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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세상살이/창의력

"밥솥은 과학이 아닙니다. 관록입니다."

by 변리사 허성원 2012. 1. 18.
"밥솥은 과학이 아닙니다. 관록입니다."

오늘 지사의 숙소에서 일어나니 전날의 숙취로 속이 안편합니다.
창총(창원총각)의 이런 날 아침은 너무도 서글픕니다.
에궁.. 밥이나 좀 끓여먹어볼까 하고,
압력 솥에 밥 등을 넣고 잠그는데 이게 뭔가 삐딱하다는 느낌과 함께
약간 힘을 더 썼더니 그 이후론 닫기지도 열리지도 않는 겁니다.
한참을 온갖 용을 쓰다가, 샤워를 끝내고 나와서 다시 낑낑 대봐도 요지부동입니다.
쇠덩어리 압력솥이 온갖 방법으로 밀고 당겨도 움쩍을 하지 않으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젠 손바닥이 벌겋게 아파옵니다. 출근은 해야하는데..
그래서 혼자 힘으론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10분 거리에 있는 사무실에 출근한 남자 직원을 오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직원을 호출하고 나니 집사람 전화가 와서 통화를 하다가 이 곤경상황을 설명했더니..
힘을 쓰지 말고 부드럽게 살짝 밀어보랍니다.
전화기를 옆에 놓고.. 설마 그러려고 하는 생각으로 살짝 밀어 봤습니다.
세상에나.. 스르륵 열리는 겁니다.
이런 넨*, 우*질..
우찌 이런 일이..

밥솥에게서 이렇게 지독한 배신감을 느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집사람이 한 마디 합니다.
"솥뚜껑 운전수들의 관록을 무시하지 말라"고..

세상에..
정역학, 동역학, 재료역학, 유체역학, 열역학, 기계요소설계, 기계공작법 등등 온갖 기계관련 학문을 배우고 근 30년을 현장과 데스크에서 기계 관련한 일에 종사해온 제가..
저 기계 같지도 않은 압력솥 하나로 인해 솥뚜껑 운전수에게 수모(?)를 당했습니다.
전국의 기계공학도 여러분 죄송합니다. ㅠㅠ

밥솥은 과학이 아닙니다. 관록입니다.

힘을 빼야만 골프 공이 더 정확히 맞고 더 멀리 갑니다.
보통 힘으로 안열리는 솥뚜껑은 더 많은 힘을 들여야만 열릴 것이라는 그런 고정관념의 작용은 과학기술의 연구분야에서도 곧잘 착오를 유발하는 데 기여하기도 합니다.

통상적으로 과학이나 기술은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대체로 믿고 있지요.
그러나 비합리적이거나 비효율적인 발전도 적지 않습니다.
무조건 앞으로만 달리고자 하는 일종의 관성과 같은 것이 연구개발에서도 나타나는 경우가 많지요.
발전 방향에 역행하면 더 효율적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서 '우주인들의 필기구' 개발 건이 있습니다.
미국 나사에서 우주에서 쓸 필기구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우주에는 중력이 없으니 볼펜의 잉크가 잘 안나오기 때문이지요.
마침내 우주에서 쓸 필기구의 개발을 완료하였는데 연구비가 무려 100만불 이상 들었답니다.
그렇게 힘들게 개발하고는 소련 과학자들을 만나 자랑하기 위해 당신들은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답니다.
소련과학자들은 대답에 미국 과학자들은 할 말을 잃었답니다.

"우린 연필을 씁니다."

고정관념 내지는 관성의 함정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저의 솥뚜껑 열기처럼 말이지요.
미국은 그 개발 결과를 지금 쓰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아마 연필을 쓰고 있을 듯.