 전쟁을 추구하지만 아테나는 지혜와 전략으로 전쟁을 이끈다. 그래서 무력의 아레스는 트로이 전쟁 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지혜의 아테네와의 싸움에서 결코 이기지를 못한다. 치밀한 전략을 요하는 특허전쟁은 명백히 아레스적인 전쟁이 아닌 아테나적인 전쟁이다.
아테나는 또한 인간에게 평화와 풍요를 선물하기도 하였다. 도시 아테네의 수호권을 두고 포세이돈과 경합을 벌였을 때, 포세이돈은 말을 제시한 데 반해 아테나는 올리브나무를 제시하여 승리함으로써 도시 아테네의 수호신이 되었다. 동물인 말은 전쟁과 슬픔을 상징하지만, 식물인 올리브나무는 평화와 성장 그리고 지속적인 풍요를 상징한다. 특허제도는 기업의 지속 성장과 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하므로 가히 현대적인 아테나의 선물이라 불릴 수 있다.
아테나는 판관이 된 적도 있다.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죽인 오레스테스를 심판하였고, 포세이돈과 아레스를 법정에 세워 재판하기도 하였다. 지재권의 수호신으로서 옳고 그름의 올바른 판단을 행하고 가르치는 것은 기본적 소양이라 할 것이다.
아테나를 기리는 신전은 파르테논이다. 파르테논은 처녀를 의미하는 파르테노스에서 온 말이다. 아테나는 아르테미스처럼 결혼을 하지 않고 순결을 지킨 처녀 여신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순결성은 신성성에 연결되고 세속적 욕망으로부터 멀리 이격되어 있다. 그리고 사사로운 정리에 얽메이지 않으므로 매사를 공정히 관장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처녀 여신은 수많은 영웅들의 수호신으로 활약하였다. 제이슨, 헤라클레스, 페르세우스, 테세우스, 아킬레스, 오디세우스 등등 쟁쟁한 신화의 영웅들을 직간접적으로 보살피고 도와주었다. 영웅이 나타나는 신화의 장면들에는 거의 예외없이 아테나가 등장한다. 신화 속의 영웅은 항상 극도의 시련과 벗한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여 끝없이 도전하고 불굴의 의지로 온갖 주어진 고난을 외로이 극복한다. 이러한 외로운 영웅들을 아테나는 지혜롭게 인도하고 보호하였다.
[자신의 몸을 돗대에 묶게하고 사이렌의 유혹을 직접 경함하는 오디세우스]
[메두사의 머리를 아이기스에 붙여 아테나에게 돌려주는 페르세우스]
[켄타우로스를 처치하는 테세우스]
그러면 이 시대에 와서는 아테나 여신이 지켜줄 영웅은 누구인가? 이 시대에 고독을 벗하며 결연히 도전하고 시련을 극복하여 널리 많은 인간을 이롭게 하는 사람들. 그들은 바로 발명가 내지는 벤처기업인 및 그들의 친구 특허인이 아닌가?
아마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아테나는 많은 발명 특허인들을 수호해왔을 것이다. 그들이 필요로 할 때, 어떤 땐 기술이나 지혜를, 어떤 땐 도전정신이나 용기를, 때론 필요한 무기를 제공해주었다. 직접 제공할 수 없을 땐 그녀의 전령 내지 사자인 변리사 등을 통해서라도.. 세월이 흘렀다 해도 아테나는 영웅의 수호신이라는 본연의 직무를 영원히 유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테나는 모든 영웅을 차별없이 수호하지는 않는다.
아테나 여신의 수호를 받을 수 있는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련 속에 내던져진 자신의 운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이어야 한다. 자신의 힘든 운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발명 특허인만이 아테나의 가호를 받을 수 있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네 운명을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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