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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

[허성원 변리사 칼럼] 기술을 탈취 당했다고?

by 변리사 허성원 2013. 7. 12.

기술을 탈취 당했다고?

      - 그건 잘못된 특허전략 때문이야.

 

 

진(秦)나라 왕이 공주를 진(晉)나라 공자에게 시집보낼 때 온갖 장식으로 아름답게 가꾼 시녀 70명을 딸려 보냈다. 그런데 공자는 예쁜 시녀들만을 좋아하고 공주는 박대하였다. 결국은 공주가 아닌 시녀들을 잘 시집보내준 꼴이 된 것이다. 또 어느 초나라 사람은 귀한 구슬을 팔러 정나라로 갔다. 그는 목란(木蘭), 계초(桂椒)와 같은 향기로운 나무로 짜고 물참새의 털로 장식한 상자를 만들어 그 속에 구슬을 넣었다. 그런데 정나라 사람은 그 상자만 샀을 뿐 구슬은 되돌려 주었다(買櫝還珠).』 _ 출처 : 한비자(韓非子)

 

구슬은 팔지 못하고 상자만 빼앗겼다.

     담긴 구슬보다 상자만이 관심을 끌게 만든 어리석음을 비유한 ‘매독환주(買櫝還珠)’는 겉으로 드러난 표현의 화려함에 현혹되어 정작 본질의 중요성을 잊거나 잃어버려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을 주는 고사이다. 
     이 비유를 이 글을 위해 조금 다르게 해석해보면, 본질(공주, 구슬)을 돕기 위한 보조적 요소(시녀, 상자)에 아무리 공을 들이더라도, 그 보조적 요소가 본질에 합목적적으로 부합하도록 적절히 배려되어 있지 않다면, 목적 달성은 고사하고 공들여 마련한 보조적 수단마저 허무하게 빼앗길 수 있다는 가르침도 얻을 수 있다.

     이 해석과 유사한 사례는 매스컴에서 종종 접할 수 있다.
     기업활동의 본질은 큰 부가가치를 붙인 제품을 많이 파는 것이다. 기업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그 기술로 포장된 제품을 제조한다. 기술은 제품의 매력을 높이거나 비교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보조적인 요소이며, 대부분의 경우 기술 그 자체가 기업 활동의 본질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공들여 개발한 기술이 적용된 제품을 마켓팅하는 과정에서 제품은 전혀 팔리지 않고 그 제품을 포장한 기술만 빼앗기게 되는 어이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즉 구슬은 팔지 못하고 상자만 빼앗긴 꼴이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S텔레콤의 김대표 이야기는 수년 전부터 여러 매체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김 대표는 위급상황 시 비상연락에 관련한 휴대폰 기술을 대기업에 제안하고 기술자료를 제공하여 주었는데, 그 동안 연락이 없던 대기업은 약 1년 정도가 지나 김 대표가 제안한 개념이 적용된 휴대폰을 출시하였고 시장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김 대표는 그 대기업을 상대로 특허소송을 제기하였고 근 7, 8년간 소송을 끌어오면서 엄청난 비용을 썼지만 결국에는 모두 패소로 종결되었다.
     또 어린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끈 ‘에스보드’를 개발한 강대표는 2006년 단일 제품으로 100억을 매출을 올렸다. 성공 스토리가 알려져 책도 내고 정부 공익광고에도 출연하기도 했으나, 이후 모조품의 난립으로 불과 3년 후인 2009년에는 단 1억의 매출로 추락하였다.

  이 두 사람은 모두 본질인 매출이나 이익의 확대는 달성하지 못하고 그들의 기술만 잃은 것이다. 그들은 서로 유사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지만 자신들이 그런 억울한 상황에 처하게 만든 이유는 서로 다르게 주장한다. 김대표는 대기업의 도덕성을 비난하고 강대표는 특허제도의 불합리를 질타한다.

     하지만 이들 두 사람의 실패 원인은 하나이다. 그것은 ‘잘못된 특허전략’에 있다. 김 대표와 강 대표는 모두 자신의 기술에 대해 특허를 획득하였다. 그 특허에 기초하여 자신의 비즈니스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도 하였다. 그러나, 권리가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비즈니스 보호의 노력은 무위로 끝나고 극도의 상심과 함께 사업도 몰락한 것이다. 애초 특허가 없었다면 그토록 집착하거나 절망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부실한 특허는 그 자체로서 우환거리이다.

특허는 울타리와 같은 것. 남을 막는 동시에 나를 가두는 것이다.    

