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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새는 갇혀 있어도 나는 것을 잊지 않고(鳥囚不忘飛) _ 소동파

by 변리사 허성원 2025. 8. 31.

새는 갇혀 있어도 나는 것을 잊지 않고(鳥囚不忘飛) _ 소동파

 

「秀州僧本瑩靜照堂」 

鳥囚不忘飛,馬繫常念馳。
靜中不自勝,不若聽所之。
君看厭事人,無事乃更悲。
貧賤苦形勞,富貴嗟神疲。
作堂名靜照,此語子謂誰。
江湖隱淪士,豈無適時資。
老死不自惜,扁舟自娛嬉。
從之恐莫見,況肯從我為。

새는 갇혀 있어도 나는 것을 잊지 않고,
말도 매여 있어도 늘 달리는 것을 그리워한다

고요함 중에서도 스스로를 이기지 못하니,
차라리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

그대는 보라, 세상일을 싫어하는 사람이
오히려 아무 일 없을 때 더욱 슬퍼하는 것을

가난하고 천한 이는 형체의 고달픔에 시달리고,
부귀한 이는 정신의 피로를 탄식한다

당을 지어 이름을 '정조(靜照)'라 하니,
이 말을 그대는 누구에게 하려는가

강호에 숨어사는 선비들이
어찌 때를 맞춘 재능이 없으랴

늙어 죽는 것을 스스로 아까워하지 않고,
작은 배에서 스스로 즐기며 놀고 있다

그들을 따르려 해도 아마 만날 수 없을 것이니,
하물며 기꺼이 나를 따라주겠는가


 

남산 문학의 집에서 열린 고전학자 박황희 교수의 출판기념회(24.11.09)에 참석했다가, 책에 친필 서명해준 초서 글을 읽고 해석하는 퀴즈를 맞혀서, 친필 부채를 선물 받았다. 정말 멋진 출판기념회였다.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대단한 인물들도 많이 만났다. 시인 류근, 변호사 정철승, 서예가 강창원 선생의 수제자인 거량 김종헌, 우희종 교수, 이택희 칼럼니스트.. 북토크뿐만 아니라 바이올리니스트, 소프라노 등 아티스트들의 공연도 화려했고, 마지막 수제 막걸리 파티는 압권이었다. 지적, 시각적, 청각적, 미각적으로 대단한 호사를 누린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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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각성케 한 哲人의 금언] _ 박황희

상을 줄 수도 있고 안 줄 수도 있을 때,
상을 주는 것은 지나치게 인자한 것이다.
벌을 줄 수도 있고 안 줄 수도 있을 때,
벌을 주는 것은 지나치게 정의로운 것이다.
[可以賞, 可以無賞, 賞之過乎仁. 可以罰, 可以無罰, 罰之過乎義.]

인자함은 지나쳐도 군자다운 행실을 잃지 않지만,
정의로움은 지나치면 잔인한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인자함은 지나쳐도 괜찮지만, 정의로움은 지나쳐서는 안 된다.
[過乎仁, 不失爲君子, 過乎義, 則流而入於忍人. 故仁可過也, 義不可過也.]

- 蘇軾, 「刑賞忠厚之至論」.

蘇東坡가 스물두 살 때 응시한 과거시험 답안에서 한 말이다.

당시 문단의 영수로서 과거시험을 주관했던 구양수(歐陽修)는 이 답안지를 보고 “이 늙은이는 이제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을 수 없게 되었소.”라고 하며 그의 문장을 극찬해 마지않았다.

이에 더하여 “30년 후에는 세상 사람들이 다시는 나를 일컫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며 장차 문단의 영향력이 소동파에게 집중될 것을 예언하였다.

...

‘사랑’은 정의를 포용하지만, ‘정의’는 사랑을 포용할 수 없다. 정의보다 위대한 것은 사랑이다.

소동파의 위대한 안목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동파의 이 문장은 모범답안으로서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삶으로 증명해 내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사랑으로 허물을 덮어주기보다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칼을 휘두르고 싶을 때가 훨씬 더 많은 사람이다. 동파의 모범답안이야말로 ‘정의’보다는 ‘사랑’을 훨씬 더 많이 배워야 할 내 일생의 화두이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반드시 처벌해야 할 때 처벌하지 않는 것은 이미 ‘정의’가 아니며, 마땅히 포상해야 할 때 포상하지 않는 것 또한 이미 ‘사랑’이 아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랑일지라도 정의를 외면한 사랑은 신뢰할 수 없는 법이다. 그것은 단지 사랑으로 포장된 인생의 이기적 욕망일 뿐이다.

·..

나는 동파를 매우 사랑한다. 어디 나뿐이겠는가? 그의 작품과 사적은 당대에 이미 국경을 초월하여 고려에서도 동파의 문예사조가 몹시 유행하였다. 서거정(徐居正)의 <동인시화(東人詩話)>에는 “고려 문인은 오로지 동파를 숭상하여 과거급제자의 방이 나붙을 때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33인의 동파가 나왔구나.’라고 하였다. [高麗文士專尙東坡, 每及第榜出, 則人曰, 三十三人東坡出矣.]

그런 그가 갓 서른이 넘어서 지었던 시 한 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수주(秀州)에 있는 초제원(招提院)의 화상 본영(本瑩)을 만나서 그가 새로 지은 누각 ‘정조당(靜照堂)’에 부치는 시이다. 그는 이때 이미 유학과 불교의 경계를 초월하여 인간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명료한 상태에 이르렀다.·

‘秀州僧本瑩靜照堂’-수주승본영정조당
(수주 화상 본영이 새로 지은 ‘정조당’에 부치는 시)

鳥囚不忘飛, 馬繫常念馳.
(조수불망비 마계상념치)

靜中不自勝, 不若聽所之.
(정중부자승 불약청소지)

새는 갇혀 있어도 날 것을 잊지 않고,
말은 매여 있어도 항상 달릴 것을 생각한다.
고요 속에서 자신을 이기지 못하기보다는
본성의 소리를 듣고 따르는 것이 낫다.

·..

처음 이 시를 접하고 나는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은 큰 충격을 받았다. 동파와 엇비슷한 나이에 인생의 불운으로 크게 낙심하여 좌절을 겪고 있던 나에게 동파의 시는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근원적으로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본질적으로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존재적 각성을 촉발케 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오늘의 나를 있게 만들어 준 내 인생의 위대한 잠언이라 할 수 있겠다.

특별히 이 시 가운데 “새는 갇혀 있어도 날 것을 잊지 않고, 말은 매여 있어도 항상 달릴 것을 생각한다.”라는 이 두 구절은 내 인생의 결정적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간혹 귀인을 만나 내가 쓴 책을 선물할 때면 종종 이 구절을 초서로 써드리곤 하는데, 이는 나의 초발심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과 상대에게도 그날의 감동을 전하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다.

鳥囚不忘飛, 馬繫常念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