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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토피카

행복의 알고리즘적 추구 _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

by 변리사 허성원 2025. 8. 6.

행복의 알고리즘적 추구 _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

 

서론: 인류의 새로운 의제 - 고통의 경감에서 환희의 공학으로

인류 역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 인간의 삶은 기아, 역병, 전쟁이라는 세 가지 거대한 적과의 끊임없는 투쟁으로 점철되어 왔다.1 이들은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자연의 힘이나 신의 변덕으로 여겨졌으며,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불가피한 비극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 이르러,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이 세 가지 문제를 성공적으로 관리 가능한 영역으로 전환시켰다.1 기근은 이제 자연재해가 아닌 정치적 실패의 산물이며,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사람보다 과식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1 흑사병과 천연두 같은 역병은 의학과 공중 보건의 발전으로 대부분 정복되었고, 인류의 주된 사망 원인은 감염성 질환에서 암이나 노환과 같은 비감염성 질환으로 이동했다.1 전쟁 역시 그 빈도와 규모가 극적으로 감소하여,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은 역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1 이 전례 없는 성공은 인류 앞에 거대한 공백을 남겼다. 생존이라는 오래된 과제가 해결된 지금, 인류는 자신의 막강한 힘을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가?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그는 인류가 과거의 성취를 발판 삼아 더욱 대담한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 새로운 의제로 **불멸(immortality), 행복(happiness), 신성(divinity)**이라는 세 가지를 지목한다.2 이 목표들은 단순히 공상적인 꿈이 아니라, 생명과 인간 경험의 신성함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근대 인본주의의 논리적 귀결이다.1 인본주의가 '살 권리'를 신성시했다면, 그 궁극적인 추구는 죽음 자체를 극복하는 불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비참함에서 벗어난 인류의 다음 과제는 당연히 더 행복해지는 것이다.6

이 세 가지 목표 중에서 하라리의 서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은 바로 '행복'의 추구이다. 불멸이 기술적 도전의 최종 목표라면, 행복은 그 도전을 추동하는 가장 즉각적이고 보편적인 욕망이다. 더 나은 주관적 경험에 대한 갈망은 인류로 하여금 불멸과 신성을 성취하는 데 필요한 급진적인 기술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핵심적인 촉매제가 된다. 본 보고서는 하라리가 제시하는 '행복'의 개념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그가 어떻게 행복을 심리학적, 그리고 결정적으로 생화학적 현상으로 해체하는지, 그리고 이 해체가 어떻게 행복을 철학의 영역에서 공학의 영역으로 이동시키는지 탐구할 것이다. 나아가, 이 알고리즘적 행복 추구가 어떻게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데우스'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역설적으로 자신을 탄생시킨 인본주의 이데올로기 자체를 해체하고 '데이터교(Dataism)'라는 새로운 신앙을 탄생시키는지를 비판적으로 고찰할 것이다.6 결국, 행복을 향한 여정은 신이 되려는 인간의 야망이 어떻게 스스로를 새로운 질서의 도구로 전락시키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서사의 시작점인 셈이다.

제1부: 주관적 안녕의 해체

제1장: 진보의 심리학적 역설 - 기대치의 덫

인류는 지난 수십 년간 물질적 풍요와 안락,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역사상 유례없는 진보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러한 객관적인 조건의 향상이 반드시 주관적인 행복도의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라리는 이 역설을 설명하기 위해 행복이 객관적 조건 그 자체가 아니라,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기대치의 상관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심리학적 통찰을 제시한다.5 인간의 마음은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와 같이 작동하여, 조건이 개선되면 기대치 역시 빠르게 부풀어 오른다. 그 결과, 실제 삶의 질이 극적으로 향상되더라도 만족도는 제자리에 머물거나 심지어 하락하기도 한다.8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명백한 증거는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높은 자살률이다. 높은 수준의 부와 평화, 사회적 안전망을 갖춘 국가들의 자살률이 물질적으로 훨씬 궁핍한 전통 사회보다 현저히 높다는 사실은, 객관적 조건이 행복의 결정적 변수가 아님을 시사한다.5 마찬가지로, 1950년대 미국인과 1990년대 미국인의 주관적 행복도를 비교한 연구들은, 그 사이 엄청난 경제 성장과 기술 발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 수준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음을 보여준다.12 이는 소득과 행복의 관계에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이 존재하며, 일단 기본적인 필요가 충족되고 나면 물질적 진보가 더 이상 행복 증진에 기여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인간은 평화와 번영 그 자체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기대와 일치할 때 비로소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5

