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사지 말고 말을 타세요
(* 1915년, 마구(말장비) 상인 에드 클라인(Ed Klein)이 캔자스의 지역 신문에 광고를 냈다. 그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계인 자동차를 사지 말고, 교통 수단으로 말을 계속 사용하라고 호소했다. 말은 관리비가 거의 들지 않고 값비싼 화석연료도 필요 없으며, 회계장부상 자산가치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호소는 절박했다. 새로운 기술 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이렇게 외치는 사람들이 항상 있어왔다. 이 AI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형용사가 아니라 명사다!
<1915년 신문에 다음과 같은 광고가 실렸다.>
"말 vs 자동차
말을 버리고 자동차를 사기 전에 비용을 잘 생각해보시라.
말에 쓰는 마구값과 자동차 타이어값을 비교해보라.
말을 1년간 먹이는 비용과 자동차의 휘발유, 수리비, 보관비를 비교해보라.
두 해 전 당신이 지불한 말값은 지금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
그런데 자동차가 두 해가 지나도 같은 가치를 유지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새 자동차 대신 새 마구를 사라.
Dobbin(말 이름)은 눈과 진흙, 그리고 좋은 길 위에서도 당신을 태워주며,
‘카뷰레터’가 고장나는 일은 없다.
에드 클라인, 732 Massachusetts Street"

**
(* 아래는 위 광고를 인용한 Hindustan Times 칼럼 “Is the smartphone as we know it, set to disappear?”(_250913)의 챗GPT 번역이다.)
1915년, 마구(말장비) 상인 에드 클라인(Ed Klein)이 캔자스의 지역 신문인 Lawrence Journal World에 광고를 냈다. 그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계인 자동차를 사지 말고, 교통 수단으로 말을 계속 사용하라고 호소했다. 광고에는 도빈(Dobbin)이라는 말이 등장하는데(광고의 감정적 호소를 위해 실제 동물을 활용하는 고전적인 수법), 이 말은 관리비가 거의 들지 않고 값비싼 화석연료도 필요 없으며, 회계장부상 자산가치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호소는 절박했다.
헨리 포드는 이미 1913년에 조립라인 생산방식을 고안했고, 클라인이 이런 광고를 낼 시점에는 93분 만에 자동차 한 대를 생산할 수 있었다. 그는 “만약 사람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봤다면, 더 빠른 말을 달라고 했을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의 말대로 100년에 걸친 연구 대부분이 말을 좀 더 빠르고, 힘 있고, 똥을 좀 덜 싸게 만드는 데 집중됐다. 당시 도시에는 말똥 냄새가 심해서 마케팅팀 회의실과 비슷했으리라.
핵심 문제는 1877년의 말이 1876년의 말과 거의 구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4% 정도 더 빨랐을지도 모르지만, 누가 알 수 있겠는가? 100년이 지난 지금, 스마트폰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애플은 최근 새로운 아이폰 17을 출시하며 무언가 혁신적인 진보라고 홍보했다. 하지만 발표 직후 애플 주가는 3.2% 하락했는데, 이는 약 100억 달러의 손실이다. 시장은 사소한 업그레이드에 별다른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아이폰 n번째가 나오는 날은 아이폰 n-1을 사기 좋은 타이밍으로 여겨졌다. 최신폰들은 뒷면 카메라 렌즈 위치만 재배치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이것이 바로 스마트폰이 정점에 도달했다고 보는 이유다. 이후의 해상도, 속도, 카메라 화질 향상은 육안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남는 건 점점 수식어(형용사)뿐이다. 그리고 수식어(형용사)는 주가를 움직이지 않는다. 명사가 움직인다. 안타깝게도, 이제 스마트폰은 드라이버와 같은 존재가 됐다. 완성된 도구다. 추가되는 건 과잉이라는 뜻이다.