      특허는 기술을 설명한 기술문헌인 동시에, 특허권의 권리 범위를 정하는 권리문서이다. 권리의 영역을 객관적으로 표시하는 울타리나 담과 같은 것이다.
     ‘울타리는 남을 막는 것인 동시에 나를 가두는 것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말과 같이 특허는 내 땅의 경계 즉 내 권리가 미치는 영역의 끝이 어디인지를 정하지만, 동시에 인접한 타인 혹은 공공의 땅의 경계 역시 정하는 것이다. 내 울타리 내에서 자유로운 권리행사가 가능한 한편, 울타리 밖에서 일어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간섭할 수 없는 소극적 의무가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기 울타리 밖의 일임에도 울타리 넘어 과욕을 부리다가 실망을 자초한다.

     넓은 통제력을 갖고 싶다면 애당초 울타리를 충분히 넓게 쳐야 한다.
     울타리를 칠 면적을 얼마나 크게 할 것인지는 순전히 본인이 선택에 달려있다. 너무 넓게 잡으면 타인의 권리나 공공의 영역을 침범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당연히 특허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저촉만 피할 수 있다면, 자신의 기술 개념이 적용될 수 있는 가능한 영역을 마음껏 넓게 상상해보라. 상상한 만큼 권리는 만들어질 수 있다. 물론 그 상상은 실제와 잘 타협이 되어야겠지만, 그 과정은 충분히 즐겁다.

     또한 울타리는 튼튼하여야 한다.
     아무나 쉽게 들락거려도 어찌할 수 없는 부실한 울타리도 많다. 튼튼한 울타리는 잠재적 침입자에 대한 대비가 충분하여야 한다. 발자국 소리만으로 도망가는 토끼를 막을 울타리와 맹수에 대비할 울타리는 분명 다르다.
     많은 사례들에서 보면 우리 중소기업들의 특허 울타리가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이 안타까울 정도로 너무도 좁고 부실하다. 그런 특허들은 벽면을 장식하는 역할 이상을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다.
     귀 특허의 울타리는 얼마나 넓고 어떤 침해에 저항할 수 있는가?

특허 취득의 진정한 목적은 ‘제품 보호’가 아니라 ‘시장 보호’이다. 
     ‘제품 개발’과 ‘특허 전략’은 모두 ‘기술의 산’을 정복하는 과정이다.
     ‘제품 개발’의 경우에는 최단 코스를 따라 정상에 오르기만 하면 그 산을 정복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최적의 솔루션 하나만 찾아내는 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제품을 만드는 여러 개의 솔루션을 가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여러 솔루션을 모두 제품화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허 전략’에서 ‘산의 정복’의 의미는 다르다.
     내 제품이 지배하여야 할 그 산에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확실한 방어막을 구축하였을 때 특허전략에서의 ‘산 정복’이 성공적이라고 말한다.
     특허 전략의 일차적 목적은 ‘내가 개발한 제품’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한정되어서는 적절치 못하다. 최고의 특허 전략은 ‘내 제품이 속한 시장’을 통째로 커버하는 것이다. 즉 ‘내가 개발한 기술’이 아니라 ‘남이 회피할 가능성이 있은 기술’ 내지는 ‘남이 모방할지도 모르는 기술’까지도 타인이 편승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잘된 특허전략이다. 

     특허 전략의 궁극적인 목적은 내 제품과 경쟁이 될 가능성이 있는 제품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특허는 제품개발의 과정에서 나온 성과물이긴 하지만, 그것을 취득하기 위한 전략은 제품 개발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여야 한다.
     많은 특허들을 보면 특허권자의 제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잘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타인의 모조품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되어 있지 않아, 타인의 모방이나 도용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모방을 도와준 꼴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잘못된 특허는 모방을 조장한다.

산의 정복 전략은 산을 오르기 전에 짜야 한다.
     처음 산을 오를 때, 누가 먼저 도전한 등산로가 있는지, 더 나은 정복의 루트가 있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떤 길을 더 선호할 것인지 등을 미리 알아야만 효과적이고 안전한 산행이 될 것이다.
     산오르기가 그렇듯 특허 전략도 연구 개발 초기 단계에서 수립하여야 한다.
     제품 개발의 초기 단계에서 이전의 다른 사람들의 개발 경험에 관한 정보나 시장의 환경을 잘 이해하고 나면 연구개발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전 정보나 시장 환경에 기초한 특허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제품에 대한 연구개발이 완료되고 나서 특허출원을 하게 되면, 많은 경우 그 최종 설게안에 따른 실시예에만 한정된 특허를 받게 된다. 마치 산꼭대기에 작은 울타리를 치고 산을 정복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좋은 특허는 산자락을 따라 넓은 울타리를 구축하는 것이며, 그런 특허는 개발의 초기부터 전략적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특허분쟁도 조직력이 필요하다.


