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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허성원 변리사 칼럼]#207 치명적인 결점을 마케팅의 핵심 가치로 _ 안티마케팅

by 변리사 허성원 2025. 11. 13.

치명적인 결점을 마케팅의 핵심 가치로 _ 안티마케팅(Antimarketing)

 

“세계 최악의 호텔(The worst hotel in the world)!”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없는 호텔(It doesn't get much worse)!”

이런 호텔에 찾아가 묵으려는 사람이 있을까? 이 말을 들은 당사자 호텔의 기분은 어떠할까? 그런데 이 말은 호텔 서비스에 실망한 고객이나 경쟁 호텔이 퍼뜨리는 악의적인 비방이 아니다. 놀랍게도 이런 노골적인 악성 캠페인은 다름 아닌 호텔 자신이 의도하여 계획적으로 벌인 일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자학적인 전략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한스 브링커 버짓'(Hans Brinker Budget) 호텔 사례이다.

전통적인 광고라면 당연히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과장하거나 미화하여 더 나은 이미지를 과시하려 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한스 브링커의 충격적인 광고 캠페인은 전통적인 마케팅 규칙을 정면으로 위반하며, 결점을 숨기기는커녕 오히려 그 결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홍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들의 홍보 문구들은 가관이다. '호텔 입구에 개똥이 널려 있다', 세탁비를 줄이기 위해 '샤워 후에는 샤워 커튼으로 몸을 닦으라', '변기 휴지가 없을 수 있다' 등의 내용을 게시하고, 나아가 매트리스에서 잠을 잔 뒤 얻게 될 통증과 감염 위험에 대한 경고, 고장 난 장비의 존재, 소음 등의 온갖 부정적인 정보들을 아예 스티커로까지 제작하여 버젓이 비치하고 자랑(?)한다. 친환경 활동이라며 전구를 제때 교체하지 않고, 낡고 더러운 매트리스 사진 아래에 '집과 똑같아요(just like home)'라고 하며, "모든 방에 문이 있어요", "방마다 공짜 키가 제공됩니다" 등과 같은 썰렁하고도 뻔뻔한 유머를 남발하기도 한다.

그들은 '최악'이라는 금기의 영역에서 어떻게 성공 기회를 찾았을까? 이는 단순한 장난이나 우연이 아닌, 시장의 본질, 약점, 외부 환경을 냉철하게 분석한 고도의 전략적 결정이었다. 당시 네덜란드의 저가형 숙박 시장은 치열한 레드 오션이었고, 한스 브링커는 수십 년간 기준 이하의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최고의 가치', '청결함', '편안함'과 같은 슬로건을 앞세우는 경쟁자들과 경쟁하려면 시설과 서비스 품질 개선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했다.

바로 그 지점에서 호텔의 홍보 에이전시 '케셀크라머(KesselsKramer)'는 상식을 뒤엎는 역발상을 제안했다. 약점을 덮기 위해 돈을 쓰는 대신, 그 약점 자체를 홍보의 중심 소재로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노이즈 마케팅을 넘어, 경쟁자들이 넘볼 수 없는 독점적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고도의 전략이었다.

이를 안티마케팅(Antimarketing)이라 부른다. 안티마케팅은  소비자의 불만이나 비호감, 혹은 거부감까지도 역으로 활용하여 마케팅 효과를 유발하는 특이한 마케팅 전략의 일종이다. 한스 브링크가 구사한 안티마케팅의 핵심 원리는 다음 세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첫째, '최악' 포지셔닝을 통한 블루 오션 창출이다. 모든 호텔이 '최고'를 놓고 경쟁할 때, 한스 브링커는 누구나 기피하는 '최악'이라는 포지션을 선점했다. '더 나빠질 수 없다'는 선언은 어느 경쟁자도 모방할 수 없는 강력한 진입장벽이 되었고, 이는 결국 경쟁 없는 지속가능한 '블루 오션'을 구축하였다. 어느 누가 감히 더 '최악'이 되겠다고 경쟁하려 들겠는가.