하라리의 서사에서 이 심리학적 덫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행복을 증진시키려는 기존의 거시적 접근법, 즉 경제 성장, 사회 개혁, 정치적 안정과 같은 외부적 수단들의 근본적인 한계를 폭로하기 때문이다. 인류가 아무리 유토피아에 가까운 사회를 건설하더라도, 기대치라는 심리적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한 영원한 만족은 불가능하다. 이처럼 외부 세계를 바꾸는 것을 통해 행복을 얻으려는 길이 막다른 골목임이 드러나면서, 인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향하게 된다. 즉, 외부 환경이 아닌 인간 내부의 세계를 직접 조작하려는 급진적인 발상이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2 심리적 한계는 결국 생물학적 해결책을 모색하게 만드는 강력한 정당화 기제가 된다.

제2장: 감정의 생물학적 토대 - 생화학적 알고리즘으로서의 행복

하라리 주장의 가장 핵심적이고 도발적인 부분은 행복을 철학적, 정신적 영역에서 끌어내려 순수한 생물학적 현상으로 재정의하는 데 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사랑, 성취, 명예, 혹은 삶의 의미와 같은 추상적인 가치가 아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몸에서 일어나는 유쾌한 감각뿐이다.5 승진의 기쁨, 복권 당첨의 환희, 진정한 사랑의 충만감 등은 모두 뇌의 특정 부위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과 같은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의 복합적인 작용, 즉 생화학적 폭풍의 결과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행복은 결국 우리의 생화학적 조건에 달려있다.1

이러한 환원주의적 관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 자체를 알고리즘으로 규정한다.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기체는 생존과 번식이라는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수백만 년에 걸쳐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된 **생화학적 알고리즘(biochemical algorithms)**의 집합체다.15 우리가 느끼는 감정, 욕망, 생각은 이 알고리즘이 외부 자극에 반응하여 내놓는 계산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18 이 관점에서 보면, '자아'나 '영혼'과 같은 형이상학적 실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나'라고 인식하는 것은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화학적 신호들의 복잡한 패턴일 뿐이다.18

이러한 알고리즘적 인간관은 서구 문명의 근간을 이루어 온 인본주의의 핵심 개념인 '자유의지(free will)'를 정면으로 공격한다. 만약 우리의 모든 선택과 결정이 유전자와 호르몬, 뉴런의 상호작용이라는 생화학적 과정의 산물이라면, 거기에는 자유로운 선택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5 그 과정들은 결정론적이거나 무작위적일 뿐, 결코 자유롭지 않다.2 내가 특정 소망을 느끼는 것은 내 뇌의 생화학적 과정이 그런 느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지, 내가 '자유롭게' 그 소망을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다.2 이처럼 과학이 자유의지를 환상이라고 선언하는 순간, 개인의 자율적 선택을 신성시했던 인본주의의 토대는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

이 재정의가 가져오는 가장 중대한 결과는 행복이 더 이상 성찰과 수양을 통해 도달해야 할 철학적 과제가 아니라, 해결책을 찾아야 할 **기술적 문제(technical problem)**로 변모한다는 점이다.20 만약 행복이 단지 뇌 속 화학물질의 적절한 균형 문제라면, 그 균형은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 경제 성장이나 사회 개혁 같은 간접적인 방법 대신, 생화학적 기제 자체를 직접 해킹하고 재설계함으로써 영원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5 여기서부터 행복 추구는 윤리학의 손을 떠나 생명공학자의 실험실로 넘어가게 된다.

이처럼 하라리는 심리학적 논증과 생물학적 논증을 정교하게 연결하여 하나의 강력한 인과 사슬을 구축한다. 외부적, 사회적 해결책의 실패(기대치의 덫)는 내부적, 생물학적 해결책에 대한 수요를 창출한다. 그리고 인간을 알고리즘으로 환원하는 과학적 설명은 그 해결책을 추구할 수단철학적 명분을 제공한다. 이 논리적 흐름을 통해, 행복을 공학적으로 설계한다는 급진적인 아이디어는 단지 가능한 것을 넘어 필연적이고 심지어 필수적인 과제로 보이게 된다.