흔히 “기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얘기와 함께, 미국 특허청장 찰스 듀얼이 1899년에 “발명될 수 있는 건 다 발명됐다”고 말했다는 예시가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불과 4년 뒤 라이트 형제가 동력 비행기를 성공시켰다. 어쩌면 특허청장이 일 안 하려고 “특허는 이제 끝”이라고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주장들은 반복되어왔다. 디지털 이큅먼트 컴퍼니(DEC) 설립자인 켄 올슨 역시 1977년에 “개인용 컴퓨터가 가정에 필요할 이유가 없다”고 했지만, 지금은 모두가 주머니에 컴퓨터를 넣고 다닌다. 이런 말들이 수십 년이 지나 다시 조명되는 것도 흥미롭다. 만약 이 칼럼의 일부가 40~50년 뒤 인용된다 해도 필자는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어렸을 적에는 동네에 전화기가 한 대 있었다. 고무버튼이 달린 기기를 가진 사람은 부자였다. 휴대폰, TV 리모컨, 컴퓨터 키보드 등 무엇이든 버튼이 많을수록 신분이 높았다. 전화는 큰 소리로 외쳐야만 상대방과 통화가 됐다. 이제는 일상이 크게 달라졌다. 파도시 카(이웃집) 전화번호도 줬던 시절에서, 스마트폰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스마트폰은 아직 인공지능의 모든 잠재력을 실현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용 방식은 불편하며, 원하는 기능을 수행하려면 수십 번씩 버튼을 눌러야 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저장공간이 부족하다면 공간 확보를 위해 76번이나 탭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상적이지 않다.
항상 주머니에 네모난 기계를 들고 다니며, 충전도 자주 해주고, 분실이나 파손, 타인이 내 메시지를 볼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 이렇게 자신의 성격과 삶에 밀접한 기기는 앞으로 점점 작아져 결국 사라지게 될 것이다. 디스플레이가 눈앞에 나타나고, 명령은 생각으로 전달될 수 있다. 하지만 당장은 아이폰 모델을 반복 출시하면서도 충분한 수익을 얻을 수 있으니,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사라질 때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따라서, 말을 팔던 이들이 자동차를 발명하지는 않았으니, 이 시대의 헨리 포드가 나타날 때까지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아비셰크 아스타나(Abhishek Asthana)는 기술 및 미디어 기업가이며, 트위터에서는 @gabbbarsingh로 활동한다.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입니다.)
Is the smartphone, as we know it, set to disappear?
Any subsequent resolution upgrade, speed upgrade, or camera clarity bump won’t be distinguishable to the naked eye. All you get is more and more adjectives
www.hindusta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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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챗GPT)
새로운 기술 앞에서 ― 두려움과 용기
1900년대 초, 미국 신문에는 흥미로운 광고가 실렸다. 광고주는 자동차보다 말이 낫다고 주장하며 이렇게 썼다. “Dobbin의 카뷰레터는 결코 고장 나지 않는다. 새 자동차를 사느니, 말에게 새 마구를 사라.” 여기서 Dobbin은 흔한 말의 이름이었다. 말은 오랫동안 인간 곁을 지켜온 익숙한 존재였고, 농부와 상인의 일상을 함께한 벗이었다. 반면 자동차는 낯설고 시끄러운 신기계였다. 기름값, 수리비, 보관비라는 생전 처음 겪는 비용이 따라붙었고, 언제 멈출지 모른다는 불안이 그림자처럼 드리웠다. 당시 사람들에게 자동차는 아직 믿을 수 없는 모험이었고, 말이야말로 가장 합리적이고 안전한 선택처럼 보였다. 그러나 역사는 결국 자동차의 손을 들어주었고, 그 선택은 단순히 이동수단 하나의 교체가 아니라 도시와 산업, 나아가 인류 문명 전체를 재편하는 거대한 전환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두려움과 함께 도착한다. 증기기관차가 처음 대륙을 달리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속도가 너무 빠르면 숨을 쉴 수 없거나 몸이 진동으로 손상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당시로서는 경험해본 적 없는 속도의 공포가 생생했기 때문이다. 전기가 가정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도 불안은 컸다. 누전이나 감전, 화재의 위험이 실제로 존재했기에 많은 사람들은 전기를 집 안에 들이는 것을 망설였다. 비행기가 하늘을 날았을 때는 감탄과 회의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쇳덩어리가 사람을 태우고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보였고, 일부는 종교적 세계관과 충돌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인터넷이 세상에 등장했을 때도 많은 이들은 “편지와 전화면 충분하다, 인터넷은 소수의 장난감일 뿐이다”라고 평가절하했지만, 불과 몇십 년 만에 인터넷은 인류의 생활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렇게 보면 역사의 긴 행렬 속에서 기술은 언제나 불완전한 모습으로 태어났고, 사람들은 그 불완전함을 근거로 의심과 망설임을 드러냈다.