둘째, 타겟 고객을 명확히 정의하고 그들의 심리를 적절히 공략하였다. 한스 브링커는 천편일률적인 기존 광고의 완벽함에 냉소적이면서 과감한 '솔직함'과 '불경한 태도(irreverent attitude)'를 높이 평가하는 모험심이나 반항심이 강한 20대 젊은 여행자들을 타겟으로 정하였다. 이들은 진실 혹은 진심에 강하게 반응하기에, 브랜드가 결점을 솔직히 드러낼 때 그 '사랑스런 불완전성(Loveable Unperfection)'의 아이러니에 강한 유대감을 느끼는 것이다.

셋째, 기대 관리의 역설 원리를 활용하였다. '최악' 캠페인은 고객의 기대치를 최저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방문을 감행한 고객은 이미 "서비스를 기대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당연히 수용한 상태이다. 그런데 그들이 실제로 방문했을 때, "광고만큼 나쁘지는 않다"고 느끼는 순간 '긍정적인 놀라움(Positive Surprise)'이 발생하며, 이는 고객 불만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만족도를 높이는 기제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들 요인 외에도 호텔의 지리적 이점과 암스테르담 시의 신규 호텔 건설 규제와 같은 외부 요인도 성공에 기여했다. 내적 및 외적 요인이 상호 작용한 결과, 한스 브링커의 객실 점유율은 비할 수 없이 높아졌고 연간 유료 숙박일수도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며, 결국 그들은 숙박 시장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최악의 호텔' 콘셉트가 자리 잡으면서, 서비스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심적, 경제적 부담에서 벗어나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 재미있는 마케팅적 효과들이 나타났다. "정말 더럽고 불편했다"는 악성 리뷰는 오히려 "한스 브링커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신뢰를 강화하며 광고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경험자에게 '최악'의 고난을 극복했다는 사실이 젊은 여행객들에게 일종의 훈장처럼 '자랑거리(Bragging Rights)'라는 가치를 제공했고, 전 세계 미디어가 스스로 보도하게 만들어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했다. 심지어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는 곳이라는 이미지 덕분에, 경쟁 호텔보다 더 높은 가격을 부과할 수 있는 강력한 가격 결정력(Pricing Power)마저 확보하게 되었다.

한스 브링크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자신의 결점을 노출하여 성공한 브랜드 앞선 사례들도 적지 않다. 렌터카 후발주자였던 아비스(Avis)는 "우리는 2위입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노력합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열세를 성실성으로 승화시켰고, 폭스바겐 비틀은 "못생겼지만, 튼튼합니다."라는 광고로 외모적 결점을 실용성이라는 본질적 가치로 승화시켰다. 유니레버의 마마이트는 "좋아하거나 혐오하거나"라는 슬로건을 내걸어, 자신들의 제품을 혐오하는 고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부각시켰다. 이들처럼 자신의 약점을 부각시키는 안티마케팅 전략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통찰과 교훈을 제공한다.

첫째, 진정성이 가장 강력한 차별화 전략이다. 완벽함만을 내세우는 광고에 피로한 소비자들에게 약점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진정성(authenticity)'은 역설적으로 매우 강력한 신뢰의 무기가 된다.

둘째, 약점도 최고의 핵심 역량 혹은 자산이 될 수 있다. 한스 브링커는 낮은 서비스 품질이라는 약점을 마케팅 콘텐츠로 자산화하여, 운영비용 절감과 강력한 브랜드 구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셋째, 마케팅 성공의 핵심은 '모두'가 아닌 '누군가'를 선택하는 용기다. 안티마케팅의 파격적인 전략은 냉소적이고 모험을 즐기는 핵심 고객에게 집중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모든 고객을 만족시키려는 욕심을 버리고 핵심 고객에게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혼잡한 시장에서 살아남는 비결이다. 스티브 잡스는 "모두를 행복하게 하려면 아이스크림을 팔아라"라고 하였다.

한스 브링커 호텔의 사례는, 자신의 취약점에 대한 창의적 관점 전환과 진실성이 선택적 용기와 결합되었을 때, 이 혼잡하고 치열한 시장 속에서 대체 불가능한 '불멸의 브랜드'를 만들어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다. 이처럼 치명적인 약점이나 결함도 마케팅 전략의 핵심 가치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