제2부: 영원한 쾌락을 향한 기술적 경로

제3장: 행복의 생명공학

행복이 생화학적 알고리즘의 조작을 통해 달성될 수 있는 기술적 문제라는 전제가 확립되면서, 인류는 영원한 쾌락을 향한 구체적인 기술적 경로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하라리는 이 경로가 현재의 기술에서 시작하여 점차 급진적인 미래 기술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 첫 단계는 이미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향정신성 의약품(psychopharmaceuticals)**의 광범위한 사용이다.5 항우울제, 항불안제, ADHD 치료제 등은 본래 정신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되었지만, 오늘날에는 건강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일상적인 우울감이나 기분 저하를 관리하고, 집중력과 같은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소비되고 있다.1 이는 인류가 자신의 정신 상태를 화학적으로 통제하려는 시도의 초기 단계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부추겨, 매년 더 효과적인 진통제, 더 자극적인 쾌락을 제공하는 상품들을 쏟아내며 생화학적 행복 추구를 부추긴다.1

다음 단계는 **유전 공학(genetic engineering)**의 활용이다. 크리스퍼(CRISPR)와 같은 유전자 편집 기술의 발전은 인류에게 자신의 유전 암호를 직접 수정할 수 있는 전례 없는 능력을 부여할 것이다.23 미래의 부모들은 자녀에게서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에 대한 유전적 소인을 제거하고, 나아가 쾌락을 더 잘 느끼거나 스트레스에 덜 민감하도록 유전자를 '향상'시키려 할 수 있다.25 이는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감정적 기질 자체를 설계하는 단계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이 기술적 경로의 정점에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 BCI)**가 있다.24 BCI는 뇌에 직접 전극을 삽입하거나 비침습적 장치를 통해 뇌의 전기 신호를 실시간으로 읽고 쓰는 기술이다. 이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면, 행복감과 관련된 신경 활동을 정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직접 자극하는 것이 가능해진다.20 이론적으로 이는 원치 않는 모든 정신적 고통을 제거하고, 원할 때마다 순수한 환희와 평온함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즉, 인간이 자신의 주관적 현실을 의지대로 켜고 끌 수 있는, 신과 같은 통제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28 이렇게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 생명을 설계하고 환경을 통제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를 우리는 '신'이라고 불러왔으며, 행복 추구는 그 신성을 획득하는 과정의 핵심 동력이 된다.20

기술 (Technology) 행복 추구에서의 기능 (Function in Happiness Pursuit) 윤리적 문제 (Ethical Challenges) 불멸/신성과의 연결 (Link to Immortality/Divinity)
향정신성 의약품 (Psychotropics) 기분 조절, 부정적 감정 제거 5 화학적 대처의 정상화, 치료와 강화의 경계 모호화 1 전제 조건: 잠재적으로 길어진 삶을 견딜 만하게 만듦.
유전 공학 (Genetic Engineering) 우울, 불안 유전자 편집; 쾌락 증진 유전자 추가 가능성 23 우생학적 함의, 맞춤 아기, 인간 본성의 비가역적 변화 5 기반: 장수와 행복 모두를 위해 유기체의 기본 코드를 재설계함.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BCI) 쾌락 중추의 직접적, 실시간 통제; 모든 원치 않는 정신 상태 제거 24 자율성의 궁극적 상실, 외부 통제/해킹 가능성, 자아의 침식 20 정점: 주관적 현실을 직접 창조하고 통제하는 신과 같은 힘을 제공함.

제4장: 설계된 만족의 윤리적 딜레마

생명공학을 통해 행복을 설계하려는 시도는 인류에게 전례 없는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동시에 심각하고 복잡한 윤리적 딜레마를 제기한다. 영원한 쾌락의 추구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측면들을 위협할 수 있다.

첫째, 의미의 침식 문제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고통과 역경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인격을 단련해왔다. 니체의 말처럼,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어떤 고난도 견뎌낼 수 있다.13 그러나 만약 생화학적 조작을 통해 모든 불쾌한 감각과 정신적 고통을 손쉽게 제거할 수 있다면, 의미를 찾기 위한 투쟁 자체가 불필요해진다. 노력 없이 얻어지는 끝없는 쾌락의 삶은 역설적으로 깊이와 목적이 부재하는 공허한 삶이 될 수 있다. 하라리는 이러한 '설계된 만족'이 인류를 의미 없는 존재로 전락시킬 위험을 경고한다.

둘째, 새로운 생물학적 불평등의 출현이다. 행복을 증진시키는 첨단 기술, 특히 유전자 편집이나 BCI 이식은 막대한 비용을 수반할 것이 자명하다. 이는 부유한 소수만이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 인류는 생물학적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초인간 엘리트 계층과, 자연적인 생화학적 조건에 갇혀 상대적 박탈감과 무용함에 시달리는 거대한 '쓸모없는 계급(useless class)'으로 나뉠 수 있다.5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깊고 극복하기 어려운 사회적 균열을 만들어낼 것이다.