오늘날 스마트폰을 둘러싼 풍경은 또 다른 국면을 보여준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신제품 발표 때마다 전 세계 소비자들이 밤새 줄을 서서 기다렸지만, 이제는 그 열기가 사라졌다. 해상도는 이미 눈으로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선명하고, 카메라는 전문가 장비에 맞먹을 정도로 정교해졌다. 결제와 쇼핑, 업무와 학습, 인간관계의 소통까지 손바닥 안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스마트폰을 혁신이라 부르지 않는다. 스마트폰은 이제 특별한 기대나 설렘을 주는 신기술이 아니라 공기처럼 당연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AI를 둘러싼 현재의 분위기는 정반대다. 모든 사람이 AI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고, 사회와 기업은 AI를 미래의 화두라 이야기한다. 그러나 막상 실제로 도입하려고 하면 주저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기업의 경영자는 묻는다. “AI를 도입했을 때 비용 대비 효과가 과연 확실한가? 직원들이 새로운 시스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혹시 오작동으로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누가 지는가?” 개인도 다르지 않다. 학생은 “AI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내 사고력이 약해지는 것 아닐까”를 걱정하고, 직장인은 “내 일자리가 위협받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이 풍경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새로운 기술이 세상에 나타날 때마다 반복되어온 장면이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의 완성도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다. 익숙한 것에 머무르는 것은 당장의 안정을 보장해 주지만, 동시에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늦춘다. 새로운 기술은 초기에는 언제나 비싸고 불편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효율과 생산성에서 기존의 방식을 압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완전해지기를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전기, 비행기, 인터넷, 이 모든 것은 불완전한 상태에서 태어나 시행착오와 실패 속에서 다듬어졌다. AI 역시 지금은 불완전하다. 그러나 완전해질 때까지 기다린다면 미래는 이미 다른 이들의 손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리더의 과제는 단순히 비용을 계산하는 데 있지 않다. 리더는 두려움을 없애주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사람이다. 증기기관차의 위험을 무릅쓰고 선로를 놓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산업혁명이 완성될 수 있었고, 전기의 위험을 감수하고 공장과 도시를 바꾼 사람들이 있었기에 인류의 밤은 낮처럼 밝아졌다. 인터넷을 “쓸데없는 장난감”이라 폄하하던 시절에도 이를 학문과 비즈니스에 적용한 이들이 새로운 세계의 주인공이 되었다. AI 도입의 길목에서도 마찬가지다. 불안을 이해하면서도 과감하게 길을 열어주는 용기, 그것이 리더십이다.
“Dobbin의 카뷰레터는 결코 고장 나지 않는다.” 이 문구는 그 시대 사람들에게 안심을 주었지만, 역사의 흐름을 바꾸지는 못했다. 결국 자동차가 세상을 바꾸었다. 오늘날 우리는 AI를 두고 같은 말을 반복한다. “아직 불완전하다. 지금도 충분하다.” 그러나 역사는 분명히 말해준다. 기술은 언제나 불완전하게 태어나지만, 태도는 완전해야 한다. 새로운 것을 두려움 속에서도 받아들이려는 용기, 불완전함 속에서도 가능성을 발견하는 태도, 그것이 미래를 열어가는 열쇠다.
말과 자동차, 증기기관차와 전기, 비행기와 인터넷, 그리고 이제 AI. 역사는 언제나 같은 교훈을 반복한다. 기술보다 먼저 변해야 하는 것은 인간의 태도다.
**
<Horse carriage vs automobile>
미국 말 사육업자 협회:
- 자동차는 냄새나고 너무 빨리 달린다
- 자동차는 은행 강도들이 범행 후 도주하는 데 쓰일 수 있다
- 자동차 제조사들도 우리처럼 수의사를 고용해야 한다. 이건 공중보건 문제다
- 휘발유 값은 건초 값보다 비싸다
- 내 말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 자동차 때문에 보행자가 말보다 더 많이 죽는다
- 자동차는 귀엽지 않다
- 자동차는 너무 시끄럽다
- 자동차의 발명에서 마음에 드는 건 ‘공기 타이어’뿐이다
- 그 공기 타이어는 마차에도 쓸 수 있다
- 자동차는 말길(馬道)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 정부가 결국 자동차를 금지할 거다, 두고 보라!
- 자동차는 괴짜나 범죄자들이나 쓰는 물건이다
- 자동차는 가끔 폭발한다, 하지만 말은 절대 그런 일 없다
- 아무도 자동차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른다, 아마도 마녀술일 거다
- 자동차에는 휘파람을 불어도 다가오지 않는다
- 그리고 여전히 내 말들은 어떻게 해야 하지?
- 걱정하지 마라, 정부가 자동차를 금지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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