     강한 군대는 많은 전사와 다양한 무기를 구비한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핵심 제품에 대해 한 두 건의 특허만을 가지고 있다. 앞의 사례들도 마찬가지다. 그 소수의 특허가 상대의 저항을 받아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면 다른 대안이 없으므로, 김 대표와 강 대표처럼 분루를 삼키고 물러나야 한다.
     그래서 우선은 양이 필요하다. 조폭 집단이 초기에 머리수로 상대를 압도하듯이, 특허 건수는 특허분쟁에서는 매우 의미가 크다. 특허권자의 특허 건수가 많으면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그 부담이 건수의 제곱에 비례하여 커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 두 건은 어떻게 대응하기 쉽지만 대여섯 건이 넘어가면, 그 내용은 제쳐두고 분석과 대응 비용 등과 관련하여 상대를 무척 곤혹스럽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무기도 다양할 필요가 있다. 전쟁에서 장거리 미사일과 같이 강한 화력의 무기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중화기만으로 전쟁은 치룰 수는 없다. 근접전이나 비정규전을 대비한 무기나 전투인력도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기진작을 위해 연예인부대의 역할도 중요하다. 특허분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핵심 기술에 관한 특허 하나만 달랑 들고 있는 경우는 마치 ‘들배지기’나 ‘뒤집기’ 기술 하나만을 가지고 천하장사가 되겠다는 씨름 선수와 같다. 그런 선수는 싸우는 재미도 구경하는 재미도 제공하지 못한다. 상대 선수에게 자신의 특기가 파훼되고 나면 필패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물론 핵심기술에 관한 특허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전쟁을 치루기 쉽지 않다. 잠재적 침해자들의 예상 가능한 침해양태를 고려하여, 핵심기술을 둘러싼 다양한 응용 기술, 보조 기술, 이용 기술, 혹은 그 기술이 통과하는 통로에 있는 길목 기술 등에 대해 특허를 확보해 두어야 한다. 그런 주변 특허들은 실제 전투에서는 핵심기술 못지않은 혁혁한 전과를 올릴 수 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은 있어도 산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은 없다.’ 이 말처럼 특허분쟁에서 큰 기술의 특허는 다 피했는데 어설픈 돌부리 같은 특허에 걸려 항복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제 남의 기술의 훔치는 입장이 되어보자.
     항상 구슬상자를 빼앗긴 비련의 주인공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자만 뺏고 구슬을 되돌려주고는 회심의 비릿한 미소를 짓는 승자의 모습이 되어볼 수 있다. 공주보다 더 아름다운 70명의 시녀나 구슬보다 더 탐이 나는 상자가 있다면, 그리고 별 저항 없이 내 것으로 만들어볼 수 있다면, 어찌 욕심을 내 보지 않겠는가?
     그런 매력적인 제품은 실제로 상당히 널려 있다. 제대로 눈만 부릅뜨고 둘러보면 쉽게 취할 수도 있다. 다만 무지, 게으름, 자존심, 도덕성, 두려움, 소심함 등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방해할 뿐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좋은 특허전략을 수립하고 수행하기는 너무도 힘들다. 그런 만큼 기업들의 특허에는 허점이 많다. 그 허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파고드는 것이 성공적인 모방자 내지는 발 빠른 2인자가 되는 길이다.
     특허권자가 자신의 기술을 특허로 보호하는 것은 성을 사수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그렇다면 모방자가 특허를 피해서 기술을 모방하는 것은 성을 공략하는 행위일 것이다. 

     수성과 공성 중 어느 것이 힘들겠는가? 일단 특허라는 성을 만드는 축성의 단계는 그다지 힘들지 않다. 하지만 일단 외부 공격을 막아야 하는 수성의 단계에 들어가면 성 내의 한정된 자원만 이용 가능하다는 한계를 안게 된다. 그러나, 공성은 성 밖의 무한한 자원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수성에 비해 유리한 점이 많다. 실제로 특허분쟁에서 특허권자의 승소율이 훨씬 낮다.
     그래서 나는 가끔 광오하게 주장한다. “모방할 수 없는 제품은 없다”라고.. 부러운 타사의 제품이 있으면, 십중팔구 그 제품을 안전하게 모방할 수 있는 길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믿어도 좋다.

     그런데.. 양심이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그렇다. ‘모방’이 좀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방 없이 지금 그 자리에 서있다고 당당히 외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우리는 태어나서 곤지곤지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무덤에 들어갈 때의 절차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모방하며 산다. 모방은 인간의 본성이다. 누구도 모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모방’ 그 자체는 조금도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모방’이 아닌 도용이나 ‘특허침해’가 비난 받을 짓이다.

     남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는 모방은 성공의 열쇠일 수 있다. 최근의 많은 연구개발 과정은 관련 업계의 특허를 분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세상에 공개된 수백만건의 특허는 그 자체가 기술의 도서관이다. 그로부터 배우고 벗어나고 개량하는 과정을 통해 더 경쟁력 있고 매력적인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한 학습을 조장하는 것이 특허제도의 진정한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특허전략의 꽃은 남의 특허 기술을 이용하여 더 나은 나의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한 사람으로부터 훔치면 도둑이라 하지만 천하의 것을 훔치면 조사 분석이라 한다.


훌륭한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_ 파블로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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