셋째, 자율성과 정체성의 위기다. 만약 나의 감정이 더 이상 내면에서 우러나온 유기적인 반응이 아니라, 외부의 기업이나 정부가 설계한 알고리즘의 산물이라면 '나'는 누구인가?.16 우리의 가장 내밀한 주관적 경험이 외부의 조작에 노출될 때, 진정한 자아와 자유의지라는 개념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2 내가 느끼는 사랑, 분노, 기쁨이 모두 프로그램된 것이라면, 인간의 정체성은 그 근본부터 해체될 수밖에 없다. 이는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라는 인본주의적 가치에 대한 정면도전이다. 행복을 추구하려는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이 결국 인간을 비인간적인 존재로 만들 수 있다는 끔찍한 역설이 여기에 존재한다.

제3부: 이데올로기의 계승 - 인본주의에서 데이터교로

제5장: 인본주의의 종언

근대 이후 수백 년간 세계를 지배해 온 이데올로기는 '인본주의(Humanism)'였다. 하라리는 인본주의를 신이나 성서 대신 인간의 경험과 감정을 권위의 최종 원천으로 삼는 일종의 '종교'로 규정한다.9 이 신앙 체계에서 최고의 계명은 "너 자신에게 충실하라", "네 내면의 소리를 따르라"는 것이었다.31 선과 악, 미와 추의 판단 기준은 외부의 초월적 존재가 아닌, 개개인의 주관적 느낌에 있었다. 자유주의 정치, 자본주의 경제, 현대 예술은 모두 이처럼 개인의 자율성과 내면적 경험을 신성시하는 인본주의의 토대 위에 세워졌다.18

그러나 21세기의 과학은 이 인본주의의 신성한 토대를 무너뜨리고 있다. 제1부에서 살펴보았듯이, 생명과학은 인간을 '분할 불가능한 개인(individual)'이 아니라, 유전자, 호르몬, 뉴런으로 구성된 '분할 가능한 존재(dividual)'로 파악한다.16 그리고 우리가 '자아'라고 믿었던 것은 영원불변하는 영혼이 아니라, 뇌에서 일어나는 생화학적 알고리즘의 일시적인 결과물에 불과하다고 선언한다.17 만약 진정한 '자아'도, '자유의지'도 없고 오직 결정론적이거나 무작위적인 생화학적 과정만 존재한다면, 인본주의가 권위의 원천으로 삼았던 '내면의 소리'는 더 이상 신성한 진리의 목소리가 아니라, 의미 없는 생화학적 잡음에 불과하게 된다.5

여기서 하라리가 지적하는 가장 심오한 역설이 드러난다. 인본주의는 자신의 가장 위대한 성공에 의해 파괴된다는 것이다. 인본주의의 최고 가치, 즉 인간의 행복을 극대화하려는 끊임없는 추구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몸과 마음을 조작하는 생명공학과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을 이끌었다.10 그러나 바로 그 기술들이 인간의 '자아'와 '자유의지'가 허구임을 과학적으로 폭로함으로써, 인본주의의 근간을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것이다.9 결국 인류는 행복이라는 성배를 손에 넣기 위해 달려간 끝에, 그 여정을 시작하게 했던 신앙 자체를 파괴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제6장: 데이터교의 부상 - 새로운 의미의 원천

인본주의가 남긴 권위의 공백 속으로 새로운 이데올로기, 즉 '데이터교(Dataism)'가 부상한다. 데이터교는 우주 전체를 데이터의 흐름으로 간주하며, 어떤 현상이나 존재의 가치는 그것이 데이터 처리에 얼마나 기여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하는 세계관이다.33 이 새로운 종교의 최고 가치는 인간의 경험이 아니라 정보의 흐름(information flow) 그 자체다.30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기체는 생화학적 데이터를 처리하는 알고리즘에 불과하다.36 그리고 인류의 역사적 사명은 더 효율적인 데이터 처리 시스템, 즉 만물인터넷(Internet-of-All-Things)을 창조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37 데이터교의 시각에서 보면, 개인의 행복 추구는 그 자체로 신성한 목적이 아니라, 거대한 데이터 처리 시스템에 정보를 공급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우리가 착용하는 생체 인식 센서, 우리의 감정을 분석하는 AI 상담사, 우리의 욕망을 예측하는 추천 알고리즘 등은 모두 우리의 주관적인 삶을 정량화된 데이터 흐름으로 변환시키는 장치들이다.19 데이터교도들에게 경험은 공유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록하고, 업로드하고, 공유하라!"는 새로운 계명에 복종하게 된다.1

데이터교의 부상은 궁극적으로 **지능과 의식의 대분리(The great decoupling)**를 초래한다.26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의식(주관적 경험)을 갖지 않고도,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순수한 지능만으로 인간을 압도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구글과 아마존의 알고리즘이 나의 생화학적 데이터를 분석하여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알게 되는 순간, 권위는 인간의 직관에서 알고리즘의 계산으로 결정적으로 이동한다.15 우리는 배우자 선택, 직업 결정, 심지어 정치적 견해까지도 알고리즘에 위임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알고리즘이 나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최적의 선택을 내려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37

이 과정에서 거대한 전복이 일어난다. 개인의 주관적 행복을 극대화하려는 인본주의의 정점에서 시작된 여정이, 역설적으로 개인을 객관적인 데이터 생산 단위로 전락시키고 모든 권위를 외부의 비인격적인 시스템에 넘겨주는 결과로 이어진다. 주관적 권위의 궁극을 추구한 결과가 권위의 완전한 상실인 것이다. 결국 불멸, 행복, 신성이라는 '호모 데우스'의 삼위일체적 목표는, 그 모든 과정을 관리하고 최적화하는 데이터교의 알고리즘에 의해 통제된다. 신이 되려던 인간의 꿈은, 인류를 우주적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라는 새로운 비의식적 신의 도구로 만드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

결론: 신성의 대가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에서 행복 추구는 그 자체로 최종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과거 문제들로부터 미래의 야망으로 나아가는 다리이자, 인본주의를 해체하고 데이터교의 기반을 구축하는 강력한 촉매제이며,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변모시키는 거대하고 역설적인 서사의 핵심 동력이다. 기아, 역병, 전쟁이라는 고통에서 벗어난 인류가 다음 목표로 삼은 행복은, 심리적 한계에 부딪히자 생화학적 해결책을 모색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조작 가능한 알고리즘으로 재정의했고, 이는 영원한 쾌락을 공학적으로 설계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이 기술적 경로는 필연적으로 불멸과 신성을 향한 길과 합쳐진다. 행복을 위해 몸과 마음을 재설계하는 능력은 곧 노화와 죽음을 극복하고, 생명 자체를 창조하는 신적인 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인간의 주관적 경험을 데이터로 변환하고, 그 데이터의 흐름을 최적화하는 알고리즘에 의해 관리된다. 그 결과, 권위는 인간의 내면에서 외부의 데이터 시스템으로 넘어가고, 인본주의는 데이터교에 자리를 내준다. 행복을 향한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이 결국 인간을 역사의 중심에서 밀어내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하라리는 이 거대한 전환의 끝에서 독자들에게 명확한 해답 대신 세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책을 마무리한다.4

  1.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에 불과하며,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한가?
  2.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는가? 39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42

이 질문들은 다가올 미래의 핵심적인 딜레마를 담고 있다. 하라리는 이 미래 시나리오를 하나의 예언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성찰하게 하는 사고실험으로 제시한다. 흥미로운 점은, 하라리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한 암묵적인 대안을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매일 두 시간씩, 그리고 매년 한두 달간의 장기 수련을 통해 위파사나 명상을 실천한다.43 위파사나 명상은 감각과 마음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관찰함으로써 의식의 본질을 탐구하는 수행법이다.45

이는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의식이 지능에 비해 가치 없다고 여겨질 수 있는 미래, 우리의 주관적 경험이 데이터로 환원될 위기에 처한 세상에서, 의식 그 자체를 깊이 탐구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유일한 대항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가 자신의 지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전력 질주하는 동안, 정작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는 소홀했을지 모른다. '호모 데우스'가 던지는 궁극적인 도전은, 우리가 신이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무엇인지, 그리고 의식이란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행복은 단순히 불쾌한 순간보다 즐거운 순간이 더 많은 상태가 아니다. 행복은 자신의 삶 전체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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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92510/episodes/25166490?ucode=L-JCCOyQkB

 

[삶] 호모 데우스에서의 '행복 추구'

호모 데우스에서의 '행복 추구' 유발 하라리의 저서 『호모 데우스』를 비평적으로 분석한다. 인류의 행복 추구가 어떻게 새로운 기술 발전으로 이어지는가. 하라리는 행복이 객관적인 